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예수와 로마제국

은바리라이프 2008. 5. 7. 13:40
제목 : 예수와 로마제국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1-12-18
어째서 예수는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예루살렘 백성들의 기대를 무시하였으며 왜 그는 지하독립운동 단체인 열심당을 배후에서 후원하는 바리새파의 지도자들을 로마정부에 협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과 함께 싸잡아서 '회칠한 무덤'이며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극언을 퍼부었던 것일까?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반제국주의적인 나라였다. 그들의 역사 자체가 역대의 제국으로 침략당하고 능욕당했던 수난사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왕의 제도를 설치할 때에도 강력한 반발이 있었을 정도로(삼상:8:4~22) 그들의 정치방식은 본래 장로들의 합의에 의하여 운영되는 장자권의 통치였다.
어째서 예수는 예루살렘 민중들의 열망과 기대를 무시했던 것일까? 그는 반민족적 보수 반동분자인가, 아니면 로마의 권세에 기가 죽었던 비겁자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성경에서 인류 최초의 장자권자는 아담의 아들인 가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사람과 직접 대화하지 않으시고 사람들 중에서 대표를 뽑아 장자권자로 세워 놓으시고 그를 통해서만 대화하시었다. 이 장자권자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제사권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축복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장자권자는 모든 형제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담의 속죄와 아우들의 평안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의무도 지니고 있었다.
노아의 장자 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첫때인 엘람은 무슨 까닭인지 장자의 자리에서 밀려났고 둘째인 앗수르는 함 집안의 영웅 니므롯에 게 점령당했다.(창 10:8~11). 셈 집안의 아니꼬운 장자권에 대한 함집안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니브롯이 세운 반역의 제국 바벨론은 역사상의 모든 권력이 재력과 결탁하듯이 농사와 기술과 무역으로 부자가 된 가나안 세력과 손을 잡았고 가나안 사람들을 하나님의 장자권에 도전하는 함 집안을 위해서 자기들의 새로운 신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바알 신과 아스다롯과 아세라 등 그들은 얼마든지 자신들의 신을 만들어내었다.
하나님의 장자권이 거세당하고 바벨론제국의 패권이 천하를 지배하게 되자 셈 집안의 일부는 차라리 새로운 땅을 찾아서 아라랏산을 넘어 유량의 길에 나섰고 아르박삿을 비롯한 룻, 아람 가문들을 이들 반역의 세력과 투쟁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서 아르박삿 가문의 에벨은 에덴이 있었다고 여겨지던 유브라데강의 상류인 밧단아람 지역에 셈 집안의 에블라왕국을 건설했다.
이 성공 때문에 그 후로도 에벨의 후손들은 히브리인이라고 불리었는데 히브리라는 이름은 바로 에벨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에블라왕국의 번영은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무너졌다. 하나님의 장자권은 무력으로 성립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준 사건이었다. 에블라왕국은 가나안 가문의 헷 족속에 의해 무너지고 장자의 백성들을 뿔뿔이 흩어졌다. 갈대아 우르라는 변방까지 밀려가서 우상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꾸려가던 데라는 마침내 그 아들 아브람을 데리고 추억의 땅 밧단아람의 하란으로 돌아가 거기서 한많은 삶을 끝낸다. 아버지의 한많은 죽음을 본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진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한 땅은 바로 가나안 땅이었다. 마침내 하나님은 무너진 셈 집안의 아브람 하나를 택해서 가나안에 대한 징계를 계획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훈련시키시고 그에게 아브라함 즉'열국의 아비'라는 새 이름을 주셨으나 다시 그의 자손들을 애굽에 보내 종살이를 시킴으로써 그들을 강인한 백성들로 길러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장자로 지명하신 것이다.
(출 4:22).
마침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심판의 날은 왔다. 광야의 40년 훈련을 받고 가나안에 진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거민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리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 연전연승하자 마음이 해이해졌다. 그들은 거의 다 진멸하고 남은 가나안 사람들을 그냥 살려두어 자신들의 종으로 삼았다. 이것이 올무가 되어 그들의 신앙은 가나안의 우상으로 오염되었고 그들의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바벨론제국에 의해 멸망 당했던 것이다. 그후로도 유대는 계속해서 제국의 지배와 수모를 받았다.
그런 때에 바로 예수라는 이름의 아기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그는 장성하여 갈릴리 지방에 나타났다. 그는 백성들에게 외쳤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는니라?"(마 4:17).
그는 성경이 예언한 대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벙어리가 말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비로소 메시야가 온것을 알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는 로마를 철장으로 다스리려 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정한 '맏아들'곧 영원한 장자권자로서 오신것이었다(롬 8:29). 그는 자기 몸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었으며(히 6:20) 형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장자의 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 세상에 제국의 패권이 나타난 원인이 장자의 실패 때문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려면 제국의 타도가 아니라 '회개'가 먼저이어야 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로마제국은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해야 하는 야벳 집안의 아우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장자임을 자처하는 유대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회개를 먼저 요구했다.
거의 모든 로마시민들이 예수를 믿게되자 그 세력을 이용하고 싶었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겠다는 바람에 로마교회는 너무 감격하여 그만 제국의 세력과 손을 잡게 되었다. 이로써 기독교를 손에 쥔 제국의 패권은 계속 이어져서 오늘날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기독교를 동반한 제국세력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가롯 유다처럼 인간적인 이상과 의지로 이에 대항하겠다고 나선 것이 칼 마르크스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인간의 나라를 지향했던 마르크스의 열정은 실패했다.
우리는 오늘날 붕괴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비참한 모습 속에서 목을 매고 죽었던 가롯 유다의 슬픈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이름으로 분신자살을 선동하고 교회의 이름으로 과격한 노사분규를 조종하고 교회의 이름으로 독선적 통일을 주도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실망하여 교회가 나가기를 그만두고 있다. 교회의 이름으로 정치에 나선 사람들의 신념이 옳든 그르든간에그들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그 수많은 영혼들을 잃어버린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신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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