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 44 금식, 새것으로 먹으라는 말씀 마태복음 6:16~18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33

산상수훈 44 금식, 새것으로 먹으라는 말씀






마태복음 6:16~18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금식의 의미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다음 주까지 해야 완결이 될 것 같아요. 지난 주 우리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금식이라는 건 단순히 밥을 안 먹는 게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 양식으로 먹어라 라는 역설의 명령이라고 그랬죠?

 

너희들 희생제사 드려~ 성전에서 꼭 희생제사 드려 라는 그 하나님의 명령이 너희들 그 제사를 드리면서 그 제사로는 절대로 너희들의 죄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라는 것을 깨닫고 영단번에 드려지는 예수그리스도의 그 제사를 배워라 라고 역설로 주신게 희생제사였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금식해 라는 건 제대로 된 걸로 먹어 라는 의미였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자마자 자기의 두 마음 에피두미아 라는 두 마음으로 즉시 어떻게 해 버린다고 그랬죠? 노미조 해버린다고 그랬죠? 법으로 해석을 해버린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명령을 육의 양식을 금하는 그런 율법의 금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냥 그대로 행해 버리는 거예요.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주님은 그거야 말로 멸망의 금식이다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알지 못하고 하는 그러한 성찬도 그것도 큰 죄이지만 알지 못하고 하는 이런 금식 같은 종교행위 마찬가지에요. 큰일나는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금식할때는 머리에 기름을 발라야 한다고 그랬죠. 머리라는 것은 머리이신 예수그리스도 이야기하는 겁니다. 머리카락에다 뭐 찌꾸 바르다는 얘기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라는 그 머리. 마리아가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그 사건을 그대로 이해하시면 되요. 갖다가 거기다가 대입하시면 됩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또 얼굴을 깨끗이 씻으라. 얼굴이라는 건 프르소폰 이라는 건 히브리어로 파님이라고 그랬죠. 말씀의 그 진의를 덮고 있는 겁데기. 그렇죠. 얼굴이라는 단어 자체가 얼꼴이잖아요. 그것도. 잘 붙인 거예요. 영의 모형, , 그것을 깨끗이 씻어야지~그냥 꼴, 그 껍데기로만 보게 되면 큰일나는거죠. 잘못되는 겁니다. 그래서 얼굴을 깨끗이 씻으라고 그런 거예요. 금식할 때 꼭 세수해~그런 말이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아주 그냥 딱 정리해 주죠.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이라고 딱 붙여줘요. 제목을.

 

 

이사야 58:6~7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 이라고 이렇게 정의를 해버린다 말이죠. 이게 다 뭐라고 그랬습니까? 벌거벗은 자를 말씀으로 의의 옷으로 입히고 의의 양식으로 먹이고 그들이 속박된 율법의 법에서 풀어 주고 다 진리를 전해 주어 일어나게 하는 그런 일들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진짜 금식은 가짜를 뱉어버리고 진짜를 먹으라 라는 말이라고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금식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신 곳이 또 한 군데가 있어요. 거기를 여러분이 공부하시면 앞뒤 문맥 속에서의 그 금식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잘 배우면 이제 확실해질 겁니다. 조금 더.

 

 

누가복음 5:27~39

27 그 후에 나가사 레위(레위는 누구의 다른 이름이죠? 마태입니다.)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30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우리가 지난주에 공부한 누가복음 15, 16, 17, 18장 그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죠. 그죠? 세리인 죄인이 등장하고 주님이 함께 영접하여 먹고 마시고 바리새인들은 그걸 욕하고)

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 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이 이야기 여러분이 잘 아는 비유인데 이것이 왜 금식과 연결이 되는지를 여러분 이해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성경은 항상 문맥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뚝뚝 잘라서 그냥 그것을 내 교훈으로 삼아 버리면 그건 토정비결 되는 거예요.)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자 주님께서 금식의 이야기를 하시기 전에 레위라 하는 마태, 세리 마태가 부름을 받습니다. 여기서 그 마태의 이름을 레위라 부르는 건 그 레위, 류이스에요. 원래가. 한글로 레위라고 읽는 건데 류이스, 레위가 갖고 있는 의미 때문에 그래요. 그 레위는 히브리어 레비를 그대로 음역한 거예요. 그 뜻은 연합, 결합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연합, 하나님과의 결합 이렇게 이야기 하죠. 그 때 쓰는 말이 레위에요. 레비를 말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과 연합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될 어떤 일을 레위 마태를 모형으로 해서 이제 설명을 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름을 레위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출발이 텔레노스, 세리란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지난 주일에도 살펴 보았지만 세리는 죄인에서 출발하여 주님께 말씀을 들으러 나와 그 다음에 17장에서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렇지요! 내가 이 10을 절반으로, 5로 주어 만일 그 5로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로 넘겨 주겠습니다”라는 완성의 지점으로 가는 게 세리잖아요. 그 이야기란 말입니다


30절에 보시면 그 세리가 죄인인 세리라고 표기가 되어 있어요. 그 하말톨로스 죄인과 세리, 그 텔로네스가 둘 다 소유격인데 그 죄인이라는 단어가 형용사에요. 그러니까 그 형용사는 반드시 그 앞의 명사 그 단어를 이렇게 수식하는 역할을 한단 말에요. 그러니까 죄인은 세리를 수식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죠? 그러니까 ‘죄인인 세리’ 이렇게 보셔야지 죄인과 세리를 따로 따로 떨어뜨려서 그렇게 보시면 안된 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죄인의 대표인 세리’이렇게 표기가 되어 있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날 우리가 살펴 본 것처럼 그 죄인의 대표인 그 세리는 순결한 자, 삭개오, 자카이오스~삭개오가 순결한 자, 깨끗한 자 라고 그랬어요. 그걸로 끝난단 말이에요. 자카이오스, 자칼 거기서 나온 단어라고 그랬죠? 그 순결한 자로 결론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세리 세리 세리”나오다가 그 세리 라는 단어 자체가 '온전함을 사다. 온전함을 취하다'라는 단어니까 그 세리를 죄인에서 시작하여 온전함으로 끌고 가는 게 구원이다 를 보여 주기 위해 성경에 세리가 계속 나오는 거란 말이에요. 단어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자카이오스 삭개오로 끝나는 거예요.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네 집에 유하리라’ 연합이죠. 그게 레위 아닙니까? 연합이란 단어 자체가 그래서 오늘도 그 세리 마태를 레위라 부르는 거예요

'이게 너흰데 이를 나는 반드시 자카이오스, 삭개오로 만들거야~'

이런 암시가 들어 있는 거죠


그 세리가 주님의 부름을 받아서 성전, 세관을 떠났다고 하는데 그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있던 어떤 집이라는 의미에요. 거기가 육신들의 성전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성전을 떠나는 거죠. 그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카탈레이포 버립니다. 버리고 주님을 쫒지요. 주님께서 항상 자신을 쫓는다고 하는 이들에게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라고 얘기 하죠. 다 팔아, 다 팔아 푸토코스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우리를 자랑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율법적 행위로 쌓아 놓은 그 소유, 그걸 가지고 있는 게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거를 네가 진짜 진리를 알았다면 바꿔~다 팔아야 되는 거예요. 다 놓아야 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가진 재산 다 팔아 요만큼도 남기지 말고, 그리고 주고서 구제하고 나를 따르라~ 이런 말 아니란 말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요. 제자들 보세요 뭐 다 버렸다고 하지만 아니 주님이 딱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금방 자기들 감춰 놓은 배 꺼내다가 고기 잡으러 갔다니까요. 안 버렸어요. 배 빌려서 갔겠어요. 당시에. 그 때 당시의 그 배는요.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배는 그때 당시에 엄청 귀한 거였어요. 다 선주들이었다니까요. 그 사람들이요. 그냥 어부 아니었어요. 뭐 조각배가 그런 거는 김병만이나 타고 다니면서 아마존에서 이거 하는 거지, 그걸로 그물 던져서 뭐 이게 못 끌어 올린다 말입니다. 부자였어요. 그 사람들은. 그런데 못 버리는 거예요. 자기 거 못 버렸단 말입니다


다 버리라는 건, 그러한 너희들 인간 측에서 쌓아서 하나님께 도달하려고 했던 모든 시도들을 다 버리고 진리와 바꾸라는 얘기란 말이에요. 그렇게 이제 모든 걸 버리고 주님을 쫓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과 함께한 그의 집에서 풍성한 양식으로 먹고 마시는 잔치가 벌어지는 거죠. 잔치가 벌어졌다고 그래요. 그 레위의 집에서~ 뭐예요? 연합입니다. 주님과 한 집에 들어가 같이 먹고 마시는 거예요.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으리라 가 연합이란 말이에요. 문 열어라 내가 들어 간다 고 그러잖아요. 그죠? 연합이란 말입니다. 그게 레위에요. 혼인 잔치의 모형. 그게 레위가 가진 의미이며 그게 바로 구원이기 때문에 세리 레위에서 이제 출발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먹는 것. 그리고 먹는 것을 금하는 금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오는 금식의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밥을 몇 끼를 굶고 뭐 안 먹고 이거랑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왜 죄인인 세리와 함께 먹고 마시냐 라고 주님을 비방합니다. 그 때 쓰인 단어가 공귀조인데요. 원망하다, 비방하다 이런 뜻인데 그 단어는 단순히 비난하다, 비방하다, 원망하다 이런 식으로만 이해를 하시면 안돼요. 고린도전서에 보면 바울이 그 공귀조 라는 단어를 어떤 과정의 결론으로 제시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언어를 성경에 나오는 문자들이나 이런 것들을 공부 할 때에는 반드시 그것들이 쓰였던 많은 용례들을 찾아서 이게 이거다 라고 확신이 들 때 제시를 해야지 아무데나 여기 저기서 그냥 이렇게 찾아가지고 막 써버리면 안 돼는 거예요. 여러분.



고린도전서 10:1~12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곡언법이죠. 그냥 너희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되는데, 히브리 사람들은 ‘네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렇게 이중 부정으로 더 강조하는 거예요.)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게 홍해 건너는 사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프뉴마티코스, 영적인 먹을 것. 이런 말이에요. 신령한 식물 그러니까 뭐 엉뚱한 것 추측하지 마세요. 푸뉴마티코스 푸뉴마적인 양식 이런 말이에요. 영적인 양식을 먹었으며)

4 다 같은 신령한(역시 프뉴마티코스) 음료를 마셨으니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그러죠. 먹고 마시는 이야기 지금 하고 있잖아요. 우리가요. 금식의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래서 주님도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셔야 너희들은 산다’ 라고 그 먹고 마시는 것으로 구원을 설명했기 때문에 주님은 계속해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그 구원을 몸으로도 설명 하셨어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저거는 입만 열면 어떻게 먹고 마시는 이야기만 해~ 그래서 저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다 라는 별명까지 얻으셨단 말입니다.)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 음료는 어디서 나왔냐면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대요. 반석에서 나왔다 그런단 말이죠.)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들이 광야에서 전부 신령한 양식, 신령한 음료를 먹었는데 그 중에 다수 이 다수라는 단어가 대부분이란 뜻이에요. 대부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 들이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그들을 다 죽였다고 그러는 겁니다. 먹긴 먹었어요. 나왔다니까요. 광야, 스테반이 뭐라고 그래요. 거기를 교회라 부른단 말이에요. 광야 교회, 엑클레시아 라고 부른다구요. 여러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서 다 같은 신령한 어떤 것을 먹는다고 하는데 그 중에 대부분 숫자로 한번 따져보면 60만대2정도~ 상징이에요. 역시. 60만명 중에 딱 2명만 들어갔습니다. 그 정도로 대부분이 아니다 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주님께서도 네가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을 때, 휴리스코 라는 단어를 썼단 말이에요. 거의 없다 이렇게 썼단 말이에요. 거의 없다.)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보세요. 먹고 마셨는데, 분명히 하나님은 신령한 양식, 신령한 음료를 줬는데 어떤 이들도 똑같이 먹고 마셨는데, 앉아서 먹고 마셨는데 하나님은 그걸 우상 숭배라고 그래요, 어떤 이들은 우상 숭배로 그걸 먹더라는 것입니다. 그걸 마시더라는 거죠. 그 사람들은 그 진짜 그거를 안 먹고 엉뚱한 거를 먹고 마신 거죠? 그러면은 진짜 먹어야 할 거를 금식하고 먹지 말아야 할 것 진짜 금식해야 할 거를 먹었단 뜻이에요. 그러면 죽는다 이런 말입니다.)

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이거 전부 출애굽기, 레위기에 전부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신명기에 다 나오는 이야기에요.)

9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페이라조에요. 여기서 이 시험이~ 페이라조 도키마조 하고 다른 말입니다.)

10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이게 공귀조에요.)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너희들이 진짜 선 줄로 이스테미 했다고~ 다시 한번 생각 해봐~조심해 이런 말이에요. 너희들이 진짜 영의 양식을 먹고 있다고? 섯다고? 섯다 라는 말이 스타우로스, 십자가, 언약의 기둥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매달리면 사는 거예요. 그런데 아닌데 섯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거예요. 엉뚱한 말을 그걸 진리라고 착각하고, 예배당 안에서에요. 하나님은 저 절에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은 관심이 없다니까요. 적어도 성경은. 성경의 독자는 예배당에 나와서 나는 구원을 위해 이렇게 헌신 합니다~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책 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중에 60만대 2 60만이 가짜 2가 진짜 이렇더라는 거예요. 상황이요. 광야에서는 신령한 식물과 신령한 음료를 마셔야 되요


모세에게 속하여 즉, 모세는 그리스도 안에서죠. 그죠? 인 모세스 모세 안에서 구원 받았다 라는 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거를 모형 하는 거니까. 그죠? 그리스도 안에서 육으로 죽고 영으로 사는, 그걸 밥티조 세례라고 하잖아요. 세례는 여러분이 죽었다가 새로운 존재로 살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물에다 푹 담그는 거예요. 침례, 그리고 머리에다가 물을 뿌리죠? 가슴이나 다리에다 물 안 뿌리잖아요? 머리에다 물 뿌리는 게 여기(머리)까지 잠겼다 라는 상징이란 말이에요. 죽였다 라는 뜻이에요. 그게. 세례는


그렇게 세례에 참여한 자들은 하나같이 신령한 양식과 신령한 음료를 마시는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프레이온 다수, 대부분은 이미 그들이 고기를 먹고 광야로 나왔지요? 뭐 먹고 나왔어요?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 고기를 먹고 나왔잖아요. 양식 먹고 광야로 나왔다니까요. 나왔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들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굳이 그걸 중다한 잡족 이렇게 쓴다니까요. 그 중에 내 백성은 소수라는 거예요. 그들은 광야에서 엉뚱한 식물과 엉뚱한 음료를 마시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그들의 결국이 멸망이에요


주님은 그것이 거울이요 경계로 준 거다 그래요. 거울, 투포스 라는 단어는 도장 있죠? 도장, 확 찍으면은 도장하고 똑같은 것이 새겨지지만 그게 그 도장은 아니죠? 그걸 투포스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거울이에요. 그건. 거울이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란 말이에요. 그리고 경계 라는 말은 그 누데시아, 누스가 마음이고 티데미가 이렇게 진설하다 라는 말이니까.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눈에 보이게 횡으로 이렇게 진열한 거를 티데미 라고 그랬죠? 그걸 경계라고 그래요. 자 이렇게 내가 내 마음을 너희에게 눈에 보이는 걸로 줄게~ 그게 울법이요 성전이잖아요


자 봐~이걸 경계라고 그래요. 이거 보고 이게 뭔지 알아야 돼~ 이게 경계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러한 구약의 많은 사건들이 전부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을 이렇게 진솔해 놓은 거예요. 누구에게? 교회인 우리에게. 성경의 독자는 교회 밖에 없어요. 간디가 아무리 성경을 뭐 몇 백 독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 성경을 진리로 보지 못했다니까요. 도덕책으로 봤대니까요. 죽는 날까지 산상수훈을 행하다가 간 거예요. 그 사람은요. 그런데 힌두교인 이예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 성경의 독자가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읽고 똑같이 도덕책으로 보고 행하는 게 성경책이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거울과 경계는 마치 성전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보이는 형상으로 이렇게 잘 세워서, 티데미 새겨둔 것. 도장이라고 그랬지요. 그게. 새겨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거울이요 경계로 사용된 사람들이 왜 멸망을 당했다고요? 순서를 잘 보셔야 되요. 다른 것을 먹고 마시는 것. 그걸 우상숭배 라고 했죠. 첫 번째에요

십계명을 잘 생각해보세요. 너는 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마 그랬어요. 첫 번째 계명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가 아니라 "너는 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 마"에요. 그러면 두 번째, 그게 우상이야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게 두 번째 계명입니다. 그게 우상이야. 그렇게 되면 너는 반드시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될 것이야 이름 이라는 거 자체가 그 단어의 뜻이 쉠, 말씀이잖아요. 분석된 말씀. 쉠 이름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죠? 그 말씀. 내 말씀을. 그 말씀 안에 하나님이 계시된 거니까. 그게 하나님의 이름이잖아요. 고대시대 때부터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 그 본질 이걸 축약해서 붙여 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이름대로 되지요? 그런 것들이 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그러는 거예요.


그렇게 우상숭배 그런 다음에 그거를 잘 못 알아서 아 이게 하나님이 원래 이런 분인데 내가 그걸 율법의 하나님으로 내가 잘못 알아~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그 율법 안에 담긴 그분이 그렇게 나에게 이것 저것 명령하는 그 분이 내 남편 인줄 알아~ 내 하나님인 줄 알아~ 그걸 간음이라고 그러잖아요? 보세요. 우상숭배, 간음 그 다음에 시험 했다고 그래요. 자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 해버리면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권을 행사 하시는 게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 되고 하나님은 내가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조력자 정도로 격하 되는 거죠? 그걸 신의 죽음이라고 그래요. 너희들이 왜 나를 모독해 그런다니까요. 그게 선악과 먹고 하나님처럼 된 자들이 지향하는 바가 그거란 말이에요. 내가 왜 하나님의 말만 들어야 돼~ 나도 할 수 있다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당신이 나를 좀 도와주세요. 내가 할게요. 멋지게 할게요. 영광 돌릴게요~ 이러는 거 이게 하나님 살해잖아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주님이 왔을 때 왜 너는 은혜를 얘기해? 우리는 이렇게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데 목숨걸어 하나님 섬기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의 신앙은 다 헛거야? 그래서 그 하나님을 죽였다니까요. ? 자기들의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서 이걸 하나님 살해라고 한단 말이에요. 율법주의를. 그게 뭐예요? 시험. 죽이기 위하는 시험 페이라조 잖아요. 보세요. 우상숭배하고 우리가 그 말씀을 다른 남편으로 율법으로 가져 버리면 나에게 붙여 버리면 그게 곧 하나님을 페이라조 죽여 버리는 시험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항상 그 하나님은 원망의 대상이 되요. 공귀조 입니다. 그것이. 이건 각기 개별적으로 목록이 나열되는 정도가 아니라 멸망 받을 자들이 거치게 되는 과정인 거예요. 순서인 거예요. 그래서 출애굽 광야에서 멸망당하는 이스라엘이 이 사건 그대로 몸으로 행하면서 다 죽는 거예요. 2명 남고.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오해하여 다른 신으로 섬겨 버리면 ‘하나님’ ‘하나님’ 이름은 불러요. ‘주님’ ‘주님’ ‘예수님’ ‘예수님’ 이름은 부른다니까요. 소 만들어 놓고 이게 여호와야 라고 이야기 한 그들처럼 ‘하나님’ ‘하나님’ 하는데 다른 신이에요. 하나님이 누군데 저렇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섬기고 있어~ 아닌데~그게 우상 숭배고, 아니 다른 남편을 왜 자기 남편 이라고 해~간음이고, 그러면 나는 뭐냐? 그게 하나님을 시험 하는 것. 페이라조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인간들은 어떻게 되냐면, 아니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은 왜 나를 다른 사람들하고 이렇게 특별하게 차별하여 대우해주지 않아? 내지는 아니 이렇게 끝까지 해야 되는 거야? 이런 거. 그걸 공귀조 라고 그래요. 원망이라고 그래요. 율법주의의 결국은 반드시 그리로 가게 되어 있어요.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 공귀조를 했단 말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죄인인 그 세리를 영접하고 그와 함께 먹고 마시고 있는 주님을 그 비방했다. 공귀조했다 라는 그 말은 그들이 멸망의 자식들임을 암시하는 무서운 말인 거예요. 그 앞에 우상숭배, 간음, 시험을 다 포함한 단어라니까요. 그것이요. 그 공귀조 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룬 이라는 단어, 밤에 머물다 라는 단어거든요. 그 단어가. 라간, 불평하다 원망하다 라는 단어. 그리고 아난, 비 진리를 말하다. 잘못된 말을 전해 주다 이런 말이에요. 이 단어의 의미를 모두 갖고 있는 단어에요. 그래서 헬라어에는 이 단어 하나 밖에 없어요. 그래서 70인 역에 보면 이 룬이나 라간이나 아난을 전부 공귀조로 번역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내용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밤에 머물러 불평불만을 일삼으며 비 진리를 말한다. 아니 헌신하여 죽어라고 하긴 하는데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아~ 그런데 자신에게는 ‘아 힘들어’ 이러는 사람들 있어요. 죽어라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요~ 납들에게는 얼마든지 연극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혼자 이불 쓰고 탁 누워있으면 ‘아 힘들어’ 힘들다는 건 나에게 이 생활을 하게한 그 분이 원망스럽단 얘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들켜지면 사람들에게 신앙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을까 봐 억지로 감추는 거예요. 다들 힘들어 미치겠어~ 아주 그냥 그죠? 아닌 척 하는 거지~

그때에 주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이렇게 얘기 합니다. 단순히 의인 부르러 온 게 아니라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러 왔어~ 이렇게 잘난 척 하는 말로 보이잖아요. 이 말을 좀 더 원문에 맞게 직역하면 나는 의를 니카이오스 말하려~강권하려 온 게 아니야~ 나는 그 의를 설명하여 너희들을 의인 만들러 온 게 아니야~ 이런 말이에요. 그럼 왜 왔어요. 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 이런 말이 아니라~ 죄를 다른 마음으로 보게 만들러 왔어 이런 말이에요. 나는 죄를 다르게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왔어 이런 말이에요. 이 말을 여러분 잘 이해하셔야 되요. 이게 회개라고 번역이 된 메타노이아 라는 단어는요 메타노에오 라는 단어의 명사형인데 그 메타노에오가 뉘우치다, 반성하다 이런 뜻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메타가 전치사에요. 그런데 노에오가 여기 붙어가지고 한 단어가 된 거예요. 이거를 우리가 회개하다 이렇게 쓰는데 노에오라는 이 단어가 마음을 두다, 마음으로 생각하다 이런 말이에요. 이 메타라는 단어가 연합이라는 뜻도 있지만 극명하게 다른 이런 뜻도 있단 말이에요. 전치사가. 그러면 이게 무슨 말이냐면 두 마음을 하나로 연합시켜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요? 나는 항상 선과 악의 두마음을 갖고 이렇게 이렇게 분별해 버리는데 그걸 하나로 연합시키면 아 그건 이거구나~ 이건 이거구나~ 하고 한마음이 되면 그 현상을 지금 보는 그 현상으로 안 보고 다르게 보게 되겠죠? 그렇게 다르게 보게 되는 것을 메타노에오 라고 하고 그걸 우리말로 회개라고 쓴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단순히 반성하다, 뉘우치다 이런 말이 아니란 말이에요. 회개란 말 자체가. 그리고 여기에 메타를 ‘다른’ 이라고 뜻으로 보게 되면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되다’ ‘다른 마음을 두다’ 여기다가. 그런 말이에요. 그게 회개란 말이에요. 구약에는 이런 말이 무지하게 많이 나와요. 내가 너희에게 다른 마음을 줄거야~ 새 마음을 줄거야~ 마음을 바꿀거야~ 이런 말들 있죠? 그게 이 말이에요. 내가 너희에게 새 마음을 줄거야~ 다른 마음으로 생각하게 만들거야~ 이게 회개시키다 라는 이런 뜻이에요. 그러면 내가 죄를 메타노에오 ‘다른 마음으로 보게 만들어 줄거야’ 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는 죄 하면 율법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데 그 율법 안에 그대로 잠겨 있으면 그게 죄고 그것으로 멸망하는 거죠? 그런데 그 율법을 그 죄를 다른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성령이 들어오면 그 능력이 생겨요. 능력을 우리에게 주면 그게 뭘로 보이겠어요. 그게 뭔지를 아니까 그걸 성경이 의라고 불러요.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아니 솔직해지자니까요. 이제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의가 뭔지 알아요? 여러분. 세상사람들이 투사들이 이야기하는 그 의 말고 성경이 말하는 그 디카이오스 라는 그 하늘의 의가 뭔지 진짜 아냐구요? 어떤 게 의에요? 의하면 생각나는 게 뭐에요? 뭐 일본에서 전철로 뛰어든 어떤 사람 대신 뛰어든 그 사람 의인이라고 하는데 그걸 성경이 말하는 의라고 할 수 있나요? 그거 아닙니다. 부하가 잘 못 던진 수류탄을 자기가 덮고 죽은 강모 소령 의인이라고 그러죠. 성경이 말하는 의가 그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하늘의 의라는 걸 뭔지를 알 수가 없어요. 하늘의 것은 절대 이 역사에 땅에 섞여질 수가 없어요. 그것이 여기에 들어오면 그건 땅의 것이라니까요. 아세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유가 그거에요. 하나님이 직접 이 땅으로 와 버리시면 그 분은 땅적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묵시속의 그거는, 완성된 그것은 역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이 피조물들에게 포착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냐면 죄라는 것, 의를 우리에게 주기 위해 하나님이 죄가 뭔지를 우리에게 줬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 선악과, 율법이라는 게 뭔지를 우리가 그래 이게 그거구나~ 우리는 이것을 먹어서는 안되는거였구나~ 라고 내가 깨달아 알았을 때에 하나님이 그걸 의롭다 라고 해주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의가 그 하늘의 그 의는 아닌 거예요. 우리는 모르는 거예요. 어느 정도만 알 수 있냐면 우리에게 준 깨달음 정도만 알 수 있어요. 그 깨달음을 우리에게 의라고 해 주는 거지~ 그 하늘의 그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도 그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게 우리의 이성 속에 갇히고 포착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은 그 하나님일 수 없다니까요. 그래서 우리의 이성에 맞게 그 수준으로 우리를 계시해 준 그 하나님을 창세기 1장이 엘로힘 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엘로힘은 그 창세기 1 1절 맨 앞 단어 앞에 숨어 계신 알레프라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은 도저히 문자로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주어로 전부 생략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런 분량만큼 계시해 준걸 엘로힘 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눈에 보이는 그런 것으로 우리에게, 이것이 하나님을 담고 있는 거란다~ 라고 보여준 성전, 예수, 성경 이런 것들을 여호와 엘로힘 이라고 그래요. 창세기 2 4절 부터는 하나님의 이름이 바뀐다니까요. 그리고는 4장부터 다시 여호와로 바뀌어 버려요. 그러니까 여호와든 엘로힘이든 여호와 엘로힘이든 진짜 그 분의 이름은 아니에요. 하나님의 이름이 어딨어요? 이름이라는 건 그 분의 내용이라니까요. 그 분의 내용을 우리는 다 알 수 없다구요. 다 알면 우리가 신이게~ 그러니까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의 그 내용 그 이름을 모르는 자여야 되는 거예요. 모르나 너희들이 이만큼만 알면 너희들이 내 아들인거로 인정해 줄게 라고 한 그 만큼의 계시.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그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공부했던 누가복음 15장에서도 세리와 함께 먹고 마시는 주님을 비방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나왔어요. 그때도 주님이 가장 먼저 그들에게 준 비유가 뭐였어요? 회개의 비유였잖아요.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탕자의 비유 이렇게 3개를 딱 붙여서 주시더니 이건 한 비유야 라고 단수로 말해 버리신다 말이에요. 그래 놓고는 이게 회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그 탕자가 돌아온 건 아버지가 돌아오게 만든 거다~ 찾아가서 아버지의 마음이 그를 찾아가서 그를 돌이켜 데리고 온 거야 를 설명해 주기 위해 잃어버린 양의 비유와 드라크마 비유가 굳이 붙어있는 거 아니에요. 거기에. 그리고는 회개, 회개, 회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서는 회개를 죄를 다르게 보는 마음, 한마음이 된 그 두 마음, 그런데 한마음이 된 거~ 이걸 메타노에이오 회개라고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순서는 똑같아요. 그리고 사실 내용도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모저모로 자꾸 설명을 해 주시는 것뿐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의 400년 암흑기였습니다. 말라키를 끝으로, 말라키가 사람 이름은 아닐 거예요. 그러나 하여튼 말라키가 끝 성경이니까. 그 말라키를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가 단 한사람도 없었어요. 그걸 암흑이라고 그래요. 성경이요. 그래서 주님이 그 400년 암흑기 기간에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 상황을 온 세상이 어두웠다 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무도 그 진리가 뭔지를 모르네요. 그리고는 엉뚱하게 그 말씀을 행하고 있었다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안 부른 게 아니에요. 율법을 열심히 행하고 회당에서 성전에서 그리고 제사를 열심히 지내고 있었다고요. 그리고 목숨 걸어 규례를 행했다니까요. 그들이. 그런데 하나님은 그게 어두움이야 그런다니까요. 빛이 왔는데 세상이 온통 어두워서 아무도 그 빛을 못 알아 봤다~ 이렇게 얘기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의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런 거예요. 자 의인이 없어요. 어느 정도로 없냐면 너무 없어~Nobody 에요. Nobody. 아무도 없어요


그러면 의인이 없는데 무슨 의가 있어요? 이땅 에. 창세기에서 그 상태를 성경이 일부러 빛이 오는 그 시점을 어떻게 만들어 버리냐면, 창세기 1장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빛이 온대니까요. 창세기 첫째 날, 그런데 온통 어두워요. 그런데 그 빛이 어떤 이들을 그 어둠에서 건져내어 빛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 안을 빛으로 심어 버려서 너희들이 이 세상 비춰~ 이제 내가 간다~ 그리고 가셨단 말이에요. 어디로? 그들 안의 빛으로. 빛은 그분 밖에 없으니까. 그러면 그를 빛이라고 해주는 거예요


그렇게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께서 그 빛을 설명해 주기 위해 허락해 놓으신 그 어두움들을 내 이 노미조 하는 이 두 마음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되면 그걸 회개라고 하는 거예요. 그 때 용서가 일어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그 율법의 마음으로 율법의 눈으로 나타난 현상들을 그대로 봐버리면 어떻게 그게 용서가 되냐구요? 아무리 용서해야지~ 용서해야지~ 그래 나도 더 나쁜 놈인데 뭐 아무리 다짐하고 다짐해도요 그게 내 안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르게 보여지지 않으면 그건 참아 주는 거고 벼르는 거지~ 용서가 아닌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지금 하나님이 어두움이라고 우리에게 준 거~ 아니 우리도 거기에서 건짐을 받았잖아요. 그리고 심지어 지금도 그 일을 그대로 행하고 있다니까요. 우리는. 조금 변했을지는 몰라도 뭘 변하긴 대단하게 뭘 그렇게 변해요. 어느 날 진짜 한 방 살짝 자극을 주면 다시 옛날로 금방 돌아가는 자기들을~ 본인들은 알잖아요. 아닌데 감추고 있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그런게 용서가 아니에요. 그게 용서가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이 왜 주었는지를 내용으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을 그때에는 그것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이지 않고 내용으로 보이니까 나타난 현상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와 가치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걸 용서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뭘 대단하게 어떻게 사람을 용서하고 뭐 하고 합니까? 그게 아니라니까요. 우리가 용서해 주는 게 아니라 그걸 다르게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내가 용서를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자 말라기가 그 다르게 보는 그 마음, 그게 회개라고 그랬어요. 메타노에오, 노에요, 그게 다른 마음으로 보게 하다 라는 말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마음을 이렇게 얘기 해줬어요. 그 분이 그 마음 주러 올거야~ 이렇게. 한 번 보세요.



말라기 4:4~6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자 말씀입니다. 토라 에요. 이걸 기억하라~그래요.)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기억하라 라는 말이 생각해 내야 돼~ 이런 말이 아니라 자칼 이라는 말이에요. 이게요. 네 마음의 표로 새겨~ 이런 말이에요. 그게 자칼이잖아요. 하나님의 그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 남편으로 마음이 되었을 때 그걸 자칼이라고 그러고, 그걸 담은 그릇을 네케바 라고 하죠? 그래서 성경에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그들을 사람이라고 한다 했을 때 남자와 여자를 자칼, 네케바 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걸 에베소서에서는 이거는 사실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야기야~ 라고 바울이 설명까지 해 준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자칼은 그리스도고 그리스도의 영, 말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고, 네케바는 교회인 거예요. 우리 교회가 그 말씀을, 그 진리를 제대로 딱 담았을 때 자칼네케바가 되고 하아담, 하늘의 그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그 말씀을 전하여 계속 낳아요. 사람을. 그걸 그 사람의 그 아들. 계속. 인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그걸 대표적으로 설명해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니까 예수가 자기 보고 내가 인자다 라고 한 거예요. 자 그런데 어떻게 그 마음을 새긴다고 그래요? 너희들 힘으로 안되니까~ 내가 엘리야를 보낼 거야~ 그래요


여러분 엘리야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나오는 이름은 그냥 단순히 여러분이 이름으로 생각하시면 안된다고 그랬습니다. 자 이게 엘리야 인데요. 이 ‘엘’ 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하나님 이라는 뜻이죠? ‘알라’ 할 때 ‘알’ 다 이거예요. , 그리고 ‘야’ 가 바로 여호와, 여호바 라고 읽고 이 바브를 와우라고도 읽으니까 여호와, 여호바 다 같은 말이에요. 그냥요. 이 ‘야’가 이 여호와의 축약형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엘리야’ 라는 말 자체가 뭐냐면 여호와의 하나님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여호와는 뭐예요? ‘말’ 소리입니다. ‘말’ 소리입니다. 내 말을 줄거야~ 그런데 어떻게? 네 말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우리가 그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 그릇 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말로 주셨을 때 그걸 여호와 라고 한단 말이에요. ‘내말을 네 말로 좀 쓰게’ 를 여호와라고 그래요. 이거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거예요. ‘엘로힘’ 아까 말씀 드렸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도입한 개념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설명해 주기 위해 창세기 2 4절부터 4장까지 여호와 엘로힘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이 땅의 우리에게 주신 성전, 역사, 인생, 예수, 성경 이런 거란 말예요. 그러면 여호와도 안 보이는 거고, 엘로힘도 안 보이는 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호와 엘로힘 이렇게 눈에 보이는 걸로 줘 놓고는 이름을 여호와 엘로힘 이라고 그랬어요. 무슨 말이냐면, 이렇게 보이는 거로 주더니 ‘얘들아 이거는 사실은 안보이는 거야~’ 이렇게 준 거예요. 그러니까 ‘보이는 것으로 그냥 봐 버리면 안돼~’ 그게 예수에요. 그게 성경입니다. 너희들은 내가 준 그것을 내용으로 봐야지 이렇게~ 너희들이 그걸 그냥 표피적으로 보면 안돼~ 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주시고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주고는, ‘이건 안 보이는 거야’ 이렇게 준 거란 말이에요.


자 그것을 주는 하나님의 역할을 하는 그게 엘리야에요. 그 엘리야가 이땅에 세 번 오죠? 첫 번째 그 불말과 불병거 타고 어디로 갔대는 그 양반, 그 엘리야 있죠? 그죠? 그리고 두 번째 엘리야가 누구에요? 예수님이 세례 요한 보고 엘리야 라고 그래요. 맞다 그가 엘리야다. 그런데 당신도 엘리야에요. 전부 그 역할을 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어 그 말씀을 내 안에 그 하나님을 내 안에 마음으로 갖게 하는 역할을 하는 그게 엘리야에요. 그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어서 내가 그 마음을 줄거야~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그 마음을 바꿔 줄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한 번 보세요.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돌이키고 이게 회개에요. 슈브, 메타노에오 똑같은 단어에요. 그걸 히브리어로 바꾸면 슈브거든요.

이게 끝이에요. 구약의 끝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을 돌이키는 어떤 이가 와야 되잖아요. 그 분이 예수라니까요. 마태복음 1장 ‘빛이 왔다’ 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슈브라는 단어에서 쉐브엘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대요. 그 단어가 뭐냐면, 쉐브엘이 뭐냐면, 엘이 하나님이잖아요. 쉐브가 돌이키다, 회개케 하다 그죠? 그런데 이렇게 붙여 써 버리면 뭐냐면 하나님의 포로 이런 뜻이에요. 그러면 여러분이 회개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요. 하나님의 포로가 되어 그분에게 끌려가는 거예요. 그걸 회개라고 한다니까요.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도 하나님이 회개를 설명하시는데 그 분이 잃어버린 이가 찾아가지 드라크마가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주인을 찾아 오지 않는다니까요. 잃어버린 양이 주인님 어디 계세요? 하고 찾아 오는 게 아니라 주인이 찾아가서 어깨에 메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는 잔치가 벌어지는 거란 말입니다. 그 이야기가 세리 레위의 이야기와 똑같은 거고 또 누가복음 15장의 그 세리의 이야기와 또 똑같은 거란 말입니다. 그게 구원이란 말이에요. 자 그 마음, 그 마음은 새 언약에서도 여러 번 반복하여 제시되었던 바로 그 마음이에요. 그 마음이. 한 번 보세요. 하여튼 우리가 수십 번 찾아서 읽었는데 읽을 때 마다 새로워~ 그래서 자꾸 읽는 거예요. 우리가요. 한 번 보세요.

에스겔 36:25~29

25 맑은 물로(이제는 우리가 단어의 개념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이제 성경의 내용들이 좀 명쾌해 지지 않아요? 자 맑은 물은 뭐예요? 깨끗한 물, 진리의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그 물로만 정결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신약 때에도 정결 예식을 행하는 항아리에 항상 물이 들어 있는 거고 성전 마당에도 물두멍에 물이 있는 거예요. 그걸로 깨끗이 돼야 성소로 들어 갈 수 있는 겁니다.)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우상섬김, 아까 고리도전서에서 우리가 찾아 읽은 것 중에 한 대목이 나왔습니다.)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요한복음의 말로 바꾸면 이 영이 말이요. 생명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말씀, 로고스로 생명이다 그랬어요. 자 새 영을 너희 속에, 내 말씀을 내 말을, 내 영을 너희 안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그게 새 마음을 주는 거란 말이에요.)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르하흐, 하나님의 성령이지만 이것도 역시 영이에요. 같은 말이에요. 영이나 신이나~ 내 신을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내 말씀을 너희 안에 두어서~ 그 신비에 새긴다는 말이 이 말이란 말이에요. 신비가 뭐예요? 마음, 돌비의 반대 말이니까. 돌비는 내 밖에 돌에 새겨진 내 밖의 율법이고 그게 내 마음에, 마음으로 들어와 버리면 그것이 신비에 새겨지는거니까. 그게 마음이니까)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이건 Keep 이란 뜻이지 어떤 doing, acting의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 Keep 너희들이 내 규례를 이제 지킬거야~ Keep 하게 될거야~ 마음으로~)

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그렇게 너희 안에 그 새 마음 그 진리가 마음으로 들어가 앉게 되면 그 때 너희가 기근을 당하진 않는~ 풍성한 양식을 먹는 자가 되는 거라고 그래요. 그게 율법을 금식하고 진짜 먹어야 할 것으로 먹는다는 이야기죠. 이게 새 언약이란 말이에요. 예레미아에서는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 보세요.

예레미아 31:31~35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똑같은 말이에요. 여러분.)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여러분이 이런 대목들을 이제 중요하게 밑줄을 쫙쫙 쳐 넣으셔야 되요. 내가 남편이 되어서 너희들을 애굽에서 끌어냈다. 그런데 너희가 내 언약을 파하더라~ 60만명 중에 599,998명이 범했잖아요? 상징이지만, 남편이 되었는데 아니었대요.)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러면 그 전에는 밖에 법으로 그들을 끌고 가려고 했다는 거죠? 그것도 남편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마음에 그 분이 들어와 있으니까)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그렇게 되면 그게 용서다 그러는 거예요. 뭐 착한일 했다고 그런 말 있어요? 여기서? 그게 아니라 너희들 안에 그것이 그 마음이 되면 그게 용서다 이러는 거예요.)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보세요. 나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을 밤의 빛으로 주었어~ 그러나 그건 둘 다 빛이네요. 오르에요. 빛이에요. 그것이. 그리고 나는 바다를 그리고 그 파도를 시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낮의 해, 밤의 달, 바다, 파도 이것으로 그 말을 들으면 되겠네요? 낮의 해, 밤의 달 이걸 이리저리 나눌 게 아니라 파도와 바다를 뭐 평온과 뭍으로 이렇게 나눌 것이 아니라 그것에 내가 내 말을 심어 놓았다고 하시니까~ 그걸 내가 내용으로 알면 될 거 아니에요? 그거 보세요. 그거를 내가 너희들에게 마음을 주었을 때 너희는 그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그리고는 그때 너희는 죄 없다 함을 받으리라~ 그렇게 보면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깨달으면 된다는 거예요. 뭘 고치거나 이런 것을 했을 때 주어지는 게 용서가 아니라니까요. 그걸 에스겔서에 연결하면 그게 바로 참된 양식을 풍성하게 먹는 거야~ 이런 말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걸 그냥 표피적으로 율법적으로 문자적으로만 받아 버리면 그게 진짜 먹어야 할 것을 못 먹는 금식이야~ 그러니까 봐라~ 신랑인 내가 와 있는데 너희들은 금식한다고 아무것도 안 먹네~ 그러나 이 레위 이 세리는 나와 함께 먹는다~ 이가 산다 라는 뜻이에요.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아 너희들은 신랑이 남편이 왔는데 안 먹네~ 그러나 이들은 먹는다. 레위가. 이제 자카이오스 삭개오가 될거니까. 온전한 자가 될거니까. 그래서 주님이 나는 의를 강권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를 다른 마음으로 보게 다르게 보게 만들러 온 거야~ 이렇게 말씀 하신 거예요. 주님은 세리라는 표피적인 인물을 그저 죄인으로만 보고, ? 선하게 마음으로 보면 그냥 죄인죠. 그거. 야 조승희 몇 십명 죽인 그 나쁜놈, 유모식이 그 사람을 토막을 쳐서 인육을 팔아 먹고 그랬다면서요. 여러분 그 이름 안에서 나를 봐야지 여러분이 그 사람들을 나와는 정말 다른 진짜 나쁜 놈 이러고 있으면 여러분은 아직도 용서가 뭔지 모르는 거예요. 왜 모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라고 이야기 하고 갔겠어요? 우리는 저 놈이 죄인 중에 괴수죠~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거를 아주 성실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증명할 수 있는 일을 신앙이 좋다 라고 평가해 준다니까요. 그러니까 무슨 기독교가 뭐 이런 기독교가 있어요? 성경과 아무 상관없는 기독교~ 그냥 다른 종교와 아무 다를 바가 없는 그냥 그런 종교. 그냥 무속신앙이죠. 자 그렇게 너희들의 두 마음으로 이 레위를 그냥 죄인으로 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와 함께 먹는 것조차도 부정하다 라고 하는 나를 비방하고 있는 너희가 그걸 하나님의 선물을 진리로 받아 그걸 마음으로 갖게 되면 너희는 이걸 다르게 보게 될 거야~ 이게 왜 부정한거야~ 그러면 너희들이 부정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그건 뭐니? 지금 내가 이 레위와 먹는 거를 너희들은 부정하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너희들이 먹는 그 깨끗한 건 도대체 뭐냐? 나에게 좀 말해 달라는 거예요. 너희들이 먹는 그 깨끗한 건 도대체 뭐냐? 도대체 너희들은 뭘 먹고 있길래 내가 왔는데 금식을 하고 나와 함께 안 먹고 너희들 걸 먹고 있니? 주님이 그거 물어 보시는 거예요. 너희들이 부정하다 생각하여 먹지 않는 그것이 바로 잘못된 금식이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먹어야 할 것을 안 먹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고 있구나~ 그래서 거기에 금식의 이야기를 딱 가져다 붙여 놓은 거예요. 한번 보세요.



누가복음 5:33~35

33 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이 신랑은 몇 번째 신랑? 첫 번째 신랑이죠. 그 다음 줄에서 죽잖아요. 보세요.)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이게 신랑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다 라는 이런 말이에요. 빼앗기다. 죽다. 그 신랑은 죽을 거라는 거죠. 아까 그 새 언약에서 내가 남편으로 너희에게 너희 밖에서 너희 손을 잡고 끌고 갔는데 그럼에도 너희들은 법을 어기더라~ 했을 때에 그 남편인거예요. 이것이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의 우리의 첫 번째 혼인 잔치는 비극으로 끝나야 맞는 거예요. 어떻게 남편이 죽는다니까요.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거다’ 이 신랑과 있을 때에는 신랑이 주는 걸 먹을 거라는 거예요. 그러나 이 신랑을 빼앗기는 그날에는 이거 안 먹는다는 뜻이에요. 이게 뭔지를 한 번 여러분이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 그들은 금식합니다. 라고 이야기했어요. 여기서. 그리고는 예수의 제자들이 이렇게 대조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뭘 먹고 있네요. 자 여기서 금식과 뭘 먹음의 대조가 일어나고 있는데 요한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과 선지자의 때가 요한의 때까지다 라고 했으니까 구약의 마지막 인물로 나오는 거예요. 이제요. 자 구약의 제자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율법주의들의 대표들인 거예요. 구약의 대표들인 거죠. 그런데 바리새인들은요 자기들의 제자들을 절대 제자라고 안 불렀습니다. 아들이라고 불렀어요. 주님이 왜 복음을 설명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개념을 끌고 와서 설명해 주시는지 아세요? 바리새인들은 제자를 두지 않았어요. 자기가 가르치는 그들을 아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래 그럼 내가 너희들이 아는 걸로 설명해 주게~ 바리새인은 우리의 대표란 말예요. 진리를 알기 전에 모든 인간들은 율법주의에 속해 있던 자들이니까 그래 그 아들을 가지고 내가 설명해 주게~ 너희의 아비는 너희들이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 아비는 마귀다 라고 하고 시작하신다니까요. 나는 아버지의 말을 하는데 너희의 아비는 마귀다 라고 했을 때 두 아버지가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너희가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그걸 내 아버지로 설명해 주게~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그 아들이라는 개념을 들어다가 설명해 주시는 것뿐이에요. 자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다 라고 이야기 하시는데 여기서 손님이라는 말은 후리오스 아들입니다. 혼인집에 있는 아들들이, 아들들이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선택 안에 있는 자들이란 뜻이에요. 아들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데 그 잔치 집에서 아들들 보고 금식하라 할 수 있느냐~ 그래요. 하나님이 지금 세리 레위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잔치를, 거기에다 이 비유를 붙이는 거니까. 신랑과 함께 하는 레위의 혼인 잔치라고 하고 있단 말이에요. 왜 이름이 마태가 아니고 레위인지 여러분이 여기서 분명히 이걸 분별해 낼 수 있어야 되요. 신랑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신랑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게 옳다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 있다가 아파이로 신랑이 완전히 사라지는 이 ‘제거하다’ 혹은 이렇게 ‘들어 올리다’ 이게 ‘십자가에 매달다’ 를 ‘들어 올리다’ 라고도 표현하잖아요. 그 단어에요. 완전히 제거되면 들어 올려지면 신랑이 그러면 그들이 금식하게 된다고 그래요. 그런데 지금 혼인잔치에서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는 자가 누구? 레위, 세리 레위 그러죠? 세리 레위 그죠? 그런데 레위는 누구의 이름이에요 또? 레위지파요. 레위지파가 뭐 했던 사람들이에요? 성전에서 율법 열심히 지키고 제사 지냈던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이. 제사장들이 다 레위지파 사람들이니까. 자 율법주의의 대표가 레위 라니까요. 그런데 그 레위라는 단어 자체는 연합이라는 뜻이라고 그랬죠? 뭔가 가능성을 품은 레위인거예요.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를 왜 만들라고 해요? 애굽에서 내가 장자들을 다 끌어냈으니까~ 장자는 다 내꺼야~그러니까 장자 다 데리고 와~ 라고 그랬을 때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전부 성전에 가서 섬기면 나라가 운영이 안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장자 대신에 대표로 간 게 레위니까 이스라엘의 장자들이란 말이에요. 그들은 하나님이 택한 아들들로 가 있는 건데 첫 번째 신랑과 함께 첫 번째 성전과 함께 뭐를 하냐면 그 율법을 받아 율법을 섬기고 먹는 자리에서 출발을 하드라는 거예요. 레위가. 생각해 보세요 그게 없이 어떻게 진리를 알아요. 아니 의라는 게 이 땅에, 묵시 속에 의라는 게 없는데 죄가 없으면 이게 없는데 뭘로 이걸 설명하냐구요. 마찬가지인 거예요. 레위, 하나님과 연합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장자들이 될 그들은 그 성전에서 첫 번째 남편인 그 율법을 먹고 마시게 되어 있어요. 처음에. 그러나 결국은 자카이오스 로 완성이 되는 그런 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레위와 함께 그 레위 이외 모든 이들도 그걸로 먹어요. 똑같은 걸로 먹는다니까요. 신랑이 왔지만. 그러나 이들은 이걸 먹고 이게 나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거구나 라고 깨달아 그걸 내용으로 먹는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신랑이 왔을 때 다 똑같이 먹는데 그들은 이걸 진리로 먹는다고 이야기 하고 다른 이들은 너희들은 그걸 그대로 먹어 버리니 못 먹는 거구나~ 금식한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으로 열심히 행하는 그걸 주님이 그걸 금식이라고 한다니까요. 왜 금식하고 있어? 먹어야지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들도 똑같이 율법으로 먹었는데 이들은 그거를 이제 진리로 화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자리로 불림을 받은 자란 말예요


이 레위는. 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첫 번째 신랑이 주는 그 율법이라는 양식을 먹고 어디서 나오죠? 애굽에서 나옵니다. 맞아요? 어린양, 우리가 그 혼인잔치에 그 남편을 어린양이라고 하잖아요. 애굽에서 나올 때 뭐 먹고 나오냐구요? 어린양 고기 먹고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첫 번째 남편의 그 고기를 먹고 나오는 거예요. 그걸 양식으로 먹고 나온다니까요. 유월절 고기, 십자가 이전의 예수가 주시는 그건, 그 말씀은 다 ‘유월절 어린양 고기적’ 말씀인거예요. 그래서 그 말씀을 먹고 아무도 못 살아난 거예요. 다 도망갔다니까요. 수제자까지. 그 고기는 먹고 살아나는 고기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애굽에서 60만명이 전부 죽는 겁니다. 자 그곳에서 나와서는 이제 그 고기는 먹으면 안되죠? 그래서 주님이 고기 주세요~ 고기 주세요~ 하는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그것도 새입니다. 성경에서 새는 항상 율법을 상징한다고 그랬어요. 공중의 새, 그런데 어디서 몰고 온다고 그래요? 바다에서 몰고 온다고 그럽니다. 아래의 바다, 바다에서 몰고 온 그 새를 주어 그 고기가 잇 사이에 끼기도 전에 다 죽였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이에요. 고기를 준 게 아니란 말이에요. 잇 사이에 끼기도 전에 죽은 게 뭘 먹은 거예요. 그게? 약만 올린 거지~ 그래요. 고기는 밤의 양식이고 만나는 아침의 양식이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그러면 밤의 양식을 먹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자꾸 고기 달라고 그러니까 그래 주께~ 라고 줘 놓고는 그걸 먹는 족족 죽여 버린 거예요. . 그러면 다시 유월절 어린양의 그 첫 남편이 주는 그 고기를 다시 먹으면 돼요? 안돼요? 안돼요. 그것으로 먹으면 안돼요. 그걸 어린양의 피로 다시 마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떡을 먹은 다음에는 포도주를 마셔야 되는 거예요. 이게 순서로 나와 있다니까요. 떡과 포도주 함께 먹는 거 아니에요. 어떤 이들은 그 애굽의 고기를 먹고 그것이 좋아 그 자리에 그냥 머물고요. 어떤 이들은 그 고기를 먹고 애굽에서 나와요. 그런데 나와서도 항상 그 고기를 기억한다는 건 그들이 나와야 할 애굽의 양식에, 그 본질이 뭐냐 하면 바로 그 고기적 성격의 양식이라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제물, 제사의 제물이니까 율법이란 말입니다. 세상에 사는 그들의 양식은 율법이라니까요. 그래야 내 가치가 높아진다고요. 야 훌륭하네~ 참 도덕적이야~ 참 윤리적이야 이런 칭찬을 받아야 비로소 내가 신앙인이라는 그런 자각을 하는 그런 비천한 비루한 수준~ 그런데 그 첫 번째 신랑은 반드시 죽는다 라고 그래요. 그게 로마서 7장의 이야기에요. 다시 한번 보세요.



로마서 7:1~6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두 번째 남편이에요. 그리스도요. 죽은 첫 번째 남편은? 육적인 예수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 첫 번째 남편)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이 열매는 물론 생명 열매죠?)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사망은 여기서 다나토스입니다. 그러니까 진리로 죽는 거~ 이야기 하는 거죠.)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영의 새로운 것 진리의 말씀이죠. 자 그것으로 우리는 이제 섬기게 되는 거예요. 섬긴다 라는 자체가 ‘그 말씀을 흘려주는’ 거니까. 나에게, 이웃에게~ 그동안 여러분이 이 내용을 원색적으로 받을 그릇이 되지 못해서 제가 자꾸 이렇게 저렇게 에둘러서 설명을 해드렸는데 이제는 여러분이 로마서 8장까지를 다 공부했고 산상수훈을 반 이상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제가 이제 원색적으로 던질 수가 있어요


자 생각해 보세요. 아직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확 주지 못하는 게 있는데 그거는 차츰 차츰 줄 거에요. 그런데 지금 그거를 확 던져 버리면 여러분들에게서 팡 튕겨져 나오게 되기 때문에 왜? 그 동안에 가졌던 율법적 울타리가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제가 8년 전에 여러분에게 아직까지도 신앙이라는 건 하나님께 열심히 빌어서 복 받고 병고치고 뭐 이런 거로 아는 그런 분들에게 여러분 회개라는 건 그게 아니고요. 용서라는 건 그게 아니고요. 죄와 악은요 원래가 하나구요. 이렇게 말해 보세요. 난 맨날 혼자 그러고 있었을 거라니까~ 계단이 단계가 있는 거잖아요


자 이제 이 내용이 뭔지를 제가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말씀 드릴게요. 여기에 보면 율법과 율법을 아는 자들아 라고 이야기 하죠? 그럼 '율법'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라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 두 개념이 대조가 되고 있어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그냥 그래 율법, 그건 나쁜 거, 성령, 좋은 거 이렇게만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한 번 보세요. 율법이라는 것을 죽어야할 첫 번째 남편이라고 그래요


그러면 아까 누가복음 5장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과 연결해 보세요. 그 죽어야할 첫 남편이 누구에요? 혼인집에서 레위와 잔치 하고 있던 그 신랑이죠? 그런데 그 신랑은 반드시 죽어야 된다고 그래요. 그러면 그 신랑은 뭘로 죽은 거예요? 율법으로 죽은 거예요. 뭘 주고? 율법의 양식을 풍성히 던지고 그러나 거기에 진리라는 내용을 담아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어 버리는 육적인 예수를 가리키는 거예요. 그 육적인 예수가 살아 있으면 아 나를 위해 그렇게 큰 일을 해 주신 그분을, 늘 그 분께 감격하고 그분을 칭찬하고 그 분을 섬기느라 우리는 또 율법의 종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주님이 말씀하신 거예요. '그 남편은, 첫 번째 남편은 반드시 죽을거야~' 그런다구요. 반드시 죽을거야~ 그리고 너희들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시 오신다는 거예요. 그럼 내 안으로 들어온다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내 밖에 두고 섬길 존재를 없애 버리겠다 는 뜻이란 말입니다. 선악구조 속에서 여러분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뭐라고 그랬어요? 선악도 그렇지만 남-, -인도 반드시 벗어나야 할 선악구조인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과 내가 연합된다. 하나가 된다.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자꾸 이런 개념을 말씀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묶어서 사람이라고 단수로 이야기를 해 버리는 거고, 그러니까 자꾸 남자, 여자를 차별하고 구별하고 그래서는 안된다니깐요. 우리가 좀 전에 찾아 읽었던 예레미야 31장에 새 언약에서 내가 남편이 되었어도 너희가 그 법을 어겼다. 지키지 아니했다 라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그 남편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이 남편은 필요가 없어요. 죽어야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 남편이 내 안에 진짜 남편으로 연합되는, 다시는 끊어지질 않을 그 영으로, 내 마음에 새겨질 남편으로 들어 올려면 첫 번째 율법인 내 밖의 남편은 죽고 그 남편이 의미하던 그 내용이 진리로 내 안으로 들어와야 되는 거예요. 그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예수라는 첫 남편과 그리스도라는 두 번째 남편의 이야기인 거예요. 마귀와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항상 그런 거에 묶여 있어요


주님이 요한복음 7장에서 그 성령을 뭐라고 그래요? 배에서 나오는, 흘러 나오는 생수다 그런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와 참여하게 될 연합의 존재들, 그 레위들 즉,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율법의 고기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제대로 먹은 자들 있죠? 제대로 먹은 자들은 반드시 이제 그 남편과 첫 번째 남편과 먹었던 그 고기를 그게 뭔지 알았으니까. 율법이 뭔지 알았으니까. 이제 그 남편이 죽으면 금식하고 그거 안 먹고, 다른 것으로 먹게 된다는 그런 말이에요. 율법으로 이제 안 먹고 그 고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이제 애굽의 그 고기 주세요~ 그 고기 주세요~ 안그러고 반석에서 나오는 그 생수로 목을 축이면서 그 물이 나를 살리는 거네요. 라고 그걸 마시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떡은 먹어요. 그죠? 가롯 유다는 누구의 모형이에요. 유다라는 말 자체가 이스라엘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유다의 자손으로 오죠? 유다라는 거 자체가 가능성 없는 온 세상을 상징하는 것 그게 나란 말이에요. . 그 유다가 12제자 안에 끼어 있어요. 그리고는 그 12제자와 함께 떡을 먹는다니까요


그런데 성경이 유다가 받은 조각만 부소니언, 부스러기라고 그래요. 말씀을 덩어리로 먹지 않고 부스러기로 먹는 걸 율법으로 먹는다고 그래요. 그런데 성경이 기가막히게 유다가 받은 떡 조각을 부스러기, 부소니언이라고 이야기 하고 그는 그거는 먹어요. 첫 남편 그 레위라는 그 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던 첫 남편 준, 그 고기, 그게 떡이라고 하잖아요. 그거는 먹는데 그는 밤으로 나가 버려요. 같이 먹었는데 유월절 어린양의 고기를 먹고 중다한 잡족으로 애굽에서 다 나왔는데 대부분이 다 그걸 잘못 먹고 광야에서 죽고 교회에서 죽고 거기에서 몇몇이 살아서 약속이 되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거예요


약속의 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이 약속의 완성이 되면 그들이 밟는 땅이 약속의 땅 이에요. 요새 이스라엘이 자꾸 그 하나님이 약속의 땅으로 우리에게 준 거 뺏는다고 거기서 멀쩡이 살고 있는 사람 다 쫓아내 가지고 왜? 성경 근거로 하여 아니 무슨 하나님이 그 땅을 언제 준다고 그랬냐구요? 성경을 그렇게도 모른다니까~ 이스라엘이 그들이 그 땅을 뺏고 있단 말이에요. 아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도대체 뭐냐구~ 몇 천년동안 살고 있는데 갑자기 힘 센 놈들이 오더니 다 나가~ 그러더니 벽으로 그냥 다 가둬 버렸네~ 그리고는 성경을 들이대더니 하나님이 이 땅을 우리에게 줬대요. 아니에요. 그들은 이 산상수훈 강해를 들어야 돼요


그건 그 땅이 아니라 약속이 된 자들이 밟은 땅이라고요. 그게 약속의 땅이라면 거기는 그렇게 천수답 농사를 짓는 척박한 땅이면 안돼요~ 지금도 이스라엘은 바닷물을 증류시켜서 물로 겨우 마시는데 그게 무슨 약속의 땅이냐구~ 거기가. 포도송이가 사람 머리만 했다라는 건 포도 송이라는 게 여러개가 합쳐서 하나가 되는 바로 연합의 의미를 설명하기 때문에 여기가 바로 그 일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라는 의미지~ 무슨 대가리만한 포도를 어디서 요즘도 없는데 거기는


그러니까 껍데기로 문자로만 성경을 보니까 우리는 자꾸 그냥 이솝 이야기 수준으로 그걸 이해할 수 밖에 없는거라~ 성경을요. 그리고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뭘 줘요. 포도주를 준다니까요. 유다는 그걸 못 마십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냐면 그걸 떡으로 먹고 그 고기를 먹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구나 그 피는 곧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말씀이구나 라고 알아먹지 못하면 그 고기 그 떡 먹고 다 죽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서 네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 먹고 다 죽었다 그래요. 만나 먹고 다 죽었다 그래요. 그거 살릴려고 죽인 거 아닙니까? ~ 그런데 그걸 만나, What is this? 이게 뭐야? 모르면 그게 만나 라는 단어의 뜻이에요. 히브리어로. 모르면 죽는다 이런 말이에요. 그걸 반드시 포도주로 마셔야 되는 거예요. 가롯 유다가 밤으로 떠난 그 뒤의 상황이 이러 합니다.




마가복음 14:23~25

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이 언약 안에 들어 있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말씀을 떡으로 고기로 먹어봐야 다 죽는 거예요.)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바실레이아)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새것으로 마시는~뭐예요? 새것으로 마시는 거, 성령이잖아요. 머리에서 삼단 논법으로 연결이 안돼요. 이게. 주님이 그걸 성령이라고 그랬잖아요. 생수라고 그랬고, 그럼 새 것, 그것이 성령이죠~ 그걸 모형으로 준 게 포도주잖아요. 그러면 그걸 새 것으로 여러분은 마셨죠? 여러분 안에 성령 있다면서요.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그러면 그 포도주는 여러분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없어요


성찬식 너무 좋아 하지 말아요. 제가 여러분들이 스스로 알아서 왜? 기독교의 이 역사와 전통이 낳아 놓은 것들이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동안 우리는 너무 거기에 목숨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다 이렇게 해드리지만, 저는 찬양을 불러도 내용들이 엉뚱한 게 얼마나 많아요?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지 저거를 진리로 이해해 볼려고 애를 쓰면서 듣잖아요. 그러듯이 여러분이 스스로 아 이제는 이게 의미 없는 것이네요 라고 나오면 하나하나 없앨 거예요. 그러나 끝까지 여러분이 이거 필요합니다. 끝까지 할 거예요. 하든 안하던 무슨 상관이에요


그러나 여러분이 그런 것에서 부터도 자유로워져야 되요. 보세요 하나님 나라에서 내가 새것으로 마시면 이젠 다시 안 마신다. 그게 피에요. 그 피는 물이고 생수고 그 생수는 주님이 성령이다 그랬단 말예요


그러면 여러분 안의 그 성령, 그 진리, 그 말씀이 들어가 있으면 이제는 그 어떤 종교행위라는 것도 대단한 가치가 있는게 아니에요. 그러나 율법이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그 진리 전하기 위해 율법이 있는 자처럼 없는 자들에게는 없는 자처럼 그렇게 간다 라고 이야기 하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말처럼, 그까짓 거 해 주면 어때요.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빡빡 깎고 한 거 사실은 그거 하면 안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자기가 자기돈 들여서 제자들도 깎어주고 자기도 깎고 했단 말입니다. 머리 좀 깎으면 어때요


우리는 그러한 어떤 표피적인 종교적 어떤 행위, 이런 것들에 너무 목숨을 걸어요. ? 그 내용을 잘 모르니까. 그것의 가치를 잘 모르니까. 그래서 요한복음 2장에서 그 포도주를 물포도주 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첫 번째 신랑이 마련한 포도주가 있었습니다. 떨어졌어요. 잔치 집에서, 혼인잔치 집에서 포도주는 반드시 신랑이 내야 됩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면 그 잔치는 끝이에요. 끝났어요. 잔치가


그랬더니 주님이 물을 담아라~ 그래요. 어디다가? 정결 예식 행하는, 깨끗이 닦는 그 물 담는 항아리에다가. 

그래 놓고는 그걸 포도주로 바꾸더니 뭐라고 그러냐면 그 둘 다 명사에요. 이게 물 포두주야 그래요. ? 물 포두주죠? 포도주라는 건 너희들을 깨끗이 씻는 거지~ 그것을 너희들이 찬양의 대상으로, 섬김의 대상으로 갖고 있으면 안되는거야~ 그리고 중요한 건 술은 누룩으로 담그는 거죠? 누룩. 누룩이 들어가야 술이 제대로 익죠? 맞죠? 그런데 물 포도주는 뭐에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술이란 뜻이에요. 그게 깨끗한 술이라니까요. 그것도 찾아 다니지 말아요. 그런 거 어디에 있나~ 없어요 그런 거~ 성경에서 상징으로 주는 거죠


물 포두주, 이것이 물이야 이런 말이에요. 포도주는 물이어야지~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반드시 피, , 성령 이렇게 흘러가야 되고, 고기, , 성령 이렇게 흘러가야 되는 거예요. 안 그러면 그냥 우리는 그 성경 말씀 안에서 여전히 율법의 종으로 살 수 밖에 없어요. 그렇게 첫 번째 남편 그 남편이 남기고 간 그 피, 그 피를 진리의 물로 마셔야 되는 거예요. 그게 정결의 물, 물 포도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짜 양식을 먹는 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첫 번째 남편과 함께 먹었던 그 율법, 그거는 이제 금식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율법을 행하면서 금식을 하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 거예요. 그게요. 금식하면서 배터지게 먹는 거예요. 영적 비만 걸리는 거예요. 그게 무서운 거는 몰라요. 육의 비만만 걱정해 가지고 말이죠. 그냥 다이어트하면서 금식한다고 그럴거면 차라리 그냥 단식원을 가세요. 금식 기도원 가지 말고. 한 이틀 지나면 힘 빠져서 뭐 기도나 합니까. 너무 많이 해봐서 잘 아는데요


그렇게 우리는 ‘자칼’ 을 품은 ‘네케바’가 되어서 진짜 연합, 진짜 레위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레위는 반드시 세리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되는 겁니다. 로마서 7장에서 그걸 두 번째 남편을 영의 새것이라고 그랬잖아요. 예 그게 그리스도의 영,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혼인집, 신랑의 이야기, 그 금식의 이야기에 또 새 포도주, 새 부대 이런 이야기가 붙어 있는 거예요. 그건 다음주에 To be continue 결론 맺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미 법에서 해결되었고, 해방이 되었고 죄의 용서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하나님 그 안에서 그 진리 안에서 자유하게 하시고 그 자유가 우리에게서 참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을 터뜨릴 수 있는 능력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