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로마서원어해설

30-3-1.고난의 떡 -산상수훈(40)그 양식에 배고픈 자 세상에서 굶어 죽다 본문중에서...

은바리라이프 2015. 11. 9. 17:44
30-3-1.고난의 떡
-산상수훈(40)그 양식에 배고픈 자 세상에서 굶어 죽다 본문중에서...
* 왜 이 광야에서의 말씀이 우리에게 고난의 떡이 되는 것인가?
유대인들이 무교절에 먹는 무교병이 히브리어로 ‘마짜מצּהH4682’입니다.
단어는 어원-‘빨다, 흡수하다, 묻어두다, 장례를 지내다’
유대인들이 무교절에 사흘간 그 떡을 묻어두었다가 먹는 것은 예수라는 유월절 양이 유월절에 죽임을 당한 뒤
사흘간 땅 속에 갇혀 있다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부활하실 때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 어린양을 장사지내어 땅에 묻으면 그 누룩 없는 떡은 땅의 죄를 3으로 전부 흡수해 버리는 형국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먹게 되는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7의 기간 동안에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는 양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것 자체가 자신의 육신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바로 고난(오니)이 되는 것입니다.
(마5:4)
애통하는(펜데오πενθέωG3996)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다(감정이나행동),애도하다
-‘파스카πάσχαG3957(유월절)’에서 나온 단어
-그 단어를 아람어로 바꾸면 ‘페싸흐פּּסחH6453(유월절)’이 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는 자는 복이 있는 자인데(단순히 그 죽음을 칭송하고 기념하는 수준이 아닌) 
그 복은 이 세상에서 ‘애통’으로 나타난다는 그런 말입니다. 왜요? 그 유월절 어린양 안에서 내가 죽는 경험이 바로 사흘간 
묻어 두었던 무교병을 꺼내 먹는 것이니까요. 오직 그것만이 나의 양식임을 고백하는 것이니까요.
나의 자기 부인.
저희가 위로를 받을(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G3870) 것임이요.
그렇다면 7의 기간 동안에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는 양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자신의 육신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그것이 바로 고난(오니)이 되는 것입니다.
(마12:39~40)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 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애굽은 나타난 것, 즉 표적만 있는 곳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애굽의 모습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칭하십니다.
그들을 그 악하고 음란한 곳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당신이밤 낮 사흘을 땅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와 함께? 우리 성도와 함께요.
그게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먹는 무교병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떡은 진리의 말씀인 것이고요.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먹은 이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그 죽음을 광야에서
죽게 되어 ‘애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광야로 나오는 길에 홍해가 갈라지는 상징적 사건이 삽입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홍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애굽화를 죽여 버리시는 사건이었습니다.
홍해에 빠져죽는 애굽 군대는 이스라엘의 몸에 젖어 있던 애굽의 수치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출6:26)
26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여기에서 ‘그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라는 어구가 ‘군대로 애굽 땅에서 빼내라’는 말입니다. 왜 빼내요? 
죽이려고요. 그래서 하나님이 일부러 이스라엘을 홍해로 몰고 가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까운 
길을 놔두시고 일부러 이스라엘을 홍해로 몰고 가셨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속의 애굽을 단체로 몰살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죽이시는데 말씀의 물을 터뜨리셔서 죽여 버리십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 때 깊음의 샘이 터진 사건과 홍해가 갈라진 사건이 정확하게 같은 단어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로마서 강해 때 설명해 드렸었지요?
그 깊음(테훔תּה׀םH8415)이 뭐였습니까? 위의 물을 설명하기 위한 아래의 물이었습니다.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속에 나타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 때, 기식 하는 것들이 그 터진 물(말씀)에 의해 다 죽은 것과 홍해가 갈라져서(바카בּקעH1234) 애굽의 군대가 전부 몰살당한 것은, 구원의 여정 동안에 삭제되고 부정되는 우리의 육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유월절 사건 때 그 어린양의 죽음 안에서 이미 예표가 되었던 것이고, 광야의 무교병으로 다시 
설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10:1~3)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보세요. 모세에게 속하여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라고 하고 그것을 신령한 식물(떡)을 먹는 사건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에서는 그 세례를 그리스도와 함께 묻히는 것이라고도 표현을 합니다.
(골2:12~15)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12절의 ‘함께 장사한바’라는 단어가 ‘쉰답토συνθάπτωG4916’라는 단어인데
-‘함께 묻히다’
홍해를 건넌 사건이 그리스도와 함께 묻힌 사건이고,
그것이 바로 유월절 어린양과 함께 도륙당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죽여서 살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의문에 쓴 것(율법)’을 도말해 버리고 제해 버린 것이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율법으로 사는 우리의 육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이 홍해를 건넌 사건이고,
예수와 함께 3의 완성을 위해 땅에 묻힌 것이며,
그것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예수와 함께 죽는 우리의 신앙여정 전체를 가리키는 것.
바로 그것이 3이라는 떡을 제대로 먹는 자들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롬6:3~7)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 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3이라는 떡, 진리의 물, 그 세례로 말미암아 죄의 몸은 이미 멸해졌습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그 육의 종노릇만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의 자랑에만 몰두하며 살던 그 삶에서 돌이켜 세상이 칭찬해주고 떠 받들어주는 그런 ‘나’를 만들려 전력질주
하던 그 삶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미 그 존재 자체로 의롭다 인정받은 자들이니 그러한 세상의 경주에서는 빠져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세상 경주 포기의 자리가 아픕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모든 말씀이 다 그러하지만 산상수훈(40)의 설교말씀을 숙지하고 숫자적 의미와 합하여 창세기 언약이야기와
연결된 말씀으로 이해되어야 구정이후에 은혜의 비를 더욱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듬니다.
부족하나바 목사님 설교말씀을 난도 질하여 나름 보기 좋다고 기록하였는데 모든 성도님들이 편안하게 다시 복습하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