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교회는 복음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교회이다. 그런데 독버섯과 같은 '유대주의'가 잠식하여 복음을 변질시키고 기독교를 무너뜨리고자 하였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 자격에 의심을 가하였으며, 바울이 전한 복음에 다른 율법적인 행위를 첨가하려 하였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의 정당성을 예수그리스도를 기초로 변론하고 있다.
1. 사도 바울의 권위(갈1:1-10)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얻게 된 복된 소식이다. 이 메시지는 바울과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들은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다. 그런데 갈라디아로부터 온 편지는 이 복음이 위태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생략하고 바로 변론을 적어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그의 염려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가 말하는 적들의 모습은?
1) 바울의 사도직과 거짓 선생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근거를 신적 권위에 두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동안 제자나 사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며 그분으로부터 직분을 임명받았다(행9:1-8 ; 고전9:1). 그는 그의 사도직이 사람의 선택이나 승인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신적 임명에 의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바울이 염려한 것은 단지 자신의 사도직 박탈이 아니라 성도들이 떠나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지도자나 교회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갈1:3,6,15 ; 갈2:9,21 ; 갈5:4)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적들에 대한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거짓 선생들은 복음에 어떤 행위를 덧붙이려 한다. 그러나 인간 사역에 대한 시금석은 어떤 행위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실성이다(사8:20 ; 딤전4장 ; 요일4:1-6).
2)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많은 고난이 뒤따를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거짓 선생들의 중상모략도 그를 좌절시킬 수 없었다. 만일 바울이 사람들을 두려워하였다면 그는 복음을 사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메시지를 전파할 때 사람들의 욕구를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복음전파자 바울(갈1:11-24)
바울은 사도직을 변호하면서 자신의 과거지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과거의 율법주의적인 삶에서 이젠 변화된 후에 사명자로서의 삶을 증거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다메섹 후에 바울은 어떤 가치관의 변화를 갖게 되었는가? 그리고 바울이 변화 후에 아라비아로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1) 바울의 변화
바울은 처음에 유대주의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전수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메섹 변화 후에는 그들에게 말씀을 수여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임을 알게 되었다. 이 체험은 바울의 신앙과 삶에 분수령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신관, 성서관, 구원관 및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가르침에 의한 각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돌변이었다. 이런 변화를 체험한 바울은 아라비아로 가게 되었다. 그 목적은 야만인을 전도하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정립하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2) 영적 교제의 필요성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바울로 하여금 이전의 삶과 가치관을 포기하거나 변경하게 만들었다. 율법주의의 우월성과 모세의 모든 유전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과연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우리들도 그분 앞에서 나의 우월주의적 가치관을 버리고 있는가? 이런 포기가 있을 때에만 하나님과의 참된 영적 교제를 통한 그분의 뜻을 바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3. 이신칭의(갈2장)
본 장에서도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는 계속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전한 이신칭의 복음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인정하였음을 증거로 제시한다(갈2:1-10). 그리고 유대주의의 수장격인 베드로를 책망함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증거한다(갈2:11-14). 그러면 바울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예로 들은 이유는? 그리고 베드로에 대한 책망의 의미는? 이런 증거 후에 바울은 복음을 어떻게 요약하고 있는가?
1) 복음의 변호
예루살렘은 원래 율법주의를 기초로 했던 유대교의 총 본산지였다. 그런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이신칭의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이방인들에게 이신칭의가 참된 복음임을 강력히 증거하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야고보, 베드로, 요한 이들 세 명은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실 때에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확실성을 증거한다. 그리고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하였던 것을 상기시킨다(갈2:11-14). 그 때 유대주의자들은 베드로 사도가 그들의 전략에 말려들게 하는 데 성공했다. 왜냐하면 이방 기독 신자들과 이미 함께 먹고 있던 베드로가 갑자기 그들로부터 물러나서 그 자신을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베드로의 행동은 '할례당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갈2:12). 여기서 바울은 베드로가 율법적 행위에 실패한 것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던 때에(행10:34-48) 비추어 이신칭의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율법에 의한 의는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보다는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게 된다(롬10:3). 그러나 믿음에 의한 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일치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참된 의에 이르는 길은 자신의 죄와 무력함을 인정하고 예수그리도만을 구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칭의는 오로지 믿음에 의한 것으로 세례나 어떤 특정한 방법이나 어떤 종파적·사회적 조건을 부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2) 그리스도 안의 새 생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 것이 되었다"(고후5:17).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망과 부활이 단지 역사적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믿음을 통해 그와 연합함으로 그 안에 그의 백성들이 함께 참여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였고, 이전의 악하고 추한 모습은 깨끗하게 씻음받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새롭게 거듭났다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 안에 사소한 문제가 생길 때는 가능한 유순하게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복음 진리가 위험해지면 우리는 그 복음의 정당성을 강하게 변증해야 한다. 현대교회 안에도 말 많은 소수의 단체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이 진리를 반대할 때 그들을 반격하는 일을 망설여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