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산상수훈

산상수훈 46 이것을 먹고 그것을 금하라 마태복음 6:16~18

은바리라이프 2013. 10. 17. 09:35

산상수훈 46 이것을 먹고 그것을 금하라



마태복음 6:16~18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오늘로서 이제 금식의 문제를 종결짓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까지 잘 들으시면 성경에 무수히 많이 등장하는 그 양식의 이야기와 또 금식의 이야기가 어디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결론이 나게 되는지 선명하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이 이상 없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구약과 신약을 오가면서 금식의 문제와 양식의 문제를 지엽적으로 살펴봤는데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세기로 가서 하나님께서 최초로 언급을 하신 하나님의 그 양식에서부터 출발을 해야 되요. 그래야 무엇이 양식이고 또 어떤 것을 금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6 보세요. 하여튼 언약의 말은 전부 그 일곱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것만 잘 숙지해 놓으시면 특히 여러분이 묵시서 있죠? 스가랴나 에스겔이나 다니엘이나 또 요한계시록 같은 그런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책들을 그 일곱을 잘 이해를 하시면 아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쉬워요.



창세기 1:26~30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이런 구절들을 곡해를 해서 십자군 전쟁 같은 게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왕왕 기독교 국가들이 다른 나라들을 정복하고 할 때 근거 구절로 내세우는 것이 이런 것이에요. 땅을 정복하라, 다스려라 그랬다고 막 쫒아내고 가서 막 두들겨 패고 그러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그래요. 형상은 뭐고 모양은 뭐에요? 여기에서 형상과 모양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 단어가 ‘쩨렘(צלםH6754/환영-그릇과 같은 것)’과 ‘데무트( ךּמוּת/H1823/-같게-그 그릇 안에 담겨 있는 내용)’ 라는 단어에요. 쩨렘은 그릇과 같은 거고 데무트는 그 그릇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을 말하는 거예요. 그것을 27절에서는 ‘쩨렘’ ‘엘로힘(אלהים/H430/하나님) 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쩨렘’ 이라는 그릇 안에 들어있는 그 내용이 ‘엘로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당연히 내용은 진리겠죠. 진리는 그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자칼זכר /H2145/남성)’과 ‘네케바נקבה /H5347/여성)’ 라고 바꿔 쓰기도 해요. 그러니까 네케바가 그릇이고 단어 자체가 ‘구멍이라는 뜻이고 홈’이라는 뜻이에요. 자칼은 뭐냐면 ‘씨’라는 뜻이고 그리고 ‘남성으로 만들다’ 뭐 이런 뜻도 있고 그래요. 그래서 그 둘이 하나가 되면 아들이 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쩨렘’ 이라는 그릇을 ‘네케바’라는 말로 바꾸어서 쓰기도 하고 그 그릇 안의 내용을 ‘엘로힘’ ‘자칼’ 혹은 ‘하 아담(האךם /G120/아담/인간)’ 이렇게 써요. 이따가 원문을 한번 보여드릴게요. 글자는 여러분이 모르셔도 되고 제가 이렇게 설명해 드릴 때 아~그렇구나~라고 그냥 아시면 되요. 그리고 넘어가면 됩니다. 문자 같은 거 몰라도 되요. 그 히브리어를 쓰는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예수님 죽였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 그걸 통하여 진리를 알아야죠


제가 이렇게 원문까지 동원해서 여러분께 설명해드리는 건, 아 이것이 제가 여태까지 말씀해 드린 게 이렇게 문자로도 맞습니다. 라고 대 드리는 거지 이걸 알아야만 복을 아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여기에 신경 쓰지 마세요. 모른다고.


자 이것이 바로 세 번째 날의 약속이 된 그 ‘푸른 풀’ 안에 담기게 되는 씨의 모습이란 말이에요. 그죠? 첫째 날은 넷째 날과 연관이 되어 있고, 짝이란 말이죠. 둘째 날은 다섯째 날과 짝이고 셋째 날은 여섯째 날이 짝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읽은 게 여섯째 날이니까 셋째 날과 짝이죠? 그러면 셋째 날의 성취로 그것이 그려져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자 그 상태 그렇게 씨를 가진 ‘네케바’ ‘자칼’과 ‘네케바’가 되면 그 사람을 그냥 ‘하 아담’ ‘그 사람’ 이렇게 불러요


그리고 ‘그 사람’이 낳는 자들을 ‘인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인자’의 대표적인 모형이 예수잖아요. 그렇죠? 그라인의 그라인을 아주 완성 짓는 그런 분으로 오신 분이 예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보고 ‘인자’가 ‘그 사람’ ‘하 아담’ ‘하 아담’의 ‘하 벤’ 내가 그 아들이야~라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리고 그 ‘하 아담’을 이제 ‘오탐’이라고 하는데 그건 제가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셋째 날로 한번 다시 가 보께요. 어떻게 짝인지 한번 보세요.



창세기 1:11~13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1876, 다샤) 하시매 그대로 되어 

(이거는 땅에서 ‘그거 생겨라’ 이런 말이 아니라 ‘야짜(יצא:/H3318/끌어내다)’라는 말이 그 ‘끌고나오다’라는 말이라고 했죠.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안 나오려고 지도 농담처럼 여겼기 때문에 사위들도 농담처럼 여긴 거 아닙니까? 아니 장인이 진짜 화급하게 좀 황급하게 거기서 나갈 준비를 하면서 나가자고 그랬으면 왜 사위들이 농담처럼 여기겠어요? 장인도 말하면서 그냥 히죽히죽 대면서 별로 다급하게 얘기 안하니까 농담처럼 여긴 거 아닙니까? 그때 천사가 끌고 나올 때 있죠? 그게 그 똑같은 단어에요. 땅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땅에서 그냥 끄집어 내버리는 거예요. 뭐를? 풀과 씨 맺는 채소 그러니까 ‘씨를 씨 뿌리는 풀싹’ 이런 말이에요. 채소, 반찬 이런 거 줬다. 라는 게 아니라 그리고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 그러니까 ‘씨를 가진, 열매로 일을 하는 열매나무’이런 말이에요. 그건 뭐 에덴동산에 딱 하나밖에 없었잖아요. 선악과나무를 이야기 하는 거죠. 그것들을 땅에서 끄집어낸다는 거예요. 끄집어내겠다.)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이거 종류대로는 ‘종속과목강문계’가 아니라 ‘레민(מין/H4327/종류)’이라고 그랬습니다. ‘어떤 분류를 위해서’ 그리고 ‘분류가 뭔지, 분배가 뭔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다 좋아요. 그러기 위해서 그 나무를 그리고 그 풀을 땅이 내더라는 거예요. 이건 하나님의 약속이죠. 언약이에요.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는 이야기에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 하나님이 땅에서 씨를 씨 뿌리는 풀싹과 열매로 일을 하는 씨를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열매 나무를 (야짜(יצא:/H3318/) 끌어내세요. 끌어내시는데, 이 땅에 속한 것들을 땅에서 끌어내면 뭐에요. 땅에 속한 것들을 땅 밖으로 끌어내면 그걸 하늘이라고 그래요. 하늘은 저기 저거가 아니라고 거기는 텅 비어 있다니까요. 땅에서 나온 걸 하늘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땅에서 나온 자’ 그래서 하늘들‘(솨마임שׂמים/H8064/하늘)’ 이라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열매로 일을 하는 열매나무는 당연히 선악과나무인거고 ‘푸른 풀’이라는 건 뭐라고 그랬습니까? ‘푸르다’ 라는 단어 자체가 사전 찾아보시면 ‘텅 빈’ 이렇게 써 있어요. 그러니까 ‘푸르다’ 라는 건 ‘텅 비었다’ 이런 뜻이에요. ‘텅 비었다’ 라는 건 ‘씨가 없다’ 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그 ‘텅빈 푸른 풀’을 무화과에 자주 비유를 하는 거예요. ‘무화과’라는 그 것이 씨가 없는 거잖아요. 그건 꽃이란 말이에요. . 그렇죠? 그래서 씨가 없는 거는 이건 과일도 아니다 라는 거예요. 열매 아니다 이거. 씨가 없으면. 씨가 있어야 열매란 말입니다. 그래서 무화과가 자주 그것과 비교 되어 이제 등장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텅빈 그릇’, 씨를 가지지 못한 ‘텅빈 그릇’ 이게 푸른 풀에요. 그런데 생명이 없는 그릇의 상태인데 그것에서 씨를 하나님이 만들어 내시겠다. 라는 거예요. 씨를 아주 심어버리겠다. 라는 거예요. 그 안에다가. 그래서 씨를 가지고 씨를 흩뿌리는 풀싹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거예요. 이건 불가능 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그게 세 번째 날의 약속이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그 세 번째 날의 짝인 여섯째 날에는 그 약속이 어떠한 모양으로 성취가 되어 있는지가 그려져야 맞는 거잖아요. 이게 짝이니까. 그게 바로 ‘쩨렘(צלםH6754-그릇과 같은 것)’과 '데무트(דּמוּתH1823-그릇안에 담긴 내용)'인 거고 그걸 다른 말로 ‘자칼’ ‘네케바’라고 하는 거예요. ‘쩨렘’ ‘엘로힘’ 이렇게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 그렇게 되면 그렇게 씨를 가진 ‘풀싹’ ‘네케바’가 되면 뭘 할 수 있다고 그래요?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된다고 그러죠. 이 말은 28절에서 ‘땅을 정복하는 것’ 이라고 축약이 됩니다. 그게 바로 땅을 정복하는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단 말이에요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다스려라 ‘라다’ 이렇게 되어 있단 말이죠.) 


그렇다면 먼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것이 어떻게 정복이 되는지 알게 되겠지요? 먼저 바다의 고기는 ‘다그’ ‘다가(דּגה/H1710/물고기)’라는 단어인데 ‘다그( דּג"/H1709)’라는 말에서 나왔죠. 그 단어는 ‘알을 낳다, 난태생, 수가 많아지다, 때를 짓다. 두려워하다’ 이런 말이에요. 그건 뭐죠? 아래의 바다에서 꼬리의 힘으로 사는 자들은 자기들의 두려움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떼를 짓고 많이 낳고 또 그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라는 거죠. 그게 이제 물고기의 특징이에요. 그래서 그냥 그물 같은걸 갖고 송사리 떼 같은 데 스윽 갖다 대기만 해도 파르르 도망가죠? 사실은 그 그물에 걸려야 사는 건데. 


그런데 그 그물이라는 말을 문자로 하면 ‘에레츠ארץH/776’ 땅이에요. 하나님이 시작 하신다. ? 잡기 시작하신다. 라고 써놓고 ‘땅’ 이렇게 읽는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그 그물에 걸려야 되는 거죠? 그 낚싯대에 걸려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 받는 자들을 ‘낚인자’, 구원하는 자들을 ‘사람을 낚는자’ 이렇게 이제 성경이 원어로 표현하는데~나중에 제가 그거 나오는 부분에서 설명해 드릴게요


, 그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들이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리를 지으며 자신들의 그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그거를 그냥 물고기로 그려놓은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오병이어’ ‘칠병이어’ 그런 데서도 이렇게 물고기가 등장하는 거예요. 인간들이 내어 놓을 수 있는 건 ‘보리떡’ 아주 부정한 그 여자가 바치던 제물이었거든요. 그거와 물고기 밖에 없다. 라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거를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너희들이 먹는 차원이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 내겠다. 라는 게 그거잖아요


블레셋의 신의 이름이 뭐죠? ‘다곤(דּגוֹן/H1712/물고기 신)’ 이잖아요. 그게 물고기에요. 물고기의 신, 물고기의 신, ‘다곤’ 그 블레셋(페리슈티פלשׂתּי/H6430/굴러가는)이라는 말 자체가 이렇게 계속 굴러다니다. 어디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거요. 무서워서요. 한 군데에 정착 못하는 것. 그 ‘페리슈티’ 블레셋이 팔레스타인이죠? 아직까지도 걔네들은 굴러 다녀~ 이름대로 되는 거죠


그러한 자들은 머리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아랫물인 바다에서 자신들의 꼬리를 열심히 움직이면서 부정한 삶을 살아요. 난태생은 부정하다. 그런단 말이에요. 부정한 삶을 산다. 라는 거죠. 그러나 소망이 있어요. 누군가가 꼬리를 절단해 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바다의 물고기니까 낚아주면 돼요. 소망이 없는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아래의 호흡을 끊어버리고 위의 호흡으로 성령으로 말씀으로 살게 해주면 되는 거예요. 바다에서 건져내면 죽어요. 물고기는. 그러니까 죽지만 살아요. 위의 공기로, 위의 호흡으로 사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낚아 올린다. 라고 하는 거죠. 그 일을 누가 합니까? ‘자칼’과 ‘네케바’가 된 그 사람들이 한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도 너희들은 꼬리가 되면 안 되지~ 이라고 했을 때에 그게 그 꼬리에요. 머리가 돼야지~ 예수라는 머리, 그 머리가 돼야지 꼬리가 되면 안 되지~ 라고 하는 거죠


뭐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저기 핫바리, 저기 하급 공무원 이런 거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그 꼬리가 되지 말라는 거죠. 공중의 새는 당연히 성전을 가리키는 거고요. 성경에서도 뭐 선지서에서도 그렇고 나르는 새, 나는 새 이렇게도 표현을 하고 날개라고도 표현을 하고 이렇게 한단 말이죠. , 그 새(오프עוֹף/H5775/덮음,)라는 단어 자체가 새가 ‘덮음’이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새라는 단어 자체가. 덮다. , 덮었으면 벗겨주면 되죠? 하나님께서 성전을 가죽으로 덮으라고 그러죠? 왜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만 벗겨 줄려고 그래요. 나머지들에게는 전부 덮어 버렸어요. , 이사야서로 가서 이 여섯째 날의 그 ‘공중의 새, (오프עוֹף/H5775/덮음,) (샤마임שׂמים /H8064/하늘)’이 뭔지 한번 살펴보자고요.



이사야 6:1-3

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 하도다


이걸 아무리 환상이라고 그래도 그냥 하나님이 계신 어떤 그 천상의 보좌, 그런 거를 그려놓고 거기에서 날개 여섯 개 달린 어떤 것들이 자꾸 이렇게 날라 다니는 이런 거를 그리시면 안돼요. 여러분. 그건 여러분이 그려 놓은 엉뚱한 하늘인 거란 말이에요. 성경은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요. 그냥 진리만을 설명 한다니까요. , 이사야가 본 환상인데 성전 안에 하나님의 옷자락(שׂוּלH7757-늘어뜨리다, 옷 술, 옷 가장자리)이에요. 옷 술, 옷 가장자리 이런 뜻이에요. 혈루병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를 만지죠? 그게 옷 술이란 뜻이에요. 옷 가장자리, 그거는 항상 말씀을 의미하고 유대인들이 실제로 거기에다가 그 말씀을 새기고 달고 다녔어요


그래서 혈루증이 뭐죠? 피를 담지 못하고 땅에다가 쏟는 거예요. 생명을 자기 안에 담지 못하고 쏟아버리면 죽음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옷 술, 옷 가를 만졌더니 그 진리, 그 복음을 내가 만졌더니, 내 것으로 가졌더니 그 피가 내 안에 생명으로 고이더라는 거예요. KEEP 되더라는 것이죠. 그걸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 전안에 가득 찼다. 라는 건 그 성전이 진리로 가득 찬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그게 그거구나’라고 이사야가 봤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은 아~내 입은 부정한데 이 말이 여전히 나는 그 다른 말을 갖고 있는데 내가 그거를 봐버렸다는 얘기인 거예요. 그러면 그거를 봤더니 이 말을 갖고 있는 나는 이거 큰일 나는 거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죠. 그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런단 말예요. 그것이 여기에 붙어 있는 건데. 그거랑은 달라요. 여러분


그 인연이라는 거 있죠? 인연이 불교 용어이지만 모든 것은 우리가 진리로 이해할 수 있어야 된다고 그러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는 말이 불교용어잖아요. 그런데 인연이라는 게 뭐 그냥 우연히 우발적으로 막 생긴다는 것이 아니라 옷깃이 뭐에요? 이건 옷 가(옷 아랫단)고 옷깃은 여기에요 (목과 가슴 카라) 여러분. 옷깃이 스치려면 둘이 꽉 끌어안아야 됩니다. 연합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건 하나님께서 꽉 끌어안아서 붙들어 주셔야 그게 인연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사실은. 그 옷 술은, 옷깃은 아무튼 달라요. 뭔 얘기하다가 여기까지~ 자꾸 얘기하고 싶은 게 많아가지고


그러한 성전 안의 충만한 옷자락을 2절에서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싸라프שׂרף/H8314/불 뱀)으로 그려내죠. 스랍이 뭡니까? 천사 정도로 알고 있죠? 여기에서 여섯 날개라는 그 단어가 ‘새’라는 뜻이에요. ‘새’ 그런데 여섯이에요. , 성경에 나오는 숫자는 전부 의미로 이해를 해야 된다고 그랬습니다. 이 성경이 쓰여 질 당시에 아라비아 숫자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생선 세 마리 주세요, 여섯 마리 주세요. 이런 게 없었어요. 아예~ 그래서 이렇게 허리에 노끈을 묶고 다니다가 생선이 3개가 필요하면 얼른 그 사람 앞에서 매듭을 3개 이렇게 접어서 주면 어 그 만큼 이렇게 주던 시대란 말예요. 그러니까 여섯, , , 다섯 이런 걸 그냥 그 숫자로 여러분이 이해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의 그 ‘일곱 언약’ 그 일곱이라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면 그건 그냥 숫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대주의자들은 그 숫자를 갖고 자꾸 뭘 만들어 낸단 말예요. 그거는 성경을 올바로 보는 방법이 아닌 거죠. , 이 날개가 여섯, 새가 여섯이다. 라는 이 말이 아주 중요한 키가 되는 거죠. 2절을 보면 ‘스랍’이라는 게 나오는데 ‘싸라프(שׂרף /H8314/불 뱀)’에요. 그 ‘싸라프(שׂרף /H8314/불 뱀)’는 천사 뭐 이런 게 아니라 불 뱀입니다. 사전 한번 찍어보세요. 그냥 불 뱀이에요. 그리고 구리 뱀 이라고 해도 되고, 불 뱀. 나중에 민수기에 가서 이스라엘이 불 뱀에게 물리죠? 그게 싸라프에요. 그 불 뱀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럼 그것도 천사에요? 그 불 뱀. 아니란 말입니다. 그냥 불 뱀이에요. 그런데 여기 날개가 있고 뭐 이렇게 얘기 하니까 아~그 보좌 옆에 있는 날개 있는 건 천사지 뭐~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러니까 그냥 그걸 ‘스랍’ 이라고 이렇게 써 놔 버렸는데, 그건 불 뱀이에요. 불 뱀


그런데 날개 둘은 파님(פנים/H6440), 얼굴을 가리고, 파님(פנים/H6440)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그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나타나는 것으로 주면 ‘프로소폰πρόσωπον/G4383’ ‘파님/פנים /H6440’ ‘얼굴’ 뭐 이렇게 해석 한다고 그랬죠? 그런데 날개 둘이 그걸 가리고 있네요


날개 둘은 발을 가리고 있어요. 발은 뭡니까? 주님께서 너희들 땅으로도 맹세 하지마! 그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야~ 라고 했을 때 그 땅이 ‘호게’ 성전이었잖아요. 성전에다 맹세 하지마! 성전은 하나님의 발을 두는 곳이야~ 라고 했을 때 그 발이라는 게 하나님의 그 복음의 그 실체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파님’도 가려 있고, 발도 가려 있어요


그럼 날개 두 개 남았네요. 그러면 겉으로 딱 봤을 때 보이는 건 두 날개 밖에 없죠? 두 날개는 뭐에요. 성전이란 말이에요. 멀리에서 그 성전을 이렇게 보면 날개 두 개가 이렇게 날라 가는 것처럼 보였단 말입니다. 성전에다 그걸 새기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데 보세요. 여섯이면 우리가 여섯째 날에서 봤지만 ‘자칼(זכר) 과 네케바(נקבה)’ ‘쩨렘(צלם)과 데무트(ךּמוּת)’ 가 되어서 그게 무엇인지를 아는 상태란 말예요. 이젠. 그러면 그것을 여섯이라고 그래요


그렇게 여섯이 되면 ‘자칼(זכר) 과 네케바(נקבה)’ 씨를 가진 씨 맺는 씨를 흩뿌리는 풀싹이 되고 씨를 가진 열매 맺는 그 나무가 되어 버리면 이제 여섯이란 말예요. 그러면 그 상태를 안식, 일곱 이라고 그러고 그 일곱의 상태 그래서 그 일곱을 완료해버리면 그걸 8()이라고 합니다.


래서 이 ‘팔궤’ 같은 것도 주역에서 나오는 ‘팔궤’ 같은 것도 이 8()의 세상에서 그 8()을 알아야 우리가 구원인데 그걸 8()이 되지 못해 버리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을 구천으로 살게 되는 거란 말예요. 그럼 그건 떠도는 영혼이 된다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


자 그렇게 두 날개만 펼쳐져 있으면 그거는 감추어진 것 성전이에요. 그렇죠? 여섯 날개면 확 드러난 성전이에요. 확 드러난 하나님인데 두 날개가 되면 위아래가 다 가리고 두 날개만 보여 지는 껍데기로만 보여 지는 성전을 가리키는 거란 말입니다


이사야는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의 옷자락이 가득 찬 거를 봤단 말이에요. 그런데 겉으로는 어떻게 나타나 있냐면 두 날개만 보이고 나머지는 가린 걸로 보인단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도 그 날개로 표현 하신 적이 있어요.



마태복음 23:37-39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성전입니다)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 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잘 생각해 보세요. 예루살렘은 성전을 그냥 보이는 데로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말이죠? 그런데 주님께서 당신이 날개로 품으러 오셨대요. 날개로 뭘 품어요? 암탉이. 알을 품죠. 알은 난태생, 부정한 겁니다. 반드시 다시 낳아야 되요. 그래서 난태생은 위로 다시 낳아야 되는 거죠? 그런데 뭘로 품어요? 날개로 품어요. ? 그 날개가 6(여섯)이라는 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그 6(여섯)으로 왔어요


왔는데, 사람들이 그 주님을 진리로 못 보니까. 그 분이 자기를 성전이라고 한 거예요. 그래 이 성전을 헐어라~그러면 주님도 역시 두 날개를 가진 그런 분밖에 안 되는 거죠. 그런데 그 날개가 뭔지를 그 새가 뭔지를 알아버리면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못 알아보니까. 이제 너희의 성전이, 내가, 두 날개가 폐하여 질 거야~ 내가 죽을 거란 얘기에요. 그러면서 뭐라고 하냐면 그러니까 찬송해~ 내가 그렇게 가서 죽을 거야~ 너희들은 이제 나 못 볼 거다. 그러니까 찬송해~ 그러면 내가 영으로 올거니까


, 그 두 날개로 오신 예수, 그 두 날개인 그 성전을 통하여 그게 뭔지를 알아 버리면 얼굴 가린 날개 펴지고 발 가린 날개 펴지고 6날개가 된다 말예요. 6(여섯)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보는 거예요. 그게. 진리를 마음으로 가진 자가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날개, 내가 날개야~ 날개로 품으러 왔어~ 라고 하신 그 분이 내가 죽을게~ 그런단 말예요. 내가 죽을게~ 감추어진 성전 그 율법으로 내가 죽을게~ 두 날개로 내가 죽을게~ 그래요


그런데 그 두 날개가 뭐라고 그랬어요? 이사야서에서 싸라프(שׂרף /H8314/불 뱀)이라고 그랬잖아요. 구리 뱀. 주님이 날개로, 그 불 뱀으로 죽으면 그들이 그 감추어진 날개속의 얼굴과 발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들 찬송해~ 그러는 거예요.



민수기 21:5-9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양식)도 없고 물도 없도다 

(뭐 없었어요?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거 마음에 안 찬 거예요. 그걸 양식이라고 생각안한 거죠.)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하나님의 진리가 하늘에서 하늘의 떡으로 떨어졌는데 하이 이 박한 식물! 이것 싫어! 그런 거죠. 그 진리 싫어. 율법이 좋아! 이런 거죠.)

6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이 불 뱀이 샤라프에요. 스럅, 날개 두 개 달려 있는 스럅)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예수님이 이걸 인용하여 내가 그렇게 달릴 거야! 하나님은 그렇게 세상을 세상으로 사랑 하신다. 예수님이 세상의 대표로 오셔서 그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세상으로 죽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 세상으로 세상을 사랑한다. 라고 하는 거죠. 뭘로 사랑해요? 하늘의 것은 여기에 내려 올 수가 없는데, 세상으로 사랑해야지~ 그래서 예수님이 그 세상 놋 뱀, 불 뱀이 되어서 율법이 되어서 죽는 거란 말입니다


,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셔서 물게 하셨는데 그게 두 날개, 성전이죠. 그런데 처방까지 주시는데 그 불 뱀을 언약의 기둥위에 달으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언약의 관점에서의 그 불 뱀이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면 보면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성전에서 너희들은 그 성전을 섬기고만 있으니 그 성전이 뭔지 ‘호라호/ράω/ G3708’ 봐야 사는데 왜 거기서 그걸 볼려고 하지를 않고 제사만 드리고 있냐~ 라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요? 물어야 된다니까요. 물어서 물면 어떻게 해요? 물면 본다는 거예요. 봐야 산다는 거예요. 거기서 뭐 열심히 해서 사는 게 아니라 그게 뭔지를 봐야 산다. 라는 거예요. 그러면 불 뱀을 왜 보냈어요? 그게 뭔지 보라고~ 그게 구원이라니까요. 그런데 그 불 뱀을 굳이 놋 뱀이라고 그러죠? 놋은 성전 제단을 만드는 재료입니다. 그러니까 그 성전에서 드리는 그 희생제사 거기에서 죽는 그 제물이 뭔지를 보라고~ 그것만 열심히 도륙하고 있지 말고, 그게 뭔지를 보라고


그 율법, 그 뱀, 그 성전, 그 놋, 놋이나 뱀이나 똑 같은 단어입니다. 여러분. 그거 보라고. 그게 뭔지를 보라고. 그러면 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말이에요. 하나님은 광야에서 씨로 내려주신 하늘의 양식이 뭔지 알지 못하고,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하며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율법의 양식을 찾는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 얘기에요. 그 율법의 상징인 성전을 그 예수를 두 날개를 뱀을 언약의 기둥에 매달아 죽이신 거예요. 그 모습은 율법에 물려 죽어야 했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모습이었잖아요. 불 뱀에 물리면 거기에 그렇게 매달려 죽는 거예요

그것이. 그런데 예수가 거기에서 매달려 죽었어요. 놋 제단에서 도륙당해 죽는 그 제물이 예수그리스도를 모형 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건 결국 육으로 죽고 영으로 하나님과 연합이 되는 우리의 모습인거잖아요. 그죠? 그래서 육체는 고기는 절대로 지성소에 못 들어가고 피만 들어가는 거예요. 피는 곧 물이고 물은 곧 성령, 영이니까. 그것이 구원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생명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제물은 바로 우리를 이야기 하는 거예요. 나중에 산 제물로 산제사의 산 제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려지게 될 나. 그런데 어떻게? 영으로 육이 아닌 영으로 드려지게 될 나. 그걸 산 제물, 산제사 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럼 한 번 보세요. 성전에 희생제사, 하나님은 이거를 죄라고 그랬습니다. 그럼 희생제사는 예수제사를 모형 하는 거죠. 영 단번에 드리는. ? 이게 끝이에요? 산제사 있잖아요. . 산제사는 누굽니까? 살아서, 이거는(희생제사, 예수제사) 죽여서 드리는 제사고 이거는(산제사) 그걸로 말미암아 산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죠? 그러면 희생제사가, 열심히 희생제사를 하던 그 시대에 아~이거는(예수제사) 예수가 그 영단번에 드려지는 그 제사였구나~ 라고 알면 이건(희생제사, 예수제사) 끝이죠. 그죠? 더 이상 이거 드리면 안 되죠? 그러면 아~이 예수제사가 결국은 나라는 육체, 이 고기를 죽여 버리고 하나님의 그 진리의 말씀으로 살려서 하나님이 나를 받으신다는 그 얘기구나~라고 이 산제사, 이 제물, 산제사가 뭔지 알았으면 이것도 끝나야 되죠. 맞아요? 당연하죠. ‘지난 한주일 동안도 하나님의 마음을 그렇게도 아프게 하여 그 많은 죄를 짓고 왔으니 하나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또 예수가 죽어야 되는 거죠? 그죠? 그걸 예수제사라고 그래요. 아니라니까요. 나는 그 제사에 의해 살아났단 말이에요. 그러면 더 이상 여러분은 ‘하나님 그 예수 또 죽여서 나를 용서해 주세요’ 라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기특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거는. 여전히 그 예수 잡아서 또 제사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게. , 그렇게 불 뱀의 그 죽음, 그 두 날개의 죽음, ‘샤라프’의 죽음 그것이 뭔지 ‘호라오’ 보는 자가 그게 그거구나~ 이렇게 보는 자가 영생으로 사는 거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게 새의 이야기라니까요. 그러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성전을 두 날개로 감추어진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활짝 펼쳐진 여섯으로 보겠죠? 이렇게 안 가리고 있을 거 아니에요. 이제. 핀단 말이에요. 여섯 개로~ 얼굴도 발도 다 공개된 여섯으로 본단 말이에요. 그 여섯이 뭐라고 그랬어요? ‘네케바’ 안의 ‘자칼’ ‘쩨렘’ 안의 ‘데무트’ 아시겠어요? 그렇게 보게 된 자들을 뭐라고 한다고 그랬죠? 넷째 날에서 ‘하늘의 별’ 그죠? ‘하늘의 별 이라고 해’ 그랬어요. 그리고 그들이 ‘에스카토스 έσχάτωςG2079/마지막으로/ 코드란테스 κοδράντηςG2835/사분의일’ 그 넷, 넷의 날에 하늘의 별들이 나오죠? 그 넷, 하나님의 그 일곱을 넷으로 알아 ‘에스카토스 코드란테스’ 그 넷을 하나로 가진 자. 사랑이잖아요. 그게. 산상수훈 여태 배웠으니까 연결을 시켜봐야죠. 그러면 그들을 별이라고 그러죠. 그런데 하나님도 사랑이래요. 대연합이 일어난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의 대연합이. 그게 넷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계시록에 가면 이제 여섯 날개가 활짝 펼쳐진 그들을 넷의 존재. 그런데 살아있는 넷.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4:5-8

5.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네 생물이 있다고 그러니까 자꾸 무슨 에이리언 이런 게 막 생각나잖아요. 그죠? 네 생물이 넷이라는 산 존재 이런 말이에요. 네 마리가 아니라~)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 하더라(이거 보세요. 네 마리가 앞뒤에 눈이 가득하면 이게 괴물이지 뭐에요. 이게요.)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이(넷이라는 산 존재가)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 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시간과 관계없는 영원의 그 하나님. 이런 말이죠.)

하나님의 보좌가 나오고 일곱 등불이 나옵니다. 일곱 등불은 일곱 영이라고 또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주죠. 영은 곧 말이네요. 그러면 일곱 영은 뭐에요? 일곱 등불은 뭐에요? 일곱이라는 말 자체도 언약이고, 언약을 하다, 일곱 번 말하다, 실컷 먹이다. 라고 했잖아요. 사바가. 그러면 영이라는 것도 말이고 일곱 영은 뭐에요? 진리의 말씀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일곱 등대가 어디가 있죠? 여러분. 일곱 등대? 성소 안에 있지 어딨어요? 등대. 그죠? 등대, 떡상, 향단, 이렇게 있잖아요. 등대는 일곱 개에요. 그런데 어떻게 성경에서 표시를 하냐면 세 가지, 세 가지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창세기의 셋째 날, 셋째 날 이렇게 얘기 하는 거예요. 앞에 셋, 뒤에 셋 그런데 가운데도 하나가 있어요. 거기에도 등불을 올립니다. 그래서 셋, , 여섯이 되면 이게 일곱이야~ 를 보여주는 게 등대에요. 그런데 맞은편의 떡상에는 여섯 개, 여섯 개의 떡이 여섯이 짝으로 있어요. 그러니까 그 여성을 짝으로 이게 뭔지를 짝으로, 그게 이거구나~ 이게 구거구나~ 짝으로 알아 양식으로 먹으면 칠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가 밝혀 주는 거예요. 빛을. 그 일곱 등대는 감람나무 기름으로 빛을 내죠? 그거는 끊어지면 안돼요. 끊임없이~감람나무는 하나님을 항상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그 감람나무 기름은 말씀이니까. 진리니까. 그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계속 조명되는 거예요. 뭐가? 성소, 지성소가. 성전이. 그게 꺼지면 깜깜한 거예요. 그것 자체가 어두움이에요. 두 날개의 성전이 되는 거예요. 그럼. 감추어진 성전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등대는 반드시 켜 있어야 되는 거죠. 그런데 창세기에도 이 등대가 등장한다는 걸 아세요? 어디에 나오죠? 등대. 등대라는 단어가 ‘마오르’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넷째 날에 큰 광명, 작은 광명 나오죠? 그게 ‘마오르’에요. ‘오르’ 라는 단어가 빛이죠? 빛을 내다. 히브리동사에다가 멤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다 붙이면 이건 항상 장소가 되거든요. 그러면 빛을 내는 그것이 있는 장소가 어디에요? 성전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등대란 말입니다. 등대 그런데 넷째 날의 이야기가 뭐냐면 ‘하카탄마오르’ 그러니까 아래의 작은 광명, 작은 것으로 그게 뭔지를 알면 그것을 ‘하카톨마오르’ 큰 광명이라고 한다. 라는 거예요. 그것이 그러니까 우리는 작은 것에 충성하면 큰 것에 충성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충성한다. 라는 말이 ‘피스토스’ 믿음이란 말이에요. 그게요. 작은 것을 열심히 섬겨요. 섬긴다. 라는 말이 아니라 그 충성이라는 단어가 믿음이라는 단어니까. 작은 것을 믿음으로 뭔지 알게 되면 그게 큰 빛이야~ 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빛 그 ‘마오르’가 성소 안에 있는 그 등대와 똑같은 단어란 말이에요. , 그러니까 그 ‘마오르’가 넷의 날에 등장하는 건 그 성소 안에 등대 역할을 하는 그 이들이 바로 넷이라는 하늘의 별들, ‘코카스’ 별들이라는 그런 뜻이고 당연히 그들이 해야죠. 누가 해요. ‘자칼’과 ‘네케바’가 된 그 안에 그 진리를 가진 그들이 해야지 그걸 누가 하냐구요. 누가 비춰요.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등대라니까요. 칠을 완성한. 그래서 일곱 등대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넷을 이제 그 하나로 사랑, 안식 그 하나로 받으면 우리가 ‘마오르’가 되는 거예요. 너희가 세상의 빛이다. 너희가 등대야~ 그러니까 산 위의 마을을 비추어라 그게 뭔지. 그러는 거예요. 산 위의 마을은 예루살렘, 율법이죠. 그죠? 그게 뭔지를 비추어라. 그런데 거기에 유리바다와 일곱 등대가 등장해요. 유리바다의 그 유리는 ‘휘알리노스’ 라는 단어인데 빛처럼 투명한 이런 뜻인데, 빛처럼 왜 하필 빛처럼 이에요. 천상의 바다는 어둡고 혼탁하고 덮여있는 그 바다가 아니라 그것이 활짝 열린 은혜의 비로써의 바다라는 거예요. 거기에 그런 바다가 있다. 라는 게 아니라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몰라요. 하여튼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건 그런 바다 이야기 하는 거 아니겠죠? 감추어진 것이 없게 된 자, 그렇게 된 자들이 여섯이라는 날 안에 ‘자칼’과 ‘네케바’ 잖아요. 그리고 그들을 넷의 날 속에 하늘의 별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테싸레스조온’ 네 생물, 넷 이라는 산 자들. 그들이 일곱 등불이고, 일곱 영, 일곱 말이고, 그들이 바로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다 감추어진 걸 다 드러낸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는 이야기에요. 감추어진 두 날개는 ‘샤라프’ 불 뱀이었는데 그 날개가 여섯으로 펼쳐지니까 살아있는 넷이 되더라는 거예요. 이해가 가세요? 재미난건데~ 그 날개는 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요. 그 감추어진 것을 보는 눈이겠죠? 그러니까 여섯을 보는 눈. 그 눈을 일곱 등대라고도 해요. 그래서 그 눈은 일곱 눈이라고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5:6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또 나오네요. 아까는 일곱 등대가 일곱 영이라더니 여기는 또 일곱 눈이 일곱 영이라네요. 역시 말씀이잖아요. 눈은 그러니까 그 눈, 그 눈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야 그 ‘샤라프’ ‘스럅’이 뭔지를 장대에 매달린 그 불 뱀이 뭔지를 볼 수 있고, 장대에 매달린 그 날개, 그 새가 뭔지를 볼 수 있고, 그 성전이 뭔지를 볼 수 있고 그런 거 아닙니까? 그래서 눈인 거죠. 그렇게 일곱이라는 언약을 씨로 가진 자들이 이제 ‘자칼’과 ‘네케바’ 인거죠. 그래서 그 눈을 진리를 올바로 가진 자들을 온 몸이 성한 자 즉 산 자라고 부르는 거고 그 눈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자들을 어두움에 속한 자라고 부르는 거예요.

누가복음 11:33~36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등불은 영이라고 그랬습니다. 아까) 움속에나(움은 성전이죠.) 말 아래(말은 성전의 기명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한 되, 두 되 이러게 재는 그 말 이야기 하는 거 아닙니다. 아니면 타는 말이라고 생각는 분은 설마 없었겠죠?)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이해가 가시죠? 이제. 그 눈, 그 눈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바로 네 온몸이 성한 거. 네가 산자 되는 거야~ 그러나 그 눈이 없으면 그 말이라고 했어요. 일곱 영이라고 했으니까 그 말이 그 진리가 없으면 네가 어두움에 속한 자야~ 그런데 네가 혹시 그 어두움을 빛이라고 착각하고 안에 갖고 있으면서 나는 빛을 비춘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니? 그러니까 네 안에 있는 그 빛이 혹시 어두움이 아닌가 한번 봐~ 이런 말이에요. 혹시 네 안에 갖고 있는 게 어두움이 아닌가 한번 봐~ 그러면 큰 일 나는 거다~ 그러는 거죠. 이게 바로 공중의 새의 이야기인 거죠. 그 눈이 있으면 두 날개 안에서 그 내용을 볼 수 있는 거죠. 그 내용을 본다는 것 자체가 여섯 날개가 활짝 펴 있는 거예요. 그죠? 그러면 이제 다시 창세기로 돌아가서 육축, 그 ‘베헤마’가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죠. 육축이라고 번역이 된 ‘베헤마’라는 단어는 제물을 가리켜 쓰는 단어에요.

레위기 1:2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이게 ‘베헤마’ 죠.)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 여기서 예물은 ‘코르반’ ‘고르반’이고요. ,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 그걸 ‘베헤마’라고 하는데 그 단어는 가축이라는 뜻으로도 쓰여요. 가축. 맹수는 아니에요. 사전에 뭐 그렇게 나오는데, 맹수 이런 게 아니에요. 제가 요즘 그 문자를 배우는 선생님하고 계속 그 책을 같이 읽어요. 이제요. 같이 읽는데 왜 같이 읽냐면 글을 몰라서 배우는 거 아니잖아요. 그래도 한 40년이나 한 사람이 보는 책과 뭐 이제 일천한 그 지식을 갖고 있는 제가 읽는 책이 다를 거 아니에요. 그래서 같이 읽는데 어떨 때는 사전이 미워질 때가 있어요. 그게 아닌데 그렇게 밖에 번역을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문자들이 써 있는 책들을 많이 이제 보는 거죠. 그 ‘베헤마’ 가축이라는 걸 하나님께 예물로 제물로 바치라는 건요. 가축이 뭐에요? 인간들이 농사나 이런 데에 또 짐 나르는데 써 먹고 나중에 늙으면 잡아먹는 거잖아요. 양식으로. 그게 너희의 힘, 너희의 양식이 아니다 라는 걸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가축을 제물로 드리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베헤마’ 그 가축이라는 말이 뭐냐면은 בּהמה 성전을 말하는데 진리로 말해 주는 걸 제물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희생제물이라는 게 뭐냐면요. 그 성전, 그 하늘이 뭔지를 진리로 보아라~ 보아라~ 내가 그걸 통하여 그걸 말하고 있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베헤마’라고 쓰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그 진리로 보지 못하고 그냥 희생제물을 계속 드려 버리면 그게 살인하는 거예요. 여러분. 도륙해 버리는 거예요. 그것이. 그러니까 제물이라는 건 하나님께 치성으로 바치는 게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제물의 죽음이 무엇인지 진리로 깨달아 알라고 준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율법에서 제물로 등장하는 그 단어는 ‘자바’라고 달라요. 그 ‘자바’라는 단어의 의미가 뭐냐면 그 성전, 참 성전과 대립하는 개념의 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뭐에요? 행위지 뭐에요. 열심히 해 버리는 거예요. 그냥. 그걸 ‘자바’라고 그래요. 잡아 죽이는 거예요. 계속. 그렇다면 산상수훈 서두에서 ‘살인하지 마’ 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주님이 그 태초의 제물을 언급하셨을 때 그 제물은 바로 창세기의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안 드세요? 한번 보세요.

마태복음 5:21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여기서 옛사람에게 말한바 라고 번역이 된 어구가 ‘레고호아르카이오스’인데 ‘아르카이오스’는 ‘아르케’에서 온 단어죠. ‘아르케’가 뭐에요? ‘베레시트’에요. 그 옛날 그 사람들에게 얘기했어~ 이런 말이 아니라 내가 ‘베레시트’ 때 얘기 했잖아~ 일곱으로. 그렇죠? 창세기 1장이네요. 내가 ‘베레시트’ 때 얘기 했잖아~ 뭐라고? 살인하지 말라고. 도륙하지 말라고. 언제 얘기했냐고요? 그걸 어떻게 이야기 하냐면 너희가 들었다. ‘아쿠오’ 내가 ‘베레시트’ 안에서 ‘엔아르케’ 안에서 너희에게 희생제사 드리지 말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어. 어떻게 들었어요. 그들은 율법으로 들었으니까. 희생제사하라고 들었잖아요. 그건 잘못된 거라는 거예요. 잘못 들었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그 제물은 하나님의 성전을 진리로 말하는 것. 이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창세기의 ‘베헤마’ 라는 말은. 그러니까 그건 잡아 죽이라는 게 아니었지 라고 이야기 하는 게 바로 이 한 단어 안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걸 나중에 너희들은 나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얘기하는데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베헤마’ 육축이라는 건 내가 진리를 담아서 너희에게 그게 뭔지를 알으라고 준 말 아냐~ 라고 이야기 한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거기에 나열되는 게 다 뭐냐면 그대로 보면은 절대 안 되는 거예요. 그게 뭔지를 알게 되면 아~그거구나~ 라고 아는 거예요. 그걸 여섯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걸 감춰진 게 드러났다, 라고 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이들이 바로 그 진리를 가진 자 ‘쩨렘’ ‘데무트’ ‘자칼’ ‘네케바’ 라고 얘기 하는 거란 말예요. 그들이. 그걸 가진 거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세기 3장에서 그 ‘베헤마’ 라는 그 제물의 의미를 정확히 가르쳐 주셨죠. 너희들이 나에게 잡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너희들에게 말로 섬기는 거지. 내 진리로 너희들을 입히는 거지. 그거죠. 그죠?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제사를 드리시죠. 그러니까 제사는 원래 우리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베헤마’의 의미를 모르고 계속 도륙만 했죠. 잡아 죽였어요. 얼마나 많은 소와 양이 거기서 낭비가 됐습니까? 밑에서 사람들은 다 굶어 죽어 가는데 소와 양은 거기서 다 탔대니까요. 다 태워버려야 되요. 없애버려야 된다고요.

창세기 7:2~3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을(쉐나임שׂניםH8147) 네게로 취하며

3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 그 씨 창세기 셋째 날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씨, 그 진리 그것을 온 지면에 이렇게 흘려 줄 수 있는 자들 그들을 뭐라고 이야기 하냐면 정결한 ‘베헤마’ 라고 그래요. 그 ‘베헤마’는 그 제물이 아니고, 정결한 ‘베헤마’는 뭐죠? 그게 뭔지를 알게 된 그것, 그 진의로 해석된 ‘베헤마’ 라는 뜻이죠. 그죠? 우리가 제물이라며요. 그런데 우리가 그 깨끗한 정결한 제물이 되면 우리는 산제사가 되는 거란 말예요. 그거는 일곱으로 취하고 부정한 건 짝으로 취하라는 거예요. 짝이 되면, 연합이 되면 아~그게 이거야~ 라고 짝이 되면 그게 곧 정결함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부정한 것은 기는 것, 물고기 이런 게 다 부정한 거예요. 그러니까 창세기에 나오는 그러한 것들이 이 부정한 것 안에 그냥 다 들어가 있는 거죠. 그리고 공중의 새. , 똑같은 게 여기에 나오네요. 그런데 공중의 새 여기서 공중의 새는 ‘오프(עוֹףH5775) 샤마임( שׂמים/H8064)’이에요. ‘오프(עוֹףH5775) 라키아(רקיע/H7549/궁창)'가 아니라 진짜 그 하늘의 의미로 해석된 그 성전 그 공중의 새도 당연히 일곱으로 바쳐야죠. 그죠? 7(일곱)으로 완성이 되어야 그것이 안식이고 그게 사랑이니까. 그렇게 바치라는 거죠. ,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이제 그 씨를 전하게 되냐면 이런 것, 그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것들로 씨로 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것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고 홍수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 처음 것들은 다 죽어버리고 새 것으로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똑 같은 것들이 나옵니다.

창세기 8:18~21

18.노아(노아라는 말은 안식이란 말입니다. , 안식이 드디어 된 거죠.)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그런데 한번 보세요. 아버지가 노아죠? 아들은 뭡니까? 아버지가 내 안에 있으면 내가 아들이죠? 그런데 그를 또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그러고 그를 또 아버지라고 부르죠. 그러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네요. 그럼 아내는 뭐에요? 그 진리를 품어 내 남편으로 품어 안은 네케바가 아내죠? 그런데 그 자칼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내가 아들이 되는 거라고 그랬습니다. 자칼이 ‘남성이 되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여자 안에 남자의 씨가 들어가면 그 여자가 아들이 되는 것을 그 복음을 설명해 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아내도 그거네요. 아들의 아내도 그거. 그럼 보세요. 아버지는 뭐고 어머니는 뭐고 아들은 뭐고 딸은 뭐고 자부는 뭐고 뭐에요? 다 똑같은 거예요. 그냥 하나라니까요. 성경은. 알고 보니까 다 그거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19 땅 위의 동물(이게 ‘베헤마’입니다.)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이제 나왔어요. 새것이 나오는 거예요. 이들이 이제 씨를 전파해야 되는 거예요.) 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자 그 정결한 것들은 육의 죽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이 땅에서 정결해지고 거룩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육이 죽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라니까요. 그러면 그로부터 씨가 전파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내가 이제 다시는 땅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라고 그래요. ? 노아의 홍수 사건이 뭐였죠? 위엣 물과 아래의 깊음이 터져 버렸죠? 그래서 섞였습니다. 이 지구가 23.5도 이렇게 기울어져 있잖아요. 여러분 비가 얼마나 왔길래 도대체 기식하는 게 다 죽을까요? 물고기는 비가 많이 와도 죽습니까? 물고기는 살어 있던 건가요? 맞아요? 지구가 이렇게 서 있다가23.5도 정도 이렇게 확 기울잖아요. 그러면 이 지구상의 있는 모든 물이 시속 수천킬로로 휙 돈다고 그래요. 그러면 그러니까 어딘가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의 물고기들이 다 뽀개져서 죽은 화석들이 어마어마하게 별견이 되었는데 그렇게 물이 확 돌아버리면 물고기고 뭐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하여튼 그렇게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난 I don't care 그게 나에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인지를 내가 알면 된다니까요. 그 위엣 물과 아랫물이 섞이면 죽어요. 이건 죽음이에요.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는, 그 위엣 물을 아랫물에 섞어 놓은 게 뭐에요? 그게 아랫것이에요. 그런데 그걸 통하여 어떤 이들은 살더라는 거예요. 그들이 여덟이라는 거예요. 그들이 8이라는 거예요. 8. 그들이 여덟( 8 )이라고 한다. 라고 하는 거예요. 베드로후서에서도 나오죠. 그들을 8이라고 해~ 그걸 설명하는 거란 말예요. 그러면 그게 뭔지를 위엣 물과 아랫물, 위엣 물이 진짜 물이 있겠어요? 그건 진리를 이야기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위엣 물과 아랫물이 이렇게 섞이면 죽음이야~ 너희는 다 죽는 거야~ 그런데 그것으로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게 뭔지를 알아 먹어, 그걸로 진리를 알아 살아나는 이들이 있는데 그들은 방주 안에 들어가서 은혜로 살아나는 여덟이야~를 가르쳐 줬으면 이제는 봤지! 그물 이물이 섞이면 안 되는 거야~ 라고 물로 가르쳐 줬으니까 다시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제는 다 보여 줬어. 그러면 이제 불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끝이에요. 다시는 없어요. 이제.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물로 다시 심판하지 않을 건데, 그건 너희들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그러면 뭘로 심판하겠다는 거예요. 불로. 다 죽여 버리겠다. 라는 거예요. 이제 봐주게 이런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물 심판은 살리기 위한 도구였고, 불 심판은 끝장내 버리겠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불로, 불로 이러고 있어요. 죽여 달라는 거죠. 그거. 불로. 불로. 그럼에도 그 ‘베헤마(בּהמה)’를 가지고 열심히 희생 제사를 드리면 그게 이젠 율법인 거고 그걸 뭐라고 그래요? 그 진리를 남편으로 못 갖고 율법으로 남편을 가지면 그 베헤마(בּהמה)로 내가 간음하는 거죠? 그 베헤마(בּהמה)는 하나님의 그 참 성전을 진리로 주는 말씀인데 그걸 그걸로 못 받고 그냥 제물로 받아버리면 그걸 내가 다른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거니까 그걸 행음, 간음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출애굽기에 이런 율법의 내용이 나오는 거죠.

출애굽기 22:19

짐승(이게 베헤마(בּהמה입니다. ‘베헤마’는 진리로 알아먹으면 되는 건데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그걸 희생제사로 잘못 알아 그걸로 간음하면 죽는다. 이런 말이에요.)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짐승과 뭐 섹스하면 다 죽여 버릴거야~ 수간은 절대 안돼~ 이런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에 그런 말이 왜 있겠냐구요. 아니 인간도 그 안에 진리가 없으면 그 짐승이라니까요.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예수도 진리로 깨달아 지진 못하면 그 예수도 짐승이라고 하는데 다른 짐승과 그 짐승이 뭐가 달라요? 오히려 더 악하지. 그러니까 이런 것 들을 자꾸 곡해를 해서 엉뚱한 사람만 이렇게 죄인으로 몰아서 정죄를 해 버리고 그러는 거예요. 얼마전에 뭐 홍석천이라는 그 탈렌트가 나와 가지고 뭐 얘기하는데 커밍아웃을 하고 사람들이 그냥 다 자기를 돌로 쳐 죽일려고~ 가까이도 못 오게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자살할려고 그러다가 그래도 자기 어머니가 이제 열심히 교회 다니니까 자기가 믿던 그 신에게는 가서 내가 좀 이 외로움과 이 아픔을 좀 털어놓고 싶었다는 거죠. 그래서 교회를 갔더니 교회 사람들이 전부 가까이도 안 오고 저건 왜 왔나~ 이러더라는 거죠. 그 때 그랬대요. 그분이. 아 나는 하나님에게도 버림 받은 건가? 그러면 나는 진짜 죽어야 되는 건가~ 이렇게 생각 했대는 거죠. 아이 누가 참 우리 그 CD 좀 그 이태원 그 양반 식당에 좀 갖다 주세요. 그거 아니라고. 이 살인자들은 여기다 와서 앉아 있는데 그까짓 동성애, 그런 거 아니란 말입니다. , 그러면 땅에 기는 건 뭔가~거기에서 쓰이는 ‘(라메쓰רמשׂ /H7430)’라는 단어는 ‘네 발로 기다, 떼를 짓다’ 이런 말이에요. 다 비슷해요. 그냥~ 그 단어는 ‘우글거리는 (네페쉬 /H5315/동물)하이’ 뭐 거기에서 제가 잠깐 언급을 한 거 같은데, 거기도 ‘솨라쯔(שׂרץH8317-꿈틀,우글거리다)’라는 단어가 있었죠? 그거 같은 말이에요. 기는 것. 우글우글 기는 것. 그건 성경에서 부정하다 라고 그래요. 한번 보까요.

레위기 11:41~46

41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42 곧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가증함 이니라

43 너희는 기는바 기어 다니는 것을 인하여 자기로 가증하게 되게 말며

또한 그것을 인하여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말라

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46.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기어 다니는 것에 대한 규례니

여러분 왜 참 생명을 가리키는 그 부활이라는 단어를 ‘(아나스타시스 αναστασις/G386)’ 위로 똑바로 서다. 라는 말을 쓸까요? 그걸 설명하기 위해 기는 것은 부정하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성경에서 배를 땅에 대고 긴다. 라는 건 배라는 건 자궁이라는 단어거든요. 그러니까어떤 것을 낳게 하는 것을 ‘배’라고 하는데, 거기에서는 올바른 아들이 나올 수도 있고 잘못된 아들이 나올 수도 있죠? 그런데 그 배, 이것을 그냥 섬겨 버리면 바울이 뭐라고 그러냐면 ‘너희의 신은 배다’라고 했을 때 그 배는 성전인 거예요. 성전은 잘못 된 아들들을 낳습니다.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아요. 인간의 수고로 낳는 아들을 낳죠? 그런데 너희의 신은 배다. 라는 건 너희들이 섬기는 건 하나님이 아니고 성전이네~ 율법이네~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배를 땅에 대고 땅과 그 배가 그들의 신이 땅과 연합 되어 있어요. 그리고는 그것으로 기동을 하려고 하는 그것. 그게 뭐에요? 뱀이잖아요. 그것이 뱀이라는 거예요. 그건 부정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도 처음에는 그렇게 굼벵이처럼 꿈틀대다가 낳자마자 나중에는 배로 기다가 네 발로 기다가 벌떡 일어나는 거죠. 그러면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람만 그래요. 원숭이도 낳자마자 걸어 다닙니다. 네발로 이렇게~ 그런데 뭐 어딘가에 원숭이가 두발로 걷는 원숭이가 발견 되었다고 그러는데 아니 그런 거~ 여러분 하나님이 뭐라고 그래요? 너 차든지 덥든지 해라~ 안 그러면 내가 토하여 내 칠거다. 그러죠. 그것이 아닌 비슷한 것은 하나님이 토해 내치는 거예요. 그건요. 인간만 이 구원의 과정을 몸으로 그대로 살아요. 부정한 곳에서 정한 곳이 되는 그 구원의 원리를 몸으로 살아낸다니까요. 인간은.

그런데 네 다리가 있는데도 기어 다니는 게 있대요. 자 넷을 가지면 위로 똑바로 서서 빛이 돼야 되는 거죠. 그런데 넷을 가졌다고 하면서 기는 건 잘못된 넷을 가졌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건 부정이다. 이라는 거예요. 똑바로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똑바로 서다’가 ‘(스타우로스 σταυρός/G4716’ 십자가에요. 기둥이에요. 그게요. 심지어 날개를 달고 있으면서도 기는 게 있대요. , 여섯(6) 날개는 절대 길 수가 없어요. 두 날개는 깁니다.

레위기 11:20-21

20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21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땅에서 뛰면 그는 산다. 이런 말이에요. 그건 정하다 그래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이게 무슨 뭐 대단하게 그냥 그 일곱 말이 뭔지만 알면 이런 것들은 아주 수월하게 다 그냥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거예요. , 그러니까 두 날개도 네 다리도 기는 것도 공중의 새도 ‘베헤마’라는 그 육축도 다 구원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거죠? 그걸로는 안 되지만, 그러면 여섯 째 날에서 ‘자칼’과 ‘네케바’가 되어서 그러한 것들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겠어요? 다시 여섯 째 날로 가보세요.

창세기 1:27~28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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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보면 ‘아마레 엘로힘’ 그래요. 하나님이 이거는 말씀하시다. 라는 말이죠? 그죠. 그러니까 ‘레마, 레오, 로고스’와는 다른 겁니다. 하나님의 말이라는 거예요. 말씀하시사, ‘엘로힘’으로 말씀하셨어요. ‘아사’, 되게 하자~ 뭐를? 아담을 만든다는 거예요. 아담이 되게 하겠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아담이 뭡니까? 여러분. 이렇게 끊어 버리는 거예요. 담이라는 이 말이 피에요. . 이거는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피로 만들어진 거. 하나님의 생명으로 만들어진 걸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동물이라니까요. 그거. 원래 사람은 그렇게 지어지게 되어 있어요. 한자 한자 파자하면 하나님이 구분하신 바로 그 진리. 우리는 하나님의 피로 말미암아 존재가 된 것이다. 라는 것을 아는 그들이 바로 그 진리를 가진 자니까 그걸 아담이라고 해요. 그래놓고 그들을 뭐라고 그러냐면 그 아담을 어떻게 만들겠다고요? ‘베쩨렘 데무트’ 이렇게 해요. 그런데 한번 보세요. ‘쩨렘’은 그릇이라고 그랬습니다. 형상, 모양 이런 거 다 잊어버리세요. ‘데무트’의 앞의 무트는 죽음이라고 그랬죠? 죽음을 구별하다, 라는 뜻인데 잘 죽은 그의 안에 들어 있는 그거. 그거를 ‘데무트’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 ‘데무트’를 이렇게 끊어 버리면 담이 피고, 이게 완성이니까. 피를 그 완성으로 주는 걸 ‘데무트’라고 해요. 그러니까 내 안에 그것이 들어 있으면 ‘쩨렘’과 ‘데무트’ 이 상태가 되면 이걸 아담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이제 ‘라다’ 다스려라~ 뭐 이거 ‘다가’ 물고기죠?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라는 거죠. 이건 짓밟다. 라는 건데. 그리고 이게 ‘오프쉠마임’ 하늘의 새, 이것은 두 날개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모든 새는 두 날개를 갖고 있어요. 그것은 여섯으로 반드시 봐야 된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게 ‘베헤마’죠. 그죠? 성전을 말하는데 진리로 말해 주면 그걸 제물이라고 그래요. 그게 진리를 말하는 거였구나~ 라고 알면 그게 진짜 제사라는 거예요. 그것이. 이게 ‘하에레쯔’ ‘콜’ 그리고 이게 ‘레메츠, 라마츠’ 그러는 건데 이게 기는 거예요. 어디서? 땅에서 기는 거. 그러면 거기서 이제 끌고 나오면 되잖아요. 그런데 창세기 셋째 날에서는 그걸 반드시 내가 땅에서 끌어내겠다. 라고 했잖아요. 이게 그 셋째 날의 완성이니까. 그죠?

, 그럼 여기 27절을 보세요. ‘바라’ 창조하여 하나님이 창조를 했어요. 창조가 뭔지 한번 보세요. ‘엘로힘’으로 창조했어요. ‘하 아담’ 하나님이 그 ‘하 아담’이라는 것을 그 아담이 그 안의 진리를 내용으로 가지고 있으면 그 내용이 ‘엘로힘’이에요. 하나님이라는 거죠. 그죠? 그 사람이 하나님이라는 게 아니라 그 하나님은 이 역사 속에 절대 담길 수가 없는 거니까. 그러죠. ‘엘로’힘으로 그 사람 그 ‘하 아담’을 창조했어요. 어떻게 ‘쩨렘’ 또 나오죠. 또 여기 ‘쩨렘’, ‘엘로힘’ 그러면 ‘데무트’는 어디 갔어요? 이게 ‘데무트’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안에 들어있는 그거. 그 ‘데무트’가 그게 하나님이지~ 그러면 그 상태가 되면 그걸 ‘바라’ 창조라고 한다는 거예요. 창조는 없는 걸 그냥 이렇게 자연만물을 막 만들어 낸 거를 창조하고 하지 않아요. 그건 언제가 없어질 건데 없어질 걸 만들어 놓은 걸 무슨 창조라고 그래요. 창조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께서 성전을 하나님이 이제 시작하시는 거예요. 어떤 성전, 참 성전 우리가 우리 안에 하나님을 담으면 그걸 성전이라고 하니까 그게 뭐냐면 내 안에 하나님을 담은 거예요. 그게 ‘쩨렘’ ‘데무트’고 그것이 ‘쩨렘’ ‘엘로힘’이에요. 그 상태가 되면 그걸 창조하고 그래요. ? 나는 뭐? 새로운 진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거예요. 그걸 창조라고 한다니까요. 그리고는 ‘바라’ 또 창조를 하는데 뭐 어떻게? 그걸 뭐라고 그래요? ‘자칼’과 ‘네케바’라고 그래. 그리고 그들을 ‘오탐’이라 하자. 오탐들이라고 불러요. 그런테 ‘오탐’이 ‘자칼’과 ‘네케바’가 된 이들이 ‘오탐’이라는데 이 ‘오탐’이 뭐에요? 하나님이 완성한 진리 그가 바로 여러분이에요. 그러면 그들은 그 안에 그 씨를 가지고 등불의 역할 빛의 역할을 충분히 하겠죠? 그들을 네 생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넷으로 살아 있는 자. 뭘 줘요? 그 안에 하나로 완성된 사람을 주겠죠. 그들을 ‘오탐’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보잔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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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탐들 여기 나옵니다. ‘자칼’과 ‘네케바’가 된 그들에게 ‘바라크’ 복을 주세요. 얘들아 이게 복이야~ 이게 복이야~ 내가 이제 말한다. ‘마르’ ‘엘로힘’으로 내가 말하게~ ‘파라’ ‘라바’ ‘마레’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 이렇게 기록이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하다. 라고 써 놓고 이걸 열매 맺다. 이렇게 써요. 생육이란 말이에요. 이것이. 너희들 이제 됐잖아요. 그 안에 ‘데무트’를 갖고 있고 ‘엘로힘’을 갖고 있어요. 진리로 갖고 있어요. 그 씨를 갖고 있다고요. 그 하나를 갖고 있다고요. 그러면 입을 열어 말을 해야죠. 그걸 뭐라고 그러냐면 성경이 열매라고 그래요. 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그럽니까? 야 좋은 열매 맺어야지~ 그래놓고 야 어떻게 아네~ 들어 있는 게 좋지 않은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떻게 좋니? 이런다고요. 주님도 말을 열매라고 한다고요. 그런데 여기서도 보면은 너희들 열매 맺어야 돼~ 어떻게 입을 열어서 말하기 시작해~ 입을 열어서 말하기 시작하는 그 소리를 열매라고 그래요. 생육해라 그리고 번성해라. 뭘 말할까요? 시작해 성전을 말하기 시작해~ 그러는 거예요. 네 안에 있는 그거 참 그 하늘을 말하기 시작해. 그리고 이것을 충분해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걸로 충분해~ 그것 말고 다른 것으로는 너희들이 담을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줄 수도 없어. 그걸로 충분해~ 그러면 그걸 뭐라고 그래요? ‘마레’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 진리를 가르치는 하나님 이렇게 써 놓고 완성 이렇게 읽어요. 너희들은 그걸 갖고 생육하고 열매를 맺고 입을 열어서 말을 하고 무슨 말? 그 말을, 그 성전을 말해~ 그리고 그 진리를 말하는 가르치는 이가 되라는 거예요. 그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면 그 앞에 나열되었던 공중의 새라든지 땅에 기는 것들이라든지 뭐 이런 부정한 것들 바다의 물고기라든지 이런 것들이 그 위엣 것으로 이제 밝혀지겠죠. 이들에 의해서. 그럼 그것들이 땅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것들은 곧 우리를 가리키기기도 하고 이 세상 모든 것들 그런 것들이 진의로 밝혀지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서 용서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부정한 거 아니에요. 당신은요. 이렇게. 그래서 주님이 욧바의 베드로에게 야 그게 왜 부정한거야~ 부정한거죠. 율법에서 다 부정하다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아니 내가 정한 것을 줄려고 부정하게 준 거잖아 그러면 내가 이제 네가 뭔지 알았으면 그건 너한테 정한 게 되어야지 아직도 넌 그걸 부정하다고 그래~ 내가 깨끗하다는데.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예요. 율법에서는 부정한 것으로 줘놓고 그러면 보세요. 생육하고 번성하면 자, 땅에서 그러면 ‘카바쉬’ 이게 정복하다. 이런 말이에요. 그리고 이게 ‘라다’가 다스려라~ 물고기를 ‘다그’를 그리고 공중의 새를 기는 것들을 그러면 다 끝났어요. 한번 보세요. 여러분 미가서 7 19절로 한번 가보세요. 그러면 정복이 뭔지 이제 알거 아니에요. 그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해요. 완성이라는 게 뭔지를 알면 그게 그걸 정복하는 거야라고 하는데 정복이 뭔지 한번 보란 말예요.

미가서 7:19

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여기서 죄악이라는 그 말이 ‘아본’인데요. ‘아본’은 이 아래의 것.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써 놓고 죄악이라고 써버려요.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 그걸 그대로 받아 버리면 그게 거짓이고 그게 죄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발로 밟으신데요. 그런데 거기서 쓴 말이 정복하다 ‘카바쉬’란 말예요. 그런데 ‘카바쉬’란 말이 뭐냐면 아래의 것으로 전환해준 그 성전을 그게 뭔지 분석하여 가르치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렇게 써 놓고 정복하다 그래요. 그러면 죄악을 정복하다. 죄악을 짓밟았다. 죄악을 발로 밟으셨다. 라는 말이 ‘카바쉬’ ‘아본’인데 그 말을 다 풀어버리면 눈에 보이는 아랫것들을 그렇게 전환하여 준 그것을 성전으로 참 성전으로 하늘로 분석하여 가르치면 그걸 이김이라고 써요. 그래서 계시록에서 이겨라~이겨라~이겨라~가 그 이김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나타난 그것을 그 위엣 것으로 깨달아 알아 그것을 그 진리로 덧입히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카바쉬’ 이김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5:53~54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이 말이에요.)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걸 ‘네코스’ ‘니케’ ‘니카오’ ‘이기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긴다. 아래의 것. 죽어야 할 것. 부정한 것. 어두운 것 그것이 그게 아닌 걸로 옷을 입어~ 그걸 이긴다 라고 한단 말예요. 그렇게 되면 생육과 번성과 충만과 다스림과 정복이 완료 되는 거죠. 그게 셋째 날의 약속이었잖아요. 내가 선악과로 씨를 가진 열매로 일하는 그 열매 나무로 나오게 할 거고, 푸른 풀에 씨를 담고야 말거야~ 그랬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담겨진 자들이 바로 이거를 그렇게 알아 진리로 알아 그게 그거지~ 라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면 그게 정복이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이기는 거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이겨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오탐’들(하나님이 완성한 진리) 그들에게 뭘 준다고 그래요? 양식으로. 보세요.

창세기 1:29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양식이) 되리라

이 양식이라는 말 ‘오크라’라는 말인데요. 이 양식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아랫것으로 준 것을 가르치는 말~ 이렇게 써 놓고 이걸 양식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아랫것으로 준 그것들을 이게 뭔지를 가르쳐~ ‘라메드’ ‘가르치는 그 말’을 성경이 ‘양식’ 그런다니까요. 그러면 여러분의 양식은 뭐에요. 그 말이란 말예요. 예수그리스도의 입으로 나온 그 말이 생명나무 실과였던 것처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바로 양식인 거예요. 그런데 씨 맺는 모든 풀싹 그리고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 모든 이라고 써 놓고 나무는 단수에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선악과, 생명나무 두 나무처럼 보이지만 그건 한 나무라는 거예요. 이 나무로 이걸 알면 되는 거지~ 두 나무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콜’이라고 써 놓고 나무는 단수에요. . 그러면 뭐에요? 여러분이 그 선악과 그 율법, 그 아래의 것을 가지고 그 진리를 이제 말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여러분이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죠? 그리고 씨를 씨 뿌리는 풀이기도 하죠? 그죠? 그걸 양식이래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양식이네~ 그게 바로 내가 죽어 너를 살린다. 라는 개념인 거예요.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네가 먹어라 라는 건 내가 네 양식이다. 라는 건 그래서 초대 교회 때는 저 놈들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인간들이라고 그렇게 오해를 받았다니까요. 하두 예수님이 자기를 먹으라고 그래갖고. 그러니까 먹으라는 게 그 안에 들어 있는 그 말을 먹으라는 거예요. 그걸 양식으로 주겠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이들에게는~

창세기 1:30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입니다. 그리고 공중의 모든 새, 그리고 우글우글거리며 땅에 기는 모든 것. 그들에게는 푸른 풀을 식물로 주리라)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푸른 풀이 뭐라고 그랬어요? 텅빈 거. 그러니까 보세요. 오늘날도요. 그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어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건 씨를 담고 있는 진짜 양식이고 어떤 거는 텅빈 거예요. 그거 먹으면 죽는 거예요. 왜 인류의 모든 주식, 양식은 다 씨일까요? , , , 옥수수, 감자, 고구마 전부 어떤 모양이든 그거 심으면 나는 것들을 주식으로 먹여요. 씨를 먹어야 되는 거예요. 나머지는 간식이라니까요. 아이스크림만 1 365일 먹으면 안 된다 말이에요. 그 씨를 먹어야 너희는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텅빈 걸 주면서 이게 씨라고 사기 치면 지두 죽고 그걸 먹는 사람들도 죽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안에 그 씨가 없으면 이 앞에서 던지는 말이 저게 씨인지 텅빈 건지 몰라요. , 그러니까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금식해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고 어떻게 금식을 해야 하는지 잘 아시겠죠? 성경이 말하는 금하다의 금식은요 禁 이게 뭐냐면 하늘의 하나님이 요게 일자 위에 하나 아래 셋, 아래서는 셋으로 보여요. 이게 하나님이 셋으로 일하시는 분이니까 이게 제물 되신 하나님이라는 뜻이에요. 이거는() 제단을 이야기 할 때도 이걸로 쓰죠. 그래서 이렇게 그 하나이신 하나님이 아래에서 셋으로 일하시면서 그 하나님과 인간이 한 곳에서 같이 먹고 마시면 그걸 복()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문자라는 건요. 원숭이들이 쓰던 어떤 뭐 감탄기원론 이런 것도 있는데, 아 어 헉 헐 이런데서 언어가 발달했다고 그러는데 천마의 말씀. 이천년, 삼천년 전의 책들을 제가 요즘 보는데요. 같이 선생님하고 보는데, 그때는 문법이 더 복잡해요. 원숭이들한테까지 가면 아마 머리 터질 거야~ 천만에요 언어는 애기들 한번 엄마가 애기들한테 말이라는 걸 아예 차단하고 안 가르쳐주면 그 아이는 말을 못 배워요. 말은 밖에서 줘야 받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바벨탑의 현장에서 인류에게 말을 한 번에 주셨다니까요. 그러니까 보세요. () 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 두 나무 ()를 주시면서 이거는 하면 안 되겠지~ 한 게 禁이에요. 그러니까 그거는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라고 이야기한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항상 문제가 뭐냐면 婪 여자들이 여기에 딱 있으면 탐심할 때 탐(탐할람)이에요. 그러니까 회개하세요. 아니 그 여자가 나에요. . 이 아래에 있는 것들. 그것들이 그 남편을 안 사랑하고 그 아랫것들 사랑해 버리면 그걸 그냥 동성애라고 하는 거예요. 뭘 먹어야 되고 뭘 먹지 말아야 하는지 이제 뭐 명쾌하게 이해가 가시죠? 설날 잘 보내시고 다음 주 수요일날 뵙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에게 꼭 먹어야할 것을 허락해 주셨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그렇게 금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해야 할 것을 먹고 먹어야 할 것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 장대 달린 ‘샤라프’ 불 뱀이 뭔지 알게 하시고 그 감춰진 날개를 여섯으로 활짝 열어 그 진리를 볼 수 있는 ‘자칼’과 ‘네케바’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