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6 강
<기도>
하나님을 상상(?) 할 수 있는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는 이렇게 하나님만을 찬송하며 하나님이 하신일 만을 찬송합니다. 이게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십자가와 그 보혈만을 붙들 수밖에 없는 그런존재입니다 이 아침에도 우리 하나님의 그 은혜와 우리 하나님의 공로만이 칭찬되고 자랑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말씀:히브리서 10:26~10:31>
히브리서 10장 26절,
26.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 진저
우리가 진리라는 지식을 받은 후에 짐짓 죄를 범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 여러분 죄가 뭘까요 죄가 그냥 오늘날 개혁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성화 은혜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범죄를 말하는 걸까요? 그러면 여러분은 구원 받은 후에 죄를 한 번도 진적이 없습니까? 만약에 죄가 그거라면..그러면 다시는 속죄못받게 되고, 큰일 나거든요 그러니까 죄라는 것이 무엇인가 올바로 정의하지 못하면 성경을 그렇게 표피적으로 밖에 못 보는 거예요 그 밑에 죄가 뭔지 나오잖아요. 뭐에요 29절..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면 용서가 된다. 그래요 그러면 그게 죄라는 거죠
그러면 언약의 피라는 게 뭐예요 어디서 가장 먼저 나오죠? 언약의 피가..창세기에서 일단 무죄한 짐승의 피가 흘려지고 그 부끄러움을 덮는데에서 힌트가 돼죠. 창세기 15장에서 온갖 종류의 제물들..양, 염소비둘기 이런 모든 제사가 거기서 통합되는 거예요 그 제물이 다 드려지는데 그 제물이 쪼개지고 하나님이 홀로 지나가시는..하나님의 자해,…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쪼개져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이게 언약이잖아요 그리고 그 언약의 피가 어디에서 확실하게 드러나 나면 에베소서 1장에서 4절이하에 창세전 언약 ..내 아들의 피로 너희들을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만들 것이다.이게 창세전 언약이다 그렇게하시잖아요!
그 언약의 피를 부정하는 것 언약의 피를 부정하는 게 뭐냐면 인간들의 행함이나 행위를 그 언약의 피에 보태려고 하는 모든 시도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말씀하시면서계속해서 거짓 선지자 거짓 교사 이런 거짓 그리스도 이걸 경계하라 그들이 나타난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 뭐라고 그러냐 하면 그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래요. 거기에서 “많이” 라는 뜻은 대부분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면 한번 보시란만 말이예요. 오늘날 그 기독교가 어마어마하게 부흥이 되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부흥한 종교 아닙니까? 근데 하나님은 마지막에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가가 많이 나타난다고 그래요. 그리고 계시록에 보면 또 거짓 선지자 이 개구리의 영이 많이 한곳에 모여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한다 아마겠돈 전쟁이라고 그래요. 그래놓고 한편으로는 뭐라 그러시냐면 내가 다시 갈때 믿음을보겠느냐 라 그래요. 그거는 Few.거든요. 그러면 한번 보잔말이예요. 많은 자는 거짓이고 Few 거의 없는 자가 믿는다 믿는자예요 믿음이란 말이예요. 근데 많은자들이 어디로 가냐면은, 내 한국에 있을때 그 밤을 샐일이 있어가지고, 밤에 뭘 하겠어요? 티브를 켜 놓았는데 기독교 방송이예요. 근데 시간시간들 다 설교자들한테 팔아먹어가지고 설교가 계속 나오는데 아주 시끄러워 죽겠어요. 근데 들리잖아요. 귀로 계속듣는데, 말도 안되는 꼬멩이 같은 인간들도 있는데, 걔중에 건강한 교회 한다는 그런 사람들 설교들 나오드라고요. 근데 단 한 사람도 예수의 십자가와 그분의 은혜와 보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어요. 밤새 봤는데, 밤새. 그나마 건강한 설교라고 하는게 착하게 성도답게 삽시다,그래요.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상도 받고 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그 이름을, 영광을 위해서 사는게 아니겠슴니까 라고.
여러분 우리가,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라는 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드러나야 되요, 그죠? 내가 변화되고 성숙되어서 내가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어서 그 하나님을자랑하는게 아니예요. 여러분이, 불교인들이 착하게 산다고, 여러분은 아! 그 부처 참 훌룡한 분인데 인정해주세요? 하나님이 하신일이 무엇인가가 드러나는, 그게 믿음을 가진자의 삶이예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그러죠. 바라는 거, 보지못하는게 뭐예요. 천국, 하나님 나라죠?
그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이제 증거로 나타나게 하는게 믿음이다 라는 뜻이다란 말이예요, 그게. 그럼 믿음을 가진 우리, 그 믿음을 선물 받은 우리에서 나오는 삶이 뭐겠어요. 하나님이 통치하시면 저런죽은 흙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있구나를 보여주는 거지,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야지,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서, 아니 율법은 천지가 없어지기전까지는. 안없어진다며요.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예요, 천지가 없어질때까지 율법을 존속케한다는건 뭐예요? 천지가 없어질때까지 이 역사와 인생은, 그 율법의 역할이 죄를 드러내는 거니까, 죄뿐이다를 드러내는게 그 율법의 역할이예요. 그래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까지 율법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지금 천지가 있는데 율법 없어졌어요, 구약의 율법은. 그럼 그 율법은 어떤 모양으로 나에게 있는 거냐구요. 성경을 읽을때 도덕과 윤리로 읽어서 이거를 행하는 것이 성도의 목표이겠거니 하고 곡해하게 만드는것이 율법의 역할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언약의 피,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완전하게 대속했다라는 이거를 얘기를 해 버리면 사람들의 열심이 없어지니깐 목사들이 그 이야기를 못하는거예요. 그럼 뭐 봉사도 안해도되고 헌금도 안해도 되구,뭐ㅡ 왜냐면 사실 그렇거든요. 여러분 그거 안한다고 하나님이 중도에 탈락시키지 않거든요. 근데 그러다 보면 교회 운영이 안되니깐 그 이야기를 못해주는거예요. 그니깐 뭔가에 꼭 묶여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서워하는거예요. 이거 안하면 뭐 안되는거 아닌가?, 이렇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 모든 종교의 신, 그 신을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고 무서워해요, 그죠? 그러니깐 그 앞에서 비는거 아녜요,무서우니깐. 모든 종교의 신이 모든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라구요. 그러니깐 뭐라도 하는 거예요. 치성이라도 드리는 거예요. 새벽에 -----고 목욕하고 빌면 기특하게 봐줄까봐. 그말은 무섭다는거거든요, 그존재가. 이렇게 모든 인간의 신 인식은 신을 미워하게 돼 있어요. 무서워하게 돼있다니깐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평의 도구 “예수”를 주셨단 말이예요. 그런데 여전히 교회안에서도 그 신이 무섭구, 혹시 나에게 해꼬지하지 않을까 내 모습이 이런 상태로 지속이 되면 그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구원의 선물을 취소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때문에 그냥 여전히 그 무거운 짐을 그냥 어깨에다가 짊어지고 말이죠. 그렇게 살고 있는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의 그 언약의 피는 해천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리고 성화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원죄 나부랭이 그런거만 없앤거 아니예요. 원죄 자범죄를 성경이 어디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냥 죄는 죄라니까요. 무슨 원죄 자범죄가 있어요. 그냥 죄예요, 죄. 예수의 피를 안믿는게 죄라니까요. 그 은혜를 전적으로 붙들지 않는게 죄라고 희브리서 기자가 이야기를 하잖아요. 예수의 언약의 피.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그 피로만 너희를 존재만들겠다라는 그거 안믿는게 죄다라고 얘기를 한단말입니다. 그게 죄에요.
근데 그걸 안 믿고, 진리가 전해졌는데 예수의 십자가가 섰는데 그걸 믿지않고 죄를 또다시 범하면
그 얘기가 뭐냐면 십자가가 이미 약속으로 주어졌다는데 증거로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안 믿으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인거에요. 그렇치 않으면더 이상 구원받을 방법이 없다
근데 이런거 가지고도 또 사기를 치죠. 겁을 준다고요. 죄를 지면 어쩌구, 저쩌구. 우리 교회 나간 어떤 장로님이 가신 교회 그 목사님이 목사님 설교를, 그분이 사람들을만나고 다니면서 그런다고 그래요, 그 목사님 설교를 제가 카피했다구. 제가 ‘누가 나같이 또 설교 하는 사람이 있나?’ 그래서 찾아서 들어봤어요. 세 편들 들어봤어요. 근데 처음부터 끝까지 뭐냐하면,” 여러분 우리는 천국에서 이미 구원받았고 천국에서 거짓말도 안하고 나쁜일도 안하고, 이렇게 완성이 돼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거짓말하면안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거예요. 그러니깐 제 설교를 지금까지 그렇게 듣고 있었다는 거죠? 그건. 나 뭐 이런 쓰레기같은걸, 비교를 할려면좀 허, 정신 사나워, 이것들이ㅎㅎ .
아니 여러분 그게 여러분 의지대로 됩니까? 그니깐 웨스터민스터 졸업하고 개혁주의 목사라니깐 그냥 옳은말이겠거니 이러고 ,아니, 카피할거좀 있나 찾아볼려고 그랬더니 개뿔이나 하나도 카피할게 없드라고, 무슨 소린지 도대체.
여러분 우리가 진짜 이 세상 속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어떤 변화와 성숙을 사유할수 있을거 같으세요? 진짜로? 왜 성경이 너희들 다 지키다가 하나만 어기면 다어긴거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너희들 늘 항상 율법을 다 지키지 않으면 너희는 저주 아래에 있는자다 라고 왜 그런말들을 수시로 갖다 집어넣어겠어요, 우리는 이 역사속에서 그게 안된다는걸 확실히 배우고 가는거예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여러분이 태어나면서부터 시집가고 장가갈때까지 부모님밑에서 비데오를 다 찍어야 돼요. 제가 결혼할때 저의 어머님이 제가 어려서부터 하여튼밑에 손톱까지 다 이렇게 붙여가지고 뭐 돌때 찍은 무슨 손도장, 비데오, 놀러갈때 소풍갈때 찍은거 다 주시더라구요. 그걸 쭈욱 보면서, 야~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 그래서 결국 이제 이렇게 망했구나 , ㅎㅎ 왜 그 내 역사가 거기 다 들어있어. 근데 이 역사와 인생의 역할이 그거에요. 내가 옛날에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똥사고 오줌싸고, 이거 우리 부모가 다 이렇게 케어(care)를 해서 지금 사람답게 이렇게 된거지, 그냥 부모가 놔둬 버렸으면 이거 큰일날뻔했구나.
이걸 여러분의 삶으로 몸으로 비데오를 보는거라고 생각하시는거예요.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 이걸 이 땅에서 체험을 하고 가는 거지, 여기에서 여러분이열심히 노력해서 그 땅에 걸맞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가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와서 죽어요, 여기서.
이미 여러분은 보좌에 앉혀있다며요, 계시록 3장으로 가면 예수님 보좌에 우리를 앉게 해준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앉아있데요 우리는, 에베소서에 보면. 그러면 어떻게해서 우리가 앉게 되었는가, 여기서 그거 안하면 그자리에서 끄집어 내겠어요? 하나님이. 이미 앉아있다메, 그걸 안믿는거 아냐,
그니깐 믿음이라는건, 내가 이 세상속에서 외모로what is seen보여지는 것으로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이거는 요, 이건 도저히 논리로 상식으로 안되는 거예요, 그거는. 이런자가 무슨 믿는자야? 그리고 이게 무슨 하늘의 하나님 나라를 살고있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야? 이게 무슨 평화를 누리고있다라는 자의 이 평화의 모습이야? 근데여러분이 감정이나 느낌으로 도저히 이거는 아닌데 말씀이 그렇다고 하니깐 내 감정이 진리냐? 내 느낌이 진리냐? 아니면 성경이 진리냐?, 이 싸움에서, “이게 진리지” 라고 하는게 믿음아닙니까.
근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거, 내 느낌, 내 감정을 갖고, 자꾸 나는 왜 평화롭지 않아?. 아뇨, 평화안에
들어 계시다니깐요 . 말씀이 그렇다고 하니깐 믿느거예요. 믿겨지는거예요, 그게. 내 상황과 현실이 평화롭게 변하는게 아니라. 그러면 도대체 믿음이 왜 필요해요. 근데순 사기를 치고 앉아있는거예요. 뭘 병이 걸려도, 병이 걸리면 아프다고 그러세요. 그거 하나님께 악악거리면서, 하나님 제발 날 고쳐달라고 그러시라고. 무얼 되지도 않는“ 아유, 그래도 하나님 무슨 뜻이 있어서 그렇겠지 뭐. 그래도 저는 기뻐요 “ 사기를 치지 마세요. 뭐가 기뻐요. 내 안에서 문제가 생겼어, 우리 장로님 아드님 목이 뿌러졌었어요. 그때 장로님 기쁘시던가요? 그게 되냐구요, 우리가. 내 자식 목이 뿌러져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그래도 나는 기뻐요”가 되냐구요. 왜 들 사기를 치냐구요.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게 있어요,그러면 여러분 그자리에, 그 수준에서 “하나님 나 너무 가난해서 나 돈이 필요해요” 라고 말씀을 하시라니까요. 그냥 무슨 뜻이 있으셨갖고 그냥 안주시는거지, 속으로는 벗어나고 싶어 죽겠는데, 이게 아닌척 하고 이게 다 습관이 되갖구, 그냥 기쁜척, 평안한척, 아무렇치 않은척, 이러구 앉아있는거예요. 그냥 전부 손양원 목사가 될려구 그래요. 자기 아들을 찔러죽인 자식들을 정말 그 분이죽을때까지 그 살인자가 자기 아들 죽인자가 한번도 안 미워웠을거 같아요? 여러분. 내 아들이 병에 걸렸어요. 얘 떠나면 못 살거 같애. 하나님과 싸우는거예요. “하나님 살려주세요. 고쳐 주세요”. 근데 하나님이 죽였어요. 하나님 도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기도했는데 안 들어 주시죠? 그때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그거였어” 라고 수긍이 오게 돼있는거예요. 싸울때요. 그때에 아,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백성이 나에게는 가치로 있어서는 안되는거구나를 배우게 되고 포기되어지느거예요, 그때요. 근데 해보지도 않고 이거 그렇게 자기가 거기에 얼마나 열정을 갖고 있는지위장하고 있는거라고, 근사하게 감춰놓았다가 나중에 홀랑 빼앗가면 그때 진짜 원망된다니깐요.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하나님 나 돈 필요한데 안줘요. 그때 진짜 내가 이렇게 원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이거 안주셨을땐 이게 내 삶에서는 가치가 아니구나를 그때 진짜 처절하게 알게 된다구요. 처절하게 그걸 원해봐야.
여러분 이세상에서 그 죄와 여러분 안에서 그 죄가 나오는 걸 여러분이 진짜 솔직하게 경험하고 체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 그 죄가 무엇인지 절대 몰라요. 그래소 여러분은 이세상에서 분명히 죄를 짓게 되있어요. 왜 예수가 죽을수 밖에 없었는지를 반드시 가르치신다니까요, 하나님이. 근데 아닌것처럼, 무슨 뭐,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이웃을 섬깁시다, 구제를 합시다.
여러분 왜 초대교회에서 왜 사도들이 구제에 이런것들을 집사들에게 맡기고 자기네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했는지 아세요? 구제라는게 뭐예요. 하도 사람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물물상통을 종용하고 자기것을 다 내놓고.. 여러분 초대교회가 정말 돌아가야 할것이면 그게 지속되었어야 되잖아요. 몇년 못 갔어요. 물물상통. 왜 그런지 아세요? 인간들이 그렇게 살수 있었던건 예수님께서 가시면서 내가 곧 온다고 그랬거든요. 그럼 예수님 곧 오시는데 이세상에서 돈이 뭐가 필요 있어요, 재산이. 그래서 내놓은거예요. 곧 온다고 그래서. 근데 안왔죠. 일년이 가고 이년이 가고 삼년이 갔는데 안와요. 그때 다시 자기걸 챙겨가지고 나갔다니깐요.
이세상, 어떤, 이단집단 말고, 어떤 교회에서 자기 재산을 한 푼도 안 남겨놓고 다 내놓던가가요. 어 이장림의 다미선교회에서 그런 이제 곧 오신다고 하니깐 재산 다 내놓고 온거지. 그러면서 거기 구제가 있었는데 아니 구제라는게 뭐예요. 나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고 받을 자격도 없고 갚을 능력도 없는 자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 이게 고아와 과부들이었단 말이예요. 그래서 교회에서 그들을 도와줬는데 아니 세상에 헬라파 과부들, 유대파 과부들, 거기서 벌써 이 차별이 일어나네, 헬라파 과부들이 데모를 했어요. “우리 왜 차별해?” 이렇게. 보세요. 구제라는게 뭐냐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나눠주는 그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를 구현하는데 있는거지, 불쌍한 사람을 돕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예요.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아무 자격 없는데 이렇게 무상으로 은혜가 무엇인가를 아는건데 거기에 파벌이생기니깐 사도들이 안거예요. 야! 교회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구제나 이런 행위 가 아니라 말씀과 기도구나 하고 사도들이 버리고 도망간거라구요. 그거를 무슨 집사는명예(?) 행정을 해야하고, 장로는 말씀을, 교회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라는걸 보여주는게 촛점이지. 야 이렇게 해줘도 결국은 사람들은 섭섭해 하고 파벌을 나누게 되있구나. 우리가 진짜 전념해야할 교회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밖에 없는거구나 하고 사도들이 다 버리고 도망간거란말이예요,말씀속으로. 근데 이걸 하자는거죠? 지금.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이 빠질수 밖에 없는거에요. 설교에서 예수의 이름이 빠질수 밖에 없는거예요. 언약의 피는 무슨 개뿔이나 언약의 피. 아무 피라도 괜잖어.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야할 언약궤위에 인간들의 희생의 피, 인내의 피, 섬김의 피를 뿌리는거예요., 왜 언약궤위의 그룹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지 아세요?어떤피가 뿌려지는지를 지켜보고 있는거예요. 그래서 엉뚱한 피가 뿌려지면 그 대제사장이 죽는거예요.
근데 오늘날 교회에는 그냥 인간들의 희생의 피를 뿌리겠대, 열심의 피를 뿌리겠다는거예요. 성경은 그런거에 절대 관심없어요.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열심히 노력해라 그건 성경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그냥 우리에게 어떤 지향성으로 생기게 돼요. 왜냐면 죄속에 있는 그 삶만큼 고통스러운게 없기 때문에 그건 우리에게는 지향성으로 생기게 돼있는거예요. 근데 그걸 강조해달라구 , 이야기 해 달라고 그러고, 그말은 바꿔 말하면 나 그렇게 살기 싫어 라는 뜻이에요.
그거는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면 반드시 죄의 그 무시무시하고 더럽고 추악한 것이 내 삶속에서 체감이 되요. 아파요. 그러니깐 아! 정말 하나님 앞에 죽은자로 나만 위해서 사는 그런 나의 쾌락, 나의 유익 , 이런것만 위해서만 사는 이런 삶 참 지긋지긋하다, 희생이 나오죠. 섬김이 나오죠 . 왜 안나와요. 그러면서 또 안돼는 나의 모습, 그속에서 또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예수의 오심, 거기에 대한 감사 찬양 이게 나와야 성도지. 모든걸 법으로 생각을 하니깐, 뭐 교회에서 여자가 잠잠해야 된다던데, 여자는 목사 금지,,여성은 안수 그지.,,동성애라든지, 도대체 이게 왜 교회안에서 이슈가 되냐말이죠. 목사가 뭐예요? 복음전하는 자예요. 그럼 여자 안돼요? 왜 안돼요.
여자야 잠잠해라. 이건 여자란 교회란 말이예요. 인간이란 말이예요. 모든 이 인간들을 이들이 하늘의 계시를 어떻게 알아요. 모르는데 아는척 하는 자들아 잠잠해라 라는뜻이지, 뭐 복음. 여자는 복음전하면 안돼요? 가만 있어야 돼요? 그냥? 질서를 설명할때, 그때야 뭐, 당연히 남자 하나님이 남자 여자 질서를 세웠잖아요. 질서가 깨졌을때어떤일이 일어나는걸 보여주는게 역사니깐 그 질서를 강조할때는 서열을 얘기할수 있어요. 근데 뭐 그런걸로 십년넘게 싸움박질을 하고.
고린도전서에 보면 남자는 남자의 머리는 예수다 그러죠, 그죠? 그리고 여자는 뭐래면 남자다 그래요. 그래놓곤 뭐라고 그러냐하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래요. 그럼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그걸갖구 남자와 여자의 서열을 나눠야 되는거예요? 남자의 머리는 예수라 그러면 남자는 날라간거죠? 그 즉시. 남자는 그 니 머리를 갖구 절대살수 없는 자가 남자란 뜻이예요. 그럼 남자 머리는 날라간다고 그래요. 자기 주체성 상실. 근데 여자의 머리가 남자다 라는 건 남자라는 그 남자가 어떤 남자예요? 목이날아간 남자란 말이예요.그럼 역시 예수를 머리로 한 자가 여자의 머리가 되는 거예요. 모든 존재의 머리는 예수란 뜻이란 말이예요. 근데 그걸갖구 여자는 머리에 뭘 써야 된다구 오늘날 어떤 기독교에서는 여자들 예배드릴때 뭐 쓰게 하는 교회도 있어요. 표피적으로만 보니깐.
바울이 이야기 하고 싶은건 남자의 모가지가 날라갔고, 여자의 모가지도 날라가는거예요. 모든 인간의 모가지는 다 날라갔고, 예수가 머리가 됐는데, 니들은 그 상황속에서도 뭘 쓰네, 안 쓰네, 머리를 빡빡 깍네, 기르네 하면서 계속 예수를 욕되게 하더라 에 촛점이 있는거지, 교회에서 여자가 머리를 길러야 되느냐 짧게 잘라야 되느냐에관심이 있는게 아니라구요. 아니 복음안에서 성경을 해석해야지, 항상 이렇게 어떤 법으로 성경을 보기 시작하면 모든게 다 법이지, 이게. 인간들은 어떤법을 줘도 이렇게 무조건 이렇게 예수를 욕되게 한다.... 그러면 방법이 뭐 예요? 예수를 믿어야 되는거예요. 예수를 믿으랬더니착하게 살겠다구. 이 세상속에서 여러분이 세상으로 부터“착하다, 저사람 많이 섬긴다 구제 열심히 하네” 이렇게 해서 이”나”가 구축이 되는거란 말이예요. 그 “나”. 이게 세상에서 나는거예요. 육으로 나는것. 그렇게 해서 “나”라는 것이 생산이 되는거니까. 그죠? 근데 예수님은 위로 부터 나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 천국 못 들어온다고 그랬잖어요. 그렇다면 이 세상속에서의 이 “나”를 규정한 모든건 아무 가치 없다는 뜻이예요. 성령에 의해, 위에 계신 성령에 의해 규정된 “나”, 예수의 희생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존재된 “나” 이것만 하나님이 가치있게여겨준다란 뜻이란 말입니다.
근데 거듭난다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위로 부터 나는게 뭔지도 모르고 영으로 난다라는게 뭔지도 모르고. 영으로 나는게 뭐예요. 성령에 의해 규정되는 “나”가 영으로낳는 거예요.
그런 개념 정리가 아무것도 안되있는 상태에서 무엇들을 가르치겠다고 계속 설교들을 해대는데, 하여간 한국에서 만난 그 권사님처럼 “아이 내가 절에서 들은 이야기보다 훨씬 저급한 얘기를 내가 왜 예배당에서 들어야 되냐” 그 분이 불교에서 수십년간 불교계(?)에 있다가 기독교로 넘어온 분인데, 아니 절에서 훨씬 더 훌룡한 설교 많이들었는데 예배당 오니깐 예배당에서 똑 같은 소리를 하더라는 거예요. 잘 되게 귀하게(?) 착하게 살아야 한다, 거짓말 하지 말고, 뭐 이런 얘기들을 예배당에서 계속 해주는데 자기는 절에서 더 고급한 수준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예요. 그럼 “왜 내가 개종을 해야되?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나중에는 삐이(?)가 되는, 이게 뭐야? 추구하는게 똑 같은 거야? 제 설교 한 번 듣고, “아 그렇치, 예수 믿어야 되는 거지. 그 십자가 의 의미를 알어야 되는 거지 . 그럼 내가 바꿔야지 “ 근데 모든 설교, 거의 99프로의설교가 다 이 세상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설교예요. 예수 얘기는 안….. . 그니깐 내가 믿음을 보겠냐? 내가 다시 갈때 믿음을 보겠냐? 오죽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회의적인 말을 하시고 가셨겠어요.
그런데 제 눈에는 이렇게 잘못가고 있는게 보이는데 우리가 거기에 왜 그렇게 관심이 없을까. 어제도 가만히 앉아있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뚝 떨어지드라구요 .왜 세상이 이렇게 눈이 멀었을까. 왜 그렇게 못 알아먹을까. 복음을 전했더니, 왜 좀더 많은걸 포용하지 못하냐구 삿대질을 하고 나가고, 왜 우리만 편협하게 이길을 가야하냐구 ..?..소리를 하구., 이제 보니깐 당신만 옳은게 아니었다 라고 ,폭탄.?.... 그러니까 왜 도대체 못 알아먹을까, 없구나, 없구나,
어저께 한국에 있는 삼일교회에서 최종적으로 저한테 청빙 확인 전화가 와 가지고 다음주에 발표를 해야한다고, 제가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떠날까? 뭐 할려고 여기서내가 이러고 있지? 어차피 거기 가도 못 알아듣고 거기서 또 못알아듣는다면….근데 제가 최종적으로 거절을 했는데 , 거절한 이유가 다른게 아니예요. 내가 여기를 떠나더래도 기존에 있는 그런 교회의 제도권안으로는 도저히 못들어갈거 같아서요. 개척을 하면 했지. 거기 들어가서 또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어요. 차라리 그 안에서 제대로 듣는 애들 몇씩 데리고 나와서 하는게 낫지. 그 안에 들어가서 뭐 이런 아픔을 겪고 손가락질 당하고, 어디에서 한들 그런거 겪고 싶지 않아요. 모든 이들이 나중엔 결국 가서 그 이야기를 해 보면 ,나 이 얘기 듣기 싫었어, 그동안 이거예요.결국, 무슨 구실을 대고 화살을 쏘아도 결국 나중에 그 밑바닥을 갔다가 확인해보면 니 이야기 그동안 듣기 싫었어 이거예요. … 참 자존심 상했어 그때, 인간으로서 자존심 상했고, 편하고 싶다는 거예요.
여러분, 너무 좁은길이라는거에요, 예수의 은혜만 의지한다라는 걸, 그리고 주변에 여럿이서 같이 가면 좋은데 같이 가는 사람도 안보이고 그러니깐, 아닌것 아냐 이거?이렇케. 몰라요. 아니면 할수 없죠. 저는 제 눈에는, 성경에는…, 제가 이렇게 하다가 지옥간다고 할지라도 괜잖아요. 상관없어요. 난 예수의 십자가 붙들지 않으면 일초도살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나한테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다르게 설명을 할수가 없어요. 단 한 순간도 그분의 피가 보여지지 않으면 나는 악마일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설교를 다르게 할수 가 없어요. 이제 이 정도 짬밥이면은 뭘 듣고 싶어하는지 회중이 뭘 듣고 싶어하고 어디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지 , 소문이.------ 그리고 얼마든지 인기를 끌수 있고, 적어도 콘서트 하면서 같이 놀아주면 돼요. 근데 감정선을 자극해야 이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치는지 그때 그때 파악해서 그것만 자극해주면 얼마든지 이세상속에서도 기꺼이 욕 안먹고 살수 있지요. 그런데 내 안에 생명이 계신데 어떻게 해요. 성령이 그리로 끌고 가질 않는데 내 맘대로 그리 되요?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요.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반드시 미움을 당하게 되있어요. 거짓말 안하고, 착하게 살고, 이웃 섬기면, 세상 여러분 사랑해줘요. 그거 하지 말라는게아니라 그걸 다 때려엎으면서 우리를 세상이 미워하는 게 뭐냐면 예수의 십자가라 이야기 하는거예요. 그것만 좀 빼, 그러면 너 내가 사랑해 줄께. 세상이 그럴거라구요.거기에만 너무 묶여있지마. 그럼 내가 사랑해줄께, 그런다니깐요. 아니 그것만 빼면 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해요. 근데 그 예수 모르면 죽어요.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와 십자가 그 보혈만 의지해야 해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키우시고 어떻게 하나님 백성으로 완성해 내셨는지를 비데오 보듯 여러분의 인생을 보세요. 그래야 아버지를 사랑하지요. 그랬구나, 우리 아버지가 이때 날 이렇게 사랑했구나. 그리고 내가 하늘나라에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완성 된거구나 이거 배워야지 나중에 몸 바꿔준다는데 자꾸 이 바꿔줄 몸에다가 치장을 하실려고 하시냐구요. 예수를 붙드시고 예수를 믿으십시요. 그래야 삽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온통 주변이 먹물처럼 검고 안개처럼 어둡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 우리의 눈에 밝히고 있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만 의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만 붙들게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속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어떻게 폄하되든 개의치 말게 하시고 끝까지 인내하여 십자가만 붙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