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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13- 홍해 도하

은바리라이프 2015. 1. 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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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13- 홍해 도하

홍해 도하

저주의 바다와 약속의 땅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큰 동풍이 불어 밤새 바닷물을 물러가게 해 바다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났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처럼 걸어갈 수 있게 됐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도 요단강을 마른 땅으로 건너갔다. 같은 맥락의 사건이다.

성경에서 바다는 항상 저주의 상징으로 등장하며, 그 저주의 바다에서 땅이 드러나는 것이 구원이다. 그래서 바닷물이 좌우로 갈라졌을 때, 갯벌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마른 땅이 나타나는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는 마지막 날에 바다가 다시 있지 않게 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인 것이다(계21:1).

성경에서 땅은 저주의 바다와 대비하여 구원을 설명하는 재료다. 가나안을 약속의 땅이라고 부르는데, 약속의 땅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땅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의 몸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영원한 천국,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온유한 자가 기업으로 받는 땅은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넌 사건을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은 일이라고 했다(고전10:1~2). 세례의 의미는 물에 빠져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홍해도하 사건은 애굽 쪽에서 보면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고, 반대쪽에서 보면 새사람이 살아나는 일, 곧 세례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실 때,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눅 12:50).”고 말씀하신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이미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무슨 세례를 또 받는다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십자가 수난’이었다.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부활하는 것이 바로 세례였던 것이다. 세례의 참된 의미는 십자가다. 육적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죽고, 하늘의 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세례의 참뜻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성도의 참된 세례인 것이다. 그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세례를 통한 부활이 그 요체인 것이다. 예수께서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위로부터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을 볼 수가 없다고 하신 것이 그 의미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적당히 성화되고 성숙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복음도 아니다.

예수와의 연합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모세 안에 들어 있었으므로 살아날 수 있었다. 이것이 ‘모세에게 속하여’의 의미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서 출애굽을 할 능력이 없었다. 애굽에서 광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모세에게만 그 능력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 모세를 앞세워 이스라엘을 건져내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을 구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살아날 수 있는 이는 예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예수 안에 속한 자만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부르신 교회를 모두 예수님 안에 넣어서 구원을 하신다. 모든 성도는 ‘유니온 크라이스트’,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오직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함께 할 때 구원을 받는다.

홍해도하 사건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죽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품에 안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활하는 교회를 보여주는 모형이다. 그리고 그 모형이 훗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 사건이라는 실체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존재인 것이다. 예수만 길이고 진리고 생명인 것이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

예수님의 출애굽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교회와 동일하게 출애굽의 생애를 사셨다.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헤롯의 박해를 피해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애굽으로 들어가셨다. 헤롯 사후에 출애굽 하시고,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과 같은 일이다(고전10:1~2). 그리고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나가 40일 금식하신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을 그대로 사신 것이다.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난 변화산은 출애굽 때의 시내산에 해당한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한다. ‘별세’는 헬라어로 ‘엑소도스’라고 하며, 영어로는 엑소더스(출애굽기의 영어 제목)라고 한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을 반복적, 점층적으로 보여주며 성도를 진리의 실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있다. 성경은 인간생활의 매뉴얼이 아니며, 우리의 행복이나 인격 도야를 위한 책이 아니다. 오직 그 속에서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 성도의 본무다.

기독교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점점 더 인격이 성숙해지고 착한 일을 함으로써 그 보답으로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의해, 성령의 조명에 의해 나의 죄성이 자꾸 드러남으로써 “내가 죄인 중의 괴수가 맞습니다.”는 자기부인의 고백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붙잡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 기독교다. 그걸 ‘예수 믿는다’, ‘십자가 붙잡는다’고 하는 것이다.

조정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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