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창세기 15장 ‘횃불 언약’이 갖는 구속사적 의미는?

은바리라이프 2008. 4. 22. 20:32
창세기 15장 ‘횃불 언약’이 갖는 구속사적 의미는?
  글쓴이 : 배목사     날짜 : 07-08-19 02:50     조회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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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과 맺은 첫 언약은 아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직후 ‘여자의 후손 언약’(창3:15)에서 부터 노아 홍수 후 물로는 다시 심판하시지 않겠다는 ‘무지개 언약’(창9장)도 있다. 나아가 아브라함에게도 이것은 첫 언약이 아니고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를 때 이미 그를 통해 많은 자손과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언약하셨으며 이것은 그 언약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내용이다. 이전에 하신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확신을 주기 위함이다.

여기서 잠깐 ‘언약’과 ‘계약’의 차이점을 잠깐 구분하고 넘어가자. 물론 이 둘은 엄밀한 차이가 있지만 성경에서는 이 두 계념이 함께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둘의 차이를 정리하고 어떤 의미에서 함께 구별 없이 사용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성경을 “Old or New Testment"라고 할 때 그것은 ‘언약’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언약의 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 언약의 큰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성경을 공부할 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먼저 ‘계약’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상식적으로 계약은 쌍방 간에 이루어지며 쌍방이 함께 이행의무와 이행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계약에는 계약서에 이행의무를 다하겠다는 약속으로 싸인을 하듯이 고대 근동에서는 동물을 쪼개놓고 계약 당사들이 같이 지나갔다. 그 의미는 만약에 어느 한쪽 이든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동물이 쪼개지듯 죽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해도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은 인간이 인류의 시조 아담의 범죄 이후 영적으로 전적 무능해져서 하나님과의 계약을 이행할 능력이 없기에 계약의 형식을 띄지만 모두가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자기 선언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약은 일방적인 약속인 ‘언약’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다. 즉 계약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실로 자비로우신 은혜를 배풀어 구원을 선언하시고 이를 이행하시기 위해서 구속사를 당신의 섭리대로 이끌어 택한 자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하나님과의 계약은 모두가 ‘행위언약’이 아니고 ‘은혜언약’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 언약에 대해서는 차후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본장에 등장하는 횃불 언약을 하나님께서 체결하시면서 언약의 확인을 위한 증표로 희생재물(9절)이 등장하며 그 재물의 쪼개어진 사이로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횃불이 지나가는 사실(17절)이 언급되어 있다. 이 언약 체결방식이 보여주는 구속사적 의미는 실로 깊다고 하겠다. 즉 아브라함이 드린 희생 제사는 근본 하나님이시나 장차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를 속죄 제물로 드리신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예표 한다고 할 수 있다. 죄악을 범한 인류에게는 그 형벌로 죽음이 주어지는 것이 필연적인 바 이를 완전히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것이 본 장과 같은 여러 사건들과 말씀들을 통해 거듭 예언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셨던 것이다.

본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크게 두 가지이시다.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자손(5절)과 지금 아브라함이 서있는 바로 그 땅 가나안(7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사백년 만에 큰 재물을 가지고 나와서 그 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믿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믿은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여호와의 그 언약을)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6절)

이것은 오늘날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것을 의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은총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 언약에서 아브라함이 한 것은 단지 하나님의 언약을 거저 믿었을 뿐이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언약)을 거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의신칭의 교리’(갈3:16)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겠다. 여기서 “의인이 되었다”고 하지 않고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이신칭의 교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 말은 아브라함이 의롭지 못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무한한 자비를 베풀어 그를 ‘의인’으로 인정해주고 대접해주셨다는 뜻이다.

나아가 하나님의 언약대로 그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정확하게 사백년을 종살이 하고 큰 재물을 가지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 역사적인 사실은 우리에게 약속된 가나안, 즉 천국도 반드시 역사 속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언약 체결식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횃불만이 지나가심으로(인간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음)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바 그 은혜를 받은 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의 언약에 대한 감사와 지고하신 섭리에 대한 믿음뿐이다. 이처럼 감사와 믿음만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인간의 유일한 선택임을 알고 오늘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깊이를 더하는 하루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