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3) 왜 가나안지역이었나? |
글쓴이 : 배목사 날짜 : 07-08-11 03:35 조회 :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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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갈대아 우르 출신이다. 당시 그곳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 지역이었고 우르 왕국의 도읍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만들 땅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후 그 땅에서 살라고 하지 않고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당시 인구이동의 경로를 따라 가다가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이르자 하나님은 “네가 보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그 땅은 하나님이 특별히 계획하신 땅임을 알 수 있다. 이 땅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세울 지상의 땅이었다. 왜 하나님은 이곳을 선택하셨을까? ‘장소’ 선택도 ‘사람’과 ‘때’ 선택과 마찬가지로 ‘준비됨’이 그 관건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준비된 곳에서 일하시므로 당연히 그곳은 준비가 된 땅이었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그곳에 무엇이 준비되었다는 말인가?”하고 다시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 땅의 지정학적인 조건과 역사적인 흔적들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이 지역을 포함한 주변 지역들을 살펴보면 가나안은 네 문명의 충돌지점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리엔트 문명지대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통일되면 자연히 그 힘은 남쪽 이집트로 흘러갔고 반대로 이집트 지역의 힘이 결집되면 반대로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했다. 그 길목이 바로 이 가나안이다. 가나안 우측의 빈 땅은 사막이었으므로 그리고 곧 바로 메소포타미아로 올라 수도 없고, 이집트로 내려올 수도 없다. 항상 이 가나안을 거쳐야만 했다. 따라서 이곳은 언제나 두 문명이 충돌하는 전쟁마당이었고 또 서로의 방패막이어서 서로 기회만 있으면 선점하려고 했다. 오리엔트시대가 끝나고 기원전 4세기부터 희랍과 로마시대가 되자 이번에는 이 문명들이 오리엔트로 진입하는 관문이 되었다. 즉 가나안은 네 문명의 전쟁마당이었고 충돌지점이었다. 이제 가나안 땅 내부사정을 살펴 관심을 돌려보자. 강원도보다 조금 더 큰 땅에 일곱 족속들이 이미 터를 잡고 있었고 그 곳은 매우 척박한 땅이다.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에 우리가 굉장히 비옥한 땅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물론 주변의 사막에 비한다면 그런 표현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기름진 땅에 비하면 그야말로 척박한 땅이다. 그리고 실제 척박한 땅답게 가나안은 그 후 가장 험난한 역사를 이어가게된다. 왜 이런 땅이 선택이 되었을까? 도대체 가나안은 어떤 점에서 준비가 되었는가? 결국 이런 대답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큰 고난이 준비된 땅”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가나안은 선택이 되었다. 가나안은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한 땅이다. 거대한 네 문명이 출동한 지점, 일곱 부족이 서로 얽혀 사는 비좁고 척박한 땅이었기에 선택된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가장 큰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땅을 선택하여 그곳에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만들어 네 문화권과 나아가 온 세상에 보여주시려는데 있다. 모형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즉 가나안은 군사적으로는 네 문화권을 능가하는 대국이 될 수는 없지만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는 네 문화권을 압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적인 지배가 아니라 문화적인 정신적인 지배를 시도하신 것이다. 군사적인 지배는 악마의 방법이다. 악마가 지배하는 세속의 역사는 칼로 정복하고 나서 다시 칼에 의해 멸망당한다. 세상은 칼로 죽이고 죽는 역사인 셈인데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신다. 결국 거룩한 문화, 하나님 나라의 윤리와 도덕, 이런 나라를 조건이 가장 열악한 가나안에 심어놓아서 온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계획을 위해서라면 가나안 지역은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정신은 가장 큰 고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중에 우리가 보지만 이 가나안의 정신과 종교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네 문화권을 넘어 전 세계에 퍼져가지 않았나? 가장 활발하면서도 교류가 급격하게 일어날 이 네 지역의 문명 한 복판에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세우려했던 것은 우연히 아니고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임을 잘 알 수 있다. 타고난 여건과 주어진 환경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한숨짓고 낙담하고 있는 분은 없습니까? 그것은 가장 어려운 시련이 주어진 것이 아니고 가장 위대한 조건이 주어진 것입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우리 곁에 계신 분이 당신의 방법대로 인도하실 때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고난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요 발판입니다. 딛고 일어납시다. 그리고 그 분과 함께 위대한 삶을 만들어 가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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