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대선지서

연구 6 위대하신 하나님(사40-80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19:18
연구 6 위대하신 하나님(사40-80장)
연구 6 위대하신 하나님(사40-80장)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주인이다. 따라서 그분은 세상의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시며, 어느 누구도 그분을 능가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런 분이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신다. 왜 그분은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여 그분의 깊은 뜻을 찾아 보아야 한다.

 

1. 여호와의 종(사40-42장)

 

사40:3-5에 나타난 예비되어야 할 그 길은 누가 사용할 것인가? 겔10:18,19에서 보듯이 성전은 여호와의 거처였는데, 여호와께서 그곳을 떠나신 때가 있었다. 이는 여호와가 그의 백성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떠나셨던 여호와가 다시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함은 전형적인 동양의 방식이다. 이 길을 사용한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사42:1-4에 여호와의 종이 나타나는데, 그 종은 여기 길을 사용하는 자와 연관이 있는가? 그리고 그 종의 모습은 어떠한가?

 

1) 구원자

먼저 예비되어야 할 그 길을 사용할 분은 여호와 자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길은 '여호와의 길'이라 했다. 이 길로 오시는 여호와가 사42:1-4에 오실 여호와의 종과 동일 인물인가? 먼저 사42:1에 '하나님의 신'을 받은 자가 여호와의 종임을 나타낸다. 그러면 그 여호와의 종의 모습은 대표적으로 모든 이방에까지 진리로 공의를 베푸는 자의 모습이다. 이는 이방에 빛이 되며 소경의 눈을 밝히고, 갇힌 자를 자유케 하실 모습이다. 이 모든 내용이 나사렛 회당 설교 때 이루어졌음을 예수께서 선포하셨다(눅4:16-21). 결국 여호와의 종의 모습은 구원자의 모습이다. 이 구원자는 겸손하시어 나귀 새끼를 타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2) 교회의 할 일

오늘날 교회가 큰 고랑에 빠졌는데, 이는 개 교회주의를 말한다. 자기 교회를 중심으로 단단한 울타리를 친다는 뜻이다. 그 울타리가 단단할수록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원자 되신 예수님의 온유를 따라 개 교회만을 위한 목소리를 낮추고, 주님의 사랑을 널리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유일신 여호와(사43-45장)

 

이사야 43장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말하고 있다. 그 전체적인 의미(회복)의 강한 표현은 '두려워 말라'에 있다. 그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유일한 구속자이시기 때문이다(사43:1). 많은 사람들이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을 하나님께서는 소용없는 일로 간주하고 말씀하셨다. 어떤 근거에서 두려움이 소용없는가? 그리고 그 '구원자"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로 주어지는가?

 

1) 이스라엘의 창조자

사43:1은 유일신 여호와가 "두려워 말라"는 이유로 두 가지를 밝히고 있다. 첫째는 "너를 구속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확실하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자에 의해서 자신들의 위험이 벗겨졌다는 것이다. 즉 올무에서 해방된 새와 같은 것이다. 두 번째는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라고 했는데, 이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상대를 불렀다는 의미이다. 이 특수한 목적은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심은 모두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를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사43:19,20). 결국 이것을 알고 확실히 믿는 자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자라는 표현은 '주인'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2) 우리 삶의 주인

이스라엘의 주인은 분명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들(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새 일(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을 성사시키실 것을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 되실 때 우리들은 새 일을 얻게 되는 것이다.

 

3. 이스라엘의 구원자, 여호와(사46-48장)

 

처음과 나중은 누구인가? 그의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하늘을 폈다. 그리고 그분은 이스라엘을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셨다. 이사야는 본문을 통해 그분께서 하신 일을 땅 끝까지 반포하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가 소식을 전하는 데는 두 가지의 내용이 있다. 그것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다. 모든 사람이 알게 하는 일에 대해서 좋은 소식은 서로에게 기쁨을 주지만 나쁜 소식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어떤 것을 반포하라는 것인가?

 

1)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하나님

처음과 나중되신 분은 구원자 여호와이시다. 그는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상의 역사 전부를 바퀴처럼 둘러싸신다. 그에게는 모든 만물과 역사의 처음과 마지막이 절대적으로 현재이다. 그분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음"을 선포하라고 이사야는 명령형을 사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신약에서도 지상 명령을 내리신 적이 있는데(눅24:44-49; 막16:15; 마28:18-20), 이는 예수께서 인류의 대속물로 죽으사 그를 믿는 자들을 '구속하심'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이스라엘을 구속하심과 대속제물이 되시어 그 백성을 구속하신 예수그리스도는 그 내용을 같이하고 있으며, 온 땅에 전파할 한 가지의 내용임을 알 수 있다.

 

2) 선교의 사명

하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실 것을 엄숙하게 말씀하신다. 이는 구분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의 처지도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원의 체험을 한 자는 이사야의 선포 명령을 따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나팔수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함이다. 그분은 한 번도 자신을 위해서 기적을 일으키신 적이 없으시다. 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뜻은 바로 그의 택한 백성을 구속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구속의 방법이 권위와 위엄의 모습이 아니라 천한 '종'의 모습이었다. 그분은 겸손히 마굿간에서 출생하시었고,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다. 그분의 이러한 모습을 상기한다면 우리 인생의 모든 교만한 생각들이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