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사도

사도행전 29

은바리라이프 2016. 1. 12. 13:55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 5;31~32)



 이제는 31절에 있는 "임금"이라는 단어와 32절에 있는 "증인"이라는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건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즉, 구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왕 바꾸기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왕으로 삼아서 삽니다. 그렇게 자신을 왕으로 삼아 사는 모든 것을 성경은 마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해 사는 것, 내 유익을 위해 사는 것, 가족을 위해 사는 것, 내 직장과 부하들이나 종업원들이나 그들을 위해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 자체가 '나'입니다.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어떤 보람이라든지, 물질적인 유익이라든지, 좋은 평가라든지, 그러한 것이 있어야지 나에 대한 유익이 없는 존재를 그렇게 섬기며 살아가는 인간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왕 삼지 않고 자신을 왕 삼아 살고 있는 상태가 지옥입니다.


 그곳에 진짜 하늘의 왕이신 예수가 "내가 왕이다" 하시며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주인으로 창세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간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인생과 역사를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잃어버렸다는 것은 언젠가 내 소유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소유로 이미 하늘나라에 완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잠시 잃어버린 자, 하나님을 떠난 자로 이 세상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드라크마, 양, 탕자의 비유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찾는지를 배우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실수해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떠난 것을 하나님 측에서 '잃어버렸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이미 완성되어 있는 천상의 교회가 영원 속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우리는 한 번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은 기다림이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시간적인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하나로 통합이 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모두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끔 너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거나 이산가족이 되어 이 세상에서는 만나지 못할 때, 그런데 양쪽이 예수를 믿고 있을 때, "차라리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다."라는 식으로 편지를 씁니다. 바로 영원이라는 개념을 안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직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에 가면 당신은 이미 그곳에 있을 거니까 나는 빨리 그곳에 가소 싶다. 이 세상에서는 못 볼 테니까."


 우리가 천상에 교회로 존재하는데, 성경에는 그 존재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분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과 버금가는 어떤 존재로 죽은 흙이 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힘을 겨루어 보겠다는 욕구를 가진 만큼 엄청난 존재로 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속에 있는 모든 인간이 그 교만한 자리로 올라가서 그분과 겨루어 보겠다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원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지금 인간이 갖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소유했습니다. 지능이나 건강이나 아름다움은 진짜 빙산의 일각입니다. 아담이 지나가는 짐승들 이름을 전부 다 지었습니다. 아담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람이고 '아다마'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티끌, 흙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짐승과 곤충과 모든 사물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흙으로 지어진 인간이 모든 존재와 사물의 그 내용과 특징을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지능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허락된 건강과 아름다움도 엄청났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흙들이 그러한 상태일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교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성과 인격 속에서 어디서 어떠한 은혜로 창조된 것인지 제대로 배우고 경험하지 못하면 기고만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랑으로 표현해 준 것입니다.

즉, 왜 그런 엄청난 존재인 하나님 나라의 왕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그분의 말만 들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자 창조한 것이 이 역사와 우주라는 공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역사와 우주를 살아가면서 '아, 하나님이 임금이구나'를 배우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선교나 전도나 구제나 봉사 같은 것이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날 수고 있고 안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성도 중에 평생 전도 한 사람 못 하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원래 자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그런 보잘 것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엄청난 존재로 만들어 주셨는지를 아주 절절하게 경험하고 가면 됩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원래 자리는 자꾸 폭로되어야 하고, 우리는 스스로 연약한 모습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것들을 덮고 완전한 존재로 완성시켜 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 소망이 점점 커집니다. 적어도 성도는 자신이 불가능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 폭로될수록 소망이 더 커집니다. 나는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죽은 흙인데 하나님이 나를 완성시켜 주시고 예수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주신다니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세상을 개혁하고 스스로 개발하여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 완성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 속에서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노력으로 얼마나 더 낮게 만들 수 있습니까? 성도는 이 땅에서 그런 기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내가 그런 존재로 완성이 되었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간혹 저에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터와 이름을 짓고 새기려는 인간의 열심에 찬물이 아니라 얼음물을 붓고 싶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무엇을 성취하겠다는 것입니까? 로마 같은 나라가 망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습니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해가 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미국이 침몰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미국도 얼마 안 가서 공황 상태에 빠질지 모릅니다. 그런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이제 부동산 호황이고 꿈같은 시절은 절대 올 수가 없습니다. 부동산 법도 굉장히 많이 개정되었고 대출 같은 것도 너무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미국도 쇠락할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입니다. 역사는 단순한 순환입니다. 이미 그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몽골의 칭기즈칸이 작고 초라한 유목민이 될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전 세계의 반을 차지했던 나라였지만 지금 몰골은 더러워서 못 있습니다. 그리고 마야나 잉카나 나일 같은 문명들은 정글 속에 가려져 유적 발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마추픽추 또한 적들을 피해 산꼭대기에 가서 계단식 농사나 짓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세상 임금들의 결론입니다. 한때 세상을 호령했던 인류의 문명입니다.


 결국 이 세상과 역사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개혁을 하겠다고 하고 인간을 더 훌륭하게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세우신 왕국이 이 세상에서 지리멸렬하게 은닉된 모습으로 가지만 결국은 승리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역사와 인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것을 자기의 힘으로 개혁하고 시위하고 교육해서 성공을 이뤄보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역사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왕 되셔서 우리 삶을 끌어주기를 바라는 항복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제 됐으니까 내 나라로 올라와" 하시면 기쁘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니까 죽은 사람이나 죽을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저에게 참 복입니다. 사람이 호흡이 끊어지면 그 자체가 죽은 흙입니다. 사람은 땅속에 들어가면 곧바로 흙이 될 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금 전까지 살아서 이야기했지만 호흡이 멈추니까 그냥 흙입니다.

역사와 인생을 통해 살아있는 상태에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도입니다. '여기에 하나니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구나'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죽은 흙을 개발하고 개량하여 더 멋진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교회의 임금으로 삼으셨다고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분이 임금인지 우리가 임금이고 그분이 종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며 찬양하고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하는데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까? "내 인생에 자꾸 내가 주인이 되고 임금이 되는데 하나님이 임금이 되어 주세요."라며 안타까워서 우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가짜들입니다.

주위를 보십시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많으나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은 찾기 힘듭니다.


 전 세계 사람들 중에 진짜 예수가 왕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몇 명일까요? 그러다가 잘되고 부자되면 다 하나님의 은혜라 하고 병나고 망하면 마귀가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무식한 번영의 신학에 빠지지 마십시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서 살겠습니까? 여전히 자기 문제에 갇혀서 그것을 해결해 주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우울해하고 슬퍼하고 좌절합니다. 조금 공돈이라도 생기면 그것으로 즐거워하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아직까지도 내 소원, 내 비전, 내 자식 같은 것이 종교 행위의 이유가 된다면 불교나 이슬람교에 속한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도가 아니라 그냥 종교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몰라도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세상 욕구와 야망이 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못 봅니다. 믿음으로도 볼 수 없고 들어가지를 못하니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못 봅니다. 청결이라는 것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제 역할을 발휘하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도덕과 윤리로 우리를 청결하게 만들고 깨끗하게 위장해도 마음에 하나님이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원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자리 잡으셔야 그것이 청결인데, 내 욕심과 내 야망과 내 비전이 자리 잡으면 그것은 더러움입니다. 그러면 더러움에서 우리를 건지신다는 하늘 왕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안에 있는 세상적인 욕구와 욕심을 쳐내는 일을 하러 그 왕이 백마를 타고 철장을 들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전부 자식과 돈과 명예와 부동산 같은 것들만 가득 차 있으니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나쁜 것입니까?"라고 말하는데 그 자식이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잘 안 되면 슬픈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 아닌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라는 영역 안에 품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족 간에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미와 자식을 갈라놓으려 오셨다는 말이 괜히 심통 부리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그 마음 내려놓고 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화장실을 락스로 변기와 바닥을 깨끗이 닦고 살균까지 다 했다고 해도 그 변기에 좋은 생수를 부어 밥 말아준다고 하면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깨끗해도 변기 안에 밥이 들어가면 똥인 것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세상을 개혁하자", "불쌍한 사람을 돕자", "착하게 살자"라며 깨끗하게 구는데 여전히 그것을 나의 인기와 평판을 위해서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 정말 괜찮은 사람이죠?"라며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은 더러움입니다. 실제로 구약에 "내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봅니다."라며 경험한 욥이 나옵니다. 그는 재산 다 날리고 아내도 떠나가고 건강도 망치고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품을 수 있는 모든 욕망이 다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다 지난 후에 욥이 "내가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봅니다"하고, 그때 진짜 하늘의 풍요가 그에게 부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이야기는 욥기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나왔던 그 임금이 우리의 인생 속에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욥의 삶에 들어가서 다 날려버리신 그러한 것들에 가 있는 우리의 마음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그것을 더 많이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 임금은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 일은 세상 임금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응답받았다는 것도 보면 상당 부분을 마귀가 응답해 준 것입니다.


 사육신이었던 사람들도 얼마든지 조선에서 벼슬을 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고려의 왕조가 이성계에 의해 무너질 때 평범한 사람들도 이성계가 주는 밥은 안 먹겠다며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마귀든 하나님이든 누구든지 내 소원만 들어주면 괜찮다며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왜 어떤 것을 받았을 때 그것을 마귀가 준 것인지 하나님이 준 것인지 고민하고 확인해 보는 사람은 없습니까? 무조건 내 소원만 들어주면 된다는 것이 무슨 성도입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이 세상에서 딱 한 가지 해야할 것은 하나님께 내 모든 마음이 고정되어 흐를 수 있도록 다른 것은 다 쳐내는 것입니다. 나만 사랑해 달라고 하는 것은 집착이고 마귀입니다. 나란 존재에 대해 지겨워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지겨운 '나'가 아니라 소중한 '나'를 더 살찌우는 데 도움을 안 주는 하나님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우리의 임금은 예수님입니다. 배우자가 조금 덜 사랑해 주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므로 집착 좀 하지 마십시오. 성도라면 오히려 네 이웃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대방이 잘 지키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왜 여자들이 시어머니를 그렇게 미워합니까? 자기 위에 다른 여자에게 남편의 관심이 가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마귀입니다. 그것을 간파하고 자기 위에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이 가정을 허락하면서 "너희끼리 똘똘 뭉쳐서 행복하게 살아라"고 하셨습니까? 그런 적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에 예수와 교회에 대하여 가르쳐 주려 허락하신 것이라고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와 교회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 교회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고 거기서 잉태된 교회, 예수에게 목숨 바쳐 순종해야 하는 교회를 하나씩 배워갈 생각은 안 하고 이 세상을 지상낙원으로 만들려고만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고 천국도 가려고 합니다. 저는 지옥에 가면 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으면 합니다. 좋은 집, 높은 벼슬, 자식의 출세 등 모든 것이 다 있는데 하나님만 없고 영원히 불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의 불은 지옥 불입니다. 영원히 자기들끼리 뭉쳐서 언제든 다른 이들과는 전쟁할 준비를 하고 그 상태에서 불이 쏟아지는데, 이 세상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런데 시체들이 그 시체들 중에 최고가 되고 싶어 합니다. 시체 중에 최고가 되면 가장 더러운 시체가 되는 것입니다. 저주의 상태에서 잘되면 잘 될수록 저주로 더 깊이 빠져드는 것을 왜 모릅니까? 그럼에도 그것을 기독교의 목적지라 생각하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 목 놓아 부르짖고 그러한 자신의 종교 행위를 영성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며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요? 나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그 자기 부인을 하지 못하니까 여전히 '나'라는 범주 안에 있는 내 것과 내 식구와 내 재산과 내 교회만 챙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가 잘되면 배 아파하는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쓰레기들만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봉투에 쓰레기가 찰수록 기쁩니까? 참 복음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이 몇 명이라도 실하게 모이는 것이 진짜 교회인데, 왜 자기 욕심이나 채우려고 하는 쓰레기들이 모인 곳을 시기하고 질투합니까?


 요즘처럼 하나님이 빨리 왔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한 적이 없습니다. 얼른 오셔서 진짜 무언가를 확 드러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 민감한 관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고 배우며 친해지십시오. 그리고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더러운 또 다른 나를 쳐내십시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벽기도를 백 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럴 바엔 집에서 잠이나 푹 자십시오. 소원 빌러 나왔으면 집에서 앉아 대충 기도하고 자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과 더 민감하게 동행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도대체 인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생기를 걷으면 그냥 죽은 고기에 불과한 인간인데,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져야 좋은 것처럼 그렇게 바보같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우매함을 폭로시키러 이 땅에 오셨는데, 왜 예수 믿는다는 교회들조차 스스로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자신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더 강하게 부수어 주옵소서. 그래서 그 마음속에 있는 이 세상의 오물들이 씻겨나가고 하나님으로 그 자리가 채워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삶 속에서 경험하는 참 교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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