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크게 보면 전부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 역시 그 창조를 보여주는 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경은 나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 주님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들리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본래 주님과 나는 창세전부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신랑이신 하나님과 연합된 교회가 이 역사 속으로 세상과 연합하도록 보내어져서 그 속에서 우리의 처음자리를 믿음으로 발견하고 믿음으로 소망하다가 다시 완전한 하나님과의 연합의 자리, 영생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것입니다. 시드니 김연숙 집사님께서 수고해 주신 로마서 72편이 그러한 성도의 정체성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본문들을 조금 첨가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1-5)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잠8:22-27) 그는 보이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1:15-20)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죠? 주인공 앤디는 자기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흉악범들만 가두어 놓는 쇼생크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서 자신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는 증인을 만났는데 교도소장이 자기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서 그 친구를 죽여버려요.그래서 앤디는 꼼짝없이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그 감옥에서 장기복역수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앤디가 ‘억울하지 않냐’라고 묻는 레드에게 의외의 대답을 해요. ‘거의 내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예요 내 성격 때문에’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억울해 미치겠다 그러더니 그 감옥에서 자기를 자꾸 돌아다 보니까 내가 방아쇠는 당기지 않았지만 평소의 나의 언사나 행동이 내 아내를 방아쇠를 당겨 죽인 것 만큼 나쁜 짓을 내가 했다라는 것을 그가 알아요.앤디라는 사람이. 그게 바로 인간들에게 허락된 감옥이라는 세상이 하는 역할이예요.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성도만 그걸 감지해요.레드가 이런말을 하지요. ‘처음에는 저 교도소의 벽을 보면서 저 벽을 원망해.그러나 시간이 가면 저 벽에 기대게 되고 조금 더 시간이 가면 그 벽을 의지하게 되고 조금 더 시간이 가면 그 벽이 되어버리네’ 모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되더라는 거예요. 40년을 있어보니까 그게 공식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빠져 나오라고 세상을 주셨는데 아담들은 그 세상에 익숙한, 아니 그 세상의 일부가 되어서 그게 전부인냥 그냥 살다가 결국은 그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죽더라는 거예요. 그 앤디 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거기서 빠져나와야 되요. 쇼생크 탈출을 해야 되는데 안나오는 거예요, 거기서. 나중에 레드가 40년 간의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옥을 하는데 이 자유의 세상에 나와서 여기에 동화 되지를 못해요. 그래서 결국은 자살을 시도합니다.못살겠다는 거예요, 감옥이 훨씬 낫더라는 거예요.익숙하지가 않으니까. 그러나 감옥에서 자신의 처절한 실존을 확실하게 깨닫고 그 감옥에서 탈출한 앤디에 의해서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그런 영화예요.교도소에서 밖으로 나가는 땅굴이 뜷렸는데 안나가는 사람도 있더라니까요.’ 아이, 여기가 괜찮아 나가면 나는 적응 못할 거 같애’ 이러면서 말예요. 마찬가지예요. 진리의 복음을 듣고 자유로 나가라니까 여전히 율법을 붙들고 못나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니까요.그리고는 불안해 하는 거예요. 갈팡질팡 어찌 할 줄을 모르고 말예요.하나님은 진리의 복음을 주시면서 자유의 나라로, 내 아들의 나라로 탈출하라 하시는데 진리의 말씀을 받아 듣고도 그 자유의 나라가 익숙하지 않아서 여전히 율법의 나라의 종으로 살고 있는 게 성도라는 사람들의 현실이예요.새 신랑을 주시면서 그 새 신랑 곁에서서 영원한 안식으로, 영원의 안식을 누리라고 했더니 이미 죽어서 시체가 되어버린 율법의 신랑 곁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더라는 거예요.하나님은 그 신랑 죽여버렸는데.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호락하신 인생을 통해서 반드시 누군가와 혼인을 하여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어요. 독신주의자들 뭐라 그러는 게 아니라, 그런 결혼 말하는 거 아니예요.반드시 모든 인간은 혼인을 하게 되어 있어요.그건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시고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정하신 원칙이었어요.존재는 절대 독처해선 안된다. 그게 악하다, 라고 했단 말예요.악이란 말을 처음 쓰신단 말예요. 존재는 독처하면 안돼. 반드시 짝이 있어야 되요.그래서 이 땅의 모든 만물들이 다 짝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모형으로 주어지는 거예요.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해가 있으면 달이 있고,실체와 그림자, 하늘과 땅.바다와 뭍,물과 불,여자와 남자,새와 물고기, 신랑 신부 그렇게 짝이 전부 있단 말예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독처하는 것들이 악하다 라고 원칙을 정한 건 홀로 독처하고 계신 당신의 신부로 반드시 교회를 세우고야 말겠다는 언약의 선언이었다는 말이라구요 그거는.그것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나는 반드시, 하나님은 악할 수가 없으므로, 나는 반드시 내 신부들을 내 옆에 세우고야 말거라는 언약의 선언이었단 말이예요.그리고 그들을 당신과 연합시켜서 영원으로 사는 존재로 만드는 거, 이게 하나님의 위대한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미리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신랑이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 말고 하나가 더 있어요.그게 바로 ‘나’라는 신랑이예요. 그 ‘나’는 호코스모스, 세상이라고 불러도 상관 없어요. 그 ‘나’라는 신랑은 율법이라는 것을 통하여 구축이 되요.하나하나 구축이 되요.그래서 그 ‘나’라는 신랑은 호코스모스 전체를 가리키는 거예요.그걸 보고 세상을 사랑한다 라고도 이야기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 신랑,그 세상을 사랑하면 반드시 나를 낳게 되어 있어요.나를 증명하고 나의 가치를 위해 살게 되어 있다라는 이갸기예요. 그 호코스모스 세상에만 묶이면 그 호코스모스의 세상에서 완전한 현실,진짜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게 뭐예요? ‘나’잖아요, 나.이것만큼 확실한 현실이 어딨어요? 그러니까 반드시 얘를 낳게 된다니까요.거기에만 묶여버리면.그렇게 우리는 ‘나’라는 신랑과 그리스도 예수 라는 신랑중 하나를 택하여 우리에게 허락된 숨이 끝날 때 완전한 혼인을 하게 되요. 둘 중의 하나랑.모든 인간은 이 둘 중의 하나와 혼인을 하게 되요.그걸 다른 말로 바꾸면 죄와 의 라고도 바꿀 수 있어요. 죄와 혼인하는 자, 의와 혼인 하는 자. 그렇게 혼인이 성사되면 그들은 그 혼인의 열매로 반드시 아들을 낳아요.후손을 낳아요.그런데 죄와, 나와 혼인을 한, 세상과 혼인을 한 이는 나를 아들로 낳고 그리스도와 혼인을 한 이들은 진리만 낳아요.그리스도를 낳아요.그리고는 자기가 낳은 아들과 함께 그 아들이 가야할 곳으로 갑니다.이게 바로 오늘 본문이 이야기 하려고 하는 내용이예요. 너희가 의 옆에 진리의 겉옷을 입고 굳게 서면, 파라스테미,굳게 서면 이미 서 있는 언약의 기둥 그 옆에 파라 이스테미,옆에 굳게 서면 너희들은 영생이라는 열매를 얻게 되고, 영생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고 죄 옆에 파리스테미,굳게 서게 되면 사망이라는 열매를 얻게 되니 너희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인 해 보아라 라는 말이예요. 오늘 본문이.그래서 마지막이 죄의 삯은 사망이요,의의 삯은 영생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그런 말이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신랑이 누구인지가 이 현세 동안에는 잘 확인이 안되요.아세요 여러분은? 여러분 신랑이 누구예요 지금? 나 예요, 그리스도예요?그런데 그걸 확인하는 방법이 있어요. 내가 지금 누굴 낳고 있는가를 확인하면 되요. 나는 지금 신앙생활을 통하여 나를 증명하고 나를 낳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빼앗기고 나를 차압 당하고 내 안의 진리, 그리스도를 낳고 있는가?그걸 자기부인이라고 하잖아요?요걸 확인하면 되요.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 내가 이렇게 잘 하고 있어요.나 잘했죠? 라는 나를 낳고 있어요? 아니면 하나님 나는 죄인 중의 괴수예요. 내 안에 가치 있는 거라고는 내 안에 있는 진리 성령 밖에 없네요.이리로 가고 있는지? 무얼 낳고 계시냐구요? 그런데 오늘날 시중에서는 전자를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해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과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자주 표현 합니다.그건 당시 그들이 약속한 그들이 익숙한 약속으로 만들어 놓은 그런 혼인 풍습을 사용해서 하늘의 언약을 설명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시청각 재료였어요. 당시 고대 혼인 풍습은요7일간 치뤄졌습니다.혼인잔치가. 왜 7일일까요?모든 건 진리를 설명하고 있어요.7일간 치뤄져요. 왜? 신랑이 언제 올지 몰라요.신랑이 또났다고 하는 소식이 들여와도 당시에는 뭐 전철이 시간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사고도 잦고 그래서 언제 신랑이 도착할 지는 몰라요. 그래서 7일간 잔치를 벌여요. 그 날 중에 아무때나 신랑이 오면 되는 거예요.신랑이 부모를 떠나서 홀로 신부의 집으로 가요. 장인과 장모가 있는 집으로 가는 거예요. 그걸 장가 간다 라고 하는 거예요. 장가가 먼저예요. 아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에게 장가 간다라고 하는 건 내가 먼저 너희들에게 찾아가겠다는 뜻이예요. 장가를 먼저 가야 되요. 신랑이. 그리고 신부는 그 신랑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어야 되요. 7일 동안. 그런데 들러리들과 함께 기다리죠? 열 두 처녀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예요. 그런데 신랑이 어떻게 자기 신부를 찾아요? 내가 미리 보낸 빙패물, 믿음을 그가 갖고 있어야 되요. 그걸 갖고 있는 자가 신부예요. 딱 찾아요. 그래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어느집이예요? 장가 예요. 장인 장모의 집. 그리로 들어가요. 데리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밤에 혼인 예식을 치릅니다. 밤 같은 세상에 신랑이 와서 그 신부의 집에서 같이 산다니까요. 먼저. 그리고 바로 자기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아야 되요.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와 혼인을 하세요.그리고는 우리가 그리스도라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여기서 사세요.우리가 이땅에 존재하는 기간이예요. 그게. 그리고 첫 아들을 낳으면 첫 아이를 낳으면 신부를 데리고 이제 자기 집으로 가는 거예요.시 아버지, 시 어머니가 계신 시집으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장가를 하나님이 오시면 우리가 그 신랑과 함께 열매를 열심히 맺어 아들, 그리스도라는 아들을 낳아 시집을 가면 그때 혼인 잔치가 완료되요.그게 우리의 구원의 서정이예요. 굳이 이야기 하자면. 신랑이라는 말이요, 여러분. 새 新자에다가 랑자가 나라이름 랑이예요. 원래의 뜻이. 그래서 랑랑하면 나라이름이예요 그게.그럼 보세요. 신랑이 뭐예요?새 나라를 받는 거예요, 내가. 신랑을 맞이 하게 되면은…원래 뜻이 그렇다는 말예요. 새 나라가 되는 거예요. 내가 새 나라를 받는 거라니까요.원래 혼인이라는 것이.그러니까 그걸 갖다가 하나님이 고대로 시청각 재료로 써서 언약을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거예요.그들이 익숙한, 고대사람들이 익숙한 그런 재료를 써서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밤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당신 신부를 찾아 장가 가시면 신부는 그 진리의 말씀으로 오신 신랑과 함께 열심히 열매를 생산하게 되요.둘이 함께 낳을 아들을 준비하는 거예요.그렇게 자기가 맏아들인 신랑과 함께 열심히 아들을 준비하다가 마침내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아들을 낳은 여자는 삭제되고 그 아들이 되어 아버지의 나라로 가는 거예요.그런데 그 신랑이 그리스도가 아닌, 진리가 아닌 법으로 나에게 인식이 되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그 가짜 남편과 함께 열심히 ‘나’라는 아들을 낳게 되어있어요. 그걸 잘 지키고 나를 계발하고 성숙시켜서 근사한 나를 낳게 되어있다니까요.그걸 법으로 인식하게 되면 그 신랑을. 그리고 그 낳은 ‘나’라는 아들과 함께 영원한 흙의 세계로 돌아가는 거예요.그걸 지옥이라고 그래요.흙에서 온 건 그냥 흙으로 가. 그런데 문제는 선악과를 입에 문 아담들의 한계는 진리로 오시는 그리스도라는 신랑을 하나 같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거예요.아무도 못 알아봐.그래서 모든 인간은, 모든 아담들은 그 신랑을 다 법으로 인식하게 되어있어요.처음에는. 그리고는 그 신랑을 통하여 나를 낳는 것에 몰두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처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에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보세요.내 몸이라도 불살라서 하나님께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그거 아니라니까요.하나님이 우리를 섬기는 나라지.그러니 집 팔아 몸팔아 헌금하고 패가 망신 한 사람들 있잖아요.잘하는 건 줄 알고 그게.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부들이 당신을 그렇게 오해하도록 그렇게 놔두지 않으세요.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껍대기의 신랑, 율법의 신랑을 어떻게 해야 되요? 죽여야 되요.그게 예수의 십자가란 말예요. 무엇과 함께 죽여요? 그들이 진리인 신랑을 껍데기로 오해한 그 오해와 함께 죽이는 거예요. 그 오해를 뭐라 그래요? 그걸 죄라 그래요.그래서 우리의 죄가 거기서 죽었다고 하는 거예요.누구와? 껍데기 신랑과 함께.오해 되어진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거예요.그게 언약이라니까요.그래야 그 껍데기가 죽어야 진리이신 진짜 신랑이 새 남편으로 나에게 주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새 남편과 함께 그리스도라는 아들을 낳게 되는 거예요. 성경은 그렇게 율법의 신랑과 함께 나를 낳는 모든 행위와 사유를 죄라 그래요. 그런데 그 율법의 남편과 함께 보내던 시간을 성경이요 부정하지 않아요. 그냥 가치 있다 그래요.그거 가치 있다 그래요.오늘 본문을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 바로 다음 장인 로마서 7장이예요.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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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로마서 6장을 신부와 신랑의 이야기로, 옷의 이야기로 예복의 이야기로 설명을 해 드리느냐 하면 바울이 그렇게 끌고 가기 떄문이예요.7장에서 이 이야기를 신랑과 신부의 이야기로 예를 들어 마쳐버린단 말예요.7장으로 가보세요. 1절.
롬 7장 1절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섬기다는 뭐예요?흘려 주다라고 그랬어요. 사랑을 흘려 주는 걸 섬김이라 그랬죠?진리의 말씀을 흘려 주는 거),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 지니라.그런 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아니하였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바울이 율법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주관한다 라는 말을 한 뒤에 그러면은 고 사람이 죽는 이야기가 나와야 되잖아요?그런데 남편의 죽음을 이야기 한단 말예요 거기에다가. 그 말은 무슨 말이겠어요? 네가죽는 건 바로 네가 오해하고 있는 그 남편이 죽으면 네가 죽는 거야 하고 연결 시키는 거예요. 너는 죽어야 돼.왜? 그 법에 대해서 자유로와 질 거니까.그런데 네가 죽으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얘를 살려야 되는데. 그래서 남편을 죽여서 얘를 죽이는 거예요.얘의 죄를 죽이는 거란 말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란 말이예요.그것이. 죽어야 할 남편이 죽게 되면 법에 대해 시퍼렇게 살아있는 ‘나’가 함께 죽게 된다는 걸 말하는 거예요.남편이살아 있을 때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그래요.음부죠. 그런데 지금 바울이 율법은 나쁜 거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그 법에서 해방 되어야 된다라고 이야기 하잖아요.그러면 내가 그 남편이 아무리 살아있어도 야밤도주해서라도 도망 가, 이래야 맞지 않아요?못가게 한단 말예요. 왜 그러죠? 그 말은 그 남편을 옹호한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언약 성취의 그 주도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누구도 그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 남편을 벗어나서 진리로, 그리스도에게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라는 이야기인 거예요.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 남편을 죽이는 방식으로 그 신부를 구출해 내는 것이 창세전 언약이란 말예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율법의 남편이 언약의 기둥에서 죽었어요. 이스테미! 언약의 기둥에서 죽었습니다.그러면 이제 그 남편 잃은여자는 새 남편을 맞아도 아무 문제가 없죠?자 우리가 모형으로, 율법으로 바라 본 예수가, 그래서 아무도 안 따랐잖아요. 예? 오해 했으니까. 아무도 안 따랐단 말예요.그 예수가 죽었어요.언약의 기둥에서.그럼 이제 새 남편이 와야죠?누가 옵니까? 진리의 성령이 오신단 말예요. 그게 새 남편이란 말예요. 그걸 그리스도의 영,그리스도라는 말씀이라고 이야기 한단 말예요, 성경이.그래서 예수는 반드시 죽어야 된다니까요. 4절을 보면 그 새 남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이 되어있어요.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자.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자가 누구예요? 예수 아니예요. 그렇게 말씀 하시면 안되요. 그 다움부터는 예수라는 이름 안나옵니다. 그리스도 예수라고 나와요.그 다움부터는 다.그건 히브리서에서 이삭을 설명하는 어구이기도 했어요.그러니까이삭이 바로 그 죽은 에수,그리스도로 살아나는 그 분, 진리, 그걸 모형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제 여기서 밝혀지는 거지요.
그렇게 그 남편과 이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게 성도인데 그 전체 내용이 복음이다 라는 그런 말이예요.그 열매는 무슨 열매? 착한 선행의 열매?성경에서는 열매 그러면 생명의 열매 밖에 없어요.생명 나무 실과.그러면서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법과 함께 사망에 이르는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러죠? 법과 함께 열매를 많이 맺을수 있어요.그러면 법과 함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게 뭐겠어요?열심히 율법 지키는 거지 뭐예요.사람들은그것을 갖다가 옳다 라고 한다니까요.그런데 바울은 사망에 이르는 열매라고 해요 그거를. 법과 함께 맺는 열매를.우리가 법에 묶였을 때도 열매는 맺힌다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씨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 없는 무화과 같은 열매.그래서 무화과 나무는 수정이 안되요.무화과 나무는 암술이 없어요. 수술 밖에 없다니까요. 사각사각 씹히는 씨, 그러니까 항상 꺽꽂이고 번식을 할 수 밖에 없는 나무란 말예요. 그러니까 그런 거를 딱딱 갖다가 쓰는 거 보세요. 성경이.
그러니까 우리 보고 너희들 의문의 묵은 것으로 사망에 이르는 그런 열매 맺지 말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겨!그래요. 섬기는 건 말씀을 전해주라는 이야기예요.그래서 그들을 자유롭게 살려 내라는 거예요.그게 생명을 전해주는 거 잖아요.그게 열매 맺는 거라니까요.내가 아는 진리를 누구에게 전해줬더니 막 살아나 사람이.하나님은 그걸 네가 살렸다 그런다니까요.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다.그런데 창세전에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의 백성들, 눈과 귀가 뚫린 사람들이 그걸 듣고 살아난다 말이죠.그거 해 그러는 거예요.그거 해. 율법의 남편이 죽으면서 나라는 육도 죽는 거예요.그게 로마서 7장 1절의 논리예요.그러면 나라는 존재가 율법의 남편이 죽으면서 삭제 됐으면 얘가 무슨 열매를 맺을 수 있냐구요. 없는데. 죽었는데, 에녹 처럼 사라졌는데.그런데 그것들만 자랑한다니까요. 오! 성숙한 목사님, 착한 장로님,훌륭한 권사님,이것만 보고 앉아있는 거예요. 없는 건데. 하나님은그거 안 본다는데.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남편 안에서 새것으로 살아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 ‘나’, 새로운 영의 말을 전해주고그 새로운 존재로 사는 ‘나’로 그냥 그렇게 살면 되요.그리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열심히 주세요.세상이요구하는 도덕과 윤리 잘 지켜주시라니까. 왜 그걸 안해 갖고 저를 욕을 먹이냐구요?내가 하지 말랬다고. 가이사의 것은 주라니까요.왜 안 줘요 그걸.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준비하고 그거 하란 말이예요.저는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거예요.여러분에게 가이사의 것을 어떻게 하면 잘 줄 수 있는가 이거를 가르치는 게 설교자가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그런 어플리케이션을, 적용만을 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단 말예요.그건 세상의 무슨 좋은강연회 같은 데 가면은 다 배울 수 있는 것들 아닙니까 그거, 두 주먹 불끈 쥐게 하는 거? 바울은 거기까지 설명을 한 후에 거기에 이르도록 나를 이끌어준 율법이 그럼 죄냐?그렇게 물어봐요. 수사학적 질문이죠. 아니다,를이야기 하는 거예요. 고건법이죠? 그게 죄냐? 여태까지 거기 묶여 있으면 안된다고 그래놓고 그게 죄냐? 그래요.왜? 너에게 의가 뭔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한 게 그거라면 그게 죄냐?그건 무슨 말이예요?여태 그게 죄라 그래놓고 그게 죄냐? 그럼 죄는 없다는 얘기죠? 아니 삼단 논법만 알아도 이해 되는 거 아니예요 이거는?앞 뒤 다 끊어 버리고 또 요 얘기만 갖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지 마세요.
바울이 그러잖아요, 여태 그게 죄야,거기에 묶이면 죽어, 그러더니 그게 죄냐?고 물어요.그럼 뭐가 죄냐? 이렇게 물어봐야 되잖아요 우리가?그럼 여태 네가 죄라고 그래놓고 그게 죄냐? 라고 물어보면 그럼 뭐가 죄냐?고물어 봐야 될 거 아니예요.바울이 계속해서 그걸 설명해요.여러분 그렇게 의가 뭔지 선이 뭔지 진리가 뭔지를설명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게 호코스모스의 세상이라면 그 율법 호코스모스의 세상과 진리가 결국은 나에게 뭐가 되요?그 죄라는 것, 악이라는 것과 그 진리, 선이라는 것이 하나로 진리 안에서 나에게 이해되어 졌어요.그래서 이제는 이걸 정죄하지 않을 수도 있고 , 이걸 어떻게 추구해야 되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어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그런 이제 한 마음을 가진 자가 되었다니까요.
씨가 길에 떨어져야 되는데 길 가에 떨어지는 걸 죄라 그랬잖아요.그죠? 이것도 말이 안되는 거죠. 씨가 길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밭에 떨어져야지.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한다니까요.길인 예수에게 떨어져야지 길가에 양쪽으로 떨어져버리면 이게 선,악이란 말이예요. 그러면 그게 죄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거든요. 그럼 치우침이 없이 하나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모노 게네스, 독생자 아들이 되는 거예요, 그게요.모노~스테레오 모노~ 알잖아요?모노, 게네스, 한 마음을 가진 자. 하나를 가진 자, 죄로나 우로나 치우쳐서 뭘 선택할까 이거 안해도 되는 자. 그 사람을 성도라고 그래요.
이 내용이 출애굽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출4장 22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갇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그를 놓아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건지러 애굽으로 들어가는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는 그런 에피소드예요.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어디에 붙어 있는가 하면 보시다시피 애굽왕 바로에게 전하는 경고의 메세지에붙어 있어요.그걸 설명하는 이야기란 말예요.그 경고의 내용을 잘 보시면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죠? 그리고 내 아들이라고 해요. 장자라고 해요. 벌써.
그런데 이 때는 이스라엘이 아직 열두 지파로나뉘지도 않았을 때입니다.열두 지파가 되어 한 국가를 형성 했을 때 그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라고 불러요.그런데 아직 애굽에 있는 이 중다한 잡족, 여기에 있는 이스라엘이 누군냔 말예요?생각해보세요.아직 애굽을 나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이스라엘이냐구요.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된다니까요. 그럼 이 이스라엘은 뭐냐구요.야곱의 다른 이름이예요. 이게.
야곱이 뭐예요? 애굽,야곱 자기라는 존재 안에 묶여서 자기만을 위해 열심히 권모술수, 임기웅변 사용하여 나를 구축하는 존재, 그게 잘못된 말을 가진 자, 그래서 강도,절도, 발목을 잡는 자. 야곱이예요. 실족케 하는 자.왜? 잘못된 진리, 잘못된 말을 가진 자의 모형이잖아요.그래서 그 이름을 써서 예수님이 옛 성전을 가리켜 절도며 강도라고 하는 거예요. 야곱의 이름이거든요.그것이.
그런데 그 중에 하나님께서 그 야곱을 아들로 살려 내야 되는데, 왜? 약속의 자손이니까. 죽을 때까지 얘는 안 바뀔 것같아.하나님 마저도 이겨 먹으려고 해.안들어주면은 막 사십일 금식까지 해.굶어 죽을거야 그냥,,씩.이게 하나님 한테 안 지겠다는 거 아녜요 그게?그럼 어떻게해야 되요. 죽여야 되요 얘를. 다시 살려야 된다고. 그런데 얘를 죽이면 안된다고 했어요 아까.
그럼 누굴 죽여야되요? 약속의 씨가 담긴 그릇이 누구라고 그랬죠? 예수라고 했습니다. 환도뼈라는 단어가 의미가 그거예요.남자의 씨가 담긴 그릇.그걸 부수어 버리는 거예요.예수가 죽는 거예요. 거기서.예수가 죽고 하나님이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자를 살려내어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줘요. 이스라엘이 뭐예요? 하나님과 함께 이긴 자. 승리한자. 혼자는 절대 못 이겨요.
그러니까 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도 겨루려고 한 자라는 오명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살려낸 자, 이기게 한 자라는 위대한 이름이기도 한 거란 말이죠.하나님이 애굽이라는,이스라엘이 70명이 거기 들어가서, 70이라는 숫자 자체도 상징적인 숫자란 말예요. 딱 70명이 아니라. 왜, 7곱하기 10이라는 말입니다.
칠십이 들어가서 이스라엘로 나오는 거예요 이제. 이스라엘로 나와야 되는데 그 중다한 잡족 중에, 그들은 430년을 거기서 살았어요. 그러면 그냥 애굽이예요. 다아. 애굽이란 말예요 그게.애굽 중에,중다한 잡족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나가’ 했더니 나가는 이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서.그들을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내 아들이라는 거예요.내 아들. 그런데 전부 애굽이예요.그 애굽의 대표가 누구? 바로!.모형이란 말예요.
‘야 아들을 낳아야지, 내 아들 줘, 내 아들’ 하나님이 그러는 거예요. 내 아들 줘.그런데 애굽이, 야곱이 그걸 줘요못 줘요? 못 줘요.그게 내 생명인데 어떻게 줘요.내 아들 줘, 내 장자 내놔.그런단 말예요. 안 줘? 그러면 네 아들죽일 거야 그러는 거예요.네가 낳고 있는 그 아들 죽일거야 그런다니까요.그래서 나는 내 아들 찾을거야 라는거예요. 지금 제가 앞에서 설명해드린 이야기가 이 이야기란 말예요.내 아들 줘, 애굽에서 율법에 갇혀있는 , 거기에서 열심히 옛 성전, 옛 예루살렘, 그거 옛 거룩한 성 이거 만들고 있는( 출애굽기 1장이예요 그게) 그 내 아들줘.안 줘요.
그러면 네가 지금 낳고 있는 그거 내가 죽여서 내 아들 찾을 거야, 이게 바로에게 한 경고란 말예요.그러면 모세가 지금 그거 하러 들어가야 될 거 아닙니까?그러니까 그러 하러 들어가는 모세에게 지금 그걸 그대로 경험하게 해 주는 거예요.
모세는 첫 번째 남편이예요.율법의 모형이니까.오해 되어진 남편.죽어야 하는 남편, 그런데 얘를 죽이면 안되잖아요.그럼 뭘 죽여야 되요? 그가 낳고 있는 그걸 죽여야 된다니까요. 그래서 할례를 하는 거예요. 할례는 쪼개다, 죽이는 거예요.그거는요. 생식기를 잘라버리다 라는 건 생명의 근원을 막아 버리는 거, 죽이는 거예요. 아들이 죽어요.아들을 죽여서 죽여야 할 그 자를 새 남편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그리고는 새 아들을 낳게 만드는 그게 출애굽이야,를 설명해주고 지금 애굽으로 들여 보내는 거란 말예요.그래서 새 남편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그게 그리스도 라니까요.말씀이예요 그것이. 진리의 말씀.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약속의 씨, 약속의 자손을 주마 그랬어요.너를 그렇게 만들겠다는 뜻이었어요.그런데 아브라함은 그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뭐였느냐하면 ‘나한테 자식을 주실라라?’ 그럼 하나님은 그 수준에서 말을 해줘야 되요.그래서 이삭을 줘요.그러면 그 이삭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 하시고자 하는 그 진리가 뭔지 알았으면 이 이삭은 어떻게 해야 되요?삭제 되어야 되는 거예요. 얘가 끝까지 가치로 존재 하면 안되는 거예요. 교회의 그 모형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래서 하나님이 죽이라고 그러는 거예요.가서 죽여, 이제 알았지?죽여, 거기서 또 한 번 모형을 셜명해주는 것이고. 그 아이가 죽었다가 산 자의 모형이고 그것을 통하여 죽어야 할 아브라함, 구원받을 교회가 진짜 신부로 서는 모형을 거기서 또 한 번 보여주는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죽지 않았는데도 불구 하고 그가 죽었다 살았다, 그래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거에요.모세, 마찬가지에요.그리스도의 모형이라니까요.죽어야 하는데 안 죽어요.그리고는 그가 낳은 것이 죽고, 아들이 죽고,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 이삭 그가 죽고 아브라함이 사는 거예요.마찬가지예요. 모세가 아들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남편, 피 남편 으로 오는 거란 말입니다. 진리의 말씀이예요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율법과 혼인하여 낳고 있는 ‘나’라는 아들을 반드시 죽이셔야 되요.그러기 위해서는 율법이라는 남편이 먼저 죽어야 되요.이게 로마서 7장 이라고 했습니다.그래서 예수가 죽는 거예요.그리고 진리라는 새 남편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나를 진리로 빨아들여 함몰시켜서 그리스도인 이라는 아들로 만들어 내는 거예요.그 이야기가 피 남편 이야기예요. 이렇게 그 이스라엘은 남편의, 오해되어진 남편의, 율법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가 낳고 있는 그 자신이 죽게 되는 것이고 새로운 남편을 맞아 새로운 아들, 진리라는 , 그리스도라는 아들, 영생이라는 열매를 낳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나중에 이름이 뭘로 바꿔요? 유다로 바뀌어요 그죠? 그 유다가 또 한 번 이걸 설명 해줘요.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먹습니다.죽이는 거예요. 그러면 원칙공식이 어떻게 되요? 그 아들이 죽으면 그 아들을 죽음에 넣은 그 자가 그 아들의 죽음으로 살아나야 되요. 왜 가롯 유다를 나쁘다고 하느냐 하면 아들이 죽었어요.가인도 마찬가지예요.죽어야 할 하벨, 아벨이 죽었습니다.그러면 ‘아, 나는 이렇게 살인자인데 내 형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아나는 거로구나’하며 그 죽음을 찬송하는 거예요.
그런데 가인이 뭐라 그랬어요? ‘ 내 죄가 중하여!’ 그래요.무슨 위대한 박애주의자 하나 나신 거지요.
율법주의가 그래요. 내 죄가 중하여!유다 보세요. 아들이 죽었으면, 옛 남편이 죽었으면 새 남편을 맞아 아들을 낳아야 되요. 생명을 낳아야 되요.살아야 되요. 예수가 죽었으니 내가 살아야 된단 말이예요.그런데 예수가 죽자 내 죄가 중하여! 나 같은 놈은 죽어야 돼 그러고 죽더라는 거예요. 이걸 율법주의라 그래요.
이스라엘아, 유다야! 복음이 뭔지 제발 좀 알아 먹어라를 계속 설명해주는 거예요. 왜 죽어? 그가 죽었으면 네가살아야지. 왜 네가 죽어?왜 여전히 네 죄를 네가 책임 져?그가 죽었잖아.그래 너 같은 인간 때문에.죽었잖아.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예수 팔아 먹는단다.왜? 그게 피조물의 한계니까.진리를 어떻게 알아보니?그러면, 그가 너희들이 오해한 죄가 되어서 죽었다면 너희들이 이제 살아야지 왜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리고 앉았느냐? 내 신부들아 제발좀 알아 먹어라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을 용서해, 네 형제를용서해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안그러면 나 너희들 용서 안 해. 이렇게 오해가 될만한 이야기들을 계속 반복하여 하시는 거예요.내가 내 형제 용서 안 하면 하나님이 나를 용서 안 해?아이, 그러니까 내가 속으로는 저걸죽이고 싶지만 참아야지. 이거 하라는 게 아니예요.그게 뭐가 용서예요?
일 만 달란트 빚진 자가 주인에게 탕감을 받아요.일 만 달란트는 당시에 이스라엘이 로마에게 일년 동안 바치던조공이 800달란트 였으니까 개인이 일 만 달란트 빚진 다는 게 가능해요?불가능. 그건 못 갚는 돈의 하나의 상징이예요.한 나라가 일년 동안 바치는 조공이 800이었는데 일 만이 뭐냐구요? 그런데 주인이, 아무튼 비유니까,탕감해줬어요. 용서해줬어. 그런데 동관, 자기와 똑같은 동류란 뜻이예요.동관하나가 지나가는데 자기한테 백데나리온, 이 천원 빚 진 거 있어요. 수조원을 지금 탕감 받고 나왔는데 이 천원 빚 진 애가 지나가네 그런데 걔를탕감을 못해줘요, 이 사람이.그래놓고는 감옥에 가둬 버린다니까요.
이게 무슨 얘기 겠어요? 여러분, 우리가 진짜 용서가 뭔지를 안다면 그리고 내가 어떤 지경에서 그 용서를 받은 자인지를 안다면 내가 어떤 죄를 봤어요.내 형제의 실수를 봤어요.그러면 어떻게 반응이 먼저 나와야 되요?그래 나는 너보다 더 더러운 죄인 중의 괴수였어. 그런데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을 나에게 주어서 세상에, 내가 용서 받았다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셨단다.야 걱정 하지마, 내가 너에게 그 용서 받을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전해줄게. 나에게 치료 약이 있어! 야, 걱정 하지마 라고 반응이 먼저 나와야지요.
내가 진짜 용서 받은 사람이라면 야, 걱정하지마. 난 더 보다 더 했어.그런데 내가 용서 받았다.탕감 받았어.그러니까 너도 이걸 깨달으면 그 주인이 누군지를 알면은 너도 그거 탕감 받을 수 있어. 용서 받을 수 있어, 라고 그에게 전해주려고 할 거 아니예요? 그런데 내 안에 그게 없으면 어떻게 되요? 돌이라도 던져서 저거와 나는 아무 관계 없다라는 걸 자꾸 증명 해야 되요.그래서 그렇게들 반응하는 거예요.
누가 잘못 하나 살짝하면 인터넷에다가수 만 개 댓글 올리면서 지랄들 떠는 게 용서 받은 경험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아, 그렇잖아요? 죽을 병에 걸려서 왔어요 누가, 그런데 내가 금방 어떤 약을 먹고 나았다구요.그리고 내 안에 그게 있어요.그러면 그 사람이왔을 때, 넌, 어떻게 뭘했길래 그런 병이 걸렸니?라는 반응 보다는 야! 여깄어 이것 먼저 주려고 할 거 아녜요?
나는 죄인 중의 괴수였어, 일 만 달란트에서 용서 받았는데 그까짖 백 데나리온? 이 약 반알만 먹어도 돼. 라고나올 거 아닙니까?그런데 백 데나리온 빚 진 자를 감옥에다가 가뒀다는 건 뭐예요?여전히 율법으로 정죄해서그 에게 죄책감이 들게 만들었다는 얘기예요.이게 오늘날 교회가 하고 있는 일입니다.그래서 그 죄책감 자극해서 헌금 뜯어 먹으려고.사람들은 그럴 걸 할 때 굉장히 자기가 뭘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 순간 만큼은 마음이 편해지거든요.협박하는 거예요.
아니예요, 여러분 ~ 아니 하나님이 나란 존재를 삭제했다니까요.언약의 기둥에서.그런데 내가 지어 놓은 그 죄,앞으로 지을 죄, 그 죄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죄도 아니지만,그게 하나님이게 무슨의미가 있냐구요.내 존재가 하나님에게 없어지고 그리스도라는 옷만 보이는데.그러면 그걸 얘기를 해 줘야 될 거 아니예요? 그죄를 지은 사람에게.
아주 죽이려고 작정들을 하더구만요,그냥. 누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죽이려고.마귀 새끼들이 말예요.지들은 더 더러우면서.그러니 용서는 무슨 용서냐구? 용서 받은 적이 있어야지.가둬버리는 거예요.그랬더니 주인이 뭐라 그래요? ’호! 네가 내가 해준 용서가 뭔지를 이해를 못하는구나?그럼 너 이리와 봐, 일 만 달란트 다 갚어 너 그거 다 갚을 때까지 못 나온다’ 하고 그를 감옥에 넣어요.그러니 개인이 일 만 달란트를 감옥에서 어떻게 갚아요? 너 죽으라는 얘기지. 그 놈이 사망에 들어갈 자다!라고 이야기 하는거예요.그런데 우리가 전부 그 일을 하고 있다니까요.전부! 그러니 예수 믿는 놈이 어딨냐구요 이 세상에 지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누가 예수를 믿겠냐구요.여전히 진리를 안다고 하는 우리도 그러고 있는데,,,.그러니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용서가 뭔지를 알아, 은혜가 뭔지를 알아.그러니까 돌이라도 던져서 난 너와는달라, 해야지요.돌이라도 던져서.그러한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어요.분리주의 자들.파리사이오스가 분리하다 쪼개다 이런 거예요. 둘로 쪼개다,,. 어떻게 이름을 지어도,자기들이 지은 거 아니예요? 잘 지었어. 누가복음 5장30절 보세요.
눅5장 30절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가 있느니라 내가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
어떤 자가 의원을 필요로 한다 그래요?내가 죽을 병에 걸린 자라는 걸 아는 자.그 자가 진짜 생명을 간구하게 되는 거예요. 나에게 의원이 필요한대, 그 분이도와주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이렇게 가는 거예요. 그런데 32절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내가 의인을, 의인을 강권하여 의인을 데려가려고 온 게 아니다. 내가 의인을 강권하러 온 것이 아니다. 너희들잘 배워서 의인 돼. 그러면 데려 갈게, 이말을 ,이렇게 하려고 온 거 아니다란 뜻이예요.
그리고는 뭐라 그러시느냐 하면 나는 죄인을 다르게 생각하게 하기 위해 온 거야. 다르게 생각하다, 다른 마음을 가지게 하다가 메타노이아 예요.그걸 회개라고 하는데, 회개 그러면 우리는 그냥 반성, 이렇게 이해하고 있으니까..메타노이아는 내가 어떤 것을 인식하여 생각을 하고 있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야, 그거 아니야 라고 가르쳐서 그걸 올바로 보게 해주는 걸 메타노이아 라고 해요.메타,노이아. 그게 뭔지를 알게, 죄인이 뭔지를 알게 해주러 온 거야.
의인, 죄인 그러니까 자꾸 아니 그럼 어디 의인이 있나? 죄인이 있나?뭐 이렇게,,아니잖아요. 여기 지금 봤잖아요.바리새인과 세리 창녀 밖에 없어요. 바리새인, 서기관 죄인이예요 의인이예요?죄인. 세리,창녀? 당연히 죄인.그래서 성경도 죄인 그래요 예수님도.이 놈도 죄인 너희도 죄인. 의인이 있어요 없어요?없어요. 그런데 무슨의인을 부르러 와요?그런 말 하는 게 아니잖아요.나는 의인을 강권하여 그 의인 된 자를 데리러 온 사람이 아니야.왜? 의인 없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되요?의인이 없다는 건 그 지점에 의가 없다는 거잖아요. 그 세상에. 의가있으면 의인이 있겠죠 당연히. 그 전체 중에 의인은 예수님 한 분 이었어요. 그런데 그 의도 감추어져 있어요.하늘의 의를 인간들이 못 알아보니까.감추어져 있어요.그러니 의인은 없어, 의도 없어요.주님이 당신 안에 있는의를 하늘의 것으로 이야기를 해 봐야 못 알아 들어요. 그러면 그 의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냐구요?그들이 갖고 있는 건 죄 밖에 없어요.그들이 갖고 있는 건 죄 밖에 없어요.그리고 그게 가장 익숙해.그러면 그 의를, 하늘의 의를 뭘로 설명을 해야 되냐구요?그 죄가 뭔지를 가르쳐서 그게 뭔지를 올바로 깨달아 아, 이게 죄야! 이게진짜 죄야?그러면 그거 하지 말아야지.가 의란 말예요.그러니까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의인을 강권하여 의인을 만들으러 온 게 아니라 죄인들을 다시 보게 하는, 율법 이걸 내가 없애러 온 게 아니라 그 율법이 뭔지를 다시 보게 하는 (메타노이아 예요 이게)다시 보게 하는 일을 하여 너희가 다시는 선악과 안 따먹도록,의인 되도록 하러 온 게 나야 , 그 말이란 말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니까 뭐,,다 죄인인데 그럼 다 불러 가겠네?
죄와 죄인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어서 구원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죄와 죄인이라는걸 다르게 생각하면, 야, 저건 어떻게 저런 죄를 지었어 저거?아휴, 내가 저런 인간하고 같이 천국 간다면 난 거긴 안 간다.그렇게들 많이 생각하잖아요?상급. 차등 상급론이 그거 아닙니까? 인간들의 행위를 차등으로 나누어서 쟤는 조금 괜찮은 사람, 얘는 조금 못한 사람, 얘는 더 더러운 사람, 아주 더러운 사람, 뭐 이렇게 나누는 거.그거에 따라 상도 주고 벌도 준다는 게 차등 상급론이잖아요. 아닙니다 여러분.여러분의 행위는 하나님에게 하나도 카운트가 안되요.여러분이 그 용서를 이해하느냐? 못하느냐?그것이 중요한 거예요.하나님 앞에서.
그래서 말라기에 이런 말이 나오고 400년 암흑기가 이어져요. 암흑기라는 건 하나님의 말씀이 한 마디도 안 떨어지는 시대.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모든 하나님의 구약이 율법으로 곡해되어지는 시대가 된 거예요.400년 암흑, 밤이 되는 거예요. 밤이.말라기 이후로. 말라기 4장 4절 보세요. 말라기 마지막 입니다. 그리고 닫히는 거예요. 구약이.
말 4장 4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아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이게 메타노이나 예요.마음을 돌이킨다. 이 슈브라는 단어가 마음을 돌이키게 해 가지고 못된 놈을 착하게 만들고 뭐 이런 말이 아니라 그 마음을 부수고 다시 세우겠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아비의 마음, 아비의 마음이뭐예요? 원래 하나님은 어떻게 하셔야 되요? 거룩하신 분이니까. 더러움을 죽여야 되는 거거든요.저주 하셔야되는데 그 마음을 부수고 다시 세우겠다.원래 하나님은 그런 분이란 말예요.그게 언약의 내용이란 말예요. 그리고 아들의 마음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게 뭐예요? 내가 이런 짓을 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벌 주겠지? 내가 이렇게 잘 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상 주시겠지? 이걸 부수고 다시 세우는 걸 엘리야가 한다는 뜻이예요.그런데말라기에서 왜 엘리야가 나온다 그래요? 앨리야는 세 번 옵니다. 구약의 그 앨리야, 세례 요한이라는 엘리야, 그리고 예수라는 엘리야가 오지요? 성경이 이야기 하는 바예요. 그게. 예수님이 자기도 엘리야라 그러고 세례 요한도 엘리야라 그런단 말이예요. 엘리야가 뭐하는 거예요? 부수고 다시 세우는 거요.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 넘겨주죠? 수요일날 안 온 사람들은 잘 모를텐데. 겉옷이 뭐라 그랬어요? 진리의 말씀 이예요.예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겉옷 넘겨주고 가셨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겉옷과 함께 속옷을 덧 입어 구원 받은 거예요. 우리가이렇게.
그 율법,호코스모스, 이 세상을 진리로 이해하여 구원 받은 거잖아요.엘리사, 엘리야 마찬가지죠. 엘리사가 엘리야를 아버지라고 부르잖아요. 내 아비여,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마병과 뭐라 그래요? 지난 주에 말 가지면 안된다고 했더니, 이종성 집사가 솔로몬은 말을 그렇게 많이 가졌는데 그러시던데,,그래서 그가 예수가 아닌 거예요. 여자 갖지 말랬더니 마누라 천 명, 말 갖지 말랬더니 말 만 이천 개, 금 많이 갖지 말랬더니,,이 세 가지가 이스라엘의 왕의 조건 이거든요.그런데 다윗, 솔로몬, 성전을 짓는 모형이지만 그들도 진짜가 아니다를 설명해 주기 위해 그것들을 그렇게 많이 갖고 있는 거예요.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그 진리의 말씀 그 겉옷이하나님의 힘이라는 얘기예요.그리고 그걸 전해준 그 분이 바로 내 아비라는 거예요. 요아스가 엘리사한테 또 나의 아비여 병거여 마병이여 라고 이야기 한다니까요.
그 엘리야, 그 엘리야가 한 일이 그거란 말예요. 돌이키는 거예요.아비의 마음을 돌이키고 아들의 마음을 돌이켜서 진리의 말씀을 주는 거예요.세례 요한이 와서 뭐라 그랬어요?회개하라~ 메타노이아! 마음 바꿔. 예수님은뭐라 그래요? 회개하라~ 마음 바꿔! 그런데 아무 설명도 안해주고 갔어. 뭘 어떻게 바꾸라는 거야?그거 안 바꾸면 죽어 까지만 얘기 했단 말예요.제자들을 보내서도 그 얘기만 전했어요.그런데 뭐 어떻게 바꾸라는 거야?안가르쳐 줘요. 그리고 여러가지 표적들을 복음을 담아 행하고도 가서 말하지 마, 그래요.못알아 먹으니까. 말 해봐야 그 껍데기로만 이해할 거니까 그럼 죽는 거거든요. 그건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뚫고 들어와 나에게 강권하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선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란 말예요.마음을 돌이키는 거.
400년 암흑기 동안에 율법주의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어요.꽉 채웠어요.말씀이 떨어지지 않았기 떄문에 무려400년 동안에.어둠이예요. 이제 다. 거기에 빛이 오는 거예요.빛이 뭐예요? 성경이 빛을 뭐라 그러죠?어두움을드러내는 거라 그러죠? 어두움을 나타내는 게 빛입니다.그러면 어두움을 드러내어 나타내는 게 빛이라면,빛이뭐예요? 어두움이라니까.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어요.빛으로 오셔서 율법 아래에, 그 분이 율법으로 오셔요. 그래서 빛을 세상에 비추어 그들의 더러움을 확 폭로시켜 내는데 이 빛이 율법이 되어 죽는다니까요.그러면 보세요. 어두움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게 빛이고 그 내용이 원래 하나라면 뭘 보고 우리가 이렇게 파르르 떨어야 되느냐구?
자, 구약에서 너희들 안식일 날 일하지 마.일하면 다 죽여, 돌로 때려 죽일거야 그랬어요.신약에 와서 예수님이아버지가 일 하시니 나도 일 한다 그랬어요.그 말은 뭐예요? 내 제자들아 너희들도 일 해야 돼 그랬어요. 그런데무슨 일?아버지의 일이예요. 그러면 이걸 깨달은 이는 구약의 안식일에 일하지 마 라는 그 계명을 가지고 어떻게 이해를 하게 되겠습니까?아, 안식일에는 네 일 하지 마.율법 지켜 열매 맺겠다고 하는 네 일 하지 마, 그리고아버지의 일을 해로 알아들을 거 아니예요? 그런데 아버지의 일이 뭐예요? 내 새끼들 진리로 신부 만들어 내 옆에 세우는 거.그 일 해. 그래서 이 안식일의 정신이 흐르는 주일에 우리는 말씀을 흘리고 받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그러면 안식일 날 일 하지 마, 안식일 날 일 해, 이 둘이 뭐예요? 결국, 하나란 말입니다.그러면 안식일 날 일하지 마 라고 한 그 계명을 계명으로만 받으면 그날 일 한 사람 돌로 쳐서 죽이게 되어있어요. 그 일을 한 게 바리새인 이라니까요.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그렇게 율법으로만 보면 그걸 전부 명령으로 받게 된단 말입니다.그리고는 넌 왜 아직이 수준으로 못 올라와 라고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신앙생활들을 한다구요.그게 무슨 기독교라 그래요?다른 종교도 똑같이 하잖아요 여러분.그러니까 여러분이 빨리 그 선악의 감옥에서 빠져 나와야 되요.안 그러면 자기도용서 못하고 형제는 더더욱 용서 못해요.뭘 알아야 용서를 하지.용서라는 치료 약이 내 안에 있어야 주지. 요한일서 2장 7절 보세요.
요일 2장 7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너희의 들은 바 말씀 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저희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진리란 말이예요)니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음이라 사랑하는 자는 용서하는 자요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고 또 어둠 가운데 행하며 갈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자녀들이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요한이 새 계명을 이야기 하면서 무러 그러느나 하면 내가 새 계명을 말하는데 새 계명이 아니라 원래 그냥 옛계명이야. 그런데 그 옛 계명이뭔지를 깨달아 알게 하여 새 계명으로 주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율법이 진의가 이러이러한 거라서 그것은 이렇게 진리로 이해를 해야 되는데 너희가 그 율법에 묶여 여전히 너도 용서 못하고 너희 형제도 용서를 못한다면, 그 말씀을 못 준다면 너희들은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는 거잖아, 그러고나중에는 뭐라 그래요? 너희 용서 받았잖아.희생제사 드려,가 희생제사 드리지 마 내가 할게 이렇게 읽혀지더라는 거예요. 진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좌로나 우로나 안 치우친다니까요.그게 영원이란 단어의 뜻인 거예요.움직임이 없는 것,요동이 없는 거 그래서 주님이 반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 하십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제발. 길 가로 떨어지지 마,가만히 있어. 두 다리 굳게 박아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성선설과 성악설도 하나 예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준 그 마음. 원래 우리는 두 마음을 갖잖아요.그걸로 진짜하나만 가진 게 뭔지를 알라고 준 거. 그래서 이게 그리로 쓰여지면 그것은 선한 거다라고 이야기 하는 게 성선설이예요. 성악설은 그걸 그대로 가지고 율법으로 판단을 해버려서 악하게 사용하는 걸, 그럼 그건 악한 거야가성악설이예요. 그 둘은 결국은 뭐예요 그러면? 같은 거란 말이예요.여러분이 반드시 선악의 남편, 율법의 남편을 죽이셔야 되요.아니, 이미 죽었어요. 그걸 말씀 속에서 자꾸 깨달아 가는 거예요.그리고 그 말씀이 내 삶속에서 나타날 때 그 삶을 말씀을 적용하여 자꾸 이해를 하셔야 되요.
자기부인이 뭐예요? 자기부정이 뭐예요? 게시판에 많이 물어 보시던데. 여러분이 아, 나는 왜 이렇게 부인이안돼? 아, 난 왜이렇게 부정이 안돼?여전히 왜 이 모양이야? 예, 좋은 고민이에요.그러나 거기에서 머물러서 절망하고 낙담하면 유다 되는거예요. 여러분은 십자가에서 이미 부정 됐다니까요.여러분이 힘써서 부정하는 게아니예요.그렇게 힘써서 부정하려고 하면 그 의도가 뭐겠어요? 하나님과 다른 이들에게 내가 이마만큼 진보한걸 보여주겠다라는 욕망에서 그러는 거예요. 그걸 죄라 그래요.자기 증명의 죄. 아니, 그렇게 다 하게 되어있어요.또
‘아, 난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럼 난 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럴라 아니, 다 하고 있는데 말씀을 잘 이해하시란말예요.그래, 그러니까 나는 이런 존재니까.에수님이 내가 되어 내가 낳은 율법이라는 아들이 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거구나로 가시면 되는 거예요. 그게 자기부인이에요.
이렇게 진리의 말씀이 던져져도 아, 그래도 난 여기가 더 익숙해.왜냐면 날 때부터 그렇게 났거든요.그러니까나 안 나갈래요.그냥 머리로만 알고 있을래요. 안 나갈래요. 땅굴이 뚫렸어. 앤디도 나가고 레드도 나가고 다 나갔는데, 겁 나는 거야. 나가서 어떻게 저 자유를 어떻게 감당해 이렇게. 그렇게 여전히 자기가 스스로 묶어버려.자기를. 용서하시라니까요.나를 먼저 용서하시라구요.나를 풀어야 하늘에서 풀려요. 그 말은 하늘에서 푼 자는이땅에서 반드시 자기를 풀게 되어있단 말예요.그렇게 풀린 자가 형제를 풀 수 있는 말을 줄 수 있단 말이예요.그 율법의 감옥, 율법의 쇼생크에서 탈출 하십쇼, 진리의 말씀 붙들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그렇게 감옥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는데 우리가 안 나가고 있었습니다.그래서 그 문은 밖에 문고리가 없는가 봅니다. 우리가 열고 나가야 하는데 하나님, 우리는 그 문고리를 잡을 힘이 없습니다.진리의 말씀을 더욱 더 우리 안에 깊이 새겨 주셔서 자신 있게 문고리를 잡고 문 열고 자유의 세계로 아들의 나라로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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