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 42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32

산상수훈 42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태복음 6 13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 주기도문 마지막 시간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하나님의 용서’에 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하늘의 양식을 진리의 떡으로 잘 받아 먹은 이들은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되고, 용서한다니까 뭐 내 죄를 어떻게 용서하는건가 궁금해 하실 분도 계실텐데, 그냥 ‘죄와 무관해 지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좌와 우가 없어지고, 선과 악과 상광없어 지는 거. 그거 용서라고 하죠. 굳이 우리 말로 표현하면, 그 용서의 말씀을 또 다른 이웃들에게 올바로 전달을 해 주면, 그들이 그들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 그랬죠? 그렇게 되면 자신의 행함과 또 됨됨이, 거기에 대한 그런 무거운 그 부담감으로서의 그 빚, 모든 인간이 그 빚을 갚는 그런 삶을 산다 그랬죠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 줄 알고, 그러한 빚이 진리 아래에서 청산이 되고, “아!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히려 당신의 약속을 성취시켜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께 빚을 갚는 삶을 사는 게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닌 거구나“라고 이제 알게 되죠? 그게 진리 아래에서 우리 빚이 청산되는 거구, 또 누군가에게 그 올바른 진리를 전달해 주어서, 그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하는, 그게 성경에 또 빚진 자라는 말로 표현을 하잖아요


왜 여러분이 빚을 졌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아이테오’, 구하는 어떤 이들에게 내가 주는 입장이 되면 그 사람이 그냥 빚진자라고 그래요. 그러한 누군가에게 그 말씀을 전해주어, 그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하는 내 빚, 이것도 탕감이 되는 거라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들은 서로서로 사랑의 빚진 자로 살아라. 이렇게 이야기 했죠? 서로서로. 그렇게 서로서로 빚을 탕감해 주는 그 관계를 상호 빚진 자가 되어서, 그 빚을 서로 탕감해 주는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런 마땅한 성도의 의무, 의무라 그러면 표현이 조금 그런데, 마땅한 단어가 없어요. 하여튼 마땅한 성도의 의무, 해야 할 그 일, 마땅한 성도의 반응 그런 반응, 그것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오페일레마’, ‘죄’라고 한다고 그랬죠? 빚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의무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그 죄는 마땅히 자기 안에서 가장 먼저 탕감이 되어야 되고,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었을 때 ‘아 그거군요’라고 탕감이 되는 일들이 마땅히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지 않았을 때, 거기에 묶여 있는 걸 ‘죄’라고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죠


죄라는, 뭐 살인, 간음, 거짓말, 너무 이런 것에만 여러분이 너무 묶여 있으면 안됩니다. 그 진리를 깨달은 성도가 어떻게 하여 자기 자신과, 자기 이웃과 심지어 하나님까지, 그 빚진 자의 자리에서, 내가 구해서 얻게 되면, 하나님을 빚진 자의 자리에서 옮겨 드리는 거잖아요, 그죠?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빚진 자의 자리에서 하늘의 자리로 옮겨 놓을 수 있는가 그랬죠? 좌와 우를 없이하고, 모형과 그 실체를 연합시키며, 모형 안에서 실체를 봐내는 거죠. 아 이게 그거구나 이렇게 껍데기와 내용을 하나로 보아서, 죄와 의, 선과 악, 어둠과 빛, 이런 구분을, 그런 구분을 진리 안으로 이렇게 다 함몰시켜 내는 거에요. 하나로 함몰 시켜 내는 거에요. 함몰시켜 내어서, 거기에서 위대한 하늘의 용서를 보게 하는 거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시험’이라는 것은 뭐겠어요? 시험, ’페이라스모스‘

죄와 의, 선과 악, 표피와 내용, 죄와 의, 어둠과 빛, 이런 이분법적 선악의 패러다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시험에 빠진 것‘이라고 하는 거에요.


오늘 본문에 시험이라고 사용된 단어, ‘페이라스모스’는요, 거기에 걸리게 되면, 그냥 실족하여 망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시험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에요.

그 단어의 동사형이 ‘페이라조’라는 단어인데, 그 하나님께서는, 그 ‘페이라스모스’적인 그런 시험은 안 하신다라고 이야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야고보인데요. 1 13절 보세요.

 

 

야고보서 1 13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이게 ‘페이라조’에요, ‘페이라스모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보시는 것처럼, 이 ‘페이라조’, ‘페이라스모스’적인 시험을 하나님은 절대 하지 않으신다고 아주 완곡하게 야고보 사도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나, 다른 이들을 시험하실 때 ‘페이라조’로 시험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거에요? 야고보가 잘못 안건가요? 동생인데.. 한군데만볼까요



요한복음 6 5

5 예수께서 논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이게 ‘페이라조’에요. 왜 주님이 제자들을 ‘페이라조’하시죠? 여기 뿐만이 아닙니다. 한군데만 찾아 드렸는데. 안하신다며요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 안한다면서요? 그 ‘페이라조’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바꾸면 ‘나싸(nasha)'라는 단어인대요. 그 단어를 구약에서 한번 찾아 드릴게요



신명기 8 2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를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누가? 하나님이. 이게 ‘나싸’에요)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나싸’는 죽일려고 하는 시험인데, 그런데 그 뒤에 3절에 그 내용을 알면 어떻게 된다? 그 시험을 통하여 그걸 알면? 그럼 산다! 이런 말이에요. 이 이야기를 성경이 만나의 이야기로 연결을 시키거든요. 오병이어의 그 현장이 바로 그 광야의 만나를 신약의 것으로 재현해 주신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 신명기의 말씀과 조금 아까 예수님께서 그 제자를 시험하셨다라는 그 말씀을 연계하여 볼 때에, 주님께서 그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빌립을 시험하신 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에요


그 ‘페이라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이걸 알려 줄려고 시험하신 거잖아요? 그리고 그것은 뭐에요? 마태복음 4장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그 이야기 하세요. ‘사람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거야’라고 해놓고, 5 1절에서 ‘입이 열려 가라사대’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러면 그 때부터 나오는 말씀들, 산상수훈이 바로 그 떡이 의미하는 말씀이겠죠, 그죠?


자 그렇게 오병이어로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면, 물고기로, 그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면, 시험에서, ‘페이라조’, ‘나싸’, 시험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거고, 그 오병이어를 그 육신의 떡으로만 먹게 되면, 그게 ‘페이라스모스’적인 시험을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페이라조’, 시험하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 목적이 그것으로 그 내용을 알으라고 어떤 것을 주는 거거든요. 아예 죽여버릴려고 그것을 주는 그런 식의 시험을 하나님은 안하신다는 뜻이에요. 이제는 여러분이 성경에서 언급되는 그 떡이라는 것이 단순히 세상의 재물이나 세상의 양식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떡이라는 건, 그런 유치한 땅의 재물들을 지칭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리의 모형으로 주신 그 아래의 것들을 총칭하는 거에요


거기에는 성전도 들어가 있고, 율법도 들어가 있고, 예수도 들어가 있고, 성경도 들어가 있고, 인생과 역사도 다 포함이 되요. 사람은 그러한 표피적 상징들을 표피적으로 받아드려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진리라는 말씀에 의해 살아날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주는 거에요.

 

아니면 그 자체가 시험이 되는 거에요. 그걸 살으라고 줬는데, 진리로 깨달아 알아야 살아요. 근데 살라고 주신 그것을 그냥 껍데기로, 모형으로만 받아드리게 되면 살라고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게 시험이에요. 거기에 걸려서 다 죽습니다. 그러한 의도를 담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광야에서 벌어졌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진리로 받았나요? 자 신명기와 연결해서 한번 보잔 말이에요. 그 떡을 준 건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거라는 걸 알라고, ‘페이라조’, 시험을 줬는데, 빌립부터 시작해서, 거기있는 모든 인간들이, 그 떡이 진리인 걸,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리인 걸 알아 먹었어요? 몰랐단 말입니다!

 

주님은 그 표적 안에 내용으로 담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보라고, ‘호라오’하라고 줬더니, 사람들은 그냥 떡으로 배를 불리는 데에서 그치더라는 거에요. 그리고 그러한 떡을 마련해 주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주님을 찾아 왔어요. 그거 먹고 왕같은 제사장이 되라고 줬더니, 그거 먹고 그걸 준 누군가를 섬기러 찾아가는 거에요.


이거 구별을 잘 하셔야 되요. 여러분. 그게 뭐 나쁜가? , 그게 죽음입니다. 이건 오늘날 자신을 구원해 주었다는 그 예수를 섬김의 대상으로 놓고, 열심히 왕대접하고 있는 어떤 이들의 모습과 똑 같은 거에요, 절대 아닙니다.


그 예수는 그렇게 내 배를 불리는 구원의 떡에서 멈추면 안되는 거에요. 맞아요, 그 분이 구원의 떡이죠! 그러니까 내가 떡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거 먹고 나에게 감사할 것이 아니라, 그걸 너희들이 진짜 진리로 먹게되면 네 안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새로운 네가 생긴다는 거지, 떡을 줬으니 감사해요하고 나를 자꾸 네 밖에서 찾지 말라는 거에요. 그 예수는 그리스도의 영, 즉 진리의 말씀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내 마음이 되어야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내가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거에요. 그 분을 왕 삼아 자꾸 추종하여 쫓아다니면 안되요. 예수님은 죽으셨다니깐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그 예수가 그 예수로 다시 살아났는 줄 알아요. 아니라니깐요. 여러분, 천국 가면은 예수님이 진짜 손에 못자국, 창자국, 이런 것 갖고 계신 것 같아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도마가 그 것 못봤다니깐요. 보여주세요라고 했을 때, 주님이 그랬어요. 정말 네가 그 걸 보고 믿게 되면 너는 아니다라는 거에요


그래서 평강이다라고 그 진리의 복음의 말씀을, 그냥 요약해서 말씀해 주셨어요. 그랬더니. 그 평강이라는 단어가 하나됨이라는 뜻이니까, 두 소가 하나가 되는 그런 뜻이니까. 그 앞에서 복음이 이미 막 설명이 되는데, 성경이 또 거기서 그 만큼을 하면 안되니까 그냥 평강이다라고 이야기를 한거란 말이요. 그랬더니 도마가 그냥 그걸 보지않고, 그 말씀을 듣고 그 예수를 알아 보았다니깐요. 그러니깐 주님이 그런다구요. , 네가 어떻게 보지도 않고 ‘호라오’했니? 나를? 그렇게 말씀하셨다구요. 개역성경에는, , 네가 복음이냐? 이런 말이 아니라, 그런 손에 못자국이 있고 창자국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지옥에 가면거기 많이 있을 거에요. 왜냐하면 그거 흉내낸다고, 필리핀에서는 요새도요 매년 한명씩 건장한 청년들이 간택을 받게 되면요, 진짜로 십자가에 못이 박히게 됩니다. 이렇게. 그게 뭐하는 짓이에요?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하나 그렇게 죽었잖아요? 매달려서. 거기가면 그 사람들 다 있을 거에요. 그 못자국 갖고. (웃음)

 

아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니깐요. 그렇게 살아난 게 아니라니깐요. 그러니까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떡은 차우너이 다른 떡, 즉 진리의 말씀이어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먹고 남은 떡이 열둘이라 그러죠? 열둘인데. 그 떡 앞에 수식되는 단어가 뭐냐하면 ‘페리슈오’에요. 그 단어는요, ‘차원이 다른’, 이런 말이에요. 그들이 떡을 먹었어요. 떡을 먹었는데 남은 걸 거둬보니까, 열둘이라는 차원이 다른 떡이더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들이 그걸로 못먹었다라는 걸 보여 주는 거에요. 마태복음 14 20절 보세요.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여기에서 ‘남은’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페리슈오’거든요. 이 단어가 너희 의가 바리새인들 보다 더 낫지 않으면 너희들은 천국 못 들어간다고 했을 때, ‘더 낫지’있죠? 이게 better가 아니다 그랬습니다. 이게 ‘차원이 다른’ 의 라구요, 그죠? 바리새인들과 비교해서 너희들이 더 괜찮아야 되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거는 그것도 율법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차원이 다른, ‘페리슈오’.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차원이 다른 의가 아니면 너는 천국에 못간다 이런 말씀하신 거거든요. 그 똑 같은 단어란 말이에요. 차원이 다른 떡. 하늘에서 내린 떡은 차원이 다른 어떤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게 뭐에요? 티끌을 열둘, 아들로 만들어내는 진리의 말씀, 그게 떡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그 말씀, 이게 진짜 떡이야, 떡이 갖고 있는 내용이야!라고 하는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떡으로 나는 이제 배고픔에서 해방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그 떡을 주신 분을 그냥 왕으로 섬기려고 하면 어떻게 되요? 멸망입니다. 여러분! 아세요?

요한복음 6 26절 보세요.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이게 ‘호라오’에요. 표적 안의 어떤 내용을 진리로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거 배부르라고 준거 아닌가요? 그런데 야단을 칩니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이 썩는 양식이 원어로 보면 멸망하게 하는 양식이에요? 그러면 너희들이 지금 배부르게 먹고 온 떡이 뭐라는 거에요? 너희들은 멸망시킬 떡이라는 거에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그러니까 그 떡은 똑같은 떡인데 그냥 떡으로 먹으면 멸망하는 양식이 되는거구, 그러면 그게 ‘페이라조’, ‘시험’이 되는 거구요. 그것으로 이 떡이 그 진리의 말씀, 그 아가페, 사랑이구나 라고 알아 먹으면 그게 영생에 이르는 양식이에요. 그러니까 그 떡을 그냥 떡으로만 먹으면 선악과고, 그것을 진리의 말씀으로 먹으면 영생에 이르는 양식이래내요? 그러면 생명나무 실과가 되는 거에요.

똑같은 거래니깐요? 따로 있는게 아니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나타난 것들을, 그 내용으로 ‘호라오’하지 못하면 그게 바로 ‘페이라조’, ‘페이라스모스’, 시험인 거에요, 멸망케 해버리는 시험. 그래서 주님이 너희 조상들도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다 그러는 거에요. 그거 하나님이 준거 아니에요 살릴라구. 말씀으로 준 거란 말이에요. 그게, 근데 불평했죠? 사람들이. 맨날 이런 것만 줘? What is this? 이게 뭐야 그랬단 말이에요. 말씀을 What is this? 이거 뭐야? 못알아 먹으면 죽는단 뜻이에요. 만나로 먹으면 죽는다니깐요?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고 그랬냐하면, 그건 모세가 내려 준게 아니지, 모세는 율법이니까, 내가 그걸 율법으로 내려 준거냐? 진리의 말씀으로 내려 준거지, 그랬단 말이에요.

 

반면에 그것을 내용으로 볼 수 있으면, 그 시험이 ‘도키메’가 되는 거에요. ‘도키메’의 동사형이 ‘도키마조’죠. ‘도키메’, 시험, 그 ‘도키메’라는 건 이런 거에요. 과학자가 어떤 실험을 수없이 반복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결과 값이 계속나와, 그러면 거기서 하나의 법칙이 생기죠? 그 하나의 법칙을 진리가 되게 만들기 위해 수없이 해보는 시험들, 이걸 ‘도키메’라고 그래요. ‘도키마조’. 그러니까 다른 시험이에요 이거는요? 그러니까 ‘페이라조’하고 ‘도키마조’는 다른 시험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의 진리를 담아 나타낸 것, 즉 아래의 것으로 이렇게 넘겨 주실 때, 그걸 그냥 아래의 것 그대로, 표피적으로 이렇게 받아버리면, 그냥 받아버리면 ‘페이라스모스’에 그냥 빠지는 거에요. 죽는 시험이에요 그건. 멸망하는 시험에 빠져 버리는 거죠? 하나님이 주시는 떡을 멸망시키는 양식으로 받는 거에요 그야말로.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런 ‘페이라스모스’적인 것들을 진리의 영 안에서 ‘아, 이게 그거구나’라고 하나로 깨달아 알 수 있게 된단 말이에요. 그것을 ‘드키메’라고 그래요. 개역성경은 그걸 전부 시험이라고 번역해 놔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데, 둘은 완전히 다른 거에요. 이렇게 하나님은 ‘도키메’로 가라고, ‘페이라스모스’라는 시험을 주시는 거지, ‘페이라스모스’를 던져서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주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성경 여기저기에 하나님은 모든 이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해라고 하시는 거에요. 모든 인간들이 그러니까 다 구원 받을 거야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렇죠, 그렇게 해서 주시는 건대, 우리가 못 알아먹으면 끝나는 거에요. 하나님의 마음은 그런데, 사랑이시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지 않으면 그걸 절대 못 알아머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없으면 너희들은 절대 못알아 먹는다를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못 알아먹는 이들이 ‘홀리고스’, ‘거의 없다’라고 한단 말이에요. 성경이요. 그러니까 그것을 진리로 분별할 수 있는 이가 사실 거의 없는 거에요.

그러면 결국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아담들이 전부 그 ‘페이라스모스’에 걸려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거에요. 본인들은 절대 아니라고 우기고 싶죠. ? ‘페이라스모스’는 아래의 것, 모양, 모형, 나타난 것 안에 갇힌 것이기 때문에 그게 율법이에요. 그런데 이 인간 세상에서 그게 정말 멋있고, 성숙한 모습이고, 도덕적인 모습이고 이러기 때문에, 절대 자기가 그 ‘페이라조’에 걸렸다고 생각 안 해요.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도 ‘성경’과 ‘예수’에 걸려서 넘어져 멸망에 이르는 이들이 부지기 수라는 거에요, 부지기수.

 

진리를 설명해 줘도, 어차피 사람의 말로 나가기 때문에, 다 이해하는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에요 여러분. 미국에 있을 때 8년을 정말 커다란 커리큘럼을 짜고서, 맨 처음에는 신비주의, 기복주의를 부수기 위해, ‘아니죠 기독교 신앙이 그렇게 복 받기 위한 게 아니죠? 우리가 하나님이 은혜로 구원 받은 ’나‘ 이것이 중요한 거죠?로 시작을 해서, 그 다음에 은혜로 가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행위, 이런 걸 뛰어 넘는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렇게 8년을 계속 오는데, 다 알아 듣는 것 같았어요, 아멘 소리도 뭐 그냥. 오늘 남가주의 교회 역사를 새로 쓴다! 왜 그러냐하면, 미국 이민 교회는 그 인원수의 곱하기 10정도 하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한 500명이 넘어가면은 굉장히 큰 대형 교회죠, 미국에서는.

 

그런데, 다 거기에 동의하는 것 같았고 굉장히 오랜 시간 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구요, 나중에 어떤 사건이 하나가 딱 발화가 되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금방 드러나더라구요, 아닌 거에요. 오히려 저한테 이만한 종이를 하나 갖고 오더니, 당신이 지금 가르치는 게 틀렸다는 거에요. 그것도 저랑 굉장히 오래 있었던 나이 많은 장로님이 가져 오더니, 나는 이렇게 많이 변했고, 이렇게 성숙했다는 거에요. 기독교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런데 왜 나의 신앙을 부정하냐는 거죠. 부정하긴 뭐가 부정해요? 뭐가 나쁘다 그랬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그거를 넘어서는 거다라고 가르쳤더니 아니라는 거에요. 우리는 이렇게 변했다는 거죠. 그런데 얼마 있다가, 그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어떤 양반이 또 오더니, 교인이었어요. 분명히 천국에는 상급이 있는데 왜 상급이 없다 그러냐구? 그리고 자기들이 교회에서 이렇게 모여서 성경공부를 가르치고 있던 사람들을 전부 끌고 나가버렸어요. 상급 받으러.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공황상태가 되더라구요. 그런 상태가 됐는데, 그 누구도 저에게 와서, 아닙니다 목사님이 잘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힘내세요 라고 하는 사람이, 500명이 넘었는데 단 한 사람도 없어. 그래서 먼지를 털고 온 거죠.(웃음)

 

여러분 이민 교회에서요 500여명이 일단 넘어갔고, 거기에 모든 기반이 다 있는데, 한국에 아무 것도 없어요. 월세 집도 없어, 그리고 애들 전부 거기서 태어났고, 집사람도 40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아무 것도 없는 여기에, 한 겨울에 올려는 생각을 누가 가질 수 있겠어요? 조금 참으면 거기에는 그래도 기반이 있잖아요.(웃음)

 

그런데, 뭐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그랬겠지만, 이 진리를 안 들을려고 하는 사람들과 제가 함께 있어야 되나?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드셨어요 거기서. 아니 이렇게 설교를 하는데, 어디서 상급 이야기를 갖고 와 갔고 막 삿대질 하면서 따지는 거에요. 저한테. 심지어 인터넷에 그렇게 많은 신학생들이나, 이런 애들이 카페에서 제 욕을 막해요. 개혁주의 신학 전체를 막 뒤집어 엎고 있다고, 그런데 단 한명도 거기에 목사님이 옳다라는 댓글을 다는 사람이 없었어요. 얼마나 외로웠겠어요 제가? 공황장애에 걸렸다니깐요.

 

모든 인간들이 나를 공격한다. 이렇게. 거기다가 매해 책을 내면서 신학생들 한테 700, 800권씩 칙을 나눠줬어요 공짜로. 그래 갖고 책출판비가 1억이 넘었어요 빚이. 그런데 그 신학생들이 그걸 읽더니 저를 공격하는 거에요. 다 끊어버렸어. 나눠주는 것도. 그래서 그 때 그런 생각을 가졌죠. , 듣고 있다고 다 듣는 게 아니구나. 정말 어이 없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아직 수백명이 남아서 열심히 잘 듣고 계시는 걸 보면,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으셔 가지고 저를 이리로. 그래서 오히려 그 때 더 많이 확인했던 것 같아요. 그래 진짜 내가 틀리면 안되지 라고 정말 더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심지어 우너어까지 파고 들어가 보니까, 맞아요 세상에 내가!(웃음)

 

그래 가지고 오히려 더 저에게는 좋은 결과가 되었지만, 참 그런 안타까움은 있어요. ! 이걸 다 알아들으셔야 되는데, 이런 거, 이거 못 알아들으면 안 되는데. 큰 일 나는 거거든요. 그럼 ‘페이라조’에 다 빠져서 멸망되는 거거든요. 마태복음 26 41절 보세요.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그러니까 잘 이용해 가지고, 난 마음은 안 그래.(웃음)

 

육신이 약해. 이건 그런 말이니까. 마음이라는 단어가 ‘호 프뉴마’에요. 그러니까 진리의 말씀, 그 ‘원 이로되’라는 단어가 ‘프로드우오스’, ‘두우오’가 그거 거든요, 희생제사. (응 왔어? 아이 집사람이.. 애들이 오늘 미국에서 왔거든요. 전부 우울증에 걸려 가지고 다 토하고 난리가 나갔고 이제 겨우 데리고 왔어요) 그 ‘드우오’라는 단어가요, 희생제사 드린다는 단어잖아요? 우리 배웠잖아요? 산상수훈에서.

그 ‘프로드우오’, ‘호 프뉴마’, 그 진리의 영은, 진리의 말씀은 희생제사를 넘어서려고 하는데, 이런 말이에요. 넘어 설려고 하는데, ‘사르크스’, 육신은 무기력하구나,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요? 무기력해서, 육신 때문에, 무기력해서 그 희생제사적 신앙, 율법에서 넘어가지 못하면, ‘프로드우오스’, 못 넘어가면 시험이라는 거에요. 그것이요. 그러니까 깨어서, ‘프로슈코마이’, 잘 듣고 잘 흘려라, 이런 말이에요. 아니면 너희들 시험에 빠진다 이라구요.

그렇게 영으로 율법적 신앙을 넘어서는 그 작업, 그것이 ‘도키메’에요. 바울이 그 ‘페이라스모스’와 ‘도키메’를 이렇게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고린도후서 13 5

 

 

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페이라조)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도키마조에요. 페이라조와 도키마조가 한 문장 안에 들어 있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이게 ‘호 도키마조’에요. 그러니까, ‘하 도키마조’, ‘도키마조’의 부정어죠, 그죠?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된다? 그걸 버렸다 이런 말을 써요. 버림 받다. 도키메를 하지 못하면 그게 버림 받은 거야 이런 말인 거에요. 그게 ‘버리운 자니라’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페이라스모스’적인 것들을, 아래 것으로 주실 수 밖에 없어요. 이 아래 세상에서는 위엣 것을 직통으로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걸 받아서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도키마조’하라는 거에요.

그걸로, 그렇게 해서 내가 알게 되면, 그러면 그게 그리스도가 네 안에 있는거야!라는 말이에요. 이 말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있으면, 그 ‘페이라스모스’를 가지고 ‘도키메’가 된다는 얘기에요. 안되면?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느느거야! 예수 그리스도가 네 밖에있지, 네 왕, 네가 섬기는 그 왕, 그게 네 안에 있으면, 그게 너에게 ‘도키메’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 같은 내용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요한일서 4 1절 보세요.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세상에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리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서 아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아가페토스’니까 사랑이 된 자들을 이야기하는 거죠, 진리가 된 자들, 진리를 깨달은 자들, 이런 말이에요. ‘아가페토스’, 사랑하는 자들아, 성도야! 그들에게 어떤 주의를 주죠? 모든 말, 이게 ‘파스 프뉴마’거든요? 그러니까 ‘호 프뉴마’와 대조하여 ‘파스 프뉴마’란 다어가 쓰이고 있어요. 그러니까 ‘호 프뉴마’는 진리의 말씀, 진리의 영이란 뜻이죠? ‘파스 프뉴마’는 뭐겠어요? ‘파스’는 모든 이니까, ‘호 프뉴마’하고 똑 같은 개념이에요. ‘파스 프뉴마’, 모든 것, 너희 아래 것으로 준 모든 그것, 그거를 그냥 다 믿지 마, 그냥 믿지 마. 그 안에는 성경도 들어가 있고, 예수도 들어가 있고, 들어가 있는 거에요. ‘파스 프뉴마’, 그걸 그냥 믿지 마. 이런 말이에요.

 

그게 영들이 오직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해봐, 그런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도키마조’해야죠? 이게 ‘도키마조’라는 단어에요. 시험해 봐라. 아니 너희에게 말씀이 주어지고, 성경이 주어지고, 설교가 쏟아진다고 해도, 그걸 너희는 반드시 진리로 깨달아 알아야 되는 거에요. 어떻게? ‘도키마조’, ‘도키메’를 해서 반드시 시험해야 된다 글거는 가죠. 껍질 속의 내용으로 알라는 거에요. ? 뒤에 이유가 붙어 있어요. 거짓 선지자, ‘프슈도프로페테스(pseudoprophetes), 종교적 사기꾼, 이런 말이죠? 거짓 말을 하는 자들. 거짓말 이렇게 해도 되요. 나쁜 영, 거짓 선지자가 세상 안에 들어가 있다 그래요. 세상이 ‘호 코스모스’입니다. ‘호 코스모스’는 성전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 성경도 되고, 예수도 되요. 그렇죠? 그냥 나타난 것, ‘호 코스모스’에요. 그 ‘호 코스모스’ 안에 거짓이 들어가 있다,이 말에에요. 이 세상에 거짓 선자자가 이미 와 있어, 이 말이에요. 누구 누구 이렇게. 이름 거론할 필요가 없이. 이 세상은 그것 자체로 진리를 알아 먹으면 그것 진리지만, 그걸 그냥, 그냥 그 모형으로, 껍데기로만 받아 들이게 되면, 그게 거짓이라는 거에요. 거짓이 딴 게 아니라, 참을 설명하기 위해 그릇으로 준 걸 거짓이라 그러구, 그죠? 진짜를 설명하기 위해 모형으로 준 걸 가짜라고 그래요. 그렇게 여러분이 그런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에서 빨리 벗어 나셔야 되요. 그걸로 나쁜 게 아니라니깐요. 우리가 그걸 알아버리면, 진리를 알아버리면. , 오늘은 왜 이렇게 추워요 여기가(웃음). 히터를 딴 때는 덥게 떼 주더니. 그러니까 그걸, 세상을 진리로 알아 버리면 되는데, 살아나는 건데, 그 세상을 그냥 그 세상으로, ‘호 코스모스’로 봐 버리면, 그냥 진짜 세상이 되는 거ㅗ에요. 그럼 그걸 거짓이라고 한다니깐요. 지금 그러는 거에요. 요한 사도가 거짓, 너희들이 그 ‘파스 프뉴마’, 세상을, 그냥 믿어버리면 안 되, ‘도키마조’, ‘도키메’해야 되, ? 그 세상 안에 거짓이 있거든. 그냥 그걸 받아 버리면 거짓이야. 그러니까 항상 ‘도키마조’를 하라는 거에요. 시험하라는 거에요. 이렇게 성전이나, 성경이나, 예수나, 역사나, 인생 같은 것들이 그냥 표피적인 것으로 이해되거나, 해석되면 그것이 거짓이 된다 말이에요.

 

그래서 2절에 하나님의 영은. ‘파스 프뉴마’, 그 나타난 것, 그 ‘파스 프뉴마’, ‘호 코스모스’라고 해도 되고, 그것이 육체 안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시인한다고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예수 믿을래?, “예수가 육체로 온 것 시인해?, “내”, 이런 걸로 아는데. ‘호모로게오’란 말은, ‘호모 로고스’, 같은 말을 하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호코스모스’, ‘파스프뉴마’, 이것이 너희 안에 진리가 들어가 있다면, 진짜 육체 안에 있는 그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라는 걸 알게 될거야 라는 뜻이에요. 너희가 진짜 ‘도키마조’할 실력이 있다면, 네 안에 진리가 있다면, 그 ‘파스프뉴마’, ‘호코스모스’가 너희 육체 안에 들어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 육체 안으로 들어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호모로게오’, ‘로고스’, 같은 말을 한다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만약에 이게 아니면 너희는 거짓 선지자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죠. 너희는 거짓 말에 속고 있는거야.이런 말이에요.

 

3절을 보면 더 확실하죠? ‘파스프뉴마’가 육신 안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시인하다가 아니라, 똑같은 말을 하지 않으면, 그건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야. 그랬어요. 하나님께 속한 영, ‘호 프뉴마’가 아니면 뭐에요? 대적자니까, ‘사타나스’죠? 그러 뭐라 그래요? ‘앤티 크리스토스’, 적 그리스도 라고 하는 거에요. 그 그리스도가 아니니까. 그런데 그 적그리스도는 어디에 와 있다구요? ‘호코스모스’에 있어! 그러나 그걸로 네가 그리스도로 봐 버리면 그게 그리스도야, 그런데 그걸 껍데기로 그냥 보면, 그게 Anti Christ! 그 세상에 있다니까. 거짓 선지자가 거기에 있고, 적그리스도도 거기에 있어.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진리로 못 보면 그게 적그리스도라니깐요.

 

4절이 그들을 ‘나카오’, 이긴 자라고 하는 거에요. 그 단어는 정복하다, 승리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덧입다 라는 뜻으로도 쓰여요. 덧입다. 세상 안에 있는 것들을, 육체 안에 들어오신 그리스도의 영, 즉 말씀이 이렇게 덮어버리면, 그게 이김이다 그런 말이에요. 너희 안에 있는 그것이, 세상에 있는 그게 뭐에요? 그건 예수, 너희 안에 있는 건 그리스도의 영, 그게 더 큰거야. 이렇게 이야기 하잖아요. 그것이 진짜라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래 내가 세상 임금으로 죽을 게. 이런 거에요. 이해가 가세요. 여러분?

 

여기까지 이해를 하셔야 진짠데, 굉장히 헷갈리실 거에요. 그러나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자꾸 어떤 이상한어떤 존재, 사탄, 마귀, 뭐 이런거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전부 죄를 전가시키고, 저 놈 때문에 내가... 이러면 안되요.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일은 여러분 안에서 일어나는 거래니깐요. 아니 그 하나님의 대적자가 어디있어요? 세상에 창조주고, 모든 게 피조물인데, 그게 천사던 뭐던 간에, 창조주 그냥 없어지라면 없어지는 거지, 무슨 대적을 하냐구요, 청조주에게. 그런데 자꾸 우리는 그렇게 대결구도를 만들어 놓고, 아슬아슬하게, 무슨 올림픽도 아니구. 그래서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 가면요. 그 이김이란는 거, ‘니케’, ‘니카오’라는 거 요한 사도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한일서 5 4절 보세요.

 

 

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 마다 세상을 (‘호코스모스’를 이긴다. 덧입혀 버린다. 뭘로? 진리로요.)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당연히 믿음이내요 그러면. 그 세상을 믿음으로 보면 세상으로 안 보겠지요? 그 피조물의 내용으로 본 거 아니에요. 성경의 진짜 진의를 볼 거 아니에요.

예수가 담고있는 그리스도라는 진의를 볼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걸 덧입히는 거에요. 뭘로? 진리로. 그걸 뭐라 그래요? ‘피스토스’, 믿음이라고 한다니깐요. 그러니까 ‘이김’은 뭐에요? ‘니카오’, ‘니케’, 덧입힌다, 이긴다 라는 건 뭐에요? 나타난 것을 진리로 이해하면 이기는 거에요. 그것이. 성경에서 이긴다 라는 단어가 그렇게 쓴다니깐요.

그러나 계속해서 그 세상, ‘호코스모스’, 그 율법의 속한 말을 그냥 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말을 절대로 알아 듣지 못하는 자들이란 거에요. 그래서 보세요.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당연히 듣죠?

제가 여기서 세상에 속한 자로서 세상에 속한 말을, 율법으로 여러분에게 마구하면, 여기에 있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멘, 아멘 하면서 다 듣겠죠? 그 말하는 거에요. 세상에, ‘호코스모스’에 속한, 율법에 속한 자들은 율법을 이야기하면, 율법이니까, 잘듣느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 말을 안 듣는다. 그러니까 진리의 말과 미혹의 말을 잘 분별해, 이런 말이에요. 자 그렇게 세상을 믿음 안에서 재해석해서 진리로 깨닫는 자들이 ‘도키메’, ‘도키마조’를 잘해서 승리하는 자들이라는 거에요. 믿음이라는 것은 보지 못하는 ㄴ것들을 모형 안에서 보는 능력이 잖아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그죠? 그게 이김이에요. 그게 승리에요.

 

점있고 흠있는, 그 엉터리 제물을 준비해서, 자기가 수고한 거 아니에요, 성도라는 건, 이스라엘이죠? 하나님의 장자들의 모임, 이스라엘, 영적 이스라엘이에요. 성도는 하나님의 신부가 되어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신랑이 준, 보내주는 그 빙폐물로 나의 몸을 치장을 해야, 그 은혜를 입어야 비로서 신부인 것인데, 이스라엘 이전에는 야곱이잖아요? 야곱은 자기가 신랑이 되어서, 칠의 기간 동안에 자기의 힘으로 신부를 만들려고 하는, 이게 하나님 처럼의 삶이에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 생산해 낸 게 뭡니까? 점있고 흠있는 거에요. 아니 하얀 것만 줬어요. 점있고 흠있는 것은 3일 길을 떨어 뜨려 났다구, 근데 하얀 것만 줬더니, 이 기가 막히게 점있고 흠있는 것만 만들어내내, , 외삼촌이 그것만 줬잖아요. 어마어마하게 재산을 만들어 갖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고 있는 거에요. 얘가요. 벧엘로. 하나님이 어떻게 해야 되요? 그걸 안 받는다니까 내가! 점있고 흠있는 걸 내가 칠칠의 기간 동안에 네 신부 만든 그 열정으로 가져온다고 내가 그걸 받을 것 같애? 안 받아, 그거 아니래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되요. 못 들어가게 막아야 되요. 그래서 환도뼈를 쳐 버린 거죠. 죽인 거에요. 그거는 요. 그리고 그 하나님이라는 지팡이가 없으면 절대 한발짝도 걸을 수 없는 은혜, 하나님의 절대의존적인 존재로 만들어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는 거에요. 그게 이김이야! 율법? 그건 안 받아! 행위? 안 받아! 은혜? 그 은혜로 덮어! 그리고 날 의지해. 그러면 너는 내 땅에 들어 온다. 이 말이란 말이에요. 그걸 이김이라고 그래요. 이김 그 단어가 이스라엘이 잖아요. 그렇게 이기는 거래니까요.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수 십 차례 반복해서 나오는 그 이기는 자, 이김. 이게 그 이김이에요. ‘니케’, ‘니카오’, 그냥 말씀의 검을 잘 준비를 해서, 저쪽에서 장검을 들고 나왔을 때는 나도 그걸 뽑아야되, 전부 뽑으면, 요만한 거.(웃으시면서), 사과도 못 깎아 먹을 것, 그렇게 준비하라, 이기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서 뭐 이겨보기나 했어요? 그런 이김이 아니라 그 모형을 진리로 이해하면 그걸 성경이 이겼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니깐요. 이김.

 

여러분이 그렇게 이기지 않으면, 너희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랬다구요. 성경이. 반드시 이기셔야 되요.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기지 못한 자들, 그런 자들은 세상에서 못 나오니깐, 세상에서, ‘드립시스’, 환란을 당한다 그런 거에요. 요한복음 16 33절 보세요.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자유, 평안, 안식)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호코스모스’. 너희가 세상에 있으면, 너희는 환란 밖에 당할 게 없어, 그런 말이에요. 그러나 내가 진리로 그 세상을 ‘니카오’, 또 나오내요, 이겼어, 그러면 어떻게 되요? 진리가 세상을 이기면 그 안에 속한 그 자는 당연히 그 세상을 이게게 되겠죠? 그러면 환란에서 벗어나내요? 환란은 다른 게 아니라, 예수 믿으면 시어머니가 구박하고, 이런게 아니라, 성경을 율법으로 믿어 버리면 여러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율법의 짐을 지게 되죠? 그걸 ‘드립시스’, 환란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당연히 세상에서는 너희가 ‘호코스모스’, 율법의 성전 하에서는 당연히 환란을 당하죠. 그러나 걱정하지마. 내가, 진리가 그걸 이겼다. 근데 너희들이 내 안에서 그걸 같이 이긴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요? 환란에서 나와서 평안에 들어간다. 이 말이에요. 바로 이 이김이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이김이란 말입니다.

껍데기의, 율법의, 문자에 묶이면 안 되는 거에요. 은혜로 율법을 이겨야 되고, 덧입혀야 되고, 신약으로 구역을 이겨야 되요. 그러한 이김은 구역에서 이미 약속된 것이 있어요. 이사야서 49 25절 보세요.

 

 

2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게 강한 자란 뜻이에요)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강한 자의 포로를 빼앗고, 그의 ‘말코아크’, 노략물 그의 전리품, 그것도 빼앗아 버려? 자녀를 구원한대요. 이 말을 헬라어로 그대로 옮겨 놓으면 이런 말이 됩니다.

누가복음 11 21절 보세요.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된 (이게 평안이에요.)

22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여기서 강한 자는 마귀 새끼, 더 강한 자는 예수.(웃음) 우리는 이렇게만 알고 있잖아요 그죠?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 그 무장, ‘카도 폴리스’라는 단어가 ‘카타’와 ‘호폴리조’라는 단어의 합성인데, ‘호폴리조’는 ‘호폴로니오’, 무장이라는 건 성전, 그 성전 안의 기명들 이런 것들을, 무기, 도구 삼아 강한 자가 그 집을 지키고 있어, 그러면 평강외 되요. 원래 그 집, 그 성전이에요. 그 성전은 그냥 그 나타난 모양대로 오해되고 있었어요, 그죠? 수천년간. 그런데 강한 자가 오시더니 그걸, 예수님이 항상 복음을 전할 때는 회당하고 성전 마당으로 가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전이 바로 진리를 담고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이게 그거지 라고 설명해주기 위해, 강한 자가 그걸, 이 성전을 갖고 이게 그거지, 산상수훈도 ‘호 호로스’, 그 산, 바로 그 성전에 가서 말한 거란 말이에요. 이게 그거지. 누가 여기에서 희생제사 드리라 그랬니? 살인하지마! 이렇게.

 

그러니까 강한 자가 이 성전으로 그걸로 무장, 이 기명들로 무장을 해서 그 집을 지키면 그 낮이 열두시간이냐 그럴 때, 빛이 있는데, 예수님이 그걸 말할 때, 그 강한 자가 지킬 때는, 평강이죠, 그죠? 그걸 알아 들으면 되니까, 그런데 아무도 못알아 들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요? 조금 아까 우리 봤잖아요? 더 강한 자가 와서 그것들이 뭔지를 빼앗아, 전리품이라구 그 재물을 나눈다 뭐 이런 말 있잖아요? 전리품이라는 단어인데, 왜 성전을 전리품이라 하냐 하면 성막 성전을 뭐로 지었으요? 애굽에서 갖고 나온 걸로 지었다니깐요? 애굽에서 빼앗아 나온 게 뭐에요? 전리품이지요. 그래서 그런 단어들을 쓰는 거에요.

 

그것들을 더 강한 자가, 그 강한 자 것을 취하여 나누어 준다, ‘디아디도미’ 그래요. 그러면 구원하다 그러는 거에요. 그럼 볼래요. 그리스도의 영이 진리고, 강한 자, 성전에 와서 말하는 성전으로 일하셨던 분이 예수란 말입니다. 그러면 이 더 강한 자가, 그리스도의 영이 이 예수를 반드시 덧입죠? 나빠서가 아니에요, 못 알아 먹으니까. 덧입고 이기면, 더 강한 자가 이기면, 그러면 구원이다 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 안에서도 그 일이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선으로 악을 이겨라 그런 거에요. 로마서 12 21절 보세요.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게 ‘악에게 지지 말고’라는 말을 원문으로 보면, 악 아래에서는 너희가 절대 그 악 아래에서는 이기는 것이 되면 안되, 원리적으로 되면 안되, 이런 말이에요. 당연히 안된다 이런 말이에요. 악에게 지지 마.가 아니라. , ‘카코스’, 아래에서는 너희들이 이김이 되어서는 안되, 그래요. 악으로 이기면 안되니까.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 하면 선으로 악을, ‘니카오’, 이겨야되, 그래요. 선악 선악 그러니까 여러분이 자꾸 헷갈려 하실 것 같아서.(칠판 설명)

 

헬라어에 선 이라는 단어가 두 개 밖에 없어요. ‘칼로스’라는 단어가 있고요. ‘아가도스’, 여러분이 잘 아는, 이게 뭐냐하면요? 이거는 (칼로스) 눈에 보이는 나타난 선 있죠? , 성경, 예수, 성전, 이거 다 우리에게 선한 걸로 주신 거잖아요? 로마서에서 배웠죠? 선한 걸로 주신거죠? 그럼, 이거 선한 것, 그러면 ‘칼로스’라 그래요. 그런데 이걸(칼로스)으로, 아 그 선한 것 안에 진짜 내용이 그 선이구나 라고 알아 먹었어요. 그럼 그 선, 우리는 모르는 그 것, 진짜 그 것, 그 선을 ‘아가도스’라고 그래요. 그 내용을, 내용으로서의 선을, 그런데 이‘칼로스’로 나타난 이 선, 하나님이 선한 걸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걸(칼로스)로 이 ‘아가도스’가 되지 못하면, 선을 내 마음으로 갖지 못하면, 깨달아 알지 못하면, 그걸 ‘카코스’라고 그래요. 이걸 뭐라고 번역하냐 하면, ‘악’ 그래요. 그럼 이게() 나쁜 겁니까? 나쁜 거죠. 나쁜 건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악, 저런 악당 새끼, 이게 아니라니깐요.

 

이 ‘칼로스’로 여러분이 ‘도키마조’해서 ‘아가도스’를 알게 되면, 그걸 선이라고 하고, 그게 안되고 그냥 이 ‘칼로스’적인 것에서, 나타난 것에서, 아 그거요. 훌륭하신 분이죠, 예수님은 요. 성전 열심히 거기서 행해야죠 우리가, 희생제사도 하고 율법도 지키고, 나타난 선이지만, 거기에 머무르면 그걸 ‘카코스’라고 그래요.

그러면 이 악(카코스) 아래에서, 그냥 이 표피적인 것 (카코스, 칼로스) 아래에서는 이김이 되면 안된다 이런 말이고, 그러니 이 ‘아가도스’, 요 선 으로요 악(카코스)을 덧입혀, 그러는 거에요. 그래서 진리를 깨달아 알면 되는 거에요. 그게 선으로 악을 이긴다지, 착한 마음을 연마하고 도마하면 악한 생각이 많이 줄어 들거야? 천만의 말씀! 안 줄어 들어요. 저렇게 이기라는 거에요.

 

그 이김이란 단어가 그런 뜻으로 쓰이는 거래니깐요, 덧입히는 거. 아랫것으로 위엣 것을 깨달으며 그걸 이겼다라고 그래요. 거기서 지면? 그냥 그 아랫 것, 세상에 묶인다라고 하는 거에요. 그것을. 세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세상을 이긴다라는 건 진리로 그걸 보아내어, 아 그거, 그거가 진짜 실체가 아니지라고 알면,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가 남편 흉내를 내면서 칠칠의 기간 동안에 열심히 일해서 아내를 취하여 점있고 흠있는 재물로 데려 오는 게 아니라. 완성이 누구에요? 야곱 다음에. 야곱의 완성. 이스라엘의 삶은 요셉이니까. (7) 흉년을 칠(7) 풍년이 먹어 버리면 되는 거에요. 그걸 이긴다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다음에 요셉의 칠칠이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서 뒤의 칠(7)이 앞엣 걸 먹어 버리죠? 그걸 이긴다라고 하는 거에요. 잔짜 양식이 기갈을 먹어 버리는 거, 덮어 버리는 거에요. 그거 아니네? 이런 거에요. 그러면 이기는 거에요. 그러면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험, ‘페일라 스모스’, 이 시험은 완전한 진리로 해석되지 않은, 불완전한 진리의 모형들에 묶여서 그것들을 섬겨 버리거나 몸으로 행해 버림으로 멸망에 이르고ㅔ 되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광야에서 그러한 종류의, ‘페일라 스모스’, 시험을 받으신 거에요. 그 주님은 우리의 대표에요, 우리의 대표라고 하니까 우리와 상관없는 어떤 것을 그냥 해 놓고 그게 우리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시면 안되요. 우리에게 일어날 그 일을 그대로 겪으신 분이란 의미에서 대표라는 거에요. 아니면 우리와 아무 상관 없어요, 여러분.

 

사도행전 7 38절 보면 그 광야를 광야교회라 그러죠?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가 그 시험을 받게 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시험은 여러분이 겪을 시험이라니깐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셨어요. 40일 금식이라는 걸,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억지로 굶은 게 아니라, 먹을 게 있는데 굶은 게 아ㅓ니라, 40일은 이 역사 전체, 광야 40, 인생, 역사를 모형하는 숫자 잖아요? 거기에는 진짜 그 양식이 없다라는 뜻이에요. 아들이 굶는 거에요. 금식하는 거에요. 못 먹는 거에요. 먹을 게 없어요. 진짜로. 그래서 주님이 그러죠. 내게는 다른 양식이 있어!

자 그렇게 진짜 먹을 것이 없는 그런 곳, 거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교회에서 시험이 떨어져요. ‘페일라 스모스’, 거기에 통과 못하면 다 죽습니다.

첫 번째 시험이 뭐에요?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그러면 이 ‘호 코스모스’, 세상 속에서의 굶주림이 해결될 것이다. 그래요. 진리입니다 여러분 이거. , 메시아, 메시아로 오신 그 분이 돌이 잖아요 원래가. 성경에서 그 분을 계속해서 돌, , , 그러죠? ‘돌비’에서 나온 거에요. 그게 율법으로서의 말씀이니까. 시내산에서 죽은 첫 번째 돌비가? , 그 돌은 반드시 우리에게 먹혀지는 떡이 되어야죠? 떡이 되면 끝나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 한발 더 가야죠? 주님이 그랬잖아요? 어떻게 떡으로만 살아, 그 떡이 아니지, 끝이 아니지, 그 떡은 진리의 말씀이잖아. 라고 완성해 주시잖아요? 근데 이 악한 영, 거짓 말, ‘다이모니온’쪽에서는 어디까지만? 떡까지만 이야기하는 거에요. 먹어? 먹고, 그 떡을 준 그 분을 왕 삼아 섬겨? 그러면 되! 그런거죠.

 

그런데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아 그건 나를 아들 만들기 위한 것이었구나 라고, 내 밖에 섬길 왕이 사라지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그런데 거기까지 가야 되는데, 그냥 떡 먹어, 먹고, 그 떡 준 분을 왕 삼아 섬겨, 그러면 내 굶주림 해결되는 거잖아 그런다구. 떡은, 예수님이 자기의 살과 피 운운하면서, 이게 떡이다 라고 말씀하신 건, 그걸 진리로 가져 마음으로 만들어라 그런 거였잖아요? 그죠? 그래서, 야 내가 언제 그 육적인 살과 피 이야기 했니? 살리는 건 영이지! 육은 무익하지 라고 했잖아요. 그럼 영이면 뭐에요?

 

예수라는 그 육도 무익이네? 당연히 무익이죠.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냥 죽고 끝났다니깐요. 그럼 영이 와야지요? 그럼 살리는 건 그 영이라는 이야기에요. 그럼 그 영이 와서 나를 살리면 그 영은 뭐에요? 그리스도의 영. 영은 말이요, 생명이라 그랬으니깐, 그 말씅이에요. 그게 샹명이라구요. 진짜 생명.

그러면 떡에서 멈춰버리면 안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떡을 준, 그리고 떡으로서의 그 예수, 그리고 그걸로 말미암아 살아 난 나의 수준에서 멈춰있으면, 여러분은 여전히 그 분을 왕 삼아 살게 되요. 그 분이 왕 맞아요. 그런데 우리도 왕이에요. 그래서 만왕의 왕 이라고 하는 거에요. 만왕의 왕이 뭐에요? 왕들의 왕이란 이야기 아닙니까?

 

주님이 그래서, 아니지, 그렇게 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내가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거지 라고 완성시켜 주죠? 그러면 어떻게 되요? 시험에서 빠져 나오는 거에요. 우리 이야기 하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거기에서 빠져 나오신 거죠? 그러면 벌써.

두 번째는 거룩한 도시 안에 성전 꼭대기가 나와요. ‘하기오스 폴리스’, 역시 성전이에요. 거룩한 성전이에요. 성전 꼭대기, 그 성전의 꼭대기라는 건, ‘프테리기온’이 끝, 정상이라는 거에요. 완성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완성에서 뛰어 내리라는 건, 땅으로 뛰어 내리라고 그래요. 완성을 못하게 만드는 거죠? 성전의 완성은, 우리가 참 성전이신 그 하나님 안에 거하는 거에요. 안식하는 거에요. 그러면 그 분이 우리의 처소가 되고, 내가 그 분의 처소가 되는 이런 연합이 일어나면 그걸 완성이라 그래요. 그런데 거짓말은 뭐라 그러냐 하면, 그 성전에서 네가 네 열심을 한번 부려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 열심이 어떤 열심이냐 하면 땅으로 뛰어 내리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교묘하게 설명을 해주냐 하면, 그러면은 천사들이 너희를 지키는 거야 그게, 이렇게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정말 그런가요 여러분? 그 시편의 말을 교묘하게 변형시킨거죠? 시편 91 1절 보세요. (91:1, 11-12)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거기 그냥 거하는 거에요. 뛰어 내리란 말 없어요)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어떻게 하면? 거기 거하면)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그 돌에 부딪히면 깨집니다. 로마서에 나오죠? 그런데 너희들이 어떻게 하면 안 깨지냐하면 그 지존자의 그늘에 그냥 거하기만 하면 되! 라고 하는데, 마귀는, 아니 뛰어 내려! 그래야 그 열심을 보고 지켜 준단다 라고 살짝 바꾸는 거죠. 요한계시록에서 뭐라 그러죠? 더하거나 빼면 멸망이다. 이 시험을 여러분이 끊임없이 받을 겁니다.

교회 안에서, 그러면 여러분은 그게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거에요. 하늘이 되어야 하는데, 땅으로, 뛰어 내려 보세요, 붙들어 주나?(웃음) 안 잡아줘요. 그렇게 뛰어 내리면 성전의 끝, 성전의 그 완성, ‘프테리기온’은 물 건너 가는 거에요. 완성이 못된 채로 그냥 끝나 버리는 거에요. 그건 열심도 아니고, 열정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고 기특한 것도 아니에요. 그걸 하나님을 시험한다 그래요, 주님이. 그렇게 성전 안에서 열신을 부리는 그 거를, 야 하나님께 참 기특한 일을 하네? 라고 하지 않고, 주님이 뭐라 그러냐하면, 주 너의 하나님을 ‘페이라조’하지마!. 이렇게 이야기 한다니깐요. 그거는 하나님을 죽이는 거야. 네가 율법 잘 지켜 갖고, 네 행위로 성전 안에서 네가 그 지킴을 확보할려고 하면, 그게 하나님 죽이는 거야, ‘페이라조’하지마!

우리가 이스라엘 광야 에피소드를 통해서 분명히 확인하고 있는 것 처럼, 그 하나님을 ‘페이라조’하는 자들은 전부 죽습니다.

 

세 번째가,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절만하면. ‘프로스크네오’, 예배하면이란 뜻이에요. 내게 넘겨준 모든 것을 넘겨 주겠다 그러죠. ‘다스 호 바실레이아 호 코스모스’, 천하만국, ‘호 코스모스’에요. 그냥, 그 세상, 세상 왕국이라 그래요. ‘호 코스모스’.그러면 잘못된 말, ‘다이모니온’, 거짓된 말을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넘겨준 게 뭐하는 거죠? 그냥 세상을 준거에요. 그걸 갖고 가면 죽습니다. 그거를 이겨야 된다 그랬어요. 나에게 넘겨 준거 그거 있잖아, 그거 갖고 싶지? 그러면, 예배해! 그걸로 줄게. 오늘날 그걸 받기 위해서, 또 그 ‘호 코스모스’, 세상 속에서의 자랑스러운 나를 구축하기 위해 예배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거 줘요, 그 세상, ‘호 코스모스’, ‘호 바실레이아 호 코스모스’, 그거 준다니깐요. 그런데 그것들을 얻어 내기위해 열심히 예배하고 있어요.

주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게 사단이야!’ 그랬다니깐요. ‘사단아 물러가라’ 그랬다구요.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어떤 성숙이나, 발전이나,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걸로 넘겨줄 수 있어요. 그래야 여러분이 얼마나 변했는지 서로서로 자랑하며 재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기독교의 목적, 열매, 그건 그런 ‘호 코스모스’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어딜 감히 써 가지고 와 가지고,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왜 나를 무시하냐고 그냥. 진짜 비디오 카메라 들고 한 24시간 쫓아 다녀봐야 그냥, 다 찍어 가지고 (웃음).

자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보냐셔서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 내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것도 역시 이미 이루어진 것 청유 하는 거죠? 시험에 들게 ㅎ지 마옵시며, 그죠? 당연히 그 ‘페이라조’에 안 들어가죠? ? 우리는 ‘도키메’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걸 진리로 보니까. 성경 그걸 진의로 또 보니까, 그죠? 그러니까 시험에 당연히 안 들어가죠. 그러면 시험에 안 들어가면, 저 ‘칼로스’로 ‘아가도스’를 아는 사람들이내요? 그죠? 그러면 저 ‘카코스’라는 악과는 상관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그러면 악에서 구해진 거에요. 그것도 된 거내 그러면. 뭐 악한 일을 하나도 안하게 해주세요. 그런 말 아니잖아요, 그 악에서 성경에 나오는 악은 저것 밖에 없어요.

그걸로 위엣 것을 알면, 그 악과는 아무 상관 없는 거에요. 그런데 거기에 그냥 묶이면 그걸 악하다 그래요. 악하다.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의 양식으로 옳게 받아 먹은 이들은, 그 하늘들 안에 그 아버지의 상태가 되는 것이며, 그들의 이름이 거룩하게, 깨끗하게, 그 말씀이 깨끗하게 된 자들이고, 하나님의 그 통치, 그 섬김 아래에서, 그 섬김이라는 단어가 바실레이아, 나라니까, 그 나라가 나에게 임한 자가 되는 거구. 그러면 내가 그 일용할 양식, 내일의 양식, 하늘의 양식을 내가 먹은 거구, 그러면 나는 용서가 된 거구, 또 용서를 흘려 줄 수 있는 자가 된거구, 절대 그런 시험에 안 빠지게 되는거구, 악에서 나오는 거내요?

그렇게 되면 그 나라와 권세는, ‘두나미스’는 그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흘려줄 수 있는 능력이니까? 그것도 역시 나에게 있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그 하나님의 것이 눈에 보이게 이렇게 들어나고 나타나는 것을 이야기 하니까, ‘독사’, 영광이 아버지라는 말은 아예 없어요. 너희에게, ‘수우’라는 단어 있어요. 그렇게되면, 그 나라와 그 권세와 그 영광이 ‘너’에게 있다! 아멘 하고 끝나는 거에요. 그 원문 갖고 있는 사람 보세요. 아버지 있어요, 거기? ‘파테르’가 있습니까? ‘아바’라는 말이 있어요? 없어요? 그게 네거야! 그런 거에요. 그게 네거야!

 

그러면 이 기도 말고 할 기도가 또 있어요 우리가? 이것 만큼 가치있는 기도가 어디있어요? 진리의 양식을 올바로 받아서 너희가 용서의 사람이 되구, 시험과 무관한 사람이 되며, 악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이 되, 그러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네거야’. 우리 아버지의 것이 곧 내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이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거에요. 이렇게 기도해! 그러니까 성도의 기도는 내 안에서 다 행해져야 되는 거에요.

이제 마지막으로 그동안 주문처럼 예배 끝날 때, 모임 끝날 때, 중얼 중얼 중얼 주문처럼 외웠던 그 때의 일들을 처절하게 회개하며,(웃음) 주기도문으로 마치겠습니다.

자 그냥 읽으세요. 9절부터 큰 소리로 일고, 주기도문 강해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정말 가치있는 기도, 아니 유일한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기도하게 하시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유일한 소원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