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로마서강해

로마서70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제거

은바리라이프 2013. 12. 21. 10:38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제거 로마서 6:15 로마서(동영상+설교원고)

2014.03.0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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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 6 15

6 :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500년 전에 그리스의 수학자 제논이 당시의 수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이런 논제를 던졌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아킬레스에요. 그래서 아킬레스건 그러죠?

 그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경주를 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아킬레스가 거북이보다 훨씬 빠르니까 거북이 백 미터 뒤에서 아킬레스가 출발하는 거예요. 동시에

그러면 그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시점이 어디인가 계산 해 봐라 그랬어요. 여러분도 한 번 계산 해보세요

그럼 아킬레스가 거북이 보다 열 배 빨리 달린다고 생각해 보자고요. 백 미터 뒤에서 출발했어요. 같이 출발했단 말입니다

그러면 아킬레스가 그 백 미터를 막 달려서 거북이가 있던 자리까지 오면 거북이는? 십 분의 일 만큼 갔겠지요? 열 배 빠르니까. 논리적으로. 그죠

그러면은 이제 십 미터 앞에 가 있을 거란 말에요. 거북이가. 그럼 십 미터를 따라 잡으면? 십분의 일. 일 미터 앞에 가 있을 거 아네요

그럼 일 미터를 따라 잡으면? 거북이는 십 분의 일 미터 앞으로 가 있겠죠

이렇게 논리로 따지면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영원히 못 잡아요. 요걸 파라독스라고 해요. 역설이라 그래요

그런데 그건 뭐 (등비수열?) 로도 금방 풀려요. 12 미터 정도면 은 아킬레스가 따라 잡게 돼있어요.


그런데 제논이 그걸 몰라서 그런 문제 제기를 했던 걸까요

그렇게 참되 ㄴ명제와 모순되는 결과를 낳는 추론을 파라독스라고 하는데 

그 파라독스, 역설이라는 건 그 모순을 통하여 진실을 강조하는 어법인 거지 모순 자체를 우기기 위함이 아닌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게 역설의 효용이란 말에요

제논이 그런 수학적 논제를 제기 한 건 수학공식으로 그걸 풀어보라고 낸 게 아니라

 변하지 않는 유일한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운동이나 설명을 취했을 때 반드시 모순이 생긴다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는 것을 웅변하기 위해 그런 문제를 던졌던 거예요

따라서 진리는 공식으로 논리로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그 논제를 던진 거란 말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현상계의 모든 사건이나 사물, 사유나 행위 등을 통해서 

그걸 창조하신 분이 그안에 담아 놓은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거지 그걸 공식으로 삼아서 거기에 묶여 버리면 안 된단 말에요

그 모든 걸 호 코스모스라고 그러잖아요

그걸 그냥 한글 개역 성경이 세상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그 호 코스모스라는 건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순서, 차서대로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해 놓은 거란 말에요.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그런데 이걸 나타나는 것으로만 보고 공식으로 덥석 잡아 버리면 그게 세상이라니까요. 그게 악이에요. 나쁜 거예요. 그걸 거짓이라 그래요

그 안에 들어있는 진짜 내용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걸 진리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눈에 보이는 것에 묶이면 안 돼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에 묶이는 걸 탐심이라 그래요. 보암직도 하고 ,,이거를

그리고 그걸 내 손을 뻗어서 잡으려고 하는 그것을 탐심이라고 해요.

 그게 모든 죄악의 근본이라 그러잖아요.

 

아담들의 그 생래적 성향은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나의 가치를 높이고 나를 풍성하게 하는 데데 사용하게 되어있어요. 모든 아담이 다 그래요.


 예를 들어서 급할수록 돌아가라, 역설이죠? 그죠? 급한데 왜 돌아가요? 지름길로 가야지, 첩경으로 가야지

그건 급할수록 돌아가야 빨리 간다는 공식을 증명하려고 내 놓는 역설이 아니잖아요? 아니, 안 맞잖아요.

 그건. 급할수록 돌아가면 안 된단 말에요

그건 뭐든지 급하게 서두르면 항상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라는 내용을 강조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글자 그대로 이해를 해서 급할 때마다 돌아가는 바보가 있어요?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들 본다니까요.

아무것도소유하지 않는 게 곧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다. 명제에요. 역설입니다. 파라독스죠

그렇다고 그걸 들은 사람이 그 뜻을 곡해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단 말인가? 오해에요. 그건요

그래갖고 모든 걸 소유하기 위해 아무것도소유하지 않아 보는 것, 바보라고요. 이건 금방 낭패를 당한단 말에요

명제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에 가치,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데 그걸 곡해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하기 위해에 무게 중심을 둔단 말에요


이렇게 진리를 아는 사람은 모든 나타난 것 속에 들어있는 진의를 보는 눈을 갖게 되는 거예요. 

이 나타난 모든 것은 진리로 해석되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다 역설이라니까, 파라독스란 말에요.

그걸 옛 성전이라고 해요. 그걸 세상이라고 한다니까요. 그래서 가짜라고 하는 거예요 이거를

진짜는 그 속에 담긴 진리란 말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아는 사람은 모든 나타난 것들 속에 들어있는 진의를 보는 눈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진리는 현상계 속에 나타남으로 보이는 역설을 제고하고 벗겨내서 그 알맹이를 양식으로 넘겨주는 힘이 있어요


성경도 마찬가지에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바라보게 되면 성경은 수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어디에서는 이렇게 하라고 했다가 어디에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맹세를 하라고 했다가 하지 말라고 했다가

 살인해라 그랬다가 하지 말라 그랬다가 그러잖아요? 가서 다 죽여 그래놓고 넌 어떻게 지나가는 고아 과부를 돌아보지도 않아

그렇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게 살인이야, 뭐 이런 식으로 또 얘기하고 그러잖아요. 모순처럼 보인단 말에요

이게 진리라고 했다가 저것이 진리라고 뒤집기도 하고 


사람들은요 그런 성경의 모순들을 대할 때, 두루뭉술, 스리슬쩍 그냥 넘어가요

그걸 지적했다간 자칫 믿음 없는 사람으로 몰릴 수도 있고. 무식하다고 아직도 그것도 모르냐

이렇게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당할까봐 이거 모순인데? 그러면서도 그냥 두루뭉술 넘어간다니까요.

 그러나 진리를 알게 되면 그 모순은 결국 하나로 귀결이 된다는 걸 알게 돼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요. 길에 떨어져요. 길 가로 떨어지지 않는다니까요

그 역설적 모순 속에 담겨있는 진리가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범인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도록 쳐 놓은 그 역설, 연막 안으로 들어가 진리를 보는 이들입니다

그렇게 생명의 실과를 따먹어 버린다니까요.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러한 역설의 공식을 제거하지 못하고 

그냥 그 파라독스에, 역설이라는 공식에 묶여 버린 자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수사학적 질문이에요

사도 바울은 6 1절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그리고 그 양쪽을 빵으로 딱 놓고 가운데에다가 샌드위치 속을 집어넣은 거잖아요?


6 1절 보세요.-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이게 오늘 본문의 내용이잖아요. 1절에서도 똑같이 물었다니까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리고 이 샌드위치 속으로 무얼 넣었어요우리가 계속 지금까지 공부한 거?

 연합의 교리, 영단 번에 드려진 그리스도 예수의 제사,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신부 이야기. 요 세 개를 넣어 놨단 말에요

그리고는 이제 16절부터 순종의 이야기, 우리가 이제 다음 주에 공부할 텐데 그 이야기를 펼쳐낸단 말에요

그렇게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으로써 법을 행해야 하는 자로 사는 게 아니라 

그 진리를 마음으로 갖고 마음에, 심비에 새긴다. 그러잖아요. 마음으로 갖고 그 진리로 존재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율법, 성경을 통해서 그 율법의 진의를 깨달아 알아 

그 율법을 진리로 갖게 되면, 다른 말로 모든 것을 진리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면 그 상태를 순종이라 그래요

내가 뭘 시키는 걸 열심히 행하는 걸 순종이라고 하지 않고 그건 억지로 하는 거예요

무서워서. 그걸 순종이라고 하지 않아요. 성경은요.

 그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서 모든 걸 그렇게 진리로 깨달아 알게 되면 그 상태를 순종이라 그래요

, 다 그 말이네? 이렇게. 여기도 그 말이고, 이것도 그 말이네? 이것도 그 말이네

그게 내가 진리가 된 상태거든요. 그 상태. 그걸 순종이라 그래요.


사무엘상 15 25절 보세요.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율법이죠. 이게) 그 목소리 순종하는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이다


번제와 다른 제사, 그리고 목소리 순종하는 것. 이게 이렇게 대조되고 있습니다

번제와 다른 제사는 뭐예요

하나님이 주신 말씀, 율법을 행위로 풀어 낸 거죠? 공식으로 본 거 아녜요. 그거를. 파라독스, 껍데기만 본 거잖아요

, 그러니까 한 거란 말이죠

그럼 목소리 순종은 뭐냔 말에요. 순종, 목소리에 순종. 이게샤마 콜이거든요.

 콜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배웠죠? 파자하면 부수고 다시 세우다. 가르치다. 교훈하다.’라멕이게 콜이에요

라멕‘은 원래 소치는  지팡이에요.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몰아가신다 할 때 그게 가르치다 교훈하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순종은 

부수고 다시 세우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잘 듣고 배우는 거란 말에요

그걸 순종이라 그래요.’샤마듣다‘, 이니까. 순종하다. 듣다

러니까 하나님은 역설 속에 담아 두신 진리를 제사로 행함으로 망치지 말고 

듣고 깨달아 그 안에 거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라니까요. 그 낫다는 Better 아니라 그랬어요

이게 더 나아, 이게 better야가 아니라 그건 아니야, 이거야. 라는 뜻이란 말에요


오늘 본문을 조금 이해하기 쉽게 의역을 하면 이러합니다.

‘법 아래에서 행함의 짐을 지고 수고하고 고단한 삶을 살던 자들이 거저 은혜의 나라로 옮겨졌다

그들이 더 이상 어떻게 죄와 관계된 자라고 판단을 받겠느냐?’ 이 말이에요

더 이상 어떻게 죄를 짓니? 이젠 죄 못 져

그러니까 죄 안 짓도록 노력해 이 말이 아니라니까요이젠 그 죄와 관계없는 나라로 들어갔다. 그 나라에서 행하는 모든 건 다 선이에요.

 은혜의 나라에서 하는 건

그런데 너희들이 어떻게 죄와 관계가 있겠니? 이 말이란 말에요

은혜의 나라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선이에요

그래서 그 나라 안에서는 죄라는 걸 절대 지을 수가 없어요. 걱정 말라는 거예요. 두려워 말라는 거예요.


 죄라는 개념 자체가 과녁을 잘 못 잡는 거잖아요. ‘하마르티아’. ? 과녁을 잘 못 잡는 것

올바른 과녁을 보는 눈이 진리죠

우리 삶의 목적 그럴 때, 눈 목자에 과녁 적 자. 그렇게 쓰는 거잖아요

과녁을 정확히 보는 게 우리의 제대로 된 목적이어야 되는데 이 목적이 달라지면 과녁을 잘 못 잡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뭘 행해서, 뭘 자꾸 행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면 목적이 잘 못 된 거라는 거예요

그걸 죄라 그런단 말이에요. 

그 올바른 과녁을 보는 눈이 그게 진리의 눈이란 말에요

그 진리의 눈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사는 그 은혜의 나라에 어떻게 죄가 들어오느냐는 말이에요.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지금 윤리 도덕적 죄를 이야기 하는 거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런 죄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건 인간들이 정의한 죄이고. 성경에 관한 죄는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여러분 우리가 법적 개념의 그 순종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순종, 순종 합시다.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 법적 개념의 순종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그 순종은 반드시 무얼 전제하죠

두려움이라는 걸 전제해요.

 감사나 찬송, 영광이 전제가 된 자발적 향기로서의 순종이 아니라 그건 존재적 순종이거든요? 그건 그렇게 되는 거예요. 원래는요.

 그게 아니라 무섭고 두려워서 굴복해 버리는, 굴종에 가까운 개념이에요. 우리가 갖고 있는 순종이란 개념이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진리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했을 때 

우리의 예배나 기도의 행위나 종교적 행위가 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던가요

말로는 천국가지 위해서라지만 지옥 보낼까봐 란 말이잖아요? 그게 두려워서예요. 두려워서

괜히 그거 안하면 해코지 당할 거 같고 찝찝하고 그래서 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주일에 놀러 가고 싶어도 집에 앉아 가지고 밥도 안 사먹고 와이프만 힘들게 하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는 하나님을 충분히 두려워 해드리는 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라고 착각들 하고

그분을 아주 충분히 두려워 해드리는 거, 무서워 해드리고 이걸 예배라고 한다니까요. ? 아니에요

그걸 성경이 종의 영을 받은 자라고 그래요


성도는? 아들의 영을 받았다고 그래요. (안 들리는 부분

아들은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건 따로 떨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이런 얘기 하는 거 아니에요. 성경은 그런 얘기 하지 않아요

그런 종류의 아버지를 이야기 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히브리어로 아버지가아브라 그랬죠? 다 비슷해요. 전 세계가. 아바, 아브, 아빠

그 단어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진 단어라 그랬죠?

(히브리어,,잘 안 들림) 그걸 파자 하면 하나님의 집이에요. 하나님의 처소. 하나님의 집

성전을 히브리 사람들은아버지라고 읽는다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성령의 전, 진리의 전이 되어서 하나님의 처소가 되면 하나님은 나를아버지라고 읽으세요

? 그 아버지를 집으로 내가 갖고 있기 때문에 나를아버지라고 이름을 부르신다고요

진리가 뭐에요

아버지잖아요. 내용은. 하나님 아버지를 내용으로 담고 있는 게 진리잖아요

그걸 내가 알아서 깨달아 마음에 새기면아버지라고 부른다니까요

그래서 이아버지가 또 진리를 전하여 아들들을 낳는 거란 말에요. 이렇게 전해줘서

그래서 예수님도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을 자주 하신 거예요

? 그 안에아버지’, ‘진리를 말씀으로 담고 왔잖아요

그래서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아버지는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씨를 가진 존재예요

래서 아버지들은 아들을 낳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게 돼요

그래서 진리를 담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늘 아버지라고 부르셨어요

딱 한 번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만 하나님, 이라고 불렀어요. ? 죄인의 대표로 죽은 거니까

그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실 때 아버지에요. 그리고 그 아버지와 나는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내 밖에 있으면? 하나님이 돼요. 그 하나님은 나를 심판하는 하나님이라니까요

그래서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한 거예요. 그 전에는 아빠, 아빠라고 불렀다니까요.

 아바, 아버지가 아빠, 즉 아버지 이런 거예요. 아바 아버지


노파심에서 말씀 드리지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개념은 진짜그분이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게 아니라 

그분을설명하는 진리가 내 안에 있음을 가리키는 거예요.

 어떻게 여러분그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아니, ‘그 분이라고도 이야기 할 수 없어요. ‘그 하나님. 우리가

그런데그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갖고 뭐 나를,,,그런 개념이 아니란 말입니다.

 ‘ 그 하나님’을 설명하는 바로 그 진리가 내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그 죄의 내용이 뭐겠어요? ( 안 들리는 부분

진리를 마음에 담고 그 진리적 존재가 된 것이 순종이라고 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불순종의 죄가 뭐라는 거죠

진리의 그 표피, 껍데기만을 공식처럼 보고 그 공식에 맞춰서 두렵고 무서운 마음으로 충분히 하나님을 두려워 해드리는 거

다른 말로 율법의 무거운 짐을 스스로 지고 하나님을 폭군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죄라 그래요.

 내가 그분을 두려워한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천국에 안 들여보내주면 어떻게 하지

나를 지옥에 넣으면 어떻게 하지?

 나에게 무슨 해를 끼치면 어떻게 하지? 이게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천국에 가서 그분을 만나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그냥 내가 원하는 시설만 잘 갖춰 놓은 곳에다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를 넣어만 주세요

그리고 당신은 없어져 주세요.ㅎㅎ 무서우니까요.  

그런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섬기는 걸 죄라 그래요

율법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 그 진리를 율법으로 붙들어 짝을 삼는 거, 가짜 남편. 요걸 죄라 그래요.

 그 속의 진리를 깨달아 진리를 짝으로 삼는 걸 의라 그래요

그래서 항상 짝이 있어요. 낮 밤, 빛 어둠, 신랑 신부. 이렇게 다 짝을 주죠? 하나님이

그런데 여러분 보세요. 땅은 있는데 하늘은 어디 있어요

하늘 있어요? 저 파란 하늘 저거 하늘인가요? 로켓트 타고 한 번 올라가 볼까요

거기는 하늘 없어요. 검죠. 그냥. 파랗게 보이지만 올라가면 검다니까요

그래서 진리를 아는 이들이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루 황이라고 한 거예요.

 하늘은 검고 땅은 황색이다.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알았다니까요. 그분들이. 하늘이 없다는 걸

그러면? 그 하늘은 어디에 있다는 거예요? 짝은 분명히 있어야 되니까

진짜 그 나라가 존재한다는 거예요. 너희 눈에 안 보이게. 그래서 천국은 있다니까요. 반드시.


그래서 이 세상에는 반드시 진리와 비진리라 나누어져 있어야 돼요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비 진리를 그 가까이에, 그들 가까이에 두시는 거예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비 진리는 다른 게 아니에요

진리를 담은 그 그릇. 나타난 모습만을 보고 거기에 멈춰 버리는 걸 묶여 버리는 걸 비 진리라 그래요. 

성전에다가 진리를 담아서 아담들에게 줬더니 어떤 이들은 그 성전, 호 코스모스를 통해서 진리에 이르는데 

어떤 이들은 그 성전만 죽어라고 섬기다가 멸망의 나라로 떨어져요


율법에다가 진리를 담아 줬더니 어떤 이들은 그 율법을 통하여 성경을 통하여 진리에 도달하는데

 어떤 이들은 그 율법에 묶여 가지고 평생 수고만 하다가 지옥 가요

희생 제사에다가 진리를 담아서 사람들에게 줬더니 평생 희생 제사만 지내다가 불 못으로 떨어져요

그런데 인간의 눈과 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눈과 새 귀를 주신다고 하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진리에요. 그게 성령이에요

성령이 오시면 예수께서 이 땅에서 가르치신 것을 가르친다. 그러죠? 그걸 예수님이 뭐라 그래요

그가 내 것을 가지고 가르치겠다. 그래요. 예수님이 가르치신 그게 뭐였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그분 입에서 진리가 나왔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근거로 하여 하나님을 죽이더라니 까요

그런데 성령이 와서 내 것으로 가르친대요. 그럼 똑같은 그걸로 가르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때는 살아난다고요. 어떻게? 눈과 귀가 되어서 오신단 말에요

그러니 여러분은 그 십자가 이전의 그 예수를 믿으면 안 된다니까요

진리가 풀어주는 그 내용을 믿으셔야 돼요

다른 이들은 그 예수라는 그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서 하나님을 살해한 살인자가 되는데 

어떤 이들은 그 예수라는 껍질을 부수고 그 안에 그리스도 예수라는 그 진리에 도달하더라는 거예요.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제자들에게 주실 때, 불특정 다수에게는 비유만 주시죠

그리고는 어떤 무리에게는 그걸 설명해줘요

여러분이 개역성경만 보면 그 무리가 그 무리인 거 같지만 원어 성경으로 보면 다른 무리에요


마태복음 13 1절 보세요.

13 : 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몰려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2 절을 보시면 큰 무리와 온 무리가 나오죠? 그 두 단어는 똑같이오클로스에요

그런데 앞의 큰 무리는 복순데 뒤의 그 무리는 단수에요. 무슨 단수인무리가 있어요? 똑같은 단어라니까요

그러니까 헬라어를 모국어로 갖고 있는 이들은 이런 게 나오면 고친다니까요. 서기관들이 그 일을 한 거 아녜요

아무리 봐도 이건 어법에 안 맞아. 그렇게 해서 고치면 끝나는 거예요. 진의가 바뀌어 버리는 거란 말에요

그 오클로스가 복수로 쓰이면 불특정 다수의 이 무리가 맞아요. 맞아요. 무리

그런데 그 앞에 관사가 붙거나 그게 단수로 쓰이면 열두 제자를 가리켜요. 아들이 되는 열둘. 그게 오클로스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상의 그 허다한 무리, 그 무리를 찾아보세요. 다 단수에요. 아들이 된 열둘.

 하나님의 아들로 완성이 되는 상징적 열두 제자, 그것이 호 오클로스에요. 물론 그 제자의 상태가 온전한 상태는 아니에요

그 제자가 진리를 받아, 성령을 받아 아들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살펴드리겠지만 그 제자들은 항상 예수님을 방해해요. 아들이 되어야 된단 말에요

그런데 제자훈련이 웬 말이에요. 거기서 머물면 끝나는 거라니까요

아들이 되어야 되는데 제자들을 키우겠다고 꼭 그렇게 하면 또 다 부흥을 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열두 제자는 열두 지파를 완성하는 개념이고 

열두 지파는 야곱, 즉 이스라엘을 이루는 그 열두 아들의 확장이잖아요? 그래서 열둘은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의 숫자란 말에요

그래서 누가복음인가요거기 보면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그러잖아요

제자는 배워서 그 선생, 아버지와 같은 자가 되는 거예요. 그걸 아들이라고 한다니까요

그래서 그 유다가 예수를 팔아서 죽이고 그 열둘에서 빠져나가자 즉시 열둘이 채워지는 그림이 성경에 등장하는 거예요

유다는요 멸망 받을 비 진리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세상에서 자신의 실체를 폭로당하고 죽어서 열둘을 채우는 마지막 아들이 되는 

그 성도의 그림자도 아울러 담고 있어요. 

래서 유다지파에서 예수님이 오시는 거예요. 그리고 북이스라엘이 망해도 남 유다는 남겨뒀다니까요

진리든 비 진리든 이 역사 속에서 다 죽어요

그런데 한쪽은 하나님이 죽이셔서 죽는 자들이고 다른 한쪽은 스스로 죽겠다고 허벅지를 찔러가면서 애를 쓰다가 진짜 죽는 율법주의자들이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자기 부인, 자기 부인 그러니까 그냥 자기 부인을 해야 돼

그러면서 두 주먹 불끈 쥐고 허벅지 찔러가며자기 부인요게 율법주의라고 해요


너는 이미 십자가에서 그렇게 부인된 거야, 라는 존재적 개념으로 자기 부인을 이해하고 계셔야지

또 여러분이 이 땅에서 그래, 난 죽어야 돼, 죽어야 돼. 빨리 죽자

오늘도 남편에 대해서 죽고, 아이에 대해서 죽고 그렇게 스스로 죽은 게 유다라니까요. 고게 자살이에요. 여러분

그렇게 내가 죽는 게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이 왜 나를 그 죽음이라는 그 존재를 통과하여 이렇게 살릴 수밖에 없었던가를 아는 걸 죽음이라 그래요

죽어야 돼, 죽어야 돼. 이건 율법주의라니까요.

아무튼 열둘에서 하나가 빠지자 황급히 다른 하나가 채워져요. 맛디아죠

한 번 딱 나오고 안 나오는 사람. 그 마트티아라는 그 말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맛디아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셔서 아들로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그 선물

그리스도 예수를 모형 하는 인물이에요

열두 아들 중 그 마지막 아들. 오른 손의 아들. 완성된 아들. 벤야민을 모형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선물 맛디야가 열둘로 딱 채워진단 말이죠

그래서 제자들이 그를 세울 때 제비를 뽑아 세우는 거예요. 투표하지 않아요

투표라는 건 뭐죠? 사람들의 뜻을 모으는 거죠? , 네 뜻은 어때? 네 뜻은 어때? 모아서 투표해서 사람들의 뜻을 모아 세우는 걸 투표라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안 뽑아요. 교회에서 사람들의 뜻을 모아 투표해서 장로 세우고 집사 세우고 하는 거는 엄밀히 말해 잘 못된 거예요.

 사람들의 뜻을 모아봐야 쓰레기 밖에 안 나와요.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해야 되겠지만 

제비라는 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걸 인간들이 제비 뽑아 확인하는 게 제비예요

그래서 제비 뽑아 맛디아를 세우는 거예요

사도들이 자기들의 뜻을 모아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누구냐? 성경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 누구야? 이렇게 해서 맛디아 안 뽑았다니까요.

 맛디아는 그걸 설명하고 이제 바로 사라져요.


그런데 그걸 나타난 그림으로만 보면 어때요? 사람이 뽑아 세운 거잖아요

그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맛디야는 사라지고 하나님이 뽑아 세운 사도 바울이 그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맛디야는 하나도 안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그 자리를 채운 사도 바울이 그 일을 쭉 해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 받은 자들을 상징하는 큰 무리는 열둘로 줄어들고 그 열둘은 다시 한 아들로 축약이 되어야 되는 거란 말에요

그러니까 큰 무리도 아니고 열두 제자도 아니고 한 아들이 되어야 성도에요

예수를 머리로 한 그 아들. 그래서 성도는 단수이며 복수에요

그래서 성경에 교회를 상징하는 어떤 단어가 나오면 항상 복수동사도 나오고 단수동사도 나오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잘 보세요. 큰 무리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그 온 무리오클로스에게는 따로 그들을 불러 비유를 설명해주세요. 예수의 말은 역설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데 그걸 풀어서 해석해주는 진리의 영, 성령의 말은 그 역설의 공식을 제거해 버리고 그 진의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단 말에요

그걸 그냥 문자로 받으면 죽어요. 예수의 말을 전부 문자로 받으면 죽는다니까요

그래서 그 설명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는 어떤 이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메시아가 되는 거예요. 모퉁이 돌이 되는 거란 말에요.

 

사도 바울이 그 얘기하잖아요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시기도 전에 설익은 제자들을 풀어서 복음을 전하라고 그러죠

그 때 그들이 무슨 얘기를 했을까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기들도 예수님 버리고 다 도망간 놈들이 나가서 무슨 얘기 했을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왔다! 그리고 뭐 했어요?

 기적을 일으켰어요. 병 고쳐주고 귀신 쫓아 내주고 그리고는 설명을 할 수가 없었어요. 자기들도 몰랐으니까

자기들이 기적을 일으켜 놓고 스스로 대견해 했다니까요. 아니, 귀신들이 진짜 나가던데요? 이렇게

그게 뭐였어요? 진짜 병, 사망이라는 병에 걸려 죽어야 할 우리를 메시아가 와서 살려낸다는 진리를 담고 있었던 행위인데 

이들이 그걸 자기들도 모르고 그렇게 행하며 다녔다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보내지도 않았는데 어떤 애 귀신 쫓아 주다가 개망신 당한 거 아니에요. 안 나가서

왜 안 나가죠? 얼마 전에는 나갔는데?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자기들이 천국이 왔다고 회래하라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니까요

그걸 보고 오, 저거 봐! 기적이네. 표적이네! 하고 쫓아가면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이 가서 복음 전하고 와

이거는 그걸 듣고 살아날 수 있는 어떤 사람이 있기를 기대하고 보낸 게 아니란 말에요.

 우리에게 그렇게 그걸 껍데기로 보고, 공식으로 보고 그냥 넘어오는 이들은 죽는다, 를 가르쳐 준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지에요. 회개해라, 예수 믿어라 구원 받아라, 다 좋아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엉뚱하게 설명해요. 제자들이 전한 그 복음을 전파복음이라 그래요

그리고 택함 받은 자들은 그 전파한 말이 무엇인지를 진리의 성령으로 이해하게 된다니까요. 그게 택함을 받은 거예요

그런 자가 그런데 거의 없다 그런단 말입니다. 그걸 이해하는 자들이.

 오늘날도 그렇게 회개 이야기도 하고 예수 믿으라고도 이야기 하고 또 기적까지 행해요

또 어떤 사람들은. 병도 막 고쳐 줘. 은 이빨을 금이빨로 바꿔주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뭔지를 설명할 능력이 없어요

그 능력이 뭐라 그랬죠? ‘뒤나미스라 그랬죠? ‘엑소시아는 그 말씀을 담을 수 있는 권세. 그리고 그걸 흘려낼 수 있는 권세를뒤나미스그래요.

 그러니까 말은 그 말이 담고 있는 진리로 설명이 되지 못하면 그냥 허공에 울리는 꽹과리 소리에 불과한 거예요

그런데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거의 그수준으로 봐요. 바울이 그런 거예요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는 거 아냐. 말은 아무나 다 할 수 있어. 그게 진리로, 능력으로 입증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 살아나야 돼요. 내가 나를 용서하는 그 탄성이 실지로 일어나야 된다니까요.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라고요.

아니, 어떤 분들이 여러 분이 와서 어떤 대형교회 목사님이 제 설교를 그대로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 운대요. . 그걸 듣고.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대형교회에서 하도 그래갖고 제가 몇 개 들어봤어요

그런데 인싸이트들을 그대로 베끼기는 했는데 마지막에 꼭 자기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착하게 사세요. 그러니까 열심히 충성봉사 하세요

저는 그걸 그 논리로 그걸 설명하려고 한 게 아닌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 못 듣던 재밌는 얘기를 막 해주니까 

그건 듣고 마지막에 그 적용으로 다 우는 거야. ‘착하게 사세요. 행복하세요.’

 그 분과 제 설교가 내용은 비슷할지 몰라도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좋다 말았어요.

 우리교회도 그렇게 커진다는 말, 커질 수 있단 말이야? 이렇게. 그랬는데 역시 아니더만요.

 

주님께서 큰 무리 중에서 온 무리를 따로 세우셔서 당신의 말을 설명해주신 걸뒤나미스라 그래요

그건 사실 성령께서 하실 일인데 

주님께서 우리교회에게 복과진리를 설명해주시기 위해 그런 장면들을 몇 개 연출해 준 거예요

그렇게 설명해줘도 못 알아들었다니까요. 그렇게 설명해줘도 못 알아들었어요

그건 성경을 역설, 파라독스로만 읽고을 그 내용을 모르면 너희 다 죽어

이거를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이야기하는 그 진리를 알아야 돼

이걸 설명해주기 위해 이런 그림을 몇 개를 하나님이 이렇게 연출로 보여준 거예요.

 마태복음 13 10절부터 16절 보세요.

13 :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 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는 못하리로다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그러나 너희 눈을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복이 뭐예요? 들을 수 있는 것그 진의를 볼 수 있는 그게 복이라니까요

둘 다 말씀을 받아요

그런데 각자 자기들의 눈과 귀로 해석하고 이해하여 자기 것으로 담아요

한 쪽은 은혜로 담고 한 쪽은 율법으로 담아요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율법으로 담은 자들은 어떻게 이걸 담을까요

그래 열심히 마음 밭을 갈아엎어서 좋은 밭이 되자. 그리고 가요. 그러죠?

거기서  열매가 육십 배, 백 배 맺는다. 그랬으니까. 그래, 좋은 밭이 되자


은혜로 담은 자들은

우린 전부 가망 없는 밭인데 광야 밭인데 거기에 좋은 씨가 심겨져서 우리를 거저 옥토, 열매 맺는 옥토로 삼아 주시는 거구나

좋은 씨가 심겨져서

이렇게 이해를 하게 된단 말에요. 완전히 다르단 말에요

이게 대척점에 서 있는 거라니까요. 이거는요. 조금 다른 게 아니라.


그러면 전자는 옥토가 되기 위해 열심히 수고를 하게 되겠죠그 시점부터. 옥토가 되어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명령하신 그 힘 센 하나님의 비위를 건드리면 안 되잖아요그러니까 빨리 옥토가 되어야지 이제. 그걸 두려움이라고 한다니까요


그러나 후자의 무리는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현실을 누리며 그분을 찬송하며 그 자유의 진리를 전파하는 자로 살아요. 

그리고 그 진리를 전파하는 데에 해가 되는 것들을 그 법위에 서서 안 하면서 살 수 있는 거라니까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데 요기에만 고기에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 성화

요기에만 묶여가지고 어떻게 하면 인간다워지고 어떻게 하면 신자다워 지는가

요것만 보고 앉아있어요. 사람들은 그러한 두려움을 섬김이라고 착각을 하고 그러한 두려움에 의해 나오는 행위를 성화라고 이름을 붙여요

진짜 Sanctification 은 그거 아니라니까요. 여러분. 심지어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도 생각해요

누가복음 5 17절 보세요.

5: 17- 26

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하더라 18-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내리니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나

22-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23-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나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 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25-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26-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두 무리가 나와요

하나는 침상에서 일어난 자, 하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란 자

여러분이 잘 아는 중풍병자 이야기에요. 중풍병자라고 번역이 된 그 파라로라는 단어는

 옆구리가 터지다, 김밥 옆구리 터질 때, 새 언약을, 새 술을 헌 부대, 율법에 넣으면 그 부대가 터지죠? 그때 쓰는 단어에요. 파라로그

그렇게 터져버리면, 안에서 터지면 밖으로 마비가 되는 거. 그걸 중풍 병이라고 하는 거예요. 혈관이 터지면 마비가 되는 거

율법에 의해 옆이 터져버려서 마비가 된 이 세상 모든 죽은 자들의 상징이에요. 그 중풍병자가

그래서 그 에피소드의 관객이 누구죠?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라고요. 율법을 해석하여 가르치는 사람들이에요

바리새는? 파라스는? 분리하다, 부수다. 하나님의 진리, 하나인 진리를 율법으로 막 부수어 내는 게 바리새예요. ‘파리스’. 

그러니까 둘 다 율법주의의 상징이죠? 교법사들, 바리새인들. 그들을 중풍병자 안에 넣어버린 거예요

그리고 그 율법주의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고 계신 거예요

그래서 거기의 관객이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라고요.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

여기에는 나오지 않지만 마가복음에 보면 그 중풍병자를 넷이 운반했다 그러죠.? 네 사람 아니에요. 넷이에요. 거기 보면

넷 아래에 운반되어졌다. 사 복음, 사 계명, 네 조각 겉옷. 네 줄기 강. 다 넷이잖아요

넷이 그 죽은 자, 율법으로 죽은 자를 어디로 옮기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죽은 자, 중풍병자가 침상에 누워있었다 그래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침상은 옛 성전을 가리키는 거예요. 간음이 일어나는 곳, 죽음이 있는 곳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침상을, 그 단어를 관, 사람이 죽으면 넣는 것 있잖아요? 관이라는 의미로도 써요.

 장례문화가 지금 발달해서 그렇지 옛날에는 판에다가 침상처럼 판에다가 눕혀서 무덤으로 들고 갔단 말에요

그래서 침상을 관이라고도 이야기 한단 말이죠. 죽어 있는 자가 누워있는 곳이에요. 거기서 누워있어요

율법주의자들이. 죽어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침상이라는 단어는 식탁이라는 말과 또 혼용해서 써요

엉뚱한, 식량이 아닌 게 주어지는 가짜 식탁. 그게 성전이란 말에요

시편 36 4절 보세요.

36 : 4- 저는 그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불쌍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 도다.


미가 2 : 1-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 침상은 이렇게 이스라엘이 죄를 짓는 곳이에요. 옛 성전입니다. 음행하는 곳,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 것. 그게 누워있는 거예요

새 언약을 담지 못해서 옆구리가 터져서 마비되어 있는 거. 죽어 있는 거죠. 중풍 병에

그런데 죽어야 할 자를 넷이 운반해서 그리스도께 옮기는데 거기에 쓰인 단어가제테오예요

제태오는 감추어진 것을 밝혀내는 거예요. 구하라, 찾으라, 에 쓰인 단어란 말에요. 그게. 그러니까 

그 넷이 그 죽어야 할 자가 가야할 곳. 감추어진 어떤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감추어진 것을 찾아가는 거예요. 이제. 넷이요

그러니까 이 그림은  복음이라는 그 넷이  죽은 자를 침상에서 들고 나와서 감추어져 있는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그림이란 말에요

그런데 그 앞길을 무엇이 막고 있어요? 무리가 막고 있죠?

사람들이 많아서 못 들어갔다는 말이 아니에요. 거기서 쓰는 단어가호 오클레스예요.

 단수에요. 누구? 제자들이에요. 아직 진리가 되지 못한 진리를 모르는 제자들.

그러니까 진리를 전하는데 방해가 되는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아니라니까요. 아는 척 하는 얼치기들이 꼭 방해가 돼요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올 때도 제자들이 막고요. 소자가 오는데 소자도 막고. 이방 여인이 오면 제자들이 또 막아요. 다 쫓아버려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러죠. 쫓지 마! 막지 마! 제자들이 다 막아요. 그게 무리예요


자격 있는 사람만 와! 주님 저런 더러운 것이 만지러 오는데 막을까요

그건 뭐예요? 율법주의잖아요. , 깨끗한 사람, 자격 있는 자만 와! 우리 스승을 독대할 수 있는 자격 있는 자만 와

그게 뭐예요? 율법주의란 말에요. 그게그들이 막았어요. 복음을 막는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제자가 아들이 되지 않으면 항상 그 상태에서 머물면 요게 문제에요

그렇게 예수께로 가는 길을 얼치기 제자들이 막고, 그 무리가 막고 또 뭐가 막아요? 지붕이 막아요.

 마태복음에는 기와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그런 단어는 없어요

팔레스타인에 무슨 기와가 있어요? 슬라브지. 기와 없단 말에요. 지붕이에요. 지붕

그런데 히브리사람들은 그 지붕도 성전을 가리키는데 써요. 스바냐서 1 4절 보세요.

1 : 4- 

내가 유다가 모든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손을 펴서 바알에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나일 강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


여기코행카마르라는 단어가 나오죠? 그마림이라고 써 놨는데카마르에요. 둘 다 제사장이란 뜻이에요

그리고 이 그마림, 이 카마르는 오히려 굉장히 금욕적이며 율법적인 제사장을 가리켜요. 둘 다 제사장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죄를 짓는다. 그래요. 우상을 섬기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두려워서 자기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섬겨드리겠다고 금욕과 율법지킴에 애를 쓰는 자들을 우상을 섬기는 자,

 이방인의 제사장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이 카마르라는 단어가 그 말이거든요. 이방인의 제사장이에요

그런데 어떤 제사장이냐 하면 금욕과 율법지킴에 애쓰는 제사장이란 뜻이란 말에요

그들이 어디에서 우상을 섬겨요? 지붕에서. 제사장들이 있는 곳이 어디였는데? 성전이었단 말에요. 그런데 거기를 지붕이라 그래요.

 그러면 그 성전이 그리스도께 가는 길을 막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되죠? 뜯어야죠. 뭐가

넷이. 부숴버리는 거예요. 뜯어 버리는 거예요

히브리사람들의 지붕을 뜯어 버리면 그건 천장이 홀랑 날아가 버리는 거예요. 다 부서지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중풍병자를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내려 버리죠

그 때 예수님이 뭐라 그러죠

성경에는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고, 이렇게 이제 그런 뉘앙스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그 말이 아니라 이것이 믿음이다.” 그래요

뭐가 믿음이냐 하면 그렇게 그러한 이 모양들. 이거 다, 이 전체가요걸 믿음이라그래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단어가 피스토스, 피스티스 이렇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오미크로 씨그마가 헬라어 뒤에 붙으면 항상 존재, 믿음이 된 자를 가르키거든요. 그게 피스토스예요. 

하나님은 미쁘시다. 그랬을 때 그 단어가 피스토스에요

하나님은 믿음이시다. 하나님의 이름이믿음이에요. 

그러니까 믿음은 뭐냐 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차서로 이렇게 설명해준, 나타난 것으로 

그걸 아! 추론하는 걸 믿음이라 그러잖아요. 

그래서 믿음도 나중에는 없어져요. 실체가 오면 은

그래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믿음도 사라지고 소망도 사라지고 사랑만 남는다고요. 아가페, 하나님만 남는다고 이야기 하는 거거든요.

이게믿음이야! 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게믿음이야. 그래놓고 네 침상을 가지고 떠나라, 그래요.

 그 말은 그가 붙어 있던 그가 속해 있던 그걸 그와 떼어 내어 살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건 이제 네 것 아니니까 너랑 떨어졌잖아

일어나서 갖고 가! 그거 다 버려! 그렇게 침상에 묶여 있던 그 상황

이제 그게 네 것이 아니니까 그거 들고 떠나라는 거예요

? 믿음이 이렇게 그림으로 제시가 됐잖아요

그러니까 너는 이제 거기에 안 묶일 수 있잖아. 떠나! 그런데 그걸 본 자들이 정신이 나가요.

5 : 26

모든 사람이 놀라 (여기서는 진짜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라는 뜻이에요 이게),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 하니라

이거 굉장히 기특한 것처럼 보이잖아요? 이게 그런 말이 아니라니까요. 여기놀라다라고 번역이 된엑스타시스는 엑스타시에요.

 엑스타시스. 놀라서, 깜짝 놀라서. 정상적인 정신상태와 냉정을 잃는 것을 엑스타시스 라고 해요

그래서 엑스타시 같은 마약 먹으면 정신을 잃는 거예요. 그게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의식이 사라지는 거라니까요

종교, 그러니까 엉터리로 열심 있는 종교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런 엑시타시를 느껴요. 그래서 이상한 행동들이 막 터져 나오는 거예요

그게 엑시타시에요. 마약 엑스타시 같은 거 먹으면 그런 이상한 행동들이 나오죠

마구 소리 지르고 그냥, 웃기도 하고 깔깔깔 웃기도 하고. 엑시타시. 그 사람들은 그걸 좋아한다니까요. 쾌락이에요

인간들 수준에서 최고의 쾌락은 엑시타시 라고 하니까요

그렇게 막 소리 지르고 울고 그래야 의심이 사라진다고. 아니 그건 힘이 빠지고 의식이 사라져서 제 정신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그 사람들이 놀랬다라고 쓰고 있어요. 정신이 나가버렸어요. 정신이 나간 그런 놀라움을 이야기 하는 거거든요

잘 보세요. 나타난 현상만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 담긴 복음을 읽어내지 못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된다고요? 일단? 정신이 나가요. 놀랍니다. 

기적이 있는 현장에서 사람들이 정신이 나가는 이유가, 그리고 그걸 좋아하고 나는 무얼 봤어! 라고 하는 게 이게 엑시타시, 정신이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어떻게 한다. 그래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래요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고 하니까 뭐 야~ 하나님 찬양! 이랬다는 말로 자꾸들 이해를 하는데

독사조라는 단어는 그게 아니라 그랬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그것이 이렇게 나타난 걸 그걸독사’, 영광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렇게 껍데기만 보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병이 나은 그것이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보더라는 거예요. 이것독사조라고 하는 거예요.

, 이게 진리야! 이게 우리가 원하는 거지? 라고 봤다는 거예요. 정신이 나가서. 깜짝 놀라서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서 왕 삼으려고 하는 이들이 다 뭐예요? 그거 보고 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뭐라 그러죠? 너희들이 표적을 보고 온 거야

그 표적의 진짜 내용을 보고 온 게 아니라 내가 준 떡이 맛있어서, 그거 원해서 온 거 아냐? 그러잖아요. 그건 껍데기 아니니? 껍데기

그들은 예수님에게 그런 방식으로 영광을 돌렸다니까요

그런데 그들이 뭐라 그러느냐 하면 야, 우리가 오늘 기이한 일을 봤다, 그게 파라독사스, 파라독스. 역설의 껍데기만 봤다는 거예요.

 , 우리가 오늘 파라독스를 봤네! 이러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렇게 파라독스의 진의를 알지 못하고 껍데기만 보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요

그리고 하나님을 최선을 다해 두려워해 드리는 걸 예배라고 해요.

 그리고 그걸 순종이라 그러고 그걸 섬김이라 그래요. 그건 내 밖의 하나님이에요. 여러분

그럼 그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라니까요.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교법사들의 이런 말을 주님이 호되게 야단을 치시는 거예요. 20절 보세요.

5 : 20-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맞는 말 아네요바리새인들과 교법사들이 이렇게 얘기했다니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걸 뭐라 그러느냐 하면 악한 생각이라 그래요.그게 악한 생각이라고

마태복음 9 3절 보세요.

9 :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조금 아까 봤죠? 그게 뭐예요? 오직 하나님만 죄를 사하는 거야)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그래요, 예수님이.

 그러면 바리새인들의 그것이 악한 생각이라는 말이죠

그럼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지 누가 사해요 또? 오늘날 모든 교회가 이렇게 믿고 있잖아요.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니까 여러분 이렇게 오기 싫은데, 신사의 품격 이거 봐야 되는데 여기 와가지고 지금 억지로 이러고 있는 거 아니에요? ㅎㅎ 대부분 아니지만. 꼭 이렇게 얘기를 해줘야지. 그렇게 작은 걸로 삐져가지고 말에요. , 골치 아파 죽겠어요. 아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요. 23절 보세요.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여기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이렇게 해 놨는데 이거는 어떤 것이 선한 수고냐? 이런 뜻이에요

선한 수고. 어떤 것이 선한 수고겠어

그래 놓고 죄를 사하는 걸 이야기 하고 일어나 걸어가라 라고 이야기를 해요.

거기서 일어나다, ‘에게이오라는 그 단어는 존재의 어떤 기능들을 막 수집해서 존재로 세우는 걸 이야기해요

에스겔서 37장의 그 마른 뼈들이 덜그럭 덜그럭 해서 이렇게 모아져서 소집이 되어 일어서죠

그게 죄 사해지는 거예요. 그게

둘은 같은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선한 수고야, 내가 하는 선한 수고가 이거야.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바로 그거 하는 거야

그래서 얘가 일어나는 거야. 그 이야기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죄는 하나님만 사하는 게 아니라 인자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래요. 

여기서 인자는 물론 일차적으로 예수님이죠. 그 사람의 그 아들이니까. ‘하 아담’, ‘하 벤’. 

그 인자의 족보를 완성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였잖아요

누가복음에서 찾아 봤잖아요. 3장에서. 인자에요.

런데 그 인자의 족보는 요한복음 1장으로 이어져서 말씀, 육신인 우리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가면 우리 이름을 뭐라 그래요? 말씀이라 그러잖아요. 거기서 말씀, 육신. 호로고스, 사륵스라 그러는데 

사륵스를 보통 사람들이 다 그냥이렇게 번역을 하는데 그건 영이라는 단어에요.

그런데 그게 그 옳은 말, 진리의 말과 상관없는 것이 될 때 나쁜 영, 그래서이라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말씀, 육신은 그 말씀이 된 육신은 좋은, 진리가 된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들, 그들을 인자의 라인으로 본단 말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낳아진 자가 되는 거예요

거기서 그낳아진 자그건 단수인데 동사는 또 복수로 쓰이고 그러잖아요

교회라는 하나, 예수를 머리로 한 하나, 그러나 많은 자들. 그래서 성경에서 그런 걸 포도송이로 비유를 하는 거예요

포도가 그렇잖아요. 많은 게 모여서 한 송이니까. 그래서 포도원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란 말이죠.

 그러니까 그 인자, 그 인자가 죄를 사한다. 그래요.

 예수님이 진리로 오셨어요.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죄를 사해요

그리스도의 영으로 오셔서 자기가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침으로 죄를 사하는 거예요

그러죠? 그래서 그걸 깨달아야 아, 십자가가 그거 이었구나 하고 

그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게 되는 거란 말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셨어! 하고 파라독스의 껍데기만 알아요. 그런데, 아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요 우리랑?

 내 밖의 하나님이에요 그거는

그래, 하나님이 내 죄를 사하셨대! 그런데 뭐요? 어떻게 사하 시었느냐고요

그 내용을 알아야 돼요. 그래야 아, 그렇게 사해진 거구나,

나는 그렇게 해서 생명을 얻은 거구나. 라고 알아야 그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무조건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셔, 그래서 두려워서 그 하나님이 두려워서 열심히 율법 지킨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님이 그러는 거예요. ‘고게 악한 생각이야’ 

우리가 죄를 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말이 아니에요. 곡해 좀 하지 마세요. 제발. 다 이해할 수 있을 줄 알고 

이렇게 그냥 행간을 이해하라고 던지면 꼭 그걸로 트집 잡는 사람들이 있어.

 사도 바울이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 받은 게 율법에서 건져진 거라니까 

그럼 창세전 예정을 부정하시는 건가요? 이렇게 이 메일이 오고 그러더라고요. 아휴 참 내! 골치 아파. 얼치기들이 위험하다니까요.

 진리를 막는다니까요. 제자 수준에 있는 자들이.

여러분, 죄를 사해주는 내 밖의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수고로이 행하는 모든 걸 악하다고 그래요. 하나님이

그런데 대부분 그 수준으로 신앙생활들을 하고 있단 말에요.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새겨져서 내가 나를 용서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되겠죠

그래야 그 십자가가 내 십자가인 거잖아요. 그래? 내가 그렇게 용서 받은 거구나. 할렐루야! 해야 그게 나를 용서하는 거예요

그래놓고 여러분, 동네 사람들 들어보소. 내가 이렇게 용서 받았대요. 이거 이해해요? 라고 

그 내용을 설명해주면 그리고 그걸 듣고 창세전에 택함을 받은 어떤 이가 또 귀가 열려 일어나면 

내가 그걸 용서했다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거기까지 안 가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야

그 분만 우리 죄를 용서하셔 하고 그 분을 섬기는데 만 전념하고 있으면 그게 악한 생각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중풍병자를 살린 것만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게 좋아서 엑스타시 하는 거야, 놀라는 거야, 좋아, 쾌락이야 그거요.

 인간들이 종교행위를 왜 하는지 아세요? 쾌락이 있어요. 거기도요. 그런데 항상 거기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요.

 그 파라독스의 껍데기만 보여요. 파라독사스. 기이한데! 기이한데.

율법에 묶여 있는 인간들은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 무거운 율법적 수고를 놓을 수가 없어요

그거라도 하고 있어야 조금 안심이 되거든요

우리는 진리를, 말씀을, 복음을 관념으로만 갖고 있으면 안 돼요

묵시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포착이 되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감히 그 분이라고도 말 할 수 없는하나님, 그건 우리가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수준에 맞는 말씀, 진리를 주신 거예요. 그게 여호와 엘로힘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말씀으로 오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도하나님이 아니란 말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인정해주시기로 하신 거예요

너희들이 그걸, 그 내가 알아 라고 한 그 수준만큼만 알면 내가 온전하다고 인정해줄게

그래서 산상수훈의 마지막에 그렇게 나오는 거예요. 너희도, 하나님처럼, 내가 온전한 것처럼 너희도 온전 하라, 는 거는

 하나님처럼 완전하게 되라는 말이 아니라 

그 하나님이, 사랑이 뭔지 너희들이 깨달아 알아 그걸 전할 수 있을 만큼만 되면 

내가 온전히 라고 인정해 주마, 라는 말이란 말에요. 그것이요

그러니까 그 진리를 내 맘에 담으면 내가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어떻게하나님을 내 안에 담느냐고요?

여기 어디에다 가둬 두냐고요? 성전 안에도 못 담는 그 하나님을

그러니까 그건 우리가 포착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포착할 수 있을 만큼 허락한 그거는

 반드시 깨달아 알아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것으로 진짜 용서가 내 안에서 일어나야 돼요.

 그래서 나를 조금씩 용서해 가는 과정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니까요

전부 그 용서를 못해서 다 상처를 이렇게 갖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완전히 용서가 됐을 때 자유란 말에요. 그것이.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은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거듭나다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그랬잖아요. 거듭나야 돼. 너희는 거듭나야 돼

어머니의 탯 속에 들어가서 다시 나오는 거? 그거 백번 해봐야 거듭나는 거 아니야. 그래요. 그러죠

그런데거듭나다는아노떼니라는 단어가 위로부터 나다는 말이라고 했죠

성경에서 자손을 낳다, 라는 표현을 할 때 부정모혈로 어머니의 자궁에서 낳는 게 하나가 있고,

 말씀으로 낳는 게 있어요. 이걸 위에서 낳는다

그러고 부정모혈로 낳는 걸 아래에서 낳는다

그래요. 그래서 선인들이 어머니의 자궁을 아래 입이라 그래요.

 우리 입을 위의 입이라 그래요.

 그래서 아래 입으로 낳은 이들, 부정모혈로 낳은 이는 반드시 위로 더 낳아야 돼요. 한 번 낳아야 돼요. 이걸거듭남이라는 거예요.

 어디 저기서 낳아 갖고 온 게 아니라.

그래서 예수님이, 그 인자의 완성인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했다 그러는 거예요.

 성령은 뭐라 그랬어요

영은? 푸뉴마, 말씀으로 잉태 되어서 말씀으로 낳는 이가 인자의 완성이니까

 우리도 그 말씀으로 다시 낳아야 되는 거예요. 이거를 위로부터 난다, 거듭난다, 그래요

그래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백 번 나와 봐야 아래잖아요. 그건 거듭남이 아니라니까요. 그걸 옛 성전이라고 했잖아요. 아래

그럼 보세요. 애기가 아래에서 태어나 나자마자 부모가 하는 게 뭐예요

엄마, 아빠, 까꿍, 찌찌, 까까. 뭐 이런 거. 말을 가르친단 말에요. 그걸 교육이라 그러죠

가르쳐서 양육하여 사람 만드는 거예요

모든 건 진리를 담고 있다니까요

아래에서 나면 반드시 처음부터 부모들이 말을 가르쳐요.  

그래서 그 아이 입에서 무슨 말이 한 마디 탁 터져 나왔을 때, , 엄마라 했어? 엄마도 아닌데 하여간 어, 어 이러면 또 엄마래요.

 자기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천재인 거 같잖아요. 모두가. ~ 그러면 아빠라 그랬다 그러고. 그걸 왜 그렇게 좋아하겠어요

말을 하네! 아래에서 난 자가 위의 입으로 말을 하네! 그래서 좋아하는 거예요

그걸 위로 난다, 진리로 낳는다, 성령으로 낳는다, 고 하는 거란 말에요.

렇게 낳으려면 그 진리가 이해가 되어져야지요. 깨달아 져야지요

그리고는 평생 나 하나를 용서하는 그 일에 매진하는 거예요. 그걸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거예요.

거북이는 절대로 아킬레스를 못 이겨요

성경을 파라독스로, 껍데기만 공식으로만 보고 있는 이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진리라는 내용을 아셔야 돼요. 배우셔야 돼요. 이해 하셔야 돼요

절대로 어줍지 않은 율법적 공식으로 성경의 진리를 호도하지 마세요

천국은 분명히 있어요.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루 황. 그러나 진리를 안 이들에게는 그 하늘이 검지 않아요

그걸 진짜 소망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의 삶, 잠깐이면 지나가는 찰나의 인생이에요. 잘 견디시고 잘 참으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설명하시느라 

하나님은 이 인생과 역사와 성경 까지도 이렇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그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을 깨달아 알아 

하나님이 준비하신

 이 땅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어서 그걸 검을 현, 검다고 밖에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곳.

 그곳을 밝히 보여주시고 그걸 소망으로 붙들어 

이 땅을 넉넉히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