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창세기 12장(1) 왜 갈대아 우르 출신 아브라함이었고 그 때였나?(1)

은바리라이프 2008. 4. 22. 20:28
창세기 12장(1) 왜 갈대아 우르 출신 아브라함이었고 그 때였나?(1)
  글쓴이 : 배목사     날짜 : 07-08-06 02:01     조회 : 91    
  트랙백 주소 : /bbs/tb.php/m6_3/26
본 장은 “아브라함의 소명과 실수 장(소.실)”이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 출신인 아브라함을 불러서 명령하신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 아브라함은 아무런 대꾸 없이 순종한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신 목적은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며 복의 근원이 되기 위함이었다.(2절) 그리고 그로 하여금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기 위함(3절)이었다. 이것은 그가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께 복 받는 비결을 보여 주고 나아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처럼 장차 메시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이나 이방이 모두 구원을 얻게 될 것을 암시한다.(롬4:19-25)

아브라함은 당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가나안을 향해 여행하는 자체가 큰 모험이었을 텐데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순종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바로 이런 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달을 때마다 제사를 드리는 자세 등이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복의 근원으로 선택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각종 우상들을 섬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 핀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다. 물론 노아가 축복을 약속한 셈족이기는 해도 아버지가 우상을 만들어 팔았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우상을 가까이했던 그 족속 중에서 하나님이 이 세상의 구원의 초석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 그도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보겠다고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장면을 보면 그도 죄와 허물 많은 보통 사람에 불과하지 않은가? 물론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 아니고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은혜만이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라 할지라도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 아브라함이었을까?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이후 바로 구원계획을 세우셨다. 창조사역이던 구원사역이던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성경의 모든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치밀한 ‘계획’과 ‘준비’이다. 하나님은 미리 계획하시는 분이시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위해서 꼼꼼히 준비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때(카이로스-하나님이 준비한 때)가 되면 일을 시작하신다. 예수님도 모든 것이 준비된 때(준비하신 때)에 오신 것이 아닌가?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도 바로 ‘때(카이로스)’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므로 ‘때’와 함께 ‘사람’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그 시대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구원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것은 이처럼 ‘때’준비가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 먼저 왜 그 때였을까? 라는 질문부터 물어보자.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므로 고대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선택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4천 년 전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달한 시대였다.

왜 그 때였을까? “하나님은 왜 좀 더 일찍 구원사역을 시작하지 않으셨나? 그랬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을 텐데.....”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 맘이다?”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다.

대답하기 가장 난해 한 큰 질문들은 가장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이 글을 매번 ‘질문’과 ‘답변’식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진정한 믿음, 참 믿음은 질문에서 비롯된다. “의문을 품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만 한다면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도 많이 있다. 그런 문제들도 대답할 수 있는데 까지는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신앙에 있어 확고한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앎이다. 바른 신앙은 바른 앎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교회사 4천 년의 구원사에서 우리들은 수많은 실패한 역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 시기들이 가진 가장 공통적인 문제는 그 시대가 가져야 했던 지식, 즉 역사의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턱대고 믿기만 하려하지 말고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계속 묻지 않으면 정확한 방향을 잡지 못한다. 진정한 물음이 없는 시대는 망했다. 이것은 지난 신, 구약 그리고 교회사 4 천년의 역사가 우리들에게 명확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방향으로 가려면 계속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바로 믿고 있는가?”
  “나는 지금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앞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이 구원사역을 시작하신 것은 메소포타미아 시대였다. 왜 그 시대가 선택되었고 그 시대에 무엇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 문명권과 다른 문명권을 비교해보아야 한다. 무엇을 비교할 것인가에 대답은 “어는 문명이 먼저 시작을 하였나?”를 묻는 것으로 족하다. 왜 그 기준이 중요한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능한 한 빨리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기 위하여 준비된 때를 학수고대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천하보다 귀한 인간들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가장 애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시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때서야 비로소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시기까지 기다리셔야했다. 석기시대에서 토기시대로 발전하는데 2,50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대책 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는 일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구원사역은 결국 ‘종교 활동’이다.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역사 현실을 외면하시거나 무시하지 않으시고, 현실적으로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기다린 때는 구원사역을 펼칠 ‘고등종교’가 등장할 만큼 지성이 성숙한 때였다.  여기에 가장 먼저 도달한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다른 견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다른 문명보다 약 2천여 년이 앞선다고 한다. 구원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자인데,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문자가 고도로 발전을 했었다. 이 당시의 서적들(토판)도 많이 발견이 되었고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 등도 이 시기에 등장을 했다. 당시의 수학 수준도 현대인들을 놀라게 할 만큼 발전을 했었고 인간의 지성이 ‘고등종교(야훼종교)’를 수용할 만한 상태가 된 것이다.

왜 그 때, 거기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나? 왜 그 때 메소포타미아인 아브라함이 선택되었나?  B.C 2천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선택된 이유는 그때, 거기가 가장 먼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먼저 고등종교를 수용할 만큼 지성이 발전되었다면 하나님은 분명 그 곳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 다음 시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