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 48 너희가 바로 보물이다 마태복음 6:19~21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38

산상수훈 48 너희가 바로 보물이다




마태복음 6:19~21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우리는 지난주에 땅에다가 그 보물을 쌓는 게 뭔지 그리고 하늘에다 보물을 쌓는 게 무엇인지 자세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땅에다가 그 보물을 쌓는 거, ‘축적한다. 쌓다’ 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데사우리조’(θησαυρίζω/G2343)인데 데사우로스(θησαυρός/G2344)가 ‘보물’이거든요. 그러니까 ‘데사우리조’라는 건 단순히 뭐 ‘쌓다’ ‘축적하다’이런 말이라기보다는 그 ‘보물이 되게 하다’ 이런 뜻이에요. 어떤 것을 계속 가져서 보물이 되게 하다. 그 ‘데사우리조’라는 말은 땅에다가 보물을 이제 ‘데사우리조’ 한다. 라는 말은 자신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 들을 ‘열심히 축적했더니 땅이 되더라’ 이런 말이죠


그리고 ‘하늘에 보물을 축적한다’는 말은 진리라는 보물을 열심히 축적을 해서 하늘이 된다. 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그 진리의 보물을 담은 하늘이 되어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그 하늘 안에 담으면 그게 바로 하늘에 쌓이는 보물이 되는 거고 하늘과 보물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여전히 땅적 존재로서의 그 세계관으로 그 노미조(νομίζω/G3543/법에 따른) 하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게 되면 그 말씀은 이제 율법으로 내 안에, 땅인 내 안에 쌓이게 되고 그것 자체가 땅이 되는 거예요. 그들이 모인 곳을 ‘지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이 되어서 그 안에 진리라는 보물, 그 생명의 보물을 쌓는 이들은 그 자체로 그 빛을 발하는 보물이 되는 거고 여러분 자신이 보물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못하는 이들은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저주의 땅으로 돌아가는 저주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 보물이라는 단어 ‘데사우리조’ 라는 단어는 ‘티데미(τίθημι/G5087/배치.진열하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단어거든요

그러니까 ‘티데미’가 뭐냐면 하늘의 그 진리, 하늘의 그 보물을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횡적’으로 배열해 놓은 거 있죠? 진설해 놓은 거, 그게 ‘티데미’잖아요. ‘그렇게 놓아 둔 것’ 그게 성전이죠? 그렇게 놔둔 게 율법이잖아요. 그것으로 우리가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면 그것 자체가 보물이 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게 흙이에요. 티끌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모래 같은~ 비로 내리는 데 모래로 받게 되는 그러한 저주의 말씀이 되는 거죠


사실 그 보물이라는 말 그 ‘데사우로스’ 라는 말은 다른 곳에서 ‘리도스 티미오스’ 라는 그런 말과 혼용이 되어서 사용되기도 하는데요. 그 뜻은 ‘가장 귀한 돌’이라는 뜻이에요. ‘가장 귀한 돌’ 이렇게 ‘보석’이렇게 번역이 되곤 하는데 ‘보석’이라는 말이 한문으로도 그냥 ‘귀한 돌’ 이에요. 돌 귀한 돌. 그 돌은 그 지성소의 언약의 법궤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언약의 ‘돌’, 있죠? 그게 최고 중요한 ‘돌’이거든요. 가장 귀한 돌, 그런데 그게 뭔지를 알면 그게 진리거든요. 그래서 그 가장 귀한 돌, 그게 보물이 되는 거예요. 보석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것이. 그것은 당연히 진리로 오신 그 ‘뜨인돌’ 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거죠. 그죠


우리가 그 아들이라는 말, 아들이라는 말이 뭐라고 그랬어요? 제가 예전에도 몇 번 설명해 드렸는데 ‘돌’이라는 말이 ‘에벤( אבן/H68/)’이라는 말이에요. 이게 ‘돌’이에요. ‘에벤에셀’ 아시죠? 그런데 ‘에벤’ 이게 돌인데 이걸 이렇게 나누면은 אב/ן

אב 아부가 뭐에요? 아버지죠? 아버지가 아랫것으로 내려오면 그걸 돌이라고 그래요.

א/ב 이렇게 나누면 벤이 아들이거든요. א 알레프가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돌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을 구약에 보면은 돌이라고 하는데 ‘뜨인돌’, ‘산돌’, ‘모퉁이돌’. 그런데 그 돌이 ‘거치는 돌’도 됩니다. 그러니까 그게 산돌이 되고 뜨인돌이 되고 그렇게 되면 나에게 보석이 되지만 그 돌은 나에게 나를 부서트리는 저주의 돌도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거예요. 한번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난 번에도 제가 한번 말씀을 드렸는데~

‘아다마(אךמה) ‘아파르(עפר)

‘아다마(אךמה)’ 라는 것에서 뭐가 ‘아파르(עפר)’ 라는 것이 나온다고 그랬죠. [아다마(אךמה)] 이거를 성경이 땅이라고 하고 [아파르(עפר)] 이것을 티끌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걸로 뭘 만들어요? ‘아다마(אךמה) ‘아파르(עפר) ‘아담(אךם)을 만들죠. 성경에 이렇게 기록돼 있단 말에요. [아다마(אךמה)] 이거를 그냥 땅, 흙 이렇게 번역을 하고 [아파르(עפר)]이거는 티끌, 먼지 이렇게 번역하고 [아담(אךם)]이건 그냥 사람 그렇게 번역을 했는데 그렇게만 알고 계시면 여러분은 그냥 땅에서 땅위에 먼지들을 이렇게 모아서 물을 넣어서 반죽을 한 다음에 ‘아담(אךם) 이렇게 만들었구나. 이렇게 생각 한단 말이에요. 그죠


그런데 이거는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런 말이 아니라 자 아담아가 뭐에요? 아담아담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렇게 나누면, (א/ךמ/ה) 이렇게 한번 나누어 보면 ךמ 담이라는 게 피고 א 이게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의 피’ 그것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이제, 이 아담이에요. 그러니까 이 아담은 ‘하나님의 피’ 그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면 아예 존재일 수도 없는 자에요


그런데 이 [아다마(אךמה)] 여기에서 이제 이 [아파르(עפר)]라는 게 나오고 여기에서 [아담(אךם)]이 나오는데, 이 아파르라는 건 티끌이죠? 티끌. 티끌이고 먼지란 말예요. 그런데 [아다마(אךמה)] 이걸 갖다가 파자를 하면 어떻게 되냐면 자, 하나님께서 분석하신 그 진리가 하나님께서 그 구별하신 그 진리를 그 말로 소리로 주면 그게 이제 [아다마(אךמה)]에요


그 말씀에 의해서 [아파르(עפר)]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이게 뭐냐면 [아파르(עפר)]가 이게 율법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나중에 보면은요. 너희들에게 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티끌이나 모래로 내리면 ‘너네 다 죽는다’ 라고 할 때 티끌이 이거에요. [아파르(עפר)]. 그러니까 이렇게 내리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다마(אךמה)]여기에서 이것이 이제 [아파르(עפר)]이렇게 율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아다마(אךמה)]진리라고 해 보자고요. 그 진리가 율법으로 주어지는데 그 율법으로 우리가 ‘아~ 그게 그거군요’ 이렇게 그걸 내안에 담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아담이라는 존재에요. 그런데 [아담(אךם)]여기에는 말이 없네요. 소리가 없네요. 진리로 그냥 끝나버리네요. 그래서 나중에 보면 창세기에 여기 ה관사가 하나 붙어요. 그래서 ‘하 아담(האךם /G120/아담/인간)’ 그 진리를 말하는 소리. 그게 우리거든요. 그게 나중에 인자라는 개념. 여기에서 계속 그 후손들이 하나씩 하나씩 나오는데 그 아담의 아들, 그 아담의 아들, 그 아담의 아들, 그 아담의 아들 그걸 뭐라고 그래요. 그 사람의 그 아들이니까 그걸 인자라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그걸 먼지로 티끌로 아파르로 받아 버리면 여러분은 이 아담이 될 수가 없어요. 아니 아담이 되요. 아담이 되는데 어떤 아담이 되냐면 그냥 ‘붉다’ 라는 뜻이에요. [아담(אךם)]이건 또. 그냥 붉은 아담, 죄가 되는 거예요. 성전의 아담이 되는 거죠. 그러나 [아파르(עפר)]이것으로 여러분이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됐을 때 여러분이 ‘하 아담(האךם)’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 아담이라는 관사가 붙은 사람과 그냥 아담과 완전히 달라요. 성경에 보며는~ 이거를 여러분이 숙지하고 이해를 하고 계시면 성경을 읽는데 많이 도움이 될 거예요.


, 그 돌, 지금 돌 얘기를 하다가 저 얘기를 했는데 그 돌이 예수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게 돌이에요. 그런데 그 돌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귀한 진리의 보석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파괴하는 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보면 느브갓네살의 꿈속에 등장하는 그 ‘뜨인돌’ 하나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서 환장하는 그 세상이라는 ‘신상’ 있죠?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신상을 때려 부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역사다. 꿈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은 자기가 꿈을 살고 있는데 그 꿈이 뭔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른단 말예요. 그런데 다니엘(ךניאל/H1840/하나님의 재판관), 하나님의 사람이 그 꿈을 분석 해주는데 어떻게 분석해 주냐면 그 꿈이라는 거 이 세상 역사라는 건 뭐냐면 하나님의 그 뜨인돌에 말씀에 의해서 세상이 박살나는 거야~ 그런데 그 돌에 의해 모든 건 박살납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박살이 나는 거, 자기부인이라고 그러죠. 그게 뭔지를 알면 구원이지만 그게 뭔지를 모르면 그 자체가 박살나는 거예요. 그게 멸망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역사의 실체라는 겁니다


, 아무튼 우리가 우리 안에 그 진리의 ‘돌’을 마음으로 갖게 되면 우리가 바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귀한 보물이 되는 거고 그 ‘돌’을 ‘티끌’ ‘아파르’로 이렇게 받게 되면, 모래로 받게 되면, 먼지로 받게 되면 우리 자신이 흙이 되는 것이란 말예요. 그러니까 율법을 흙이라고 한다. 먼지라고 한다. 모래라고 한다. 이건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구약 성경을 원문으로 잘 읽어 보면 전부 그렇게 표현하고 있단 말이에요. 성경이.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보물이 되느냐’ 아니면 ‘저주 받을 티끌로 돌아가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의해 판가름이 나는 거예요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건 여러분이 열심히 교회에 헌금을 해서 하늘에서 쓸 사유재산을 축적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장 귀한 ‘돌’, ‘하늘의 보석’ ‘돌’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니까 그게 보석이란 말예요. 귀한 돌. 사실 사람들이 그게 가치 있다. 라고 자기들끼리 합의 안 하면 그게 돌이지 뭐냐고요. 여러분 달고 다니는 그게. 어디다 써 먹냐고 그걸 배고플 때 먹을 수가 있어요~ 뭘로 쓰냐고 그거를. 그래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입고 들어가는 ‘에봇’ 위 그 보석에 하나님 백성들의 열두 아들의 이름, 열둘의 이름이 기록 되어 있는 거예요. 어디에? 보석에~ 내 아들들이 보석이다. 이런 말이에요. 가장 귀한 돌이 내 아들이다.



출애굽기 28:9

9 호마노 두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죠? 아들, 이게 ‘벤’이에요.) 

10 그들의 연치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12 그 두 보석을 에봇 두 견대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어서 기념이 되게 할찌며


그거 메고 어디로 들어 가냐면 지성소에 들어간다니까요. 아들들 열둘이 그 보석들이 그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아들이란 말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가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요한계시록 21:1 ~2, 10~12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면 우리 얘기 하는 거 아닙니까. 신부니까. 하나님의 신부, 우리 얘기)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이게 출애굽기에 나오는 그 이야기와 그냥 똑같은 이야기에요. 그러니까 천국이 뭐 보석으로 되어 있다. 라는 뜻이 아니라 여러분이 보석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천국에 갔더니 무슨 뭐 화장실 변기도 금으로 되어 있고 뭐 길도 다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고~ 그거는 자기 환상이에요. 인간들이 꿈꾸는 천국이란 말예요. 그거는. 그거는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라니까요. 그런 곳은 천국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다 사기에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그 하늘들 안의 보물이 되어 가는 거예요. 내가 하늘들이 되어서 그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이 하나님이니까 하나님을 가지면 내가 보물이 되는 거라니까요


그걸 가진 나, 껍데기로서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 안의 ‘질그릇’이라는 보물이 들어 있기에~ 질그릇 툭 치면 깨질 그 질그릇, 옛날 질그릇은 유약도 안 바른 질그릇이란 말이에요. 애들이 장난감 그 소꿉장난 할 때 진흙으로 이렇게 덕지덕지 만들어서 햇빛에 말려놓죠? 그런 거라니까요. 옛날 질그릇은. 툭 치면 깨는 거예요. 그래서 토기장이 이야기 많이 나오잖아요. 우리 로마서 9장 공부하고 있는데 그 토기장이가 하는 일이 뭐냐면요? 그때는 100개를 넣으면 99개는 다 깨버려야 될 그릇들이었단 말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토기장이다. 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다 깨버려야 한다는 그런 의도로 우리를 만들었다. 라는 의도로 쓴 거예요. 당시에는. , 우리는 그렇게 깨진, 쉽게 깨지는 질그릇인데 그 안에 하나님이 보물로 담기면 내가 보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그 보물을 ‘(발란티온/βαλάντιον)’ 주머니라고도 표현하세요. 주머니하고 보물이 어떻게 이게~ 섞일 수 있는 개념입니까? 그런데 주님이 보물을 주머니라고 한다니까요. 진리를 담은 그릇, 주머니가 되면 그 주머니가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이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산상수훈입니다우리가 공부하는 그게 어떻게 바뀌어서 기록이 되어 있는지 보세요.) 



누가복음 12:33~34

33 너희 소유를 팔아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만들라는 make 하라는 게 아니라 ‘포에오’ 주머니가 되어라~에요.)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너희 보물 그게 네 마음이다. 그랬단 말예요. 지금. 그런데 여기 보면 네 소유를 팔아 주머니가 돼야 되는데 그 주머니가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이게 영원한 이런 말이죠. 낡아지지 않는, 그게 영원한 보물이다. 그래버려요. 주머니가 되어라~ 그게 보물이다. 하늘에 담겨있는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예요. 그러면 주머니가 보물이라는 게 무슨 말이냔 말예요


여기 보시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머니가 될 수 있다고 그래요? 잘 보세요. 이렇게 너희 소유를 팔아~ 그죠? 너희 소유를 팔아~ 소유라는 건 뭐죠? 율법적 행위 그것으로 나는 이렇게 괜찮은 존재이고, 이렇게 풍성한 자입니다. 라고 우리가 쌓아 갖고 있는 것을 소유라고 하죠? 우리의 행위를 어떤 재화로 환산했을 때 돈이라는 거 자체가 우리의 어떤 행위나 생각이나 지혜, 지식 이런 것들 우리의 땀과 노력을 재화로 환산해 놓은 게 돈이죠? 그러죠? 그러니까 재물이라는 거, 소유라는 거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재물, 소유라는 건 뭐냐면, 내가 내 힘으로 내 놓을 수 있는 만들 수 있는 그래서 쌓아놓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주님이 팔아라~ 하는 소유는 그런데 그렇게 그 소유를 팔으려면 이 소유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진리를 만나면 그 소유는 당연히 팔리겠죠? 팔아서 딴 걸 산다는 게 아니라~ 진리를 갖게 되면 내 놓는단 얘기에요. 그렇게 그 진리를 내가 마음으로 담아서 그 소유를 팔 수 있게 되면 그러면 내 안에는 진리가 있는 거네요. 진짜 가치 있는 것이


그러면 그것을 갖다가 남들에게 이렇게 전해주는 걸 뭐라고 한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산상수훈 6장 서두에서 배운 게 ‘엘레모수네’ 구제잖아요. 그게. 여기서 나오는 게 그게 구제에요. 네 소유를 팔아 네 안에 있는 그 진리로 이제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구제해라~ 그러면 그것이 주머니가 되는거야~ ? 내안에 전해 줄 진리, 그 보물이 있으니까 나는 주머니란 말예요. 그런데 그걸 전해 줄 수 있는 자가 되면 그 주머니가 보물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에요. ‘팔라이오’ 그러니까 옛 것의, 구식의 이런 말이죠


그러니까 새 것과 대조되는 것의 개념. 그러니까 새 언약과 대조되는 옛 언약 그렇죠? 그러니까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라는 건 새 주머니라는 뜻이에요. 새 주머니. 새 주머니가 되어라~ 그러면 그것이 다함이 없는 보물이야~ 거기서 하늘들도 복수에요. 여러분. 복수. 그러니까 하늘들 안에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당연히 진리를 담은 성도들 이야기 하는 거죠. 그 하늘들 안에 보물이 담겨져 있는데 영원한 보물이에요. 변치 않고 낡지도 않고 영원 그 자체인 보물. 진리의 말씀이신 하나님이에요. 영원이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거든요. 그걸 보물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잡혀 가시던 그 즈음에 이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그 즈음 있죠? 그 즈음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들 이제 주머니를 가져라~ 그래요. 주머니를 가져라~ 그 전에는 십자가 지시기 전에는 주머니가 될 수 없죠. 왜냐면 예수가 살아 있거든요. 그 예수가 죽어야 진리가 되어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에요. 안 그러면은 그들이 주머니가 될 수 없다니까요. 그들은 여전히 자기 밖의 예수를 보고 섬길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능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니까


그렇지 않아요? 그 예수가 내 밖에 있으면 그러면 그 어마어마한 능력을 행한 그 분의 그 능력 때문에 놀라고 그것에 경외감을 갖고 거기에 감사하고 그 수준이라면 나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그런 기능을 행사하는 그 분 앞에 쫄은 거예요. 나는. 그걸 믿음이라고 하지 않아요. 믿음은 반드시 연합이라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동반하는데 내 밖의 어떤 존재가 나를 구원할 수 있고, 이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마시란 말예요. 정신을 똑바로 차리시라니까 


내 밖의 어떤 분이 큰 능력을 행하고 있고 대단한 힘을 소유하고 있으면 그래서 나의 구원까지도 의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저기 있으면 나는 그 분에 의해 살아날 수도 죽을 수도 있지만 그 분이 내 밖에 존재하는 한 나는 그분을 믿을 수가 없다니까요. 내가 그 밖에 있는 그 존재를 믿는다는 건 역시 그 믿음에 주체는 나란 말예요. . 그건 믿음이 아니란 말예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그거는 엄청난 힘을 가진 나를 지옥에도 보낼 수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해 존재 앞에서 쫄아 있는 거예요


이렇게 그래서 하기 싫어도 열심히 그냥 해 보는 거고 하다보니까 보람도 느껴서 계속 하고 이러는 걸 믿음이고 신앙생활이라고 착각한다니까요. 그런 건 신앙생활이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주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에 너희들 주머니 가져야 돼~ 전대 가져야 돼~ 이게 다 주머니란 말예요. 이게요. 돈 주머니 이렇게 생각들 하시는데 돈 주머니 맞아요. 그런데 그 돈 아니에요. 그리고 너희들 이제 신 신어야 돼~ 이렇게 이야기 한다니까요. 한번 보까요.



누가복음 22:35~38

35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36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여기서 전대라고 번역이 된 그 단어가 ‘발란티온’ 그 누가복음에 산상수훈에 있는 그 주머니에요. 보물. 주머니가 되어라~ 그랬잖아요. ‘포에이오’ 그 단어에요. 전대. 그리고 주머니라고 번역된 단어 ‘페라’가 주머니에요. 그것도 주머니인데 그건 양식을 담는 주머니에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보물의 이야기하기 전에 먹는 이야기 했죠? 우리가 진짜 양식을 진리로 내가 먹게 되면은 내가 그 진리를 양식으로 먹어 그걸 생명의 에너지로 삼는 존재가 되는 거잖아요. 그때 그걸 ‘페라’ 주머니라고 그래요. 그 주머니나 진리를 보물로 담은 주머니나 같은 주머니란 말예요. 그 진짜 그 양식 금식해서는 안 될 그 양식을 보물로 다시 설명해 주고 있는 거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그 주머니나 그 주머니나 같은 주머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전에는 가져가지 말라고 그러고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에는 가져가라고 그런다고요? 이제 가져라~ 그런다고요? 예수님이 죽으셔야 비로소 너희들은 주머니가 될 수 있다. 라는 거예요. 그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들어가겠다. 라는 거예요. 이 보물이 너희들 안으로 들어가겠다. 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그 보물을 구제로 ‘엘레모수네’ 나눠 줄 수가 있겠죠?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신은 뭐에요? 신발. 그것도 같은 의미여야 되잖아요. 신도 주머니에요. 그 신은 바울이 잘 설명해 주는데~ 이 누가복음 22 35절 이하는 제가 계속 설명할거니까 찝어두세요.



에베소서 6:15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전신갑주 중에 하납니다. 여기서 신을 신다. 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휘포데오’인데요. 그 단의 명사형이 ‘휘포데마’ 신이에요. 여기선 신이라는 단어는 안 나와요. 안 나와요. 그냥 신을 신다. 라는 말만 나와요. 그런데 그 원문을 보면 ‘휘포데오’라는 동사 다음에 ‘호프스’ 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까 신이라는 건 뭐에요? 발이라는 걸 감싸는 거죠? 여기에 그렇게 되어 있다니까요. 그 발을 신이라는 것으로 감싸라~ 이렇게 되어 있단 말예요. 그게 신을 신는 거죠.


, 그러면 발은 뭐에요? 그 ‘호프스’ 라는 단어를 수식하고 있는 그 다음 단어들을 원문으로 보면요. ‘헤토이마시아 호 유안겔리온 호 에이레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아주 예비한~이 아니라 정확하고, 적확한 그 평안 ‘에이레네’라는 ‘유안겔리온’ 복음, 이런 말이에요. 그것이 발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발을 신으로 감싸라~ 이런 말이에요. 다시 요. 아주 정확하고, 적확한 그 복음 ‘에이레네’ 평안이라는 복음, 그 발을 신으로 감싸라~ 이런 말이에요. , 그 평안 ‘에이레네’ 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제가 로마서 강의 때 주일에 자세하게 설명해 드릴 거니까 지금은 그냥 그 ‘에이레네’ 그것이 그냥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라는 정도만 알아 두시면 되요


, 그 평안이 복음이며 그 복음이 아주 정확한 발, 그 정확한 복음이 발이다. 라고 하는 거예요. 성도는 그 발을 감싸는 신이에요. . 그런데 히브리어는요. 그 신이라는 단어를요 혀라는 말로도 씁니다. . 신발 밑창이 혀같이 생겨서 그런가~ 하여튼 혀라고 써요. .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발은 진리의 복음을 말하는 거고 그 발을 감싸는 게 신 ‘휘포데마’에요. 그러니까 역시 신은 발을 담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거예요. 그러나 그 신이 올바른 발을 담고 있을 때 그 신을 발이라고 불러 주는 거예요


우리가 마태복음 5장에 맹세하지 말라~라는 부분을 공부할 때도 배운바가 있죠. 주님은 그 땅으로 ‘호게’ 그게 ‘하에레츠’를 헬라어로 바꾼 거니까 성전이겠죠? 그 땅으로도 맹세하지 마~ ? 그 성전은 하나님의 발을 두는 곳이니까 발등상 이렇게 해 놨지만, 발이 들어 있는 곳이니까 이런 말이에요. 따라서 성전은 발 즉, 진리의 하나님을 담은 그릇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발은 모르면서 그 발등상에다가 대놓고 맹세하면 뭐 하니~ 이러는 거예요. 발이 뭔지를 알아야지~ 그런 말이잖아요


, 그 발을 담고 있는 그것을 신이라고 하고 올바른 발을 가진 신을 성도, 보물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나 여호수아를 불러서 진리의 전쟁을 치르게 하시기 전에 항상 네 발에서 신 벗어~ 그런 거예요. 고대시대 때에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거는 나를 너에게 양도한다. 라는 뜻이에요. 내가 누구 앞에서 신을 벗는다는 건 나를 너에게 양도한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진리의 전쟁을 치르러가는 여호수아나 모세에게 여기는 거룩한 아담아 그냥 땅 아닙니다. 이 아담아에요. 아담아니까 이게 거룩한 깨끗한 아담아니까 깨끗한 말, 진리니까 너는 네 신을 벗어라~ 이런 말이에요. 너를 나에게 양도하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신은 곧 혀를 이야기 한다고 그랬습니다. 내가 내 혀를 빼앗기는 거예요. 신을 벗는 건 내가 내 발을 포기하는 거란 말예요. 내 발을 포기하는 거. 그러면 내가 내 발을 포기하고 나를 다른 이에게 그냥 양도를 해버리면 누군가 나의 발이 되어줘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 발이 내게 와서 발이 되면 내가 그 발을 감싸는 신발이 신이 되는 거예요


다시~ 신은 뭐라고요? 혀요? 혀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발을 빼앗겨요. 양도됩니다. 너 신 벗어~ 내 앞에서 신 벗어~ 그건 내가 네 발을 차압한다. 몰수한다. 그리고 내가 내 발을 너에게 줄거야~ 그러면 너는 나를 담은 신. 신은 뭐? 혀 나를 담은 혀가 되어 이제 나를 말하고 나를 전하는 자가 될 거라는 뜻이에요. 그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나의 혀가 다른내용을 담게 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 거룩한 진리 앞에서 내 신을 벗는다는 건 내 신이 내 혀가 다른 발을 담는다는 거예요. 그게 영적 전쟁이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백성들의 존재 양식 아니에요. 내가 내 내용을 빼앗기고, 하나님이라는 내용을 받아 그 내용을 영광 ‘독사’ 이렇게 비추는 자로 사는 거. 그걸 성도라고 그래요.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발’ 이렇게 불렀어요. .



로마서 10:15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거 이사야 52장 인용한 거죠. 한번 가보죠.



이사야 52:7

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복음이죠.)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 발이 아름다워요. 발이. 복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이라는 진리 ‘레길’ 발이라는 말은 이도하다. 라는 말도 되거든요. 그럼 발.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 하나님의 이끄심, 그 진리를 담은 신발이 되어서 그 발을 담아 다른 이에게로 뛰어가는 발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걸 아름답다. 이렇게 칭해 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아름다운 거예요


그렇다면 전대나 주머니나 신의 역할을 하는 그러한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보물인거죠. 그래서 주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제 너희는 주머니, 전대, 신 가져라~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가질 방법이 없다니까요. 그러면 뭘 가져갈까요? 지들이 생각하는 땅적 차원의 주머니, 전대, 신을 가져가요. 그러니까 껍데기가 부정이 되고 그 알맹이의 진가가 드러나면 그 부정된 껍데기를 알맹이로 여겨 주시는 게 구원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머니, 전대, 신이 되어라~ 가져라~라기 보다는 신이 되어라~라고 당부를 하신 거죠. 그러면 그게 의의 겉옷을 입은 자죠. 그래서 거기에 겉옷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마련하시고 하나님이 입혀주신 그 의의 옷을 입은 자들이잖아요. 그게 겉옷이죠? 그러니까 반드시 그들은 겉옷을 입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들이 보물이 되었다면 주머니가 되었다면 그렇죠


그런데 그 옷을 지만 입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예수님처럼 넷으로 넘겨줘야 되죠. , 이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누군가에게 이 세상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충돌이 일어나게 돼있어요. 그러면 이 겉옷이라는 걸 다른 이들에게 넘겨줄 때 이 겉옷은 뭘로 주어지게 되냐면 성령에 말씀의 검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겉옷을 검으로 바꿔라 이러는 거예요. 엿 바꿔 먹듯이 겉옷 팔아 검 사~ 이런 말이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돼야 되냐면 너희들은 그 겉옷을 이제 내가 없어지고 너희들 안으로 들어가니까 너희들이 내 역할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면 너희들은 그 검이 되어서 가야지 너희들만 입고 있으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겉옷을 검으로 바꿔라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냐면 내가 ‘아노모스’ ‘노모스’가 율법이죠. ‘아’는 뭐에요? 율법에 지배당하지 않는 이런 말이에요. 그거를 여기에서는 불법자라고 그랬나 뭐~ 뭐라고 그랬어요? 여기요? 뭐와 동류가 된다고 그랬죠? ‘불법자’ 그러니까 강도나 도둑놈 이런 거~ 그렇게 보이지만 맞아요. 예수님이 이사야서에서 그렇게 예언이 되었거든요. 예수님이 그러한 자들과 동일하게 취급이 되어 죽을 거다. 라고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이게 무슨 단어냐면 그분이 이제 율법으로 오셨지만 ‘불법자’ 율법과 무관한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가 된다. 라는 건 이제 죽어서 율법으로 육체로 죽어서 진리로 영으로 오신다는 얘기죠


그럴 거니까 너희들은 이제 주머니가 되어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야기가 그대로 매끄럽게 이어지잖아요. 너희 이제 주머니를 가져~ 신을 가져~ 전대를 가져야 된다. ? 내가 이제 ‘아노모스’ 율법에 지배를 받지 않는 그 상태로 이루어질 거거든~ 그래요. 보면. 그럼 뭐에요


내가 이제 죽어서 율법으로 육체로 죽어서 진리로 너희들 안으로 들어올 거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너희들 이제 주머니가 될 수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들어오게 되면 너희들은 의의 겉옷을 입게 되는 건데 그러면 이제 너희들이 내 역할을 해야 되니까 그걸 전해주기 위해선 그 겉옷을 검으로 바꿔야지~ 검으로 갖고 있어야지~ 그 겉옷을~ 그런데 너희들이 그걸 끝까지 율법으로 갖고 있으면 그거는 율법의 ‘헤레브’ 라는 검이 될 것이고, 너희들이 그걸 성령의 검으로 갖게 되면 너희들은 그걸 구제를 행하는 검으로 갖게 될 거란 뜻이에요. 그래서 두 검, 두 검도 아니에요. 짝인 검. 이렇게 이야기 해요. 짝인 검이 등장을 하는 거예요


그거를 제자들이 이렇게 내놓으니까 주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래 예로 적당하다. 그렇게 이야기 하신 거예요. 칼 두 자루면 족하다. 어떻게 자루면 족해요? 그런 얘기 아닐 거 아닙니까. 그게 적당하다.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제가 로마서 강의 때도 말씀 드렸지만 이 땅의 검은 두 종류의 검으로 갈린다고 그랬어요. 하나는 ‘헤레브’ 가뭄이라는 칼이고, 이거는 하나님의 심판의 현장에 항상 등장하는 거예요


, 이게 가뭄이에요. 가뭄. 가뭄은 뭐죠? 그 진리에 비가 오지 않아서 양식도 될 수 없고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그 상태. 그거는 다른 이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칼이에요. 그렇죠? 그게 율법의 칼이라는 거예요. 심판의 칼. 왜 칼이라는 개념을 쓰냐면 성령의 검과 대조시키기 위해 자꾸 그 가뭄이라는 ‘헤레브’라는 칼을 등장시키는 거예요. 율법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율법이 유일한 공격 무기라니까요. 자기가 행해 놓은 그러한 많은 열매들 그게 자기들의 공격 무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가뭄이라고 그래요. 저 물도 없는 푸석푸석한 거. 저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거. 다시 누가복음 22:37~38 보세요.



누가복음 22:37~38

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아노모스’라고 그랬죠.)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당연히 그 불법자의 동류, 그 불법자,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가 되어야죠? 이루어져야죠? 그 약속이. 이루어져야죠. 그래야 주머니가 되니까. 그 내게 관한 일이 이제 이루어 간다. 내가 죽을거야~ 이제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38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짝검이 있습니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아주 좋은, 적당한 ‘히카노스’ 적당한 예구나~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이거 참 적당한 예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죠그러면 이제 그 검을 엉뚱하게 쓰는 자의 모습이 등장해야 되잖아요. 이 성경의 독자는 우리니까 그래서 바로 그 다음에 이제 잡으러 와요. 그 중에 ‘말고’ 라는 자가 나온단 말예요. ‘말고’가 누구냐면 ‘멜기세덱’의 그 ‘말라크’ 있죠? ‘멜기세덱’의 그 ‘멜기’에요. 그게 ‘말고’에요. 그런데 그게 뭐라고 그랬어요? 의의 사자 의의 왕이라고 그랬죠? 그렇게 사자 하늘의 왕이 되어야 할 어떤 자가 오는데 물론 모형이고 상징이죠


그런데 엉뚱한 검, 베드로가 가진 검, 베드로가 어떻게 말렸어요? 주님의 그 십자가로의 행진을, 죽으면 안 됩니다. 내가 목숨 걸고 말릴 거예요. 그랬어요. 목숨 걸고 그분의 죽음을 말리면 이세상은 끝장나는 거예요. 보물로 그 분이 들어와야 되는데 그게 율법이죠? 그분의 죽음을 여전히 그래서 살려 놓고 있잖아요. 그리고 계속 빌고 있잖아요. 거기다가. 그분은 죽었다니까요. 죽어서 이 안에 들어와 있는데 여전히 내 밖에다가 놓고 뭘 빌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이러고 있으니까 그게 베드로가 보는 예수님이었단 말이에요


죽으면 안 되는 분, 나를 도와줘야 되는 분, 나를 구원해 줘야 되는 분, 아니 주님은 내가 네 안에 들어가서 내가 생명이 될 거라니까 그랬더니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아니 나는 그런 거 모르니까 그런 거 말고, 살아서 나를 도와 달라니까 그랬단 말예요. 그러면 그런 자가 가진 말씀, 그 분에 대한 이해가 뭐겠냐고요. 말씀이 당연히 율법이잖아요. 그러면 그건 ‘멜기세덱’의 그 ‘말라크’ ‘말고’ 라는 그 의의 사자가 되어야 할 이들의 오른편 귀라고 그러죠. 오른 귀 right ear 오른 귀를 잘라 버리는 거란 뜻이에요


그러면 큰 일나는 거죠. 천인공노할 일이라니까요. 이게. 들어야 할 귀를 내가 가진 잘못된 말로 닫아 버리고 잘라 버리면 그건 나쁜 검이에요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 검을 가진 자는 그 검으로 망한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떤 검 가지라고~ 말고의 귀를 자르는 검이면 안 되는 거예요


성경이 재미있는 게요. 그렇게 귀가 잘린 이들의 일가가, 대제사장의 뜰에서 베드로에게 와갖고 네가 귀 잘랐지? (내 다리 내놔라 이렇게) 쫓아다닌다니까요. 굳이 성경이 말고의 일가가 찾아가갖고 너 예수 편이지? 물어봤다라고 그래요. 큰 일 나는 거예요.



마태복음 26:51~52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가 가시죠? 여러분. 자 우리는 진리라는 보물을 주머니와 전대와 신 안에 담은 성령의 검, 그 하나님의 무기 그래서 우리를 군병이라고 그러잖아요. 그 분을 ‘만군의 주’ 라고 하잖아요. 만군이라는 것은 만 군대의 대장이라는 뜻이니까 우리가 성령의 검이란 말이에요. 그 검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는 너희에게 검 주러 왔다. 그러는 거예요. 아주 죽여 버릴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 좋은 말이에요. 그거는요. 내 검 받아라~ 라는 거예요. 내 검. 그 검은 요한계시록에 아주 훌륭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요.



요한계시록 1:13~16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진리죠)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좌우에 날선 검’ 뭡니까?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에요. , 그 진리의 말씀이 검이니까 그 말씀을 이렇게 담고 있는 건 뭐가 되겠어요? 칼집이죠. 그래서 성전을 가리키는 ‘토퍼스’라는 단어가 칼집이라는 말로도 쓰여요. 재밌지 않아요? 칼집이 칼이 없는 칼집은 어디다 써 먹어요. 그거요. 뭘로 쓸 수 있어요? 거기는 반드시 검, 말씀, 진리, 칼이 꼽혀 있어야 완성인 거예요. 성전이 칼이 빠져 버리면 그냥 칼집이에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이렇게 주머니와 전대와 신과 겉옷과 검, 이건 전부 예수 그리스도가 육으로 죽으시고 영으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오셨을 때 완성이 되는 그런 은혜의 선물인 거예요. 그래서 주심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전대와 주머니, 신 이런 거 가지지 마~ 이렇게 이야기 하신 거예요. 십자가 지기 전에는 못 가지니까 


거기에는 두 가지 깊은 뜻이 숨어 있었어요. 하나는 복음이 올바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분명히 제자들을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하고 보낸단 말예요. 그런데 그 제자들이 뭘 알았냐고요. 자기들도 하나님의 나라가 뭔지 몰랐다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잡혀가는 그 날 밤에 누가 큰지 쌈박질하다가 예수님한테 혼났다니까요. 누가 영의정할건지 싸우다가. 그런 사람들이 무슨 하나님의 나라를 알었어요? 그리고 심지어 주님이 부활했는데 못 알아봤다니까요. ‘호라호’ 못했단 말예요. 다 도망갔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하나님이 12로 그리고 70으로 이렇게 파송한 건 어떤 모형이고 상징으로 보여준 거지 그들에게 나가서 너희들 복음 전해서 한 사람이라도 구원시키고 와~ 이건 아닐 거 아닙니까. 아무도 몰랐다니까요. 그들도 몰랐다니까요. 그러니까 복음이 올바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제가 지금 말씀 드린 그러한 영적 개념의 전대와 주머니와 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나 두 번째는 너희들의 그 전대, 니들이 생각하는 주머니, 니들의 신, 니들의 지팡이 이런 건 절대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될 수가 없는 거야~ 라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거는 가져가지마~ 내가 가지가라고 해 봐야~ 니네는 내가 말하는 그거 아닌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주머니, 그 전대, 그 지팡이, 그 돈 가져갈 거니까~ 그거 가져가지마~ 그러나 너희들은 반드시 그게 뭔지 알았을 땐 반드시 그 주머니, 그 전대, 그 돈 가져가야 한다. 라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 놓은 거예요. 거기다가. 그래서 거기 쓰인 단어 자체를 헷갈리게 집어넣어 놨어요. 성경이.



누가복음 9:1~4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여러분 이게 다 복음을 전하여 생명으로 완성하라는 의미죠? 그러나 이걸 그렇게 못 보면 그저 귀신이나 쫓아내고 병이나 고치고 오는 거예요. 그건 표적이라고 그래요. 표적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표적을 구하는 자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다. 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그냥 문자적으로 보고 그런 기적들을 교회에 와서 원하면 그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 거예요.)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여기 여행을 위하여가 어디 뭐 무전여행, 무슨 여행 이런 여행이 아니라 ‘그 길에 있을 때에’ 이런 말이에요. 그 길이 뭡니까? 내가 길이라고 하는 그 예수, 그 길에 있을 때에 우리는 그렇게 읽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요.)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라고 하는데 이걸 전파복음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전파복음으로는 절대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전파복음은 뭐냐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뭐 그래 어떻게 하라고요. 그걸로 구원이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나는 그 말 듣고 교회에 와서 구원받았는데요.’ 아니요~ 그 때 조금 외롭고 쓸쓸하고 슬픈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여러분이 그 말이 뭔지를 배워 깨닫기 전에는 여러분이 절대 여러분 자신이나 이 ‘호코스모스’의 세상의 죄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니까요. 그러면 그건 구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반드시 가르치는 자가 있어야 돼요. 그게 뭔지. 그건 과정으로는 쓰일 수 있어요. 과정으로. (아 저 노인네가 도대체 뭐가 뭐가 있길래 저렇게 저 무거운 걸 짊어지고 다니면서 저렇게 빽빽 1 365일 소리 지르나 한번 가보까 이거는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니까요.


그런데 그게 쓸데없다. 라는 게 아니에요. 그게 과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해 놓고 나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라고는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자들이 그렇게 보내진 거예요. ? 뭔가를 이 성경의 독자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분명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은 열심히 하다가 왔어요. 그래서 자기들도 놀랬다니까요. (야 귀신이 나가더라~ 병자가 일어나더라~) 이렇게 자기들도 놀랬어요. 깜짝 놀랬다니까요. 그래갖고 나중에 귀신 들린 웬 애가 찾아왔는데 변화산 아래에서 아무리 기압을 줘도 안나가는거야~ 얘가~ 얼마 전엔 됐는데 왜 안 되죠? 이렇게 물어봤다니까요. 주님한테. 그렇게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구원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니까요


, 하나님은 그러한 표적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와 영생이라는 진리를 전파하시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어요. 그러나 그 일은 주머니와 전대와 양식과 속전, 돈(ajrguvrion(694, 알귀리온) 은 silver.)이라는 단어가 그 은이라는 뜻이거든요. 은은 항상 속전입니다. 그냥 돈 지폐 아니에요.


그리고 두벌 옷이죠. 두벌 옷이 뭐냐면, 짝으로서의 옷 겉옷, 속옷 이야기 하는 거예요. 가져가야죠. 겉옷을 줄려면 내가 속옷밖에 없는데 아래에는 성경, 율법밖에 없는데 어떻게 겉옷을 주냐고요. 속옷을 줘야 이게 그거예요. 라고 알면 그게 겉옷이 되는 건데, 그러니까 두벌로 반드시 가져가야지


주머니 반드시 가져가야지. 전대 반드시 가져가야지. , 양식 반드시 가져가야지. 지팡이 반드시 가져가야지. 그런데 왜 가져가지 말라고 그러냐고요. 너희들은 내가 말하는 그걸 로서 그걸 못 가져갈 거라는 거예요. 아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라는 그 어구가 ‘메데이스아이로’ 인데요. ‘아이로’라는 말이 ‘가져라, 취하라’ 라는 말도 있지만 ‘치워버려라’ 라는 말도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무덤에 돌이 이렇게 치워줬죠? 그 때 쓰이는 말이 ‘아이로’에요. 그러면 ‘메데이스’ 절대 부정이거든요. 그걸 무덤의 돌이 저렇게 치워진 거 절대 치워지지 않게 해라~가 ‘메데이스아이로’ 거 아니에요. ‘치워라’ 라고 쓰인 게, ‘치워졌다’ 라고 쓰인 게 ‘아이로’니까 ‘메데이스’가 절대 부정이 붙으면‘ 절대 치우면 안 돼’ 이렇게 번역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 단어는‘ 절대로 취하면 안 돼’ 라고 번역해도 되요. 동일하게 쓰인다니까요. 그렇게 이단어가요. 그러니까 어떻게 번역해야 되냐고요. 그러면은


그러니까 그 원문을 번역한 이들이 영어 성경이나 뭐 한글 성경을 번역한 이들이 어떻게 해야 이것이 우리의 그 우리 인간들의 그 도덕과 윤리 혹은 인간들의 가치나 아니면 그 열심을 이렇게 풍성하게 포장할 수 있을까를 염두 해 두어서 야 전도하러 가는데 뭘 가져가~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지 이런 의미를 담고 싶었기 때문에 너희들 절대 가져가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해주게~ 이런 의미로 번역한 거예요.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맞아요. 그런 거 가져가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줘요. ? 다른 주머니, 다른 전대, 다른 지팡이, 다른 돈, 다른 떡이 있거든요. 그것만 가지면 그까짓 거 안 가져도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성도는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단순히 야~ 하나님이 선교는 자부담으로 하라는 거구나~ 이렇게 읽고 그냥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가갖고 남 등골 빠지게 하는 이렇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준비를 하고 가세요. 왜 그냥 무작정 가갖고 남들 등골 빠지게 하냐고~ 다 준비해 갖고 계획 세워서 가야 되요. 선교는. 그런 말이 아니라고요. 내가 그냥 막 가 가~ 가면 알아서 다 해 줄 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니까요. 어디에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니네 전대, 지팡이, 주머니 반드시 가져가야 돼~ 이런 말 하고 가면 안 되죠. 그런 거는 쏙 빼 먹고 말이죠. 반드시 가지라고 했다니까요. 그러니까 진리 깨달은 이들은 이런 구절이 읽으면서 아~ 그렇지 그 아래의 그 주머니 그거는 아니지~ 그러니까 ‘메데이스아이로’ 가지지 말라~ 맞아 그러나 없애버리지 말아라, 치워버리지 말아라 라고도 읽을 수 있는 게 뭐냐면 그거 안가지고 어떻게 가서 복음을 전해~ 여기까지 아셔야 된다니까요


누가복음 10장으로 가면 70으로 그 제자들을 70으로 보낼 때도 역시 똑같이 헷갈리는 단어를 써 놨어요. 한번 보세요.



누가복음 10:1~5

1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70은 이제 7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에요. 12, 12지파 다음에 70장로 나오고 12제자 다음에 70 나오고~ 다 그냥 그 이야기에요. 12은 반드시 7로 완성이 돼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7, 차원이 다른 7로 세워, 이제 짝으로 보내요. 보내는데 뭐라고 그러냐면~)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3 갈찌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4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찌어다 하라



여기에 전대, 주머니, 신 앞에 가지지 말며 이게 ‘메바스타조’ 인데요. 이게 제거하지 말아라~ 니네 전대, 주머니, 신 반드시 가져가야 돼~ 이렇게 해석해도 맞고요. 너희들 전대, 주머니, 신 절대 가져가면 안 돼 이렇게 해석해도 맞아요. ‘바스타조’ 라는 단어 자체가. ‘아이로’와 똑같이 쓰인다니까요. 그러면 여러분께 여쭤 보게요. 복음 전하기 위해서 전대와 주머니와 신으로 대표되는 지팡이, , 양식, 두벌 옷 이런 것 가져야 되는 거예요~가지지 말아야 되는 거예요? 심지어 마가는요. 마태는 아무것도 가지지마 그랬죠? 분명히~ 아무것도 가져 가지마~ 그런데 마가는 어떻게 썼는지 아세요. 지팡이하고 신만 가져가~ 이렇게 썼어요. 어떤 사람 말을 믿어야 되요?



마가복음 6:7~9

7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똑같은 얘기잖아요.)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여기는 신은 가져가라고 그러네요. 그죠? 지팡이도 가져가라고 그러고.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누구 말을 들을까요. 누가 더 높아요? 마태하고 마가 하고~ 성경이 이렇게 어긋나게 기록을 하고 있는 건 주머니나 전대나 신이나 지팡이나 두벌 옷이라는 것이 이 역사 속 아담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아님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 것 갖고 헷갈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건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된대는 거예요. 이 역사 속 그것들은. 가지면 좀 편하고 안 가져간다고 전해질 복음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반드시 가져가라는 거예요. 신 안에 담긴 발, 주머니 안에 담긴 보물, 주머니 안에 담긴 돌, 보석, 주머니 안에 담긴 양식 이건 반드시 가져가라는 거예요. 주님이 말씀하시죠. 내가 그런 것 없이 너희들 보냈을 때 너희들에게 결핍이 있더냐~ 그래요. 부족한 것이 있더냐~가 결핍이 있더냐~ 이런 말이거든요. 결핍이 있더냐~ 그랬더니 제자들이, 아니요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것도 우리가 두 가지 메시지로 이해를 할 수 있어야 되요


그 첫 번째가 그 유물론적 개념의 그 아래의 땅적 개념에 그런 것들은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가르침이에요. 그런 것들은 안가지고 간다고 그래서 아무런 복음이 전해지는 데에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없어도 되요


그러나 두 번째는 그와 반대로 진리로서의 주머니와 전대와 신이 없이 아무런 결핍이 없는 자들에게 무슨 열매가 맺히겠니? 그러니까 가갖고 귀신이나 쫓아주고 왔지~ 그런 말이란 말이에요. 어떻게 너희들은 그것이 없이 결핍을 못 느끼고 귀신이나 쫓아주고 병이나 고치고 와 갖고 어떻게 그걸 자랑하고 있니~ 이런 말과 말임과 동시에 그래 아래의 그 주머니, 전대, 신이라는 건 복음이 전해지는데 있어서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런 두 가지 메시지가 같이 들어 있는 거란 말이에요. 여기에요. 그게 그 말이잖아요


그래서 주님이 그 말씀을 하신 후에 그러나 이제는 반드시 주머니와 전대와 신을 가져라~ 겉옷 검으로 바꿔~ 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이제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 내가 ‘아노모스’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육체에 매이지 않는 그 존재로 너희에게 갈 거야~ 보물로, 양식으로 발로 너희 안으로 갈 거다. 라는 것입니다. 자 쉽게 말해 이 땅의 보물은 절대로 하늘에 쌓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리가 사랑으로 흘러가는 데에도 전혀 무익한 거란 그런 말이에요. 따라서 자신이 하늘들 안에 그 보물이 되지 못한 자들은 그 어떤 훌륭한 도구들을 동원하고 멋진 외모로 치장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복음 전파의 도구로는 절대 사용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뭐 선교회 전략이니 선교회 뭐 방법이나 도구들의 개발이라느니 이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들이라는 겁니다. 그 내용을 갖고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고 순 전략만 짜고 앉아 있어요. 땅 아래에 그 주머니, 그 전대, 그 지팡이만 준비하고 있다니까요. 주님은 그거 안 가져가도 아무 결핍 없어~ 그러는데~ 네가 보물이 되어서 가야지~ 네가 검이 돼야지~ 이러는데 그래서 주님이 마치 일구이언 하신 분처럼 어디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져가지 말라고도 하셨다가 어디에서는 반드시 가져가라~ 라고 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런 구절들을 표피적으로만 이렇게 이해를 해서 엉뚱하게 뭐 하나님이 다 해주셔 그런 식으로 가면 안 돼요. 진짜 가실려거든 제일 먼저 여러분이 그 진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이가 돼야 되고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멋지게 떠나는 거예요. 잘 준비해서 그래서 저는 그래요. 가까운 이들에게 어디가서 전도를 할 때 성경을 펴 놓고 그에게 충분히 성경을 봐가면서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으면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그래요. 함부로 가갖고 엉뚱하게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됩니다. 저렇게 됩니다. 이딴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죠. 그거는 침략이에요. 침공이에요. 그렇게 선물 싸 들고 바리바리 싸 들고 가서 그냥 즐겁고 행복하게 그렇게 살던 그들에게 문명의 맛을 보여주고 오히려 그들을 문명의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 거 아닙니까? 뭐하는 짓이에요. 그게요


, 진리를 전하러 갈 때에 지팡이를 가져가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이것만 규명을 해드리고 하여튼 본문의 이야기는 제가 정리를 해서 마쳐 보게요.


그 지팡이라는 단어 (마켈/מקל/)이라는 히브리어는 진리를 아래의 것으로 가르치다. 라는 뜻이에요. 지팡이라는 뜻의 그 단어 문자가 ‘라메드’ 거든요. 그것도 지팡이에요. ‘가르치다.’ ‘인도하다’ 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그 지팡이라는 그 단어에 사전적 의미가 뭔지 아세요? ‘싹트다.’라는 뜻이에요. ‘싹트게 하다.’ 지팡이는 반드시 싹트게 하는 역할을 해야 되요. 마른 나무에 저주받은 나무에 싹이 트게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튼 거예요. 그게 진짜 지팡이에요. 다른 지팡이는 죽은 지팡이에요. 지팡이를 생나무로 가지고 다니는 거 보셨어요? 잘 말려서 딱딱하게 해서 가지고 다녀야 되요. 그거는 싹이 틀수가 없는데, 진짜 지팡이는 반드시 싹이 트게 하는 가르침의 지팡이여야 되는 거예요. 지팡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시도 놓아서는 안 되는 진리의 말씀이요. 그게 나에게 가르침이고 나를 인도 하는 거니까 그게 지팡이에요.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거예요. 지팡이에요. 지팡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너희들 지팡이, , 진리의 띠는 반드시 갖고 오라고, 그리고 그 재물을 먹어 마음으로 갖고 나오라 그래요. 애굽에서 나올 수 있는 자는 지팡이, , 띠 반드시 가져야 되고 그 재물을 먹어 네 안에 품고 나와야 된다. 이런 말이에요.



출애굽기 12:11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찌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그러면 거기서 나와야 하는 자들은 전부 이렇게 먹어야 되는 거죠. 그러면 전부 지팡이를 갖고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럼 한 200만이 전부 지팡이 짚고 다녔겠네요. 그런 말이겠어요? 그들이 다 죽었을 때 지팡이 200만개? 그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럼 옷이 해지지 않고 신이 낡아지지 않았다는 말도 그런 말이겠어요? 생각을 해 보세요.


시편 23:4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여 어디로 끌고 가지요? 쉴만한 안식의 물가로 끌고 가는 거예요. 물이 있는 곳으로. 지팡이는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반드시 지팡이는 가져가야죠. 아니 내가 지팡이로 가야죠. 그래야 그들을 인도하죠. 이 지팡이가. 그런데 왜 주님은 어떤 곳에서는 지팡이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그랬을까요?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의 육신을 의지하는 지팡이 그게 뭐냐면 자기의 행위이기도 하고 자기의 스팩이기도 하고 뭐 이 세상의 물질이기도 하고 그게 우리가 의지하는 지팡이잖아요. 그걸 가져가서 그걸 근거로 내 나라를 전파할 생각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지팡이 가져가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지팡이 가져가라는 거예요? 싹 트이는 지팡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지팡이 그 지팡이 가져가라는 거예요. 육적 지팡이가 있는 이들이 어떻게 그 영적 지팡이인 진리를 의지 하겠습니까? 의지 안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지팡이 치워라~ 그러는 거예요. 어디에서는. 어디에서는 지팡이 가져야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애굽 술사들이 똑같이 지팡이를 가졌는데 그 지팡이가 뱀 이였습니다. 그랬더니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어서 그걸 먹어 버리죠. 그러니까 애굽 술사들이 가진 지팡이 그런 지팡이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마가가 ‘지팡이는 가져가야지’이렇게 기록 한 거예요. 그러니까 ‘가져가라’, ‘가져가지 말라’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위의 것이냐 아래 것이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서는 지팡이를 가져가랬다가 어디서는 가져가지 말랬느냐~ 그런 질문 할 게 아니라니까요. 그거는 그건 유치원 수준의 질문인 거예요. 그거는요. 대단한 거 발견한 것처럼 말이지~ 어디 성경에 이렇게 모순되는 것들이 적혀 있다고 전혀 모순될 거 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영적 의미의 지팡이와 주머니는 가져가야죠. 그리고 귀하고 귀한 보물 같은 ‘돌’ 즉 그리스도로 해석된 예수라는 ‘돌’도 가져가야죠. 그 돌이 뭐에요? 양식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속전이니까. 그런 주머니 속의 그 양식, 주머니 속의 그 돌, 그 보물, 그거 가지고 아무도 물리치지 못한 철옹성 같은 장군 하나를 물리친 존재가 있으니 다윗이죠.

다윗이 몇 번째 아들? 일곱 번째 아들이에요. , (7)이 기름 부음을 받으면 팔(8)이 됩니다. 제가 나중에 주일날 설명해 드릴 건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게 다윗이에요. 다윗이 칠(7)이 기름 부음을 받으면 완성이 되는데 그게 샬롬이에요. 누구에요? 솔로몬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성전이 완성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이제 다윗 이야기하는 거니까 다윗이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수 없는 이 ‘호 코스모스(κόσμος/G2889)’의 그 세상 그 뜨인 돌이 부셔버린 그 신상 있죠? 그것과 같은 그 ‘골리앗’ 있죠. 그걸 갖다가 박살을 내는데 뭘로 박살내는지 아세요? 지팡이, 주머니, 돌 이걸로 부수는 거예요.

사무엘상19:39-51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누구의 칼이에요? 사울의 칼입니다. 그건 안되죠.)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사울의 옷과 칼를 벗었습니다. 세상의 지팡이 전대로는 안되는 거죠. 그럼 뭘 가지고 가는지 보세요.)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이게 지팡이입니다.) 시내에서(시내라는 건 흐르는 물이란 뜻이에요.) 매끄러운 돌 (흐르는 물에서 매끄러운 돌, 이게 ‘벤’이에요. ‘벤’ 흐르는 물에서 나온 돌은 진리겠죠. 당연히) 다섯을 골라서 (다섯으로~하나님이 열의 계명을 우리에게 던저 주실 때는 다섯 다섯으로 줍니다.) 자기 목자의 제구(이 제구라는 단어가 성전에서 쓰이는 그릇, 기명 이런 뜻이에요.) 곧 주머니에 넣고(주머니 나오네요. 주머니에 뭐가 들어가요? 물에서 나온 다섯이라는 그 돌. 그 돌이 주머니에 들어가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물매라는 건 휘장이라는 단어에요. 이게. 휘장. 희한하죠?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휘장 열폭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어요. 어떻게? 다섯 다섯으로 찢어졌어요. 그런데 이 휘장이라는 단어가 어떤 뜻으로, 뜻을 담고 있냐면 ‘새기다’, ‘던지다’ 이런 뜻이에요. 그걸 ‘물매’라고 하는데 물매가 난 뭔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돌을 묶어서 던지는 이렇게 돌리는 건가 그런 건가 보죠? 물매.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고 있어요~ 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물매가 뭐에요? 하여튼 던지고 새기는 거예요. 그런데 잘 보세요. 새긴 걸 던진 적이 있어요. 시내산 아래에서 돌에 새긴 걸 던진 적이 있어요. 어디에? ‘금소’에게 율법이죠. 그죠? 거기에다가 던져서 심판이 일어났던 적이 있는데 그걸 물매라고 그래요.

블레셋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블레셋은 지금도 저 팔레스타인이 블레셋이거든요. 아직도 자리를 못 잡고 저렇게 헤메고 다니죠. 이렇게 굴러다니다. 정착하지 못하다. 이런 뜻이에요.) 41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이 ‘아름다움’이 ‘그 발이 아름답다’의 그 아름다움이에요. 아름다운 어떤 이가 기름부음을 받아~ 기름부음이라는 것은 진리, 기름 같은 말이니까 자, 진리를 가지고 아름다운 어떤 이가 팔(8)이 되어 가는 거예요.)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공중의 새와 들짐승은 아래 세상의 그 옛 성전과 그리고 그 진리를 갖지 못한 ‘네페쉬하이’를 짐승이라고 해요. 다윗 보고 ‘내가 너를 그 먹이로 주겠다.’ 이게 울법주의자들이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인데. 아니죠~ 우리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공중의 새, 옛 성전, 그 들짐승의 먹이지~’ 이렇게 얘기해야 되는 거죠. 보세요)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이 칼이 ‘헤레브’에요. 율법주의, 네가 나에게 공격무기로 쓰는 건 그 칼 밖에 없지~ 그런데 나 칼 없어~ 그 칼 없다. 그런 말예요.)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쉠’ 뭐에요? 분석된 그 진리, 그 말씀, 나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너한테 간다. 라는 거예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스라엘 군대가 나라는 거예요.. 내가 성령의 검으로 가는 거예요. 내가 간다. 말씀으로 너한테 간다)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여기도 ‘헤레브’에요.)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그 주머니에요.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그 주머니에 넣어서)

돌을(‘벤’)취하여 물매로(휘장, 그리고 율법에게 던져진 새겨진 그 돌 이야기 하는 거죠)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땅과 하나가 되었어요.)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어떤 칼을 쓰는지 보세요.)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럼 율법의 칼이네요.)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율법의 칼이 율법이라는 가뭄, 그 칼이 율법주의자에게 들리면 ‘말고’에요. ‘말라키’의 귀를 자르는 칼이 되지만 진리의 사람들에게 그 율법이 들리면 그 율법주의자들을 공격하는 진리의 성령의 검이 되는 거예요. 목을 잘라 버리는 거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이 골리앗, (골’야트/גּלית/H1555) 이 말이 벌거 벗다. 이런 말이에요. ‘벌거벗은 포로’, ‘수치스런 포로’, ‘선악과 먹고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 그 이야기 하는 거잖아요. 발가벗은 자 하나가 ‘내가 이세상의 왕이고 나를 이길 자는 없다.’ 하나님처럼 되어 있는 거죠. 그것을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그 주머니, 그 보물, 그 신, 그 지팡이가 되어 그 앞으로 가는 거예요. 가서 그 돌을, 물매 그 다섯으로 그의 머리를 쳐 죽여 버리는 거죠. 그리고는 그의 칼을 빼어 내가 진리의 성령의 검으로 갖는 거죠. 그죠? 그것으로 그 상대의 목을 자르는 게 여러분의 역사 속 인생인 거예요. 그게 칠의 사람들의 인생이에요. 그러면 그를 팔이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노아의 방주에서 나온 사람들이 ‘팔’인 거죠.

그리고 그들을 팔의 날에 할례 받은 자 라고 하는 거예요. (왜 난지 팔일 만에 할례하는지 아세요? 거기까지 하면 또 밤새워야 되니까 나중에~) , 그렇게 죽은 율법주의자들은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주머니와 지팡이와 전대와 보물 즉, 가장 귀한 돌을 담는 그릇임과 동시에 보물인 것이고 그것을 마음으로 가지면 그게 양식인 거고 그게 이웃의 죄를 대속하는 속전, 돈이라고 번역 되었지만 ‘은’, 속전인 거고 그리고 그것이 속옷과 겉옷 즉, 짝으로서의 옷 인 거죠. 그러니까 지팡이, 주머니, 전대, , 양식, 두벌 옷 이건 반드시 가져가야 되는 거죠. 그러나 아래의 것은 아닌 겁니다. 그래서 ‘가져가지 마라’도 맞고 ‘가져가라’도 맞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그게 그건지 알죠? 누가 뭐라고 그래도~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아래의 것들으로 가지고 가면 자신의 능력과 재주만을 자랑하면서 실컷 자기의 의만 쌓다가 오는 엉뚱한 일만 하게 되는 거예요. 따라서 말씀을 땅에 쌓은 보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은 평생 자기의 의만 열심히 쌓다가 멸망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거고 말씀을 하늘의 보물로 쌓아서 그 보물을 가진 주머니가 되어 보물이 되는 이들은 그 주머니 안의 보물, 그 신발 안의 발, 칼집 안의 검, 주머니 속의 양식을 올바로 전하면서 하나님의 귀한 보물로 살게 되는 거예요. 그게 보물이에요.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 여러분을 보석으로 보물로 그려놓은 거예요. 하나님이 그러는 거예요. ‘이게 내 보물이야’ 내가 보물인데 내 밖에, 내 환경이 그까짓 거 보물 좀 아니면 어때요. 내 하나님이 나보고 가장 귀한 돌, 가장 귀한 보물이라는데 그 의식이 없으니까 내 밖의 것을 자꾸 귀한 보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내 껍데기를 귀한 보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닌 겁니다. 여러분이 보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물입니까? 아니면 티끌로 돌아갈 땅입니까? 잘 고민해 보세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르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아파르’로 티끌로 받고 땅을 구축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는 이들이 이렇게 부지기수인 이때에 그것을 우리 하늘들 안에 보물로 쌓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이 진정 진리를 사는 하나님 백성들의 삶인 줄 깨달아 알게 하시고 그것이 행복이며 그것이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G�F� PI � 고 하는데 정복이 뭔지 한번 보란 말예요.

미가서 7:19

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여기서 죄악이라는 그 말이 ‘아본’인데요. ‘아본’은 이 아래의 것.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써 놓고 죄악이라고 써버려요.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 그걸 그대로 받아 버리면 그게 거짓이고 그게 죄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발로 밟으신데요. 그런데 거기서 쓴 말이 정복하다 ‘카바쉬’란 말예요. 그런데 ‘카바쉬’란 말이 뭐냐면 아래의 것으로 전환해준 그 성전을 그게 뭔지 분석하여 가르치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렇게 써 놓고 정복하다 그래요. 그러면 죄악을 정복하다. 죄악을 짓밟았다. 죄악을 발로 밟으셨다. 라는 말이 ‘카바쉬’ ‘아본’인데 그 말을 다 풀어버리면 눈에 보이는 아랫것들을 그렇게 전환하여 준 그것을 성전으로 참 성전으로 하늘로 분석하여 가르치면 그걸 이김이라고 써요. 그래서 계시록에서 이겨라~이겨라~이겨라~가 그 이김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나타난 그것을 그 위엣 것으로 깨달아 알아 그것을 그 진리로 덧입히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카바쉬’ 이김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5:53~54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이 말이에요.)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걸 ‘네코스’ ‘니케’ ‘니카오’ ‘이기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긴다. 아래의 것. 죽어야 할 것. 부정한 것. 어두운 것 그것이 그게 아닌 걸로 옷을 입어~ 그걸 이긴다 라고 한단 말예요. 그렇게 되면 생육과 번성과 충만과 다스림과 정복이 완료 되는 거죠. 그게 셋째 날의 약속이었잖아요. 내가 선악과로 씨를 가진 열매로 일하는 그 열매 나무로 나오게 할 거고, 푸른 풀에 씨를 담고야 말거야~ 그랬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담겨진 자들이 바로 이거를 그렇게 알아 진리로 알아 그게 그거지~ 라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면 그게 정복이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이기는 거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이겨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오탐’들(하나님이 완성한 진리) 그들에게 뭘 준다고 그래요? 양식으로. 보세요.

창세기 1:29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양식이) 되리라

이 양식이라는 말 ‘오크라’라는 말인데요. 이 양식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아랫것으로 준 것을 가르치는 말~ 이렇게 써 놓고 이걸 양식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아랫것으로 준 그것들을 이게 뭔지를 가르쳐~ ‘라메드’ ‘가르치는 그 말’을 성경이 ‘양식’ 그런다니까요. 그러면 여러분의 양식은 뭐에요. 그 말이란 말예요. 예수그리스도의 입으로 나온 그 말이 생명나무 실과였던 것처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바로 양식인 거예요. 그런데 씨 맺는 모든 풀싹 그리고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 모든 이라고 써 놓고 나무는 단수에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선악과, 생명나무 두 나무처럼 보이지만 그건 한 나무라는 거예요. 이 나무로 이걸 알면 되는 거지~ 두 나무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콜’이라고 써 놓고 나무는 단수에요. . 그러면 뭐에요? 여러분이 그 선악과 그 율법, 그 아래의 것을 가지고 그 진리를 이제 말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여러분이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죠? 그리고 씨를 씨 뿌리는 풀이기도 하죠? 그죠? 그걸 양식이래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양식이네~ 그게 바로 내가 죽어 너를 살린다. 라는 개념인 거예요.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네가 먹어라 라는 건 내가 네 양식이다. 라는 건 그래서 초대 교회 때는 저 놈들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인간들이라고 그렇게 오해를 받았다니까요. 하두 예수님이 자기를 먹으라고 그래갖고. 그러니까 먹으라는 게 그 안에 들어 있는 그 말을 먹으라는 거예요. 그걸 양식으로 주겠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이들에게는~

창세기 1:30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입니다. 그리고 공중의 모든 새, 그리고 우글우글거리며 땅에 기는 모든 것. 그들에게는 푸른 풀을 식물로 주리라)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푸른 풀이 뭐라고 그랬어요? 텅빈 거. 그러니까 보세요. 오늘날도요. 그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어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건 씨를 담고 있는 진짜 양식이고 어떤 거는 텅빈 거예요. 그거 먹으면 죽는 거예요. 왜 인류의 모든 주식, 양식은 다 씨일까요? , , , 옥수수, 감자, 고구마 전부 어떤 모양이든 그거 심으면 나는 것들을 주식으로 먹여요. 씨를 먹어야 되는 거예요. 나머지는 간식이라니까요. 아이스크림만 1 365일 먹으면 안 된다 말이에요. 그 씨를 먹어야 너희는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텅빈 걸 주면서 이게 씨라고 사기 치면 지두 죽고 그걸 먹는 사람들도 죽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안에 그 씨가 없으면 이 앞에서 던지는 말이 저게 씨인지 텅빈 건지 몰라요. , 그러니까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금식해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고 어떻게 금식을 해야 하는지 잘 아시겠죠? 성경이 말하는 금하다의 금식은요 禁 이게 뭐냐면 하늘의 하나님이 요게 일자 위에 하나 아래 셋, 아래서는 셋으로 보여요. 이게 하나님이 셋으로 일하시는 분이니까 이게 제물 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이거는() 제단을 이야기 할 때도 이걸로 쓰죠. 그래서 이렇게 그 하나이신 하나님이 아래에서 셋으로 일하시면서 그 하나님과 인간이 한 곳에서 같이 먹고 마시면 그걸 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문자라는 건요. 원숭이들이 쓰던 어떤 뭐 감탄기원론 이런 것도 있는데, 아 어 헉 헐 이런데서 언어가 발달했다고 그러는데 천마의 말씀. 이천년, 삼천년 전의 책들을 제가 요즘 보는데요. 같이 선생님하고 보는데, 그때는 문법이 더 복잡해요. 원숭이들한테까지 가면 아마 머리 터질 거야~ 천만에요 언어는 애기들 한번 엄마가 애기들한테 말이라는 걸 아예 차단하고 안 가르쳐주면 그 아이는 말을 못 배워요. 말은 밖에서 줘야 받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바벨탑의 현장에서 인류에게 말을 한 번에 주셨다니까요. 그러니까 보세요. () 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두 나무 ()를 주시면서 이거는 하면 안 되겠지~ 한 게 禁이에요. 그러니까 그거는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한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항상 문제가 뭐냐면 婪 여자들이 여기에 딱 있으면 탐심할 때 탐(탐할람)이에요. 그러니까 회개하세요. 아니 그 여자가 나에요. . 이 아래에 있는 것들. 그것들이 그 남편을 안 사랑하고 그 아랫것들 사랑해 버리면 그걸 그냥 동성애라고 하는 거예요. 뭘 먹어야 되고 뭘 먹지 말아야 하는지 이제 뭐 명쾌하게 이해가 가시죠? 설날 잘 보내시고 다음 주 수요일날 뵙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에게 꼭 먹어야할 것을 허락해 주셨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그렇게 금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해야 할 것을 먹고 먹어야 할 것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 장대 달린 ‘샤라프’ 불 뱀이 뭔지 알게 하시고 그 감춰진 날개를 여섯으로 활짝 열어 그 진리를 볼 수 있는 ‘자칼’과 ‘네케바’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