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바울서신

제 4 강 갈라디아서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0:38
제 4 강 갈라디아서
제 4 강 갈라디아서

1. 배경 상황

 

갈라디아서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를 개최하도록 한 일련의 초대교회 사건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초반부(1-7장)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만 전파되고 있다. 그후 예루살렘 안에서의 박해로 인해 많은 복음 전도자들은 선교 영역을 이방 지역으로 넓혀가게 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교도의 상태에서 직접 개종했거나 혹은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후 시리아의 안디옥은 많은 회랍인들을 영입하게 되었다. 갑자기 불어난 이방인들의 신앙을 위해 예루살렘 교회는 급기야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년 동안 안디옥에서 주로 희랍인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벌였다. 안디옥의 이방인 대량 유입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 신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머지않아 이방인들이 초대 교회 안에서 유대인들의 수를 압도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에서의 일년 동안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의 후원으로 제1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제1차 선교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이방인 개종자의 수는 엄청나게 불어났다(행13,14장). 그러자 예루살렘에 있던 일단의 유대인 신자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수리아 안디옥으로 가서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15:1)고 강론하게 되었다. 이것이 급속히 퍼져 나가자 바울은 회람 서신을 통해 경계의 신호를 보내게 되었다.

 

2. 내용

 

율법을 준수하는데 대한 논쟁으로부터 나온 두 번째 기록은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야고보서가 윤리적 자유로 인한 방탕과 방존의 모습을 경고하는 유대인 신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라면 이에 반해서 갈라디아서는 윤리적 절제의 자세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이거나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갈라디아서는 영적 해방의 대헌장이라 불려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에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는 당시의 역사적 평론의 책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부패에 대한 항의였다. 율법으로 보다는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 핵심적 진리가 유대인들의 율법 강조에 의해 혼미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가르침이 갈라디아 교인들의 자유로운 삶에 멍에를 씌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단호히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의 어조는 도전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불쾌감에서 오는 분노가 아닌 영적 원리로 인한 것이었다.

 

3. 야고보서와의 관계

 

야고보서와 갈라디아서는 비록 실제로는 상호 보완적이지만 처음부터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기독교 교리의 두 가지 양상을 예시하고 있다. 야고보서에는 그리스도의 윤리에 대한 원고한 주장과 믿음은 그 열매로 증명될 수 있음을 증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서는 바울 못지않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개인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즉 그는 "그가 그 창조물 중에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좋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갈라디아서는 윤리적 행동을 창출해 내는 복음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바울이 야고보 보다 윤리적인 면을 경히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동전의 양변과도 같이 기독교의 이 두 가지 양상은 병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4. 갈라디아서 교회에 대한 이론

 

바울은 이 서신을 "갈라디아 여러 교회에게"(갈1:2) 보내고 있다 정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이곳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터키 중앙북편을 지칭하며 또 다른 곳은 터키 남부를 지칭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해석이 옳은가를 놓고 논쟁하기보다는 바울이 제1차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들에게 이 서신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지지한다. 즉 갈라디아 교회는 터키 네 도시들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 도시들의 이름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그리고 더베이다(행13,14장). 이 입장을 확증해 주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갈4:14에서 바울은 독자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영접했다고 말한다. '천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a[ggelo"(앙겔로스)는 '사자'로 번역될 수 있는데, 이 번역은 바울의 제1차 선교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생긴 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희랍 신화 속에 한 전설이 있었다. 그 내용은 쓰스(제우스)와 그의 사자 헤메(헤르메스)가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찾아온 쓰스와 헤메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 중 어느 가난한 부부만 그들을 환대하였고, 쓰스와 헤메는 나중에 그 행위에 대하여 크게 보답하였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루스드라 사람들은 쓰스와 헤메가 각각 바나바와 바울이 몸을 입고 재림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도 그런 것이 그들은 루스드라인들이 보는 앞에서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의 마지막에 가서 바울은 "내가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고 고백한다. 그는 루스드라의 독자들에게 제1차 선교 여행중 그 도시를 떠나기 전에 그에게 생겼던 일을 회상시키고 있는 것 같다.

 

5. 갈라디아서의 특이성

 

갈라디아서의 서두 몇 구절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서신이 독특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바울은 통상적으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편지를 시작한다. "사도 바울은…에 있는 교회에게…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내가 감사하노라", 그러나 갈라디아서에는 몇 가지 차이점들을 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사도된 바울은'이라는 시작말 앞에 권위에 관한 설명이 돌연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신의 사도적 소명이 어떤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직접 온 것임을 분명히 밝히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바울은 갈1:4에서 복음을 간략히 묘사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복음의 진리와 순수성 역시 도전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두 가지 사실이 바울에게는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이 서신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말을 생략하고 있다. 그는 "내가 감사하노니"라는 말 대신에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1:6)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