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 47 하늘에 쌓는 보물과 땅에 쌓는 보물 마태복음 6:19~21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37

산상수훈 47 하늘에 쌓는 보물과 땅에 쌓는 보물






마태복음 6:19~21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여러분이 너무 잘 아시는 그런 내용이죠? 그죠. 이 땅에다 보물을 쌓지 말고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라~ 하늘에다 어떻게 짊어지고 올라가도 방법이 있다. 교회에다 헌금을 하면 하늘에 쌓여질거다. . 그죠?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이 본문은 교회의 십일조나 헌금을 독려하는 데에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는 그런 본문입니다. 땅에다가 보물을 쌓아두게 되면 도둑도 염려가 되고 좀과 동록도 염려가 되지만 그 재물을 교회에 헌금으로 내게 되면 그 즉시 그 재물은 하늘 위에 그 사람의 사유재산으로 쌓이게 되고, 그가 천국에 갔을 때 그가 쌓은 만큼의 하늘보화를 상급으로 받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목사들이 회중들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제가 심지어 아주 새파란 햇병아리 전도사 때도 아 이거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을 했던 구절인데요. 그러나 그건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상급과 더 많은 보화를 쟁취하여 하늘에서조차 승자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그런 회중들의 그 더러운 욕망이 자초한 것이기도 해요. 그게 사실은 앉아서 듣는 회중들의 원함이거든요. 정말 그렇다면 먹거리조차 마련하기가 힘들어서 헌금은 생각도 못하다 죽은 가난한 사람들은 극빈자들은 천국에 가서도 똑같이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는 건가요? 뭐 쌓은 게 없잖아요? 천국에다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천국에서도 자기가 땅에서 획득하고 성취하고 쌓은 것을 근거로 해서 부자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땅의 부자들인 거예요. 그들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만일 그러한 심보로 교회에 헌금을 열심히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늘에 보물을 쌓은 것이 아니라 지옥의 노자돈을 열심히 저축한 겁니다.


우리는 이 보물의 이야기가 6 1절의 그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의를 전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의 앞에서~ 이렇게 번역을 해 놨는데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의를 전해서는 안 된다.’ 라는 그 대주제 속에 포함된 이야기임을 놓쳐서는 안돼요. 그 것은 말씀의 표피적 이해, 그 땅적 이해를 가지고 진리를 전하는 행위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잖아요.


5장 마지막까지. 살인하지마. 간음하지마. 거짓 증거하지마. 이거를 완료해서 사랑으로 네가 갖고 그걸 사랑으로 흘려줘 그리고 이걸 온전이라고 그래. 그러면 이걸 어떻게 흘려 줄 건지~ ‘주의하라’로 6 1절이 시작되죠. 그죠? ‘주의하라’에요. 첫 단어가. ‘주의하라’ 어떻게? 그걸 흘려줄 때 눈에 보이는 아랫것으로 보이는 모형으로 그대로 주면 안돼~ 표피적으로 그걸 그냥 주면 안돼~ 이걸 경고하는 그 맥락에 들어있는 거란 말이에요. 지금. 이게


사랑으로 완성된 계명을 전할 때에 그 내용이 아닌 눈에 보이는 표피적인 것으로 전하게 되면 큰일 나는 것이다. 라는 그런 경고에요. 그걸 구제와 기도와 금식의 문제로 계속 똑같은 내용입니다. 계속 설명해 오고 계신 주님이 보물의 문제로 다시 한 번 반복하여 설명해 주시는 거예요. 따라서 땅의 보물과 하늘의 보물은 그 말씀의 땅적 이해와 하늘적 이해의 대조로 보아야 되는 거지. 뭐 이 땅에다가 땅을 뭐 보물을 쌓아 놓은 사람은 저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상급이 하나도 없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아니란 말입니다. 이사야서로 가서 성도가 쌓아야 할 보물이 무엇인지 한번 보죠.



이사야 33:6

6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오짜르’ 히브리어로 이게 보물이에요. 보물이 뭡니까? 여호와의 구원, 지혜, 지식, 경외의 풍성, 여호와의 그 경외함, 여호와를 그 경외함. 이것이 보물이야~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요. 그 진리를 올바로 알게 돼서 그 여호와를 내가 경외하게 되었다면 그 안에 보물이 있다. 이런 말입니다.



잠언 20:15

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금과 진주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말씀의 상징물들입니다.)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오짜르’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보배니라

진짜 보물은 금과 진주 그것들이 상징하는 바로 진리의 말씀이다. 라는 거예요. 그게 너희들의 보물이다.

고린도후서 4:6~7

6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이 ‘프로소폰’이라는 거는 예수그리스도가 갖고 있는 그 눈에 보이는 어떤 것, 안에 들어 있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그 겉으로 드러난, 나타난 것을 ‘프로소폰’ ‘파님’이라고 한다고 그랬죠? 그 예수 그리스도의 표피적인 그 모습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고 그래요. 그것을 보배, 보물이라고 그래요. ‘데사우로스’ 똑같은 단어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피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그 영광의 빛을 아는 것. 그것이 보물이다. 그래요. ‘데사우로스’ 그런데 무엇이 그 보물을 담고 있어요? 질그릇이 담고 있습니다. ‘오스트라키노스 스큐오스’인데, ‘스큐오스’는 성전에서 쓰이는 기명들이라고 그랬죠? 로마서에서 바울이 그걸 그릇이라고 인제 우리 개역 성경에 번역을 했는데 ‘그 그릇은 우리다’라고 그러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흙으로 만든 그릇, 그게 바로 우리란 말이에요. 그런데 흙으로 만든 그 그릇, 그 땅의 그릇은 보배를 담고 있을 때, 오늘 본문에서는 "보배를 하늘에 쌓아" 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게 질그릇 안에 들어 있다고 그래요. 흙으로 만든 그릇, 그런데 그게 우리라고 그래요. 바울은. ‘스큐오스’ 


그러면 우리가 그 보배를 담고 있으면 질그릇인 내가 뭐가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하늘이 된다는 이야기에요. 그 질그릇이 보물을 품게 되면 거기가 하늘이 되는 거예요. 거기다가 그 보물을 쌓아라. 라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먼저 선행되어져야 될 것은 내가 하늘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하늘이 된다. 라는 게 굉장히 뭐 엄청난 그런 이야기인 것 같은데 땅에서 나오면 하늘로 함몰되는 거예요. 거기가 하늘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좀 더 명확하게 보물의 정체가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2:2~3

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 같은 겁니다.) 

3 그 안에는(그리스도 안에는 )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보물 ‘데사우로스’)가 감취어 있느니라


어디에?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뭐에요? 진리의 영, 진리잖아요. 진리 안에, 말씀 안에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 라는 거예요. , 이제 주님이 말씀하시는 보물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대충 감이 잡히시지요? 교회에 내는 헌금 그런 거 아닙니다. 여러분. 주님은 그 보물을 쌓는 일을 이렇게도 설명을 하신 적이 있어요.



마태복음 12:33~37

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35절의 쌓은 선이라는 말이 ‘아가도스 데사우로스’에요. 직역을 하면 ‘선이라는 보물’이에요. 보물이라는 말이 개역 성경에는 생략 되어 있죠. 그죠? 똑같은 단어가 거기에 들어가 있단 말예요. 선이라는 보물, 그렇게 선이라는 보물을 안에 가진 사람은 ‘아가도스’ 선을 내고 악이라는 보물, 이렇게 써 있거든요. 선이라는 보물에 대한 대조적, 비유적 표현이겠죠? 악이라는 보물을 쌓은 사람은 악한 것을 낸다. 라고 그래요. 어떤 것이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있는가에 의해서 그 마음이 선이라는 보물로 가득 찰 수도 있고 악이라는 보물로 가득 찰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그 극단적인 두 보물을 ‘말’이라고 하세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떤 말씀, 어떤 말을 내안에 갖고 있느냐에 의해 그게 선한 ‘아가도스 데사우로스’가 될 수도 있고 악한 보물이 될 수 있다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처음에 우리에게 율법으로 주어지죠. 이 아래의 말로 주어지니까. 율법으로 받아서 진리로 먹어야 보물이 된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그 보물을 새 것과 옛 것이라고도 표현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52

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새것과 옛것(카이노스 카이 팔라이오스)’ 우리 배웠죠 그죠? 카이노스와 팔라이오스, 새것과 옛것이라는 어구 앞에 ‘데사우로스’ 보물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직역을 하면 ‘그 보물 안에서 새것과 옛것을 꺼내다’이런 말이에요. 바꾸어 말해 보게요. 옛것과 새것이 함께 보물이다. 이런 말이에요. (溫故而知新)이란 말 알죠? 옛것 안에서 새것을 깨달아 알면 그게 보물이라는 말이에요. 따라서 천국의 서기관, 즉 말씀으로 섬기시는 하나님에 의해 쓰임을 받는 ‘그람마튜스’ 성경 기록자 이렇게 이해를 해도 되고, 성경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요. 서기관 뭐 이러니까 자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들을 떠올리는데 그냥 성경이에요. 기록자에요. 기록. grammar 알죠? grammar에서 나온 거예요. 여기에서


그 옛것 안에서 새것을 깨달아서 보물로 던져줄 수 있는 자가 천국의 제자 된 ‘그람마투스’ 서기관이다 이런 말이에요. 두 개를 같이 갖고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는 왜냐면 이 둘은 같은 거거든요. 수 없이 찾아 봤잖아요. 그런데 이 옛것을 새것으로 던져줄 수 있는 사람, 그걸 보물이라고 그래요. 보물. 주님은 그 보물을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이라고도 표현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13:44 다 같은 말이에요. 같은 단어입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보물)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여기에서 ‘천국’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인데, 직역을 하면 ‘그 하늘들이 소유하고 있는 나라’란 말이에요. 천국은 공간적으로 저기 어디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이 하늘들이 그 안에 소유하고 있는 나라 ‘바실레이아’ 그거는 섬김이라는 말로 바꾸어 이해하는 게 훨씬 적확합니다. 그러니까 그 하늘들 안에 하나님의 그 진리의 말씀에 섬김이 있다면 그분은 말씀으로 섬기시니까 그가 하나님 나라라는 거예요. 그 섬김이 하늘들 안에 있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가리켜서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당연히 밭은 우리의 육신을 포함한 아래의 모형들을 이야기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너는 땅을 밭을 갈아서 땀을 흘려 먹어야 된다. 라는 게 뭐냐면 아래의 성전 안에서 그 진리를 깨달아 살아야 된다. 라는 뜻이에요. 밭 갈아서 꼭 거기다가 땀을 뿌려야 네가 먹고 살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의 육신을 포함한 아래의 모형들, 그것이 성전 ‘호코스모스’의 세상이라면 보물은 그 속에 담겨 있는 진리를 말하는 거예요. 그 안에 들어 있는 그 보물 그걸 깨달아 안 사람은 그걸 남들이 못 보게 숨겨두는고 가 아니라 어차피 깨닫지 못한 사람 눈에는 안 보인단 말이에요. 그래서 두고 그게 그냥 숨겨둔 거예요. 다른 이들의 눈에는 감추어져 있다니까요


여전히 가서 중요한 게 뭐냐면, 초점이 뭐냐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걸 사더라는 거죠. 남들은 못 갖게 몰래 숨겨 두고 얼른 가갖고 확 사서 그 보물을 캐간 게 아니라~ 그게 너무 중요한 것인지를 아는데 다른 이들은 몰라요. 그래서 두고 가서 내 소유를 다 팔아 여기서 ‘소유’라는 말은 노동이라는 것의 상대적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돈이라는 건요. 여러분. 경제학에서도 그렇지만 그 지폐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거는 화폐개혁이나 뭐 일어나면 금방 쓰레기 되는 거예요. 그거는요. 그런데 그것이 어떤 것과 이렇게 가치 있는 것과 바꾸질 때 그게 가치를 발휘하는 거죠? 그런데 무엇과 바꾸어지냐면 거의가 우리의 생각이나 노동의 댓가로 바꾸어지는 거예요. 그걸 이 땅의 재물이라고 해요. ‘맘모나스’가 그런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우리의 어떤 행위와 노력과 땀과 그런 생각을 어떤 이 땅의 재화로 환원해 놓은 거. 축약해 놓은 게 돈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그런 것들 우리의 행위로 어떤 가치를 만들고 쌓아 놓은 걸 이건 아니구나~ 하고 그 진리와 바꿔치기 하는 거예요. 이게 소유를 다 팔아~에요. 그 소유를 그대로 갖고 있는 자들을 부자라고 하는 거고


, 그러면 그 보물을 담고 있는 하늘은 어디다? 이 천국이라는 단어를요 원문을 보면 ‘에스틴’이라는 3인칭 현재형 동사와 같이 쓰이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천국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라고 이렇게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중에 저기에서 우리가 만날 어떤 공간이 아니라~ 우리는 그 하늘들이 ‘호우라노스’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주기도문에서 익히 배웠습니다. 하늘은 유한의 존재가 무한의 그 하늘을 발견했을 때 그들에게 허락되는 그 하늘로의 동참, 거기에서 창조되는 그 새로운 피조물이죠? 유한의 존재가 무한의 하늘을 발견을 해서 그 하늘로, 땅에서 나와 그 하늘로 동참을 하게 되었을 때 그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카이노스’라고. 그러한 그 새로운 피조물, 땅적 존재에서 하늘적 존재로 이제 천화(天化) 되어버린 그런 성도들의 상태를 ‘호우라노스’ ‘하늘’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하늘들


그렇다면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는 그런 말은 무슨 말이겠냐고요? 하나님의 보물인 진리의 말씀을 땅이라는 우리, 창세기에서 배웠죠? 땅은 반드시 하늘로 이해되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땅은 나쁜 게 아닌 게 되는 거예요. 어차피 우리는 땅에 사는 우리는 땅적인 것들 밖에 볼 수 없어요. 그것 밖에 가지고 있는 게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나쁘면 어떻게 해요? 거기다가 하나님은 진리를 담아 줬다는데~ 그런데 그걸 악하다고 하면 하나님이 진리이신 당신을 담아 둔 그걸 어떤 이들이 악하다 해버리면 하나님을 악하다. 라고 하는 거라니까요. 구약의 논리에요. 그것이요. 그게 선악과 패러다임 아래에 있는 저주받을 죄인들의 실존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진리의 말씀을 땅이라는 그 표피적 개념, 율법으로 이해를 해서 땅인 우리 안에 쌓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늘이 되지 못한 그 땅이 땅적인 것들을 끌어 들여서 이 안에 율법으로 계속 쌓아 버리면 그것이 땅에 땅적 보물로 쌓는 거예요. 여러분 이 땅에서 여러분만 먹을려고 그냥 창고에다가 뭐 금은보화 그냥 가득 채워 놓고~ 이런 거 이야기하는 거 아니에요


실제 LA에 가면 무슨 마켓 사장이 은행에다 돈 넣으면 세금 문다고 방에다가 백불짜리를 차곡차곡 쌓았는데 한 방에 꽉 찼다는데 그런데도 불쌍한 게 뭐냐면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이 세상에서 인색하게 살어~ 먹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고 난 그런 사람들이 제일 불쌍해요~ 차라리 누리기나 하지~ 구두쇠처럼 그냥 덜덜덜 떨면서 나중에 억울해서 어떻게 죽을까 그거. 집에 돈 쌓아 놓은 분들 그냥 펑펑 쓰다가 가세요. 차라리 남으면 교회 헌금도 좀 하고


반드시 그 진리의 말씀을 하늘의 보물로 깨달아서 그러면 이미 그는 하늘이죠? 그러면 그가 바로 그 하늘 안에 보물을 쌓는 자란 말입니다. 무슨 성경이 아니 예수님이 유치하게 너네 땅에서 너희들만 잘 먹고 잘살고 그러면 절대 안 되. 교회에 헌금 많이 해야 되~ 이런 말 했겠냐고요. 그 유한의 실존에 사로잡힌 그 땅적 존재가 무한의 보물을 선물 받아서 우주적 생명에 참여하는 그런 어떤 강렬한 생명의 몰입, 그것이 바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예요.


땅은 단순히 하늘과 대치되는 이 아래의 세상, 욕망으로서의 그 땅 이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땅이라는 건. 땅은 그러한 세속 욕망의 그 중심을 사로잡는 그 땅의 언어를 말해요. 잘 이해하셔야 되요. 여러분. 성경은 온 세상 천지만물을 ‘말씀’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죠? 그 어느 것 하나 말씀으로 창조되지 않은 게 없다고 그러잖아요. 그 말은 말씀을 담고 있는 않은 거는 아무 것도 없다. 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모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말이에요. . 모든 것은 말을 담고 있어요. 인간은 잘못 곡해된 그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말로 습득을 함으로 해서 욕망이라는 것을 갖게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애기들이 말을 엄마, 아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맘마 까까 하면서 그 때부터 꼭 필요하지 않은 어떤 것을 위해 아이들이 울기 시작한다니까요. 그게 말이에요. 말이 말이지 그 말은 눈에 보이는 어떤 이 세상 것들을 하나하나 아이들이 이제 잘못된 표피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인간들은 항상 desire, 욕망에 시달리게 된다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요? 그 말이 네 눈에 보이는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이 따로 있다. 라는 걸 가르쳐야 그들이 갖고 있는 그들이 보는 처음으로 그들이 붙든 그 말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깨질 거 아닙니까? 그걸 땅에서 풀려나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네 진리에서 나온다. 라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그걸로 그냥 받는걸 뭐라고 그래요? 그걸 율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 그러니까 그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세상을 그 유한적 존재의 한계 때문에 그 진리로 보아낼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없어요. 유한적 존재들의 인식과 판단은 항상 모든 걸 ‘노미조’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건 반드시 두 마음으로 ‘에피뚜미아’ 욕망을 생산해 내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 아래의 말에 붙들려 있게 되면 그 욕망이 그를 사망으로 끌고 가게 되요


물론 우리가 진리를 알았다고 해서 그 욕망에서 금방 자유롭게 풀려나는 거는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풀려나지 않으면 죽는다. 라는 그런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애씀을 우리 안에서 찾게 된다니까요. 여러분. 여러분 안에서 그게 나오게 되어 있어요. 반드시 그게 아래의 세상에서 금방 완성된다. 라는 그런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신 그 진리를 담고 오신 주님께서도 육신이라는 외투를 입고 이땅에 오신 거예요


‘내가 바로 진리다’ 내가 ‘알레떼이아’ 아이엠에고에이미 이건 신이 자기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거든요. 나는 진리야~ 라고 말씀 하신 그 분이 그 인간 언어라는 인간 아래의 말이라는 외투를 입으시고 그 진리를 흘려주셨죠? 뭘로? 아래의 말로요. 분명 그 안에는 하늘의 말인 진리가 담겨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 말을 진리로 받지 못했죠? , 인간들의 유한적 존재들의 한계가 폭로된 겁니다. 바울은 그 상태를 질그릇이라는 아주 적절한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준 거예요.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바로 그러한 상태로 역사에 존재를 해요. 보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보물을 볼 수 있는 인식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존재가 없어요. 그들이 가진 잘못된 말, 비 진리가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들은 엉뚱한 것을 욕망하게 되는 거죠.


그 상태에서 그 질그릇이라는 그 땅의 세상 안에 들어 있는 그 보물,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보물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그 질그릇의 파괴와 부정이라는 극단적 방법 이외에 달리 해결책이 없어요. 그래서 진리를 품은 그 육신의 예수 있죠, 역사 속에서의 그 예수, 그 예수가 언약의 기둥 위에서 질그릇으로 깨져 버렸다는 거예요. 다시 살아난 건 그 질그릇이 아니라니까요. 그 안에 있는 보물이 드러난 거란 말입니다. 그걸 그리스도의 영, 진리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예수가 율법이라는 나쁜 말이 되어서 언약의 기둥 위에서 소멸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랬더니 그 예수가 담고 있던 진리라는 내용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반짝하고 드러난 거예요


마찬가지에요. 유한의 존재들의 그 왜곡된 관점, 있죠? 무엇이든지 그냥 두 마음(노미조)으로 갈라버리는 그 ‘에피두미아’의 그 관점은 철저한 해체와 파괴의 과정을 통과해야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존재의 부정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되는 기독교가 진리의 말이 떨어지면서 이게 해체되고 파괴되기 시작하는데 이때 사람은 굉장히 공허함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되나 그걸? 그 상실감을 견딜 수가 없다니까요. 내가 여태까지 믿고 있었던 건 뭐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모든 인간들은 나면서부터 욕망으로 상징되는 그 땅의 언어, 즉 선악과 패러다임에 함몰되어 태어나요. 그러한 땅의 언어, 그 욕망의 언어, 비 진리에 연루된 그 유한 존재의 그 숙명적인 그 고리를 끊어 버리는 그런 영적 해체와 또 궁극적 영적 연합의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자가 될 수 없는 거예요. 그 텍스트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그 텍스트의 본질의 의미, 그 생명 차원의 참여로서의 그 텍스트를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그 텍스트의 그 땅 적 표현인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말아라,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이렇게 되어라, 이런 ‘doing의 패러다임’에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은 그냥 생명을 잃은 그 박재, 그것들 안에서 그냥 관념으로서의 땅적 보물을 계속 쌓아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생명이 없는 것들이란 말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위험성을 여기저기에서 경고해 줍니다. 대표적인 거 하나 예를 들어 드릴게요.



열왕기하 18:3~4

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예배하므로, 섬김으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쏟아 부어주셨던 하늘 양식의 의미도 모르고 우리는 그거 싫어요~ 그랬거든요. 그게 뭔지도 몰라서 ‘만나’라고 지었고, 만나가 What is this? 니까. 그리고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했던 그 이스라엘을 물어 버린 불 뱀과 그 불 뱀의 의미를 너희들이 알면 산다. 라고 달린 놋뱀, 이거를 내용으로 그 텍스트의 본질로 알지 못하고 그냥 물체적인 의미의 그 기둥에 달린 놋 뱀, 그것이 우리를 예전에 살려 줬다. 라는 그런 기억, 그런 소문만 가지고 그걸 그냥 섬겨 버렸단 말예요. 거기서 무슨 소원을 들어주세요. 병이나 고쳐주세요. 이랬다. 라는 말이 아니라 그게 옛날에 우리 조상들을 고쳐줬대~ 죽음에서 건졌대~ 라고 소문으로 듣고 그걸 섬기는 거예요


그게 오늘날 십자가에 달린 예수라니까요. 그냥 소문으로 듣고 그 예수가 이천년 전에 골고다에 매달려서 인류를 살렸대~ 인류의 죄를 대속했다. 라고 소문으로 듣고 그렇다면 우리도 살려주지 않을까. 라고 열심히 섬기면 그게 느후스단이라니까요. 그 불 뱀과 놋 뱀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바로 그 유물론적 관점의 십자가와 그 놋 뱀인 예수를 죽이라는 얘기에요. 그걸 파괴하지 못하면 이 느후스단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믿는 예수는~ 그것이 의미가 되어 내 안으로 들어와야 된다니까요. 그래야 그게 하늘 안에 쌓이는 보물이 되는 거예요. 그 분이 보물이잖아요. 그리스도가 보물이라면서요. 그런데 그 보물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며요. 그럼 내가 하늘이라는 얘기 아닙니까? 주님이 지금 그렇게 이야기 하고 계시잖아요. 그 이야기를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렇게 끊임없이 그 역사적 예수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 하는데 오늘날도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예수를 사랑할 수 있어요? 묻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아니 그 예수를 사랑하면 안 된다니까요. 그런데 이게 무슨 대단한 신앙인 것처럼 어떻게 하면 내가 예수를 더 사랑할 수 있어요? 이러고 앉아 있는 거예요. 지금. 그런 십자가는 당장 걷어치워야 되는 거예요. 그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의 텍스트를 길어 올려서 그것을 자기 마음으로 가질 수 있을 때 그를 하늘의 보물을 쌓는 자라고 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19:16~22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선한 일, ‘아가또스’ 어떤 게 선한 일이고, 어떤 선한 일을 해야 내가 영생을 얻습니까? 그랬더니 주님이 선한 것, ‘아가또스’는 그 분이지~ 어떤 일을 하여 완성하는 게 아니야~ 거기에 이르는 게 아니야~ 라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테레오’는 계명을 하나하나 그냥 그 말씀대로 잘 지켜~ 이게 아니라 KEEP 하라는 거예요. 말씀을 그 계명을 완성하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죠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 이니라 

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이를 부자라고 한다고 그랬어요. 자기가 가진 소유가, 자기가 행한 행함으로 자기 안에 쌓아 놓은 소유가 너무 많죠? 부자에요. 이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경고해 주신 나쁜 부자에요. 이거는요.)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여기 가난한 자가 ‘프토코스’라고 그랬죠?)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오늘 본문하고 똑같은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늘의 보물을 쌓는 거라고 그래요? 네가 갖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다 팔아 ‘푸토코스’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다 주고와~ 올 수 있으면, 그러면 네가 하늘의 보물을 쌓는 거야~ 라고 이야기 하죠. 그랬더니)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doing의 문제를 갖고 와서 뭔 일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being의 문제로 하나님만 선해~ 그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으면 너희들이 무슨 일을 doing 한다고 해도 절대 ‘아가또스’ 선이 될 수 없어~ 그 선이 바로 보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버려야 할 그의 소유에 대해 가르쳐 주기 위해 ‘계명’을 끌어 들이는 거죠. , 그 계명을 네가 그 계명 안에 들어 있는 진리라는 그 보물을 낚아 올려서 네가 사랑으로 완성해라 이런 말이거든요. 이것이


그런데 그 부자 청년이 나는 그걸 하나하나 다 지켰습니다. 이렇게 얘기해요. 다 지켰습니다. 그게 바로 버려야 할 부자의 소유라는 거예요. 그걸 버리고 오라는 거예요. 주님이 그거 버리고 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와~ 왜냐면 내가 말하는 대로 네가 그 계명들을 지켜 ‘테레오’ 완성하여 사랑으로 가졌다면 그걸 흘려줄 수 있을 거 아냐~ 누구에게? ‘푸토코스’들에게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그러나 네가 다른 것으로 지켜 갖고 있다면 너는 절대 줄 수도 없고 주지도 못한다. 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는 그것을 남들에게 줄 수도 없었고 그리고 줄 마음도 없었어요. ? 그게 자기가 쌓아 놓은 보물이거든요. 그것에 의해 자기 상급이 결정되는데 어떻게 남에게 줍니까? 못주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그가 쌓은 그 행위라는 땅의 보물이 그를 생명으로부터 떠나게 만든다는 거예요. 여기도 똑같은 단어에요. ‘데사우로스’ 보물.


, 그렇게 보물을 땅에다가 쌓으면 좀과 동록이 해한다고 그럽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좀과 동록이 그것들을 그러니까 ‘압하니조’가 밝게 비치지 못하게 흐릿하게 만든다. 불투명하게 만들다. 이런 말이에요. 못 보게 만들다. 이런 말이에요. 좀과 동록이. 동록은 뭐에요? 동에 녹이 스는 건가요? 그런 말 아닙니다. 이사야서로 가면 좀에 의해 파괴되는 이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가 잘 나타나 있어요.



이사야 51:7~8

7 의를 아는 자들아

(이건 하나님의 의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의죠? 하나님이 의입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하나님을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네 밖의 돌비의 율법을 갖고 있으면 안 되요. 마음에 내 율법을 가진자들아~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는 나를 듣고(내 말을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훼방은 항상 말을 깨다. 라는 말입니다.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그들은 옷 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 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마음에 율법이 있는 자들, 즉 진리를 심비에 새긴 자들의 대척점에서, 그들을 훼방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좀에게 먹힐 자 라고 그러죠? 그들이 율법주의자 아닙니까? 마음에 그 율법을 갖고 있는 자들을 훼방하는 자는 그 밖의 돌비로 율법으로 갖고 있는 자들일 거 아닙니까? 그들은 좀에게 먹힌다고 그래요. 그들의 옷은 의의 겉옷이 되지 못한 무화과나무 잎사귀 옷에 불과한 거예요. 그 옷은 반드시 좀에게 먹혀 파괴되게 되어 있다. 라는 그런 말입니다그들이 바로 벌거벗은 자들인 거예요. 열심히 노력해서 옷을 해 입기는 했는데 좀이 먹어 그들의 부끄러움이 하나도 가려지지 않아요. 해 입긴 해 입었는데. 엉터리 옷이고요


여러분. 재미있는 건 좀이라는 게 여러분 집에 좀약 많이 걸어 놓으시죠? 좀이라는 게요. 자기 집을 뭘로 짓는지 아십니까? 자기 배설물로 짓습니다. 자기가 살 집을 자기 배설물로 져요. 여러분,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라고 했던 거 기억나시죠? 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서 열심을 행한 모든 것을 바울이 뭐라고 그래요? ‘배설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바리새’ ‘파리사이오스’라는 말은 히브리어 ‘파라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건데, 이게 ‘분리하다, 흩어버리다’ 이런 뜻이에요. 뭐든지 주면 분리해~ 둘로 나누어, 뭐든지 주면 흩어버려요. 우리는 하나로 받아야 되는데~그죠? 그게 이 세상의 본능적인 거에요. 그래서 세상은 에너지를 만들 때 핵분열을 하죠? 그러면 핵폐기물, 쓰레기가 쌓입니다. 배설물이에요


그런데요. 태양은요. 에너지를 어떻게 만드냐면 핵융합을 하죠? 거기에는 쓰레기가 생기는 게 아니라 태양이 1초에 400만 톤씩 없어지거든요. 죽어요. 그런데 핵융합은 쓰레기가 생기는 게 아니라 커져요. 그만큼. 그래서 주변의 있는 것들을 태양으로 먹어버려요. 먹어서 쓰레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을 태양으로 만들어 버린다니까요. 어떻게 죽어가면서~ 죽어지는데 더 커져요. 이게 하나가 되는 융합이라는 거예요. 연합이라는 거예요. 이것이요. 그런데 세상은 항상 분열을 하면 그 분열은 늘 배설물과 쓰레기를 배출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태양이 점점 커지면 수금지 세 번째네요. 우리가. 점점 먹어들어 와서 곧 과학자들이 그런다고요. 12시가 끝이라면. 우주의 끝이라면 지금이 11 36분 정도 돼있대요. 이제 그것이 수성, 금성 먹고 우리한테 좀 더 가까이 오면 여기는 불바다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은 불로 심판 받는 게 맞다니까요


그렇게 뭐든지 분열해 보는 걸 ‘페레쉬’ 바리새라고 그래요. 바리새인. 그런데 거기에 모음만, 히브리어는 뭐 모음은 아무런 의미 없잖아요. 모음만 ‘페레쉬’로 바꾸면 그게 배설물이에요. 그래서 바울이 괜히 배설물이라고 얘기한 거 아니에요. 자기가 율법주의 아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행한 그것들은 모든 걸 이렇게 분리하고 흩어버리는 배설물 같은 일이었다. 라는 거예요. 자기가 열심히 자기가 갈 천국을 성전을 짓고 있었는데 보니까 그게 똥으로 짓고 있던 성전이더라는 거예요. 그 배설물이라는 말이 똥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그러한 행위들로 자기들의 집을, 자기들의 성전을 열심히 짓고 있는 그들, 그들을 부자라고 한다고 그랬죠? 무슨 부자? 땅의 부자, 다른 말로 똥부자라는 거예요. 그게요. ‘페레쉬’. 똥의 성전. 좀들이 그렇게 자기들의 똥으로 성전을 짓는다니까요


그렇다면 땅에다가 보물을 쌓으면 좀이 먹어서 파괴해 버릴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가 무슨 말이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에로의 그 참여라는 그 진리의 텍스트로 보지 못하고 표피적 율법으로 보게 되면 그게 바로 똥으로 자기의 천국을 덕지덕지 건설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니다. 그런 말인 거예요. 그들이 부자에요. 야고보 사도도 그러한 부자들에게 이러한 경고를 했습니다.



야고보 5:1~3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돈 좀 있는 사람들은 이런 구절 나오면 빡빡 지워 버려요. 아무리 봐도 그 얘기거든~ 부자들아 너희들은 이제 공생, 고생하게 될 거야~ 울고 통곡해~ 그런 말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자는 지금까지 말한 그런 부자이야기 하는 거예요.)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금과 은은 뭐에요? 너희가 만든 성전의 재료들이죠.)  

녹이 슬었으니 (금과 은은 녹이 슨 거고여기서 녹이라는 이 단어는 독이라는 뜻이에요녹슬 때 그 녹이 아니라뱀독 이런 말이에요이게요‘이온’ 뱀독)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여기 증거라는 말이 이게 십계명이에요. ‘말튀리온’ 이거든요. 너희들이 지킨다는 그 율법, 그 계명은 너희들에게 독이 되는구나~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게 좀 먹는 거야~ 그게 썩은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무서운 말이죠.)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그들이 갖고 있는 소유는 전부 썩은 것이고 그들이 입고 있는 무화과나무 잎사귀 옷은 전부 좀이 먹은 옷이며 그들의 금과 은, 즉 그들의 성전 건축 재료는 전부 녹이 슬어 못쓰는 것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녹(이온, 뱀의 독)이 바로 너희가 성전 건축 재료로 사용한 ‘율법(말튀리온, 십계명)’이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그리고 동록이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브로시스’ 는 그냥 ‘고기, 음식, 먹음’ 이런 뜻이에요. 구리에 생기는 녹이 아니라~ 고기라는 뜻이에요. 먹음. 그건 유월절 식사를 가리키는 것임과 동시에 율법으로 먹는 말씀을 상징하는 거죠. 그 고기죠. 그죠? 그래서 하나님은 고기를 달라고 부르짖는 이스라엘에게 고기를 주시면서 저녁의 양식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아침의 양식이 아니라 저녁의 양식이야~ 그렇게 해 놓고 그게 잇 사이에 씹히기도 전에 다 죽여 버렸습니다


저녁의 양식은 광야에서는 먹으면 안 되는 거거든요. 먹고 나왔으면 무교병 떡을 먹어야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말씀을 율법으로만 보면 그게 ‘브로시스’로 먹는 거예요, 그렇게 먹으면 멸망이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는 게 아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사실은 율법의 새 이목을 이야기 하는 거지만 그것을 그러한 율법 지킴을 먹고 마시는 것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브로시스’ 라고.



로마서 14:14~17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 되니라

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먹는 것으로)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먹는 것으로) 망케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바울이,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속된 것이 없다고 그러죠. ‘우데이스 코이노스’ 라는거, ‘우데이스’는 하나도 뭐 뭐 아니다. 이런 말이에요. 하나도 속됨으로 창조된 게 없다는 거예요. ? 그 안에 전부 말씀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무엇도 하나도 속되지 않대요. 그런데 뭐 때문에 속돼진다고 그래요? 그걸 속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어떤 이들에게 그게 속된 거라는 거예요. 그들 때문에 얘가 그 안의 내용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있으면 이걸 속되다. 라고 하는 거죠. 그걸 부정하게 불결하게 보는 이가 있어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게 불결하고 부정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그걸로 심판 받아요. 그런데 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별을 하여 하나님은 부정한 것으로 정함을 알라고 줬지~ 그것 자체를 부정한 거라고 준 게 아니다. 라는 거죠. 그래서 욧바의 베드로에게 내가 정한걸 알라고 부정한 것으로 줬지~ 이제 진리가 왔는데 아직도 부정하다. 라고 하면 어떡하니? 먹어! 그런 거예요. 언제는 먹지 말라고 그랬다가~ 내가 그거 먹지 말라고, 먹지 말라고 그런 거냐? 그걸 먹고 왜 먹지 말아야 하는 걸, 알라고 준거 아니야~ 이렇게 말씀하신 거란 말예요. 그렇게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그냥 표피적으로 구별을 해서 형제들에게 줘 버리면 그게 형제들에게 짐이 된다. 라는 것입니다. 식물로 네 형제들에게 짐 지우지 마~ 그러는 거예요. 율법의 행위로 짐 지우지마~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을 그렇게 구별하여 먹음으로, 그 율법의 행위죠. 이건 정한 거니까 먹고, 부정한 거니까 먹지 말고, 이런 거~ 그런 저급한 나라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라는 거예요. 심지어 개혁주의 목사님들 중에서도 돼지고기를 안 드시는 분들이 있어요. 나 신학교 다닐 때 그 동기가 하나가 돼지고기를 안 먹어서 그 친구랑 밥 먹으로 갈 때는 꼭 닭고기 아니면 그런 집을 가야 돼요.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돼지 고기 집에 가면 안 들어오고요 밖에서 기다려요. 아 참~ 목회 하고 있어요. 지금. 그 교회 교인들은 참 불쌍해요. 그 맛있는 삼겹살을~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지~ 그 까짓 먹고 마시는 것 이런 걸로 정해지고 부정해 지는 거 아니다. 이런 말이에요. 그렇다면 무엇을 먹고 마시던 그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아 알면 잘 먹고 잘 마시는 거잖아요.

고린도전서 10: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먹고 마시는 율법의 규례를 가지고 사람들을 정하다 부정하다 판단하지 말고 그러한 행위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라는 말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오직 주께 영광이로다 이러면서 먹으라는 게 아니라 그게 되요? 허겁지겁 먹지~ 그게 뭔지 알면 그게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뜻이에요.

고린도전서 8:1~4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이거 보세요. 자기가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는 척들 좀 하지 마세요. 게시판 같은 데다~ 드럽게 아는 척들 해 하여튼)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율법적 지식, 즉 표피적 말씀의 이해를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금하는 그 율법의 행위에 지금 비유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이 그러한 지식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지식’이라고 그래요. 어떤 이가 먹은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라 할지라도 그 우상이라는 게 원래 없는 건데 그게 뭔지를 알면 그게 왜 나쁜거냐~ 라는 거죠. 하물며 무엇을 먹은들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도 괜찮은 건데 무엇을 먹은 들 너희가 그것으로 부정해지겠느냐는 거예요. 아는 척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4~23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거 보세요. 먹고 마시는 게 전부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담고 있는 거더라는 거예요.)

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보세요. 본 것만 의지하여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 하는 게 율법주의 신앙이에요.)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누가 한 말이에요? 이거요. 하와가 뱀 앞에서 하는 말입니다.)

22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 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제가 이걸 직역을 해드리게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세속의 유치한 원리들을 버렸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처럼 이것은 집지 말고, 저것은 맛보지 말고, 그것은 건드리지 말라는 따위의 규정에 묶여 있습니까? 이런 것은 모두 한번 쓰고 나면 없어져 버릴 것으로서 인간이 명령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런 규정은 제멋대로의 예배와 과장된 겸손과 부질없는 금욕주의 따위로 현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는 조금도 힘이 없습니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쇼하는 거라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로 그렇게 이해해 버리면 그게 바로 선악과를 따먹는 율법주의자가 되는 무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죄를 해결하는 데에 조금도 유익함이 없는 헛된 짓이라는 거예요. 그럼에도 먹고 마시는 것에만 집착해서 율법의 헛된 양식만 먹고 있는 것이 아담들이라는 거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땅에다 쌓는 율법주의자들은 그 먹음에 의해 파괴되는 거예요. 안 보이게 되는 거예요. 더 안 보이는 거죠. 그게 좀과 동록이 해한다. 라는 말의 속뜻인 거예요. 그들은 이미 도적들에게 도적질 당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서 도적은 두말할 것 없이 양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키겠죠.

요한복음 10:8~10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진짜 양식을 주는 이가 그리스도에요.)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보다 먼저 온 게 도적이요 강도라는데 주님보다 먼저 온 게 뭐에요? 성전과 율법이죠? 그러면 강도요 도적은 누구에요? 그것을 표피 그대로 그 doing의 문제로 율법으로 윤리와 도덕, 그 수준으로 그냥 가르쳐 버리는 율법교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이 도적 강도라는 겁니다. 그게 거짓 선지자잖아요. 거짓 교사잖아요. 그들은 양들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도적질, ‘카바’ 라는 말은 이렇게 ‘덮다’라는 뜻이에요. 여러분.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밝히 드러내 주지 못하고 이렇게 엉터리로 덮어 버리는 거. 가려 버리는 걸, 하나님을 도적질 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도적질하고 회중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적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엉터리로 그냥 법으로 듣고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이미 도적질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들이 땅에다 보물을 쌓는 자들이고, 당연하죠. 땅에다 보물을 쌓으면 당연히 그게 도적질 당하는 거니까 도적이 와서 뚫고 도적질해 간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해야 할 법 정도가 아닌 거예요. 우리는 그걸 먹고 땅에서 죽고 하늘로 연합이 되어서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게 곧 선이죠. 선의 상태잖아요. 그것이.

그것은 곧 뭐라고 그래요? 니들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고 말은 당연히 내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가 있지~ 그 어떻게~ 이런 말이 아니라 그게 네 마음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그 마음으로 심판 받아 죽습니다. 그게 선한 보물이냐 악한 보물이냐~ 선한 말이냐 악한 말이냐~에 의해 심판 받아 죽는다는 말이에요. 네가 어떤 보물을 어디에 갖고 있느냐에 의해 그건 네 마음이 되는 거고 너는 그 마음에 의해 심판 받게 된다는 이런 말이에요.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 말씀으로 땅의 부자가 되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교회라는 집단의 목적이 되어버렸어요. 여러분 옛날에 옛날도 아니죠. 불과 뭐 17세기 까지도 그 유럽의 그 기독교가 프레스터 존이라는 메시아를 찾아다닌 걸 아십니까? 400 500년 동안, 중세 때에 기독교와 무슬림이 엄청난 전쟁들을 치렀잖아요. 그래서 먹고 먹히고 뭐 어마어마한 피를 흘렸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유럽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는데 동방에 프레스터 존이라는 기독교 국가를 관장하고 있는 어떤 왕이 있다. 라고 소문이 퍼졌어요. 그리고 그가 십만 보병을 거느리고 있고 어마어마한 재물을 소유한 그런 존재라고 해서 교황이요 실제로 그 사람을 찾아오라고 그래서 무슬림들 박살내자고 그 사람들을 배를 선단을 파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후에도 유럽의 교회들이 그 프레스터 존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기독교가 500년 동안 그걸 찾아 다녔다니까요. 예수로는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에서 힘을 갖고 있는 어떤 기독교인이 있다는데 그들은 우리를 도와줄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그들의 하나님은 그 정도의 하나님이었던 거예요. 그를 우리의 메시아로 삼겠다고 500년 동안 찾아 다녔다니까요. 종교개혁 이후에도. 그걸 무슨 기독교라고 합니까? 그게 무슨 개혁입니까? 그리고. 기독교는 그렇게 그러한 것으로 이 땅에서 우리의 강함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 진리를 내 마음으로 가져서 그냥 세상에서 없음으로 사라져 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말을 진리를 마음으로 갖게 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게 말이 없어져야 돼요. 자기 입에서 하릴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말이 이게 혹시 다른 이들에게 그냥 내 말로 들려질까봐 겁이 나 말이 없어져야 되는 거라니까요. 침묵은 금이라는 게 그런 의미에서 쓰는 말이에요. 진리는 침묵이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툭 털어서 쏟아 내라고 할 때는 그 때는 폭포수처럼 쏟아내야죠. 그러나 아무 때나 그렇게 가벼이 흘려내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 아래의 세상에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 그런 이들은 지금 기실 도적질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오늘날 교회라는 집단의 목적이 되고 말았죠. 어떻게 해서든 그 말씀으로 착하게 살자 구별된 삶을 살자 열심히 일해서 상급 받자 뭐 그 정도. 모든 종교들이 다 추구하는 거. 그건 진짜 먹는 게 아닙니다. 그게 동록이고 그것이 배설물로 자신의 처소를 자신의 성전을 짓는 좀의 짓거리인 거예요.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보물인 진리를 씨로 품은 하늘이 되셔야 되고, 그 하늘 안에 진리의 말씀을 차곡차곡 쌓으셔야 사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을 주어 파송하시면서 주머니와 전대를 가져가라 그런 거예요. 가져가지 말라 아닙니다. 여러분. 어디서는 가져가지 말라고 그러고 어디서는 가져가라고 그러는데 니네꺼 그거 가져가지 말고 내가 말하는 그거 가져가 이런 말이에요. 그게 무슨 주머니냐면 보배를 담은 주머니, 그릇이 되어 가라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또 그게 뭔지 알아봐야 되잖아요. 다음 주에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이미 이 주머니 이 그릇 안에 보배를 가지고 있는 하늘들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는 진리가 하늘 안에서 그렇게 보물로 쌓여 가고 있고 그것은 어는 도적도 와서 도적질 해가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하늘의 보물을 쌓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그것으로 족하게 하시고 그것으로 행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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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8:18~21

18.노아(노아라는 말은 안식이란 말입니다. , 안식이 드디어 된 거죠.)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그런데 한번 보세요. 아버지가 노아죠? 아들은 뭡니까? 아버지가 내 안에 있으면 내가 아들이죠? 그런데 그를 또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그러고 그를 또 아버지라고 부르죠.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네요. 그럼 아내는 뭐에요? 그 진리를 품어 내 남편으로 품어 안은 네케바가 아내죠? 그런데 그 자칼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내가 아들이 되는 거라고 그랬습니다. 자칼이 ‘남성이 되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여자 안에 남자의 씨가 들어가면 그 여자가 아들이 되는 것을 그 복음을 설명해 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아내도 그거네요. 아들의 아내도 그거. 그럼 보세요. 아버지는 뭐고 어머니는 뭐고 아들은 뭐고 딸은 뭐고 자부는 뭐고 뭐에요? 다 똑같은 거예요. 그냥 하나라니까요. 성경은. 알고 보니까 다 그거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19 땅 위의 동물(이게 ‘베헤마’입니다.)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이제 나왔어요. 새것이 나오는 거예요. 이들이 이제 씨를 전파해야 되는 거예요.) 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자 그 정결한 것들은 육의 죽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정결해지고 거룩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육이 죽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라니까요. 그러면 그로부터 씨가 전파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내가 이제 다시는 땅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라고 그래요. ? 노아의 홍수 사건이 뭐였죠? 위엣 물과 아래의 깊음이 터져 버렸죠? 그래서 섞였습니다. 이 지구가 23.5도 이렇게 기울어져 있잖아요. 여러분 비가 얼마나 왔길래 도대체 기식하는 게 다 죽을까요? 물고기는 비가 많이 와도 죽습니까? 물고기는 살어 있던 건가요? 맞아요? 지구가 이렇게 서 있다가23.5도 정도 이렇게 확 기울잖아요. 그러면 이 지구상의 있는 모든 물이 시속 수천킬로로 휙 돈다고 그래요. 그러면 그러니까 어딘가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의 물고기들이 다 뽀개져서 죽은 화석들이 어마어마하게 별견이 되었는데 그렇게 물이 확 돌아버리면 물고기고 뭐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하여튼 그렇게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난 I don't care 그게 나에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인지를 내가 알면 된다니까요. 그 위엣 물과 아랫물이 섞이면 죽어요. 이건 죽음이에요.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는, 그 위엣 물을 아랫물에 섞어 놓은 게 뭐에요? 그게 아랫것이에요. 그런데 그걸 통하여 어떤 이들은 살더라는 거예요. 그들이 여덟이라는 거예요. 그들이 8이라는 거예요. 8. 그들이 여덟( 8 )이라고 한다. 라고 하는 거예요. 베드로후서에서도 나오죠. 그들을 8이라고 해~ 그걸 설명하는 거란 말예요. 그러면 그게 뭔지를 위엣 물과 아랫물, 위엣 물이 진짜 물이 있겠어요? 그건 진리를 이야기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위엣 물과 아랫물이 이렇게 섞이면 죽음이야~ 너희는 다 죽는 거야~ 그런데 그것으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게 뭔지를 알아 먹어, 그걸로 진리를 알아 살아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방주 안에 들어가서 은혜로 살아나는 여덟이야~를 가르쳐 줬으면 이제는 봤지! 그물 이물이 섞이면 안 되는 거야~ 라고 물로 가르쳐 줬으니까 다시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제는 다 보여 줬어. 그러면 이제 불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끝이에요. 다시는 없어요. 이제.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물로 다시 심판하지 않을 건데, 그건 너희들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그러면 뭘로 심판하겠다는 거예요. 불로. 다 죽여 버리겠다. 라는 거예요. 이제 봐주게 이런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물 심판은 살리기 위한 도구였고, 불 심판은 끝장내 버리겠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불로, 불로 이러고 있어요. 죽여 달라는 거죠. 그거. 불로. 불로. 그럼에도 그 ‘베헤마(בּהמה)’를 가지고 열심히 희생 제사를 드리면 그게 이젠 율법인 거고 그걸 뭐라고 그래요? 그 진리를 남편으로 못 갖고 율법으로 남편을 가지면 그 베헤마(בּהמה)로 내가 간음하는 거죠? 그 베헤마(בּהמה)는 하나님의 그 참 성전을 진리로 주는 말씀인데 그걸 그걸로 못 받고 그냥 제물로 받아버리면 그걸 내가 다른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거니까 그걸 행음, 간음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출애굽기에 이런 율법의 내용이 나오는 거죠.

출애굽기 22:19

짐승(이게 베헤마(בּהמה입니다. ‘베헤마’는 진리로 알아먹으면 되는 건데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그걸 희생제사로 잘못 알아 그걸로 간음하면 죽는다. 이런 말이에요.)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짐승과 뭐 섹스하면 다 죽여 버릴거야~ 수간은 절대 안돼~ 이런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에 그런 말이 왜 있겠냐구요. 아니 인간도 그 안에 진리가 없으면 그 짐승이라니까요.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예수도 진리로 깨달아 지진 못하면 그 예수도 짐승이라고 하는데 다른 짐승과 그 짐승이 뭐가 달라요? 오히려 더 악하지. 그러니까 이런 것 들을 자꾸 곡해를 해서 엉뚱한 사람만 이렇게 죄인으로 몰아서 정죄를 해 버리고 그러는 거예요. 얼마전에 뭐 홍석천이라는 그 탈렌트가 나와 가지고 뭐 얘기하는데 커밍아웃을 하고 사람들이 그냥 다 자기를 돌로 쳐 죽일려고~ 가까이도 못 오게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자살할려고 그러다가 그래도 자기 어머니가 이제 열심히 교회 다니니까 자기가 믿던 그 신에게는 가서 내가 좀 이 외로움과 이 아픔을 좀 털어놓고 싶었다는 거죠. 그래서 교회를 갔더니 교회 사람들이 전부 가까이도 안 오고 저건 왜 왔나~ 이러더라는 거죠. 그 때 그랬대요. 그분이. 아 나는 하나님에게도 버림 받은 건가? 그러면 나는 진짜 죽어야 되는 건가~ 이렇게 생각 했대는 거죠. 아이 누가 참 우리 그 CD 좀 그 이태원 그 양반 식당에 좀 갖다 주세요. 그거 아니라고. 이 살인자들은 여기다 와서 앉아 있는데 그까짓 동성애, 그런 거 아니란 말입니다. , 그러면 땅에 기는 건 뭔가~거기에서 쓰이는 ‘(라메쓰רמשׂ /H7430)’라는 단어는 ‘네 발로 기다, 떼를 짓다’ 이런 말이에요. 다 비슷해요. 그냥~ 그 단어는 ‘우글거리는 (네페쉬 /H5315/동물)하이’ 뭐 거기에서 제가 잠깐 언급을 한 거 같은데, 거기도 ‘솨라쯔(שׂרץH8317-꿈틀,우글거리다)’라는 단어가 있었죠? 그거 같은 말이에요. 기는 것. 우글우글 기는 것. 그건 성경에서 부정하다 라고 그래요. 한번 보까요.

레위기 11:41~46

41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42 곧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가증함 이니라

43 너희는 기는바 기어 다니는 것을 인하여 자기로 가증하게 되게 말며

또한 그것을 인하여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말라

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46.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기어 다니는 것에 대한 규례니

여러분 왜 참 생명을 가리키는 그 부활이라는 단어를 ‘(아나스타시스 αναστασις/G386)’ 위로 똑바로 서다. 라는 말을 쓸까요? 그걸 설명하기 위해 기는 것은 부정하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성경에서 배를 땅에 대고 긴다. 라는 건 배라는 건 자궁이라는 단어거든요. 그러니까어떤 것을 낳게 하는 것을 ‘배’라고 하는데, 거기에서는 올바른 아들이 나올 수도 있고 잘못된 아들이 나올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배, 이것을 그냥 섬겨 버리면 바울이 뭐라고 그러냐면 ‘너희의 신은 배다’라고 했을 때 그 배는 성전인 거예요. 성전은 잘못 된 아들들을 낳습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아요. 인간의 수고로 낳는 아들을 낳죠? 그런데 너희의 신은 배다. 라는 건 너희들이 섬기는 건 하나님이 아니고 성전이네~ 율법이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배를 땅에 대고 땅과 그 배가 그들의 신이 땅과 연합 되어 있어요. 그리고는 그것으로 기동을 하려고 하는 그것. 그게 뭐에요? 뱀이잖아요. 그것이 뱀이라는 거예요. 그건 부정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도 처음에는 그렇게 굼벵이처럼 꿈틀대다가 낳자마자 나중에는 배로 기다가 네 발로 기다가 벌떡 일어나는 거죠. 그러면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람만 그래요. 원숭이도 낳자마자 걸어 다닙니다. 네발로 이렇게~ 그런데 뭐 어딘가에 원숭이가 두발로 걷는 원숭이가 발견 되었다고 그러는데 아니 그런 거~ 여러분 하나님이 뭐라고 그래요? 너 차든지 덥든지 해라~ 안 그러면 내가 토하여 내 칠거다. 그러죠. 그것이 아닌 비슷한 것은 하나님이 토해 내치는 거예요. 그건요. 인간만 이 구원의 과정을 몸으로 그대로 살아요. 부정한 곳에서 정한 곳이 되는 그 구원의 원리를 몸으로 살아낸다니까요. 인간은.

그런데 네 다리가 있는데도 기어 다니는 게 있대요. 자 넷을 가지면 위로 똑바로 서서 빛이 돼야 되는 거죠. 그런데 넷을 가졌다고 하면서 기는 건 잘못된 넷을 가졌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건 부정이다. 이라는 거예요. 똑바로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똑바로 서다’가 ‘(스타우로스 σταυρός/G4716’ 십자가에요. 기둥이에요. 그게요. 심지어 날개를 달고 있으면서도 기는 게 있대요. , 여섯(6) 날개는 절대 길 수가 없어요. 두 날개는 깁니다.

레위기 11:20-21

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21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땅에서 뛰면 그는 산다. 이런 말이에요. 그건 정하다 그래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이게 무슨 뭐 대단하게 그냥 그 일곱 말이 뭔지만 알면 이런 것들은 아주 수월하게 다 그냥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거예요. , 그러니까 두 날개도 네 다리도 기는 것도 공중의 새도 ‘베헤마’라는 그 육축도 다 구원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거죠? 그걸로는 안 되지만, 그러면 여섯 째 날에서 ‘자칼’과 ‘네케바’가 되어서 그러한 것들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겠어요? 다시 여섯 째 날로 가보세요.

창세기 1:27~28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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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보면 ‘아마레 엘로힘’ 그래요. 하나님이 이거는 말씀하시다. 라는 말이죠? 그죠. 그러니까 ‘레마, 레오, 로고스’와는 다른 겁니다. 하나님의 말이라는 거예요. 말씀하시사, ‘엘로힘’으로 말씀하셨어요. ‘아사’, 되게 하자~ 뭐를? 아담을 만든다는 거예요. 아담이 되게 하겠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담이 뭡니까? 여러분. 이렇게 끊어 버리는 거예요. 담이라는 이 말이 피에요. . 이거는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피로 만들어진 거. 하나님의 생명으로 만들어진 걸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동물이라니까요. 그거. 원래 사람은 그렇게 지어지게 되어 있어요. 한자 한자 파자하면 하나님이 구분하신 바로 그 진리.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말미암아 존재가 된 것이다. 라는 것을 아는 그들이 바로 그 진리를 가진 자니까 그걸 아담이라고 해요. 그래놓고 그들을 뭐라고 그러냐면 그 아담을 어떻게 만들겠다고요? ‘베쩨렘 데무트’ 이렇게 해요. 그런데 한번 보세요. ‘쩨렘’은 그릇이라고 그랬습니다. 형상, 모양 이런 거 다 잊어버리세요. ‘데무트’의 앞의 무트는 죽음이라고 그랬죠? 죽음을 구별하다, 라는 뜻인데 잘 죽은 그의 안에 들어 있는 그거. 그거를 ‘데무트’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 ‘데무트’를 이렇게 끊어 버리면 담이 피고, 이게 완성이니까. 피를 그 완성으로 주는 걸 ‘데무트’라고 해요. 그러니까 내 안에 그것이 들어 있으면 ‘쩨렘’과 ‘데무트’ 이 상태가 되면 이걸 아담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이제 ‘라다’ 다스려라~ 뭐 이거 ‘다가’ 물고기죠?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라는 거죠. 이건 짓밟다. 라는 건데. 그리고 이게 ‘오프쉠마임’ 하늘의 새, 이것은 두 날개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모든 새는 두 날개를 갖고 있어요. 그것은 여섯으로 반드시 봐야 된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게 ‘베헤마’죠. 그죠? 성전을 말하는데 진리로 말해 주면 그걸 제물이라고 그래요. 그게 진리를 말하는 거였구나~ 라고 알면 그게 진짜 제사라는 거예요. 그것이. 이게 ‘하에레쯔’ ‘콜’ 그리고 이게 ‘레메츠, 라마츠’ 그러는 건데 이게 기는 거예요. 어디서? 땅에서 기는 거. 그러면 거기서 이제 끌고 나오면 되잖아요. 그런데 창세기 셋째 날에서는 그걸 반드시 내가 땅에서 끌어내겠다. 라고 했잖아요. 이게 그 셋째 날의 완성이니까. 그죠?

, 그럼 여기 27절을 보세요. ‘바라’ 창조하여 하나님이 창조를 했어요. 창조가 뭔지 한번 보세요. ‘엘로힘’으로 창조했어요. ‘하 아담’ 하나님이 그 ‘하 아담’이라는 것을 그 아담이 그 안의 진리를 내용으로 가지고 있으면 그 내용이 ‘엘로힘’이에요. 하나님이라는 거죠. 그죠? 그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게 아니라 그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 절대 담길 수가 없는 거니까. 그러죠. ‘엘로’힘으로 그 사람 그 ‘하 아담’을 창조했어요. 어떻게 ‘쩨렘’ 또 나오죠. 또 여기 ‘쩨렘’, ‘엘로힘’ 그러면 ‘데무트’는 어디 갔어요? 이게 ‘데무트’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안에 들어있는 그거. 그 ‘데무트’가 그게 하나님이지~ 그러면 그 상태가 되면 그걸 ‘바라’ 창조라고 한다는 거예요. 창조는 없는 걸 그냥 이렇게 자연만물을 막 만들어 낸 거를 창조하고 하지 않아요. 그건 언제가 없어질 건데 없어질 걸 만들어 놓은 걸 무슨 창조라고 그래요. 창조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하나님이 이제 시작하시는 거예요. 어떤 성전, 참 성전 우리가 우리 안에 하나님을 담으면 그걸 성전이라고 하니까 그게 뭐냐면 내 안에 하나님을 담은 거예요. 그게 ‘쩨렘’ ‘데무트’고 그것이 ‘쩨렘’ ‘엘로힘’이에요. 그 상태가 되면 그걸 창조하고 그래요. ? 나는 뭐? 새로운 진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거예요. 그걸 창조라고 한다니까요. 그리고는 ‘바라’ 또 창조를 하는데 뭐 어떻게? 그걸 뭐라고 그래요? ‘자칼’과 ‘네케바’라고 그래. 그리고 그들을 ‘오탐’이라 하자. 오탐들이라고 불러요. 그런테 ‘오탐’이 ‘자칼’과 ‘네케바’가 된 이들이 ‘오탐’이라는데 이 ‘오탐’이 뭐에요? 하나님이 완성한 진리 그가 바로 여러분이에요. 그러면 그들은 그 안에 그 씨를 가지고 등불의 역할 빛의 역할을 충분히 하겠죠? 그들을 네 생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넷으로 살아 있는 자. 뭘 줘요? 그 안에 하나로 완성된 사람을 주겠죠. 그들을 ‘오탐’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보잔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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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탐들 여기 나옵니다. ‘자칼’과 ‘네케바’가 된 그들에게 ‘바라크’ 복을 주세요. 얘들아 이게 복이야~ 이게 복이야~ 내가 이제 말한다. ‘마르’ ‘엘로힘’으로 내가 말하게~ ‘파라’ ‘라바’ ‘마레’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 이렇게 기록이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하다. 라고 써 놓고 이걸 열매 맺다. 이렇게 써요. 생육이란 말이에요. 이것이. 너희들 이제 됐잖아요. 그 안에 ‘데무트’를 갖고 있고 ‘엘로힘’을 갖고 있어요. 진리로 갖고 있어요. 그 씨를 갖고 있다고요. 그 하나를 갖고 있다고요. 그러면 입을 열어 말을 해야죠. 그걸 뭐라고 그러냐면 성경이 열매라고 그래요. 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그럽니까? 야 좋은 열매 맺어야지~ 그래놓고 야 어떻게 아네~ 들어 있는 게 좋지 않은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떻게 좋니? 이런다고요. 주님도 말을 열매라고 한다고요. 그런데 여기서도 보면은 너희들 열매 맺어야 돼~ 어떻게 입을 열어서 말하기 시작해~ 입을 열어서 말하기 시작하는 그 소리를 열매라고 그래요. 생육해라 그리고 번성해라. 뭘 말할까요? 시작해 성전을 말하기 시작해~ 그러는 거예요. 네 안에 있는 그거 참 그 하늘을 말하기 시작해. 그리고 이것을 충분해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걸로 충분해~ 그것 말고 다른 것으로는 너희들이 담을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줄 수도 없어. 그걸로 충분해~ 그러면 그걸 뭐라고 그래요? ‘마레’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 진리를 가르치는 하나님 이렇게 써 놓고 완성 이렇게 읽어요. 너희들은 그걸 갖고 생육하고 열매를 맺고 입을 열어서 말을 하고 무슨 말? 그 말을, 그 성전을 말해~ 그리고 그 진리를 말하는 가르치는 이가 되라는 거예요. 그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면 그 앞에 나열되었던 공중의 새라든지 땅에 기는 것들이라든지 뭐 이런 부정한 것들 바다의 물고기라든지 이런 것들이 그 위엣 것으로 이제 밝혀지겠죠. 이들에 의해서. 그럼 그것들이 땅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것들은 곧 우리를 가리키기기도 하고 이 세상 모든 것들 그런 것들이 진의로 밝혀지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서 용서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부정한 거 아니에요. 당신은요. 이렇게. 그래서 주님이 욧바의 베드로에게 야 그게 왜 부정한거야~ 부정한거죠. 율법에서 다 부정하다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아니 내가 정한 것을 줄려고 부정하게 준 거잖아 그러면 내가 이제 네가 뭔지 알았으면 그건 너한테 정한 게 되어야지 아직도 넌 그걸 부정하다고 그래~ 내가 깨끗하다는데.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예요. 율법에서는 부정한 것으로 줘놓고 그러면 보세요. 생육하고 번성하면 자, 땅에서 그러면 ‘카바쉬’ 이게 정복하다. 이런 말이에요. 그리고 이게 ‘라다’가 다스려라~ 물고기를 ‘다그’를 그리고 공중의 새를 기는 것들을 그러면 다 끝났어요. 한번 보세요. 여러분 미가서 7 19절로 한번 가보세요. 그러면 정복이 뭔지 이제 알거 아니에요. 그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해요. 완성이라는 게 뭔지를 알면 그게 그걸 정복하는 거야라고 하는데 정복이 뭔지 한번 보란 말예요.

미가서 7:19

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여기서 죄악이라는 그 말이 ‘아본’인데요. ‘아본’은 이 아래의 것.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써 놓고 죄악이라고 써버려요.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 그걸 그대로 받아 버리면 그게 거짓이고 그게 죄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발로 밟으신데요. 그런데 거기서 쓴 말이 정복하다 ‘카바쉬’란 말예요. 그런데 ‘카바쉬’란 말이 뭐냐면 아래의 것으로 전환해준 그 성전을 그게 뭔지 분석하여 가르치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렇게 써 놓고 정복하다 그래요. 그러면 죄악을 정복하다. 죄악을 짓밟았다. 죄악을 발로 밟으셨다. 라는 말이 ‘카바쉬’ ‘아본’인데 그 말을 다 풀어버리면 눈에 보이는 아랫것들을 그렇게 전환하여 준 그것을 성전으로 참 성전으로 하늘로 분석하여 가르치면 그걸 이김이라고 써요. 그래서 계시록에서 이겨라~이겨라~이겨라~가 그 이김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나타난 그것을 그 위엣 것으로 깨달아 알아 그것을 그 진리로 덧입히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카바쉬’ 이김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5:53~54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이 말이에요.)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걸 ‘네코스’ ‘니케’ ‘니카오’ ‘이기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긴다. 아래의 것. 죽어야 할 것. 부정한 것. 어두운 것 그것이 그게 아닌 걸로 옷을 입어~ 그걸 이긴다 라고 한단 말예요. 그렇게 되면 생육과 번성과 충만과 다스림과 정복이 완료 되는 거죠. 그게 셋째 날의 약속이었잖아요. 내가 선악과로 씨를 가진 열매로 일하는 그 열매 나무로 나오게 할 거고, 푸른 풀에 씨를 담고야 말거야~ 그랬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담겨진 자들이 바로 이거를 그렇게 알아 진리로 알아 그게 그거지~ 라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면 그게 정복이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이기는 거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이겨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오탐’들(하나님이 완성한 진리) 그들에게 뭘 준다고 그래요? 양식으로. 보세요.

창세기 1:29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양식이) 되리라

이 양식이라는 말 ‘오크라’라는 말인데요. 이 양식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아랫것으로 준 것을 가르치는 말~ 이렇게 써 놓고 이걸 양식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아랫것으로 준 그것들을 이게 뭔지를 가르쳐~ ‘라메드’ ‘가르치는 그 말’을 성경이 ‘양식’ 그런다니까요. 그러면 여러분의 양식은 뭐에요. 그 말이란 말예요. 예수그리스도의 입으로 나온 그 말이 생명나무 실과였던 것처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바로 양식인 거예요. 그런데 씨 맺는 모든 풀싹 그리고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 모든 이라고 써 놓고 나무는 단수에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선악과, 생명나무 두 나무처럼 보이지만 그건 한 나무라는 거예요. 이 나무로 이걸 알면 되는 거지~ 두 나무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콜’이라고 써 놓고 나무는 단수에요. . 그러면 뭐에요? 여러분이 그 선악과 그 율법, 그 아래의 것을 가지고 그 진리를 이제 말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여러분이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죠? 그리고 씨를 씨 뿌리는 풀이기도 하죠? 그죠? 그걸 양식이래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양식이네~ 그게 바로 내가 죽어 너를 살린다. 라는 개념인 거예요.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네가 먹어라 라는 건 내가 네 양식이다. 라는 건 그래서 초대 교회 때는 저 놈들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인간들이라고 그렇게 오해를 받았다니까요. 하두 예수님이 자기를 먹으라고 그래갖고. 그러니까 먹으라는 게 그 안에 들어 있는 그 말을 먹으라는 거예요. 그걸 양식으로 주겠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이들에게는~

창세기 1:30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입니다. 그리고 공중의 모든 새, 그리고 우글우글거리며 땅에 기는 모든 것. 그들에게는 푸른 풀을 식물로 주리라)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푸른 풀이 뭐라고 그랬어요? 텅빈 거. 그러니까 보세요. 오늘날도요. 그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어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건 씨를 담고 있는 진짜 양식이고 어떤 거는 텅빈 거예요. 그거 먹으면 죽는 거예요. 왜 인류의 모든 주식, 양식은 다 씨일까요? , , , 옥수수, 감자, 고구마 전부 어떤 모양이든 그거 심으면 나는 것들을 주식으로 먹여요. 씨를 먹어야 되는 거예요. 나머지는 간식이라니까요. 아이스크림만 1 365일 먹으면 안 된다 말이에요. 그 씨를 먹어야 너희는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텅빈 걸 주면서 이게 씨라고 사기 치면 지두 죽고 그걸 먹는 사람들도 죽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안에 그 씨가 없으면 이 앞에서 던지는 말이 저게 씨인지 텅빈 건지 몰라요. , 그러니까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금식해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고 어떻게 금식을 해야 하는지 잘 아시겠죠? 성경이 말하는 금하다의 금식은요 禁 이게 뭐냐면 하늘의 하나님이 요게 일자 위에 하나 아래 셋, 아래서는 셋으로 보여요. 이게 하나님이 셋으로 일하시는 분이니까 이게 제물 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이거는() 제단을 이야기 할 때도 이걸로 쓰죠. 그래서 이렇게 그 하나이신 하나님이 아래에서 셋으로 일하시면서 그 하나님과 인간이 한 곳에서 같이 먹고 마시면 그걸 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문자라는 건요. 원숭이들이 쓰던 어떤 뭐 감탄기원론 이런 것도 있는데, 아 어 헉 헐 이런데서 언어가 발달했다고 그러는데 천마의 말씀. 이천년, 삼천년 전의 책들을 제가 요즘 보는데요. 같이 선생님하고 보는데, 그때는 문법이 더 복잡해요. 원숭이들한테까지 가면 아마 머리 터질 거야~ 천만에요 언어는 애기들 한번 엄마가 애기들한테 말이라는 걸 아예 차단하고 안 가르쳐주면 그 아이는 말을 못 배워요. 말은 밖에서 줘야 받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바벨탑의 현장에서 인류에게 말을 한 번에 주셨다니까요. 그러니까 보세요. () 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두 나무 ()를 주시면서 이거는 하면 안 되겠지~ 한 게 禁이에요. 그러니까 그거는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한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항상 문제가 뭐냐면 婪 여자들이 여기에 딱 있으면 탐심할 때 탐(탐할람)이에요. 그러니까 회개하세요. 아니 그 여자가 나에요. . 이 아래에 있는 것들. 그것들이 그 남편을 안 사랑하고 그 아랫것들 사랑해 버리면 그걸 그냥 동성애라고 하는 거예요. 뭘 먹어야 되고 뭘 먹지 말아야 하는지 이제 뭐 명쾌하게 이해가 가시죠? 설날 잘 보내시고 다음 주 수요일날 뵙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에게 꼭 먹어야할 것을 허락해 주셨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그렇게 금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해야 할 것을 먹고 먹어야 할 것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 장대 달린 ‘샤라프’ 불 뱀이 뭔지 알게 하시고 그 감춰진 날개를 여섯으로 활짝 열어 그 진리를 볼 수 있는 ‘자칼’과 ‘네케바’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