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2002-02-18 |
언젠가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한분이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내게 좀 심한 말을 퍼부은 적이 있었다.『도대체 예수믿는 사람들은 말이 많아.!』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앉아 있다 보면 으레 그런 정도의 수모를 받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나는 미소를 띠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침착하게 물었다. 『...제가 말이 많다는 말씀입니까?』 『아냐, 당신 말고...』 내가 집요하게 추궁해 가면서 그토록 흥분하고 있는 이유를 캐묻자 그분은 마침내 털어놓기 시작했다. 언젠가 주변의 권유로 교회엘 따라 나가 보았더니 목사가 장황스럽게 설교를 하는데 어떤 철학자가 뭐라고 말했다느니, 어느 나라 대통령 누구 누구가 뭐라고 했다느니 하는 말만 잔뜩 하다가는 설교가 끝나더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아는 마음이 그 속에 있어서 (렘 24:7)비록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의하여 교회에 갔다 하더라도 그분은 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사람의 말」만 잔뜩 얻어듣고 끝나게 되자 그만 분통이 터졌던 것이다. 필자가 아는 또 한사람도 부인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기를 시작했으나 그도 역시 처음부터 교회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고 한다. 그 교회의 목사역시 계속해서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꾸며진 「교양강좌」로 시간을 메우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예 교회에 가는 시간을 잠자는 시간으로 활용하여 부인곁에서 내내 졸다가 돌아오곤 하였는데 그 부인은 남편의 문제로 고민하다 교회를 옮기기로 했다. 그 교회는 비록 작은 교회지만 목사님이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방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는 등 성경 중심으로 설교하는 교회였다. 그 후로 남편되는 분은 성경말씀에 감동하여 믿음도 깊어지고 봉사도 열심히 하게 되었다. 아마도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가면서 유식한 설교를 하던 그 목사님들은 교육수준이 높은 인텔리 교인들을 의식하고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위에서 예를 든 두분은 모두 이 나라의 일류대학 출신들이고 직장에서 최고위층에 있는 지식인들이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데 이 시대의 가르치는 사람들은 사람의 말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면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肌渴)이라』(암 8:11) 그래서 성경은 인간적인 유식함에 대하여 경멸하고 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좆음이요 그리스도를 좆음이 아니니라』(골 2:8)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전 3: 19,20) 물론 유명인들의 말을 인용하는 가운데는 훌륭한 신앙인이나 신학자들의 것도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성경의 말씀을 더 빛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구절은 형식적으로 읽어놓고 계속해서 명심보감 엮어대듯이 유명인의 말씀으로만 엮어대다가는 자칫 그것이 설교하는 사람의 「자기 말씀」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설교자는 소크라테스 공자의 말씀까지 들먹이다가 종당에는 석가의 말씀으로 빠져들어가는 것도 보았고 또 우리가 알다시피 어떤 사람들은 자기식의 정의개혁을 부르짖다가 가룟 유다가 했던대로 예수를 겅어차내는 혁명사상으로 내닫게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소롭게 여기시는 것은 바로 이 「자기말씀」을 엮어대는 자들이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은 「자기의 말」로 말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말씀」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 가르치신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 7:16) 뿐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이후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 가운데 살고 있는데 보혜사 성령도 오직 들은 것만을 말씀하신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친 대로 말씀하셨고 우리의 기도를 돕는 성령께서도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어찌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지 않고 사람들의 말로 가르치는 것일까. 아마도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의 설교는 모든 이들이 다 성경을 잘 읽고 있기 때문에 더러 사람의 말을 섞어서 쓴다고 치자. 나는 자주 목사들이 주례하는 결혼식이나 장레식에 참석하게 되는데 그럴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는 예수를 모르는 이들도 많이 오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전도하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주례사는 여전히 유명한 사람들의 어록을 들추어가며... 어느 어느 철학자가 말하였는데 인생은 다 죽는 것이라고 하였고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이런식이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알고 싶고, 왜 하나님과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어야 하는지 알고 싶고, 왜 한국사람이 이스라엘에서 테어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도 알고 싶고... 왜, 왜, 왜...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그런데도 근엄하신 설교자는 고개가 아프도록 높다란 강단위에서 엄숙한 목소리로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설교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요즈음 예배 순서의 진행도 「자동적」이다. 사회보는 분이 『다 일어서십시오.』『찬송가 ○○장을 부르겠습니다』『신앙고백을 하시겠습니다. 』정도도 말하기가 입이 아프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소리를 집어 넣으면 예배 분위기가 경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인지 모르나 새로 나온 사람들은 사람들을 따라서 앉았다 일어섰다, 찬송가장수 찾다가 허둥대가 보면 정신없이 지나가고, 그러다가 사람의 말만 잔뜩 늘어놓은 설교나 듣고 얼떨떨한 채로 예배는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우루루 나와서 서 있는 사람들과 악수하고 그렇게 해서 거룩한 주일 예배는 끝나는 것이다. 답답한 가슴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혹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까 하여 교회에 나왔던 사람들은 씁씁한 표정으로 돌아설 때 정말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어떤 시선으로 그 교회를 바라보고 계실 것인가? 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단순하고 촌스럽게만 느껴져서 점잖은 형편에 그것으로 강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것은 너무나 소박하고 간단한 것이어서 요즘같은 복잡한 세상사람들에게 들려주기에는 어딘가 쑥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모두 두려워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녹 9:26) <김성일님의 "성경대로 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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