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선교사/성경 순례여행

고린도(Corinth)

은바리라이프 2016. 1. 6. 15:51

고린도(Cori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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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성화 httpblog.naver.combss207960014549613.jpg


 뜻: 뿔

그리스 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 남단에 잇으며 겐그리아 항구와 로마의레기온 항구를 연결하고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는 묘한 지형으로 상업과 물 질적인 변영을 누린 도시요 잡다한 인종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 동서 문화 와 종교의 혼잡을 이루었다.

고린도의 종교중에 여사 프로디트라는 우상이 있어 600피트나 되는 산상에 무녀가 무려 1,000명이나 있고 이로 인하여 고린도인들은 음탕한 풍습에 젖어 고린도라하면 음행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1) 바울이 2년을 선교하여 교회를 설림(행18:1-8).


(2) 교인 전체의 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고전1:26).


(3) 바울의 동역자 그리스보 (행18:8)가이로 에라스도(롬16:23)스데바나 (고전1:16)등으리 거주지다.

고린도의 기둥 이곳은 <A href=바울이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시작한 곳이다."> 현재 고린도라고 하는 시는 신 고린도로 1858년과 1928년의 대지진 후에 세워진 곳으로 아테네에서 서남쪽으로 80 Km 되는 거리에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전도했던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 중심지로 국제적인 도시였다. 고린도는 천혜의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는데 즉 서쪽에는 이오니아 해와 이탈리아로 향하는 레카이온 항구를 품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아테네를 바라보면서 에게 해로 나갈 수 있는 겐그레아 항구를 품고 있었다.


아카 지방의 수도였던 고린도는 번창한 항구 도시 였으나 심한 빈부의 차이와 퇴폐적인 윤리 생활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 사도 바울은 제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 3년동안 머물면서 고린도전서를 집필했고, 57년 경 그리이스 북부 마케도니아에서 후서를 써 보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은 교우들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어 그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고 사목적인 대답을 해 주기 위해 쓰여졌다.


이 서간에서 다룬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린도 신자들 중에는 의붓 어머니와 동거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이를 방관만 하고 있었고 (고린도전서 5:1-13), 어떤 교우는 자유를 구실 삼아 창녀와 관계를 맺었고 (고린도전서 6:12-20), 또 성행위라고 하면 무조건 죄악시 하는 극단적인 사람이 있었다. (고린도 전서 7:1-10).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결혼, 이혼, 독신 등 성윤리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외에도 교우들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교도 법정에 가서 소송하는 문제 (고린도전서 6:1-11),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 (고린도전서 8:1-11), 성찬의 전례시 부자들은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배불리 먹고 가난한 사람들은 굶은 사례도 있었기에 올바른 성찬례를 가르쳐 주고 (고린도전서 11:17-34), 그 외에도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고린도전서 14장), 부활 신앙을 부인하는 (고린도전서 15:12) 사례를 그리스도 부활의 근거로 삼아 주장하며 가르쳤다.


고린도에서 항구로 내려가는 길 : 폐허된 고대 도시의 뒷산 위에 옛 건물이 보인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자들간의 분쟁과 파벌 의식 이엇다. 신자들 간에는 바울파, 아폴로파, 그리스도파 등이 조성 되었다. 이러한 파벌 의식이 만연되었다는 교회의 소식을 듣고 바울은 이 서간에서 그들이 전해 듣고 받아들인 복음을 상기 시키면서 교회 공동체가 무엇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하였다.


둘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는 첫째 편지를 발송한 다음에 고린도에 거짓 선교사들이 와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부인하였다. 사태가 다급함을 인식한 바울은 직접 고린도 교회를 찾아 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신자들이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동조하여 그를 맞아 주지 않았다.


파르테논 신전 - 이 신전은 장장 15년이  걸려 기원 전 438년에 완공 되었다.  바울은 비통한 마음을 안고 에베소에 돌아와 '번민과 비통한 마음을 안고 울면서' 매우 격앙된 어조로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고린도 교회로 보낸 '눈물의 편지'이다. (고린도후서 2:4).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로 보내어 이 눈물의 서간을 보내고 그 사이에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지도가 돌아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디도를 만나 고린도 신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도에게 순종하고 모든 적들을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답신으로 나온 편지가 고린도후서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 고린도후서는 사도직에 대한 편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도직의 본질과 역활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겸허한 태도로 자신의 약함 안에서 힘차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높이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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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스(그리스어: Κόρινθος)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이자 현대의 도시이다. 그리스 중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하며, 아테나이로부터 78킬로미터 남서쪽이고 사로니코스 만과 코린토스 만을 가르는 코린토스 지협에 있다. 고대에는 이 지협의 해안을 따라 험준한 암초를 피해 선박이 돌아갔으나 지금은 운하가 놓여있다.


사도 바오로와 코린토스[편집]

한글 성서에서는 코린토스를 고린토(공동번역성서/대한성서공회), 고린도(개역한글성서/대한성서공회), 코린토(천주교 '성경'/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로 음역하고 있으며, 사도 바오로의 활동 무대로 유명하다. 문화인류학자이자 그리스도인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반유다주의 정책(45년)에 따라 코린토스로 이주한 2만 5천 명의 유다인들에게 전도했으며, 전도 기간 동안 코린토 1서와 코린토 2서를 작성하였다.[1] 사도 바오로는 2년간의 연금 생활을 마치고 로마, 코린토스, 테살로니카 등에 세운 그의 교회들을 돌아본 것으로 추정된다.[2]

고린도 (Corinth)


고린도는 로마 제국에서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는, 고대 지중해의 중심도시 중 하나였다. 해상무역에 알맞은 최상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어 예로부터 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었고, 그 결과 상업도시로 번영하였다. 헬라문화를 꽃피운 아덴과는 고대 도시국가 시절부터 경쟁적 관계에 있었으나, 로마 제국의 아가야 지방 수도로서 이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경쟁도시 아덴을 한참 추월하며 이 근방에서 가장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고린도는 이 지역의 상업중심지로서 찬란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상업을 위해 각 지역에서 모여든 다양한 이방상인들을 통해 방탕한 이방종교 의식들이 많이 유입되어 도시 전체를 멍들게 하고 있었다. 성적으로 문란한 우상숭배행위가 도시곳곳에서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특히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일하는 천명의 젊은 여사제들이 종교적 행위를 빙자하며 지역주민과 사업차 방문하는 외국인 상인들을 상대로 합법적인 매춘행위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사랑의 여신으로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이 종교는 '관능적인 호색'을 신성시함으로써 고린도의 성적인 방종과 타락을 공공연히 조장하였다. 한편 외국상인들을 상대로 매춘행위를 통해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는 해상무역, 상업이외에 고린도의 또 다른 주요 수입원이 되었다. 


고린도의 귀족들은 부의 축적을 제일의 가치로 여겼는데, 이렇게 무역, 상업, 매춘 등으로 벌어들인 돈은 화려한 치장과 사치를 위해 사용되었다. 거대한 상업중심지로서 로마의 중요 시장역할을 감당하던 고린도에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세계 각처에서 몰려드는 상인들을 통해 전 세계의 희귀한 사치품들이 끊임없이 공급되고 있었다. 이 도시의 화려함과 사치는 이미 극에 달해 있었고, '고린도'라는 이름은 헬라어의 '방탕함', '사치스러움', '성적인 문란함'과 같은 말의 어원이 될 정도였다.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심지어 그 유명한 아덴보다도 우월한 많은 정치적인 특전을 누렸다. BC 46년 줄리어스 씨저가 재건한 아름다운 도시의 건축을 자랑하였으며, 고대올림픽과 함께 고대 그리스의 4대 경기 중 하나였던 지협경기(Isthmian Game)가 매 2년마다 바로 이 도시에서 개최되고 있었다. 


막대한 부와 문화적 혜택, 정치적 특전 속에 고린도인들의 교만과 도덕적 타락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부와 지적 문화적 권력적인 교만의 높은 벽 앞에서 잠시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으나'(고전 2:3),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고전 2:2)하였고, 바울의 이런 순전한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18:9-10)는 주님의 직접적인 확언을 환상을 통해 얻게 된다. 비록 인간적인 눈으론 도저히 가당치도 않아 보였던 일이었지만, 주의 영께서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인도하신다는 확신 속에 바울 일행은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당시 세계최고의 타락도시, 사치와 향락, 성적문란의 도시, 교만과 허영의 도시 복판에 복음의 씨앗을 심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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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12.09.2013 19: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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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의 배경 


고린도는 주전 146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된 후, 100년 동안이나 버려졌다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에 의해 주전 44년에 재건된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것은 주후 50년 어간인데, 당시 도시의 인구는 8만 정도였고 이제 90년 정도의 새로운 역사를 가진 젊은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는 빠르게 성장하여 제국 내에서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 이어 세번째로 중요한 도시가 되었고 경제 기적을 일구어 많은 도시의 시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는 스포츠와 유흥문화가 발달되었고 여행과 성산업과 종교적 다원주의 그리고 물질주의가 편만했습니다. 고린도의 이런 점이 오늘날의 캘리포나아와 유사해서 레이 스테드만(Ray Stedman)목사님은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캘리포니아 전서와 후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비단 이것은 캘리포니아와 유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경향과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바울은 그의 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1년 반을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행 18:1~17). 그리고 에베소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 왔을 때 거기서 고린도전서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그가 고린도를 떠난지 3년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그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모금을 하기 위해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고전 16:1~11). 그러나 그 사이에 디모데를 보냈고 디모데가 고린도에서 본 것은 우상숭배와 음행과 거짓 교사들로 인해 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고린도를 계획과는 달리 잠깐이라도 방문하여 교회의 징계문제를 다루려고 2차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방문은 ‘고통스런 방문’이 되었습니다(고후 2:1). 그들은 사도의 권위 자체를 문제삼았고, 바울 사도의 사역과 인격에 대해서까지도 비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사도 바울에게 도전하였습니다. 바울이 진짜라면 왜 그렇게 그의 삶에는 고난이 많은가? 왜 그의 사역은 다른 ‘지극히 큰 사도(super-apostles)’들과 비교하여 활기가 없는가? 왜 그의 설교는 와닿는게 없는가? 왜 그는 하나님이 자기 삶을 인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는가? 왜 그는 다른 대부분의 설교자들처럼 사례를 받지 않는가? 그가 모금한다는 것은 믿을만한 것인가? 왜 그는 다른 사도들처럼 추천장이 없는가? 

고린도 교회의 바울 사도에 대한 비난과 의심은 그들이 거짓 교사들로부터 받은 ‘다른 복음’(고후 11:4)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심히 상처를 받고 2차 방문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회개를 촉구하며 심한 내용의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보냈습니다(고후 2:4). 이 편지는 잃어버려진 편지로 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린도교회는 그의 편지를 읽고 회개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다시 바울과 그의 복음에게로 돌이켰지만 여전히 그의 권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세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기에 앞서 이제 고린도후서를 쓰게 됩니다. 이 때는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의 3년의 사역을 마치고 마게도냐로 갔을 때였습니다. 아마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에서 썼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고린도후서를 읽고 상고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배경들을 볼 때 우리는 고린도후서는 바울 사도가 쓴 가장 감정이 깊이 배어있는 편지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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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서

또한 바울 ; 바울의 서한

신약전서에 들어 있는 두 권의 책. 이 책들은 본래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일고 있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그들에게 쓴 편지들이다. 고린도인들은 도덕적으로 사악했던 사회에 살았다.


고린도전서: 1장은 바울의 인사말과 감사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2~6장은 고린도 성도들의 결점에 대한 바울의 바로잡음이다. 7~12장은 어떤 질의에 대한 바울의 응답을 담고 있다. 13~15장은 자애, 영적인 은사, 그리고 부활에 관련한 것이다. 16장은 신앙 안에서 강하게 서라는 바울의 권고를 담고 있다.


고린도후서: 1장은 바울의 인사말과 감사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2장은 디도를 위한 개인적인 충고를 담고 있다. 3~7장은 성도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의 생활에서의 복음의 힘을 다루고 있다. 8~9장은 성도들에게 가난한 자들에게 기쁘게 주는 자가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 10~12장은 사도로서의 바울 자신의 지위에 대한 주장이다. 13장은 온전하라는 훈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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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전후서는 어떤 책인가요?



◆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

라틴어

Epistolae ad Corinthios

영어

Epistles to the Corinthians

출처 : [가톨릭대사전]



코린토서란 성경 이름은?



고린토서는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각 교회에서 생겨난 문제에 대한 답변을 주고자 편지를 자주 띄웠지요. 그 중에서도 고린토서는 그리이스에 위치한 고린토 교회가 안고 있던 문제를 해결하고자 띄운 편지입니다. 



누가 썼나요? 



사도 바오로가 직접 썼어요. 오늘날 우리에게는 고린토 전서와 고린토 후서 두 통만 전해져 오지만,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최소한 4통이었다고 봅니다. 첫번째 편지는 분실되었고(1고린 5,9), 두번째 편지는 후대에까지 전해 내려와 고린토 전서가 되었고, 세번째 편지는 2고린 10-13장에 실려 있는 눈물 편지이고, 네번째 편지는 2고린 1-9장에 기록되어 있는 화해 편지라는 것이죠. 학자들 중에는 고린토 후서가 두 통이 아니라 여러 통의 편지를 한데 모아 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답니다.



언제 썼나요? 



고린토 교회는 사도 바오로가 2차 전도여행 때(50-52년경) 그리스에 세운 4개의 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글라우디오 황제 칙령에 의해서 로마에서 쫓겨난 아퀼라와 브리스킬라 부부를 만나, 그 집에 머물면서 천막을 짜는 일을 하는 가운데 복음을 전해서 세운 교회지요. 사도 바오로는 제3차 전도여행(53-58년경) 중에 에페소에서 27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에, 고린토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고린토 교회로 띄운 편지가 고린토 전서죠. 따라서 대략 55년경에 고린토 전서가 쓰여졌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편지만 띄우는 것으로 고린토 교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을 염려한 바오로는 고린토 교회를 방문합니다. 이때는 신도들 중의 일부가 이미 거짓 전도사들의 가르침에 넘어간 상태라, 사도 바오로에게 심하게 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2고린 2,5-11; 7,12). 이에 바오로는 속이 상한 채로 에페소에 돌아와 이른바 눈물편지로 알려진 2고린 10-13장을 디도 편에 띄웁니다. 그리고는 마케도니아로 가서 기다리다가 디도가 전해 주는 좋은 소식(2고린 2,5-13; 7,5-16)을 듣고는, 이른바 화해편지로 알려진 2고린 1-9장을 써서 보내요. 따라서 고린토 후서는 57년경에 집필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요?



고린토 교회에 생겨난 이러저러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주고자 했어요. 고린토 교회 신도들이 바오로파, 아폴로파, 게파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일러주어요. 또한 음행, 소송, 이혼과 독신,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 성령의 은사, 모금 등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조목조목 가르쳐 주어요. 



<새김과 나눔>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신도들로부터 모진 대우를 받고 나서도 사랑의 편지를 띄웁니다.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처신하나요? 



고린도 전서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1고린 1-4장)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는 무엇입니까?(1,30)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 신자들이 언변과 지식에 뛰어나다고 칭찬하면서, 바오로파니 아폴로파니 베드로파니 하면서 파당을 짓지 말고 단합하라고 촉구합니다. 이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강하므로,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을 살아가라고 권유합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놓여 있으니,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는 없다고 밝혀요. 그러니 부질없이 파당을 짓기보다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데 전력을 다하라고 당부해요.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1고린 5-6장)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은 어디입니까?(6,19)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사실을 잘 명심해서, 사악과 음행에 사로잡히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일러요. 아울러 교인이라고 하면서 음행이나 탐욕이나 약탈이나 우상숭배를 일삼는 사람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해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나 자기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무엇이든지 다 유익한 것은 아니죠. 더군다나 우리의 몸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임을 잊지 말아야 하니까요.



사람마다 은총의 선물이 다르므로(1고린 7-14장)

사람을 향상시켜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8,1)

결혼은 죄가 아니니 서로 자유롭게 결혼해도 무방하지만, 결혼했거나 독신으로 살거나 간에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은 상태에 충실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상 앞에 놓였던 제물을 먹는 문제를 예로 들어, 자신의 자유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해요. 이처럼 어떤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된다고 일러요. 주님의 성찬을 거행할 때에도 가난한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돼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니까요.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1고린 15-16장)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맨처음 누구에게 나타나셨습니까?(15,5)

사도 바오로는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믿음의 기초가 되는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 주어요.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일 뿐이라면서요. 썩을 몸으로 묻힌 우리의 육신은 그 날에 눈깜빡할 사이에 불멸의 몸으로 변화될 거에요. 그러니 부활 신앙이 흔들리는 일 없이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고는 문안인사해요.



<새김과 나눔>

사도 바오로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지만, 사랑은 사람을 향상시킨다고 말해요. 성서공부는 내게 지식을 늘려 줍니까 아니면 하느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게 만듭니까? 



고린도 후서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2고린 1,1-6,10)

주님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무엇이 있습니까?(3,17)

먼저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환난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면서, 고린토 교회를 방문했을 때 벌어졌던 불미스러운 일들에 대해 화해하고자 하는 고린토 교회의 청원을 받아들여요. 아울러 자신에게 심하게 대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위로해 달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온 몸으로 겪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향해 눈을 돌리라고 권유해요.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도로서의 자기 심정을 솔직히 드러내면서요.



여러분이 뿌린 자선의 선물(2고린 6,11-9,15)

기부금은 어떤 마음으로 내야 합니까?(9,7)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 교회 신도들에게 그들의 몸과 심령을 조금도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지켜서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을 하며 완전히 거룩한 사람이 되자고 권유해요. 바오로 자신은 그들을 전적으로 믿으며 크게 자랑한다면서요. 비록 자신이 디도 편으로 띄운 눈물 편지(2고린 10-13장)가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해요. 더불어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에 기쁜 마음으로 적극 참여할 것을 당부해요. 그들이 낸 자선은 하느님께서 풍성한 열매로 되갚아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해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2고린 10,1-13,13)

사도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어떤 위험을 겪었습니까?(11,23-28)

사도 바오로는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약하기 짝이 없고 말하는 것도 별것이 없다고 낮추어 말하지만, 사도로서 자신이 받은 권위는 모든 불순종을 처벌할 수 있다면서 서로 불미스러운 만남이 되지 않기를 고린토 교회 신도들에게 바래요. 고린토 교회 신도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이는 바로 자신이라면서, 자신이 했던 처신을 하나씩 들어 누가 참 사도이고 누가 거짓 사도인지를 분간하도록 촉구해요. 그동안 바오로는 사도로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도시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가짜 교우의 위험 등 수많은 위험을 겪으면서까지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다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몸을 가시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인격이 완성되기를 기원하며 살아왔다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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