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바울서신

연구 2 복음에 대한 바울의 변론(갈3,4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0:39
연구 2 복음에 대한 바울의 변론(갈3,4장)
연구 2 복음에 대한 바울의 변론(갈3,4장)

사도 바울은 복음을 본격적으로 변호하기 시작한다. 그는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인 율법과 복음을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아니라 못박히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선언이다. 이런 예수의 대속적 은혜는 언제까지나 생생하고도 정당하게 적응되는 것이다.

 

1. 율법과 그리스도(갈3장)

 

갈라디아서 3장에서 바울은 세 가지 요소로 복음을 변호한다. 첫째는 갈라디아 교회의 경험과 구약성경의 경우들을 증거로 믿음으로만 외롭게 됨을 설명한다(갈3:1-14). 둘째는 율법과 언약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갈3:15-22), 셋째는 율법의 기승을 설명하면서 믿음과 연관시켜 변호한다(갈3:23-29). 그러면 갈라디아와 같은 이방인들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은 무엇이며, 율법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은 무엇인가?

 

1) 믿음인가? 행위인가?

유대주의 거짓 선생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율법을 다 지켜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 가르쳤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 말에 귀가 솔깃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어리석음을 꾸짖으면서(갈3:3) 아브라함의 자손은 믿음으로 이루어진 자손임을 역설하고 있다(갈3:6-9). 그래서 바울은 창12:3(창22:17 ; 행3:28)의 인용을 통해 아브라함의 자녀는 육체의 계통이 아닌 영적인 후사임을 말하고 있다(갈3:7,9). 특히 창22:17의 '아브라함의 씨'를 통해 그의 자손들이 넘쳐나리라는 약속이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다(갈3:16). 그리고 이 약속의 땅의 축복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기업인 것이다. 그리고 율법은 준행 불능성을 통해 복음이 더욱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율법은 몽학 선생으로 우리의 행위들을 지적해 줌으로써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든다.

 

2) 자유하는 신앙

우리는 '율법 아래'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만일 우리가 율법 아래로 돌아가려 한다면 우리의 삶은 율법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자유롭게 된다. 우리가 몽학 선생의 정죄와 훈계를 받고 있는 한 자유하는 신앙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루빨리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삶을 체험해야 할 것이다.

 

2. 종과 자녀(갈4:1-11)

 

이제 바울은 앞 장의 설명을 토대로 하여 율법에 거하는 모습과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습을 대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변화된 우리의 신분은 어떠하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무엇인가?

 

1) 변화된 신분

바울은 율법을 초등 학문으로도 묘사하고 있다. 초등 학문은 stoiceia(스토이케이아), 즉 '원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초보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래 거하는 사람들은 유년 또는 미성숙한 상속자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후견인이나 청지기 아래 맡겨져 있으며, 그들의 상속자가 인격과 재산을 관리하게 된다. 이들은 사실상 주인의 신분이지만 자유가 없다. 그들은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갈4:2) 이 굴레에 묶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그리스도를 인하여 성숙된 아들의 신분을 갖게 하셨다.

 

2) 하나님의 자녀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갖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더욱이 그의 죽음은 속량뿐만 아니라 입양의 효력도 있다. 그리고 자녀된 증거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셨다(롬8:15,16 ; 갈4:6).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다시 미성숙한 상태, 즉 율법 아래 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의 신분(갈4:12-31)

 

바울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공로를 대조하면서 언약의 자녀들의 특성을 말하고 있다. 그는 어떤 지식의 변론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 풍유를 통해 바울이 말하는 언약의 백성은 누구를 말하는가? 이 백성이 당하는 핍박과 축복은 무엇인가? 그리고 갈라디아 교인을 대하는 바울의 태도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 언약의 자녀와 목회자 바울

갈4:22부터 시작하는 풍유에는 영적인 진리를 함축하고 있다. 여기서 두 여인은 두 계약으로 율법에 근거한 모세의 계약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인 것이다. 이들은 원래 상반된 관계가 아니며 모세의 계약인 율법은 새 언약의 복음을 안내하는 인도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인간의 의지와 공로대로 뜻을 성취하려 하던 하갈과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에 매여 더 발전적인 새 언약을 바라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약 백성은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같이 새 언약을 받아들임으로 되어진 것이다. 더욱이 이런 약속의 자녀들은 이삭이 이스마엘에게 핍박과 조롱을 받았듯이 세상의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망 가운데 거하는 이들은 멀지 않아서 하나님의 상속자로 모든 영광 가운데서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2) 목회자의 신분

바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목회자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다스리면서 군림하는 왕의 신분이 아니다. 우리 교인들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교인들의 관계는 상하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교인들을 '형제들' 이라고 부른다(갈4:12,28,31 ;갈6:1,18). 또한 그들을 '나의 자녀들' 이라고 칭하고 있다(갈4:19). 이처럼 사도 바울은 구성원 사이에 가족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복음에 합당한 말씀을 전할 때에만 그 권위, 즉 하나님의 전권 대사의 권위를 갖음을 늘 인식해야 한다.

 

구약의 약속의 진정한 성취는 영적인 것이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의 백성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스마엘의 종교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 없이 인간 스스로의 가능성 위해 구축된 종교이다. 그러나 이삭의 종교는 은혜의 신앙이다. 우리는 이삭과 같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신뢰를 하나님께만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