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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명직 목사를 친일인사로 단정할 수 있나?

이명직 목사를 친일인사로 단정할 수 있나?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성결교단의 사부라고 불리는 이명직 목사가 수록되었다. 분명 이명직 목사는 일제 말기에 한국성결교회의 대표로서 일본의 대동아전쟁 수행에 협조했다. 하지만 이명직 목사는 일본의 종교정책에 반대하여 결국 일본의 종교정책 수행에 지대한 장애를 입혔다. 따라서 이명직 목사를 일방적으로 친일인사로 매도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평가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명직 목사와 일본당국의 갈등관계를 역사적으로 밝힘으로서 이명직 목사에 대한 보다 공정한 평가를 시도하려고 한다. 활천의 필화사건:이명직 목사는 [활천]을 통하여 일본의 정책에 반하는 글을 싣고, 이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명직 목사는 1923년 3월 [활천]에 실린 다니..

“이명직 목사는 ‘친일파’ 아닌 일제의 ‘피해자’”

“이명직 목사는 ‘친일파’ 아닌 일제의 ‘피해자’”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입력 : 2009.11.23 06:52 박명수 교수, 일방적 매도 지적하고 공정한 평가 요청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교회사)는 ‘성결교단의 사부’로 불리는 이명직 목사가 최근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것에 대해 “일방적으로 이명직 목사를 친일인사로 매도하는 것은 균형을 잃은 평가”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명직 목사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위해 한국성결신문(www.kehcnews.co.kr)에 특별기고한 글에서 이명직 목사와 일본 당국의 갈등관계를 역사적으로 밝혔다. 박명수 교수는 “역사의 평가는 공정해야 한다”며 “성결교회는 일제 종교탄압의 대상이었고, 이명직은 바로 그 성결교회의 대표자였는데도 ..

마태복음 21장 두 아들 비유

Matthew21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읽었다. '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어떤 사람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맨 먼저 와서 말하기를`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거라' 하였다. 매트. 21:29"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후회하여 갔다. 매트. 21시 30분에 그는 두번째 사람에게 와서 똑같은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하고 대답하였으나, 가지 않았다. 매트 21:31"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을 따랐나요?" 그들은 "첫번째"라고 말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신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