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사도신경강해

[미완]사도신경(20)죄를 사해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마6:12)

은바리라이프 2013. 10. 13. 11:30

사도신경(20)



여러분께 제가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영원을 사는 것이 영생인데 여러분은 영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원 속에 사는 것이 영생인데 영원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영원을 사는 삶, 즉 영생을 살 수 있을 것아닙니까?

영원이란 하나님의 시간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그런 개념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그런 것을 영원이라 합니다. 영원 속에서는 순서나 시차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온전히 완성된 상태입니다. 그곳에는 발전이나 성장의 개념이 없습니다. 자라남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입니다. 더 이상 자랄 필요도 발전할 필요도 성장할 필요도 없는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상태가 영원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시간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는 그곳에는 기다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시고 만드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영원 속에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참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이 열방을 소성케 하시는 막강한 생명력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 그런 곳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하여 이 시간 속에서 영원 속으로 들어가시는 순간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된 그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시간대가 역사 속으로 들어 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믿음이라는 것을 사용하여 시간 위로 붕 뜨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영원을 사는 자가 됩니다. 어떻게?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아담의 범죄현장에 참여하여 자신의 모습을 폭로당합니다. 우리는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현장에서 또다시 우리의 불가능함과 티끌됨을 보기도 하고, 노아의 홍수 사건에 투입되어 저주의 바다에서 건져지는 경험도 합니다. 우리는 애굽의 종살이를 하기도 하고 출 애굽하여 홍해 앞에 서기도 합니다. 우리 앞에서 홍해가 갈라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홍해를 건넙니다. 그리고 이미 2000년 전에 골고다에 섰던 그 십자가의 현장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덧입습니다. 나는 지금 2010년을 살고 있는데 AD 30년의 십자가가 내 앞에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재림사건에도 우리는 동참하며 아직 가시적으로 오지 않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창세 전에 구원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창세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도 하는 것이고, 이미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고도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게 다 뭡니까? 현재만 살고 있는, 그래서 현실에만 묶여 있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성도는 이 땅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 전체를 이 땅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으로. 그게 이 땅에서 영생을 사는 이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영생을 살고 계신 거예요?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올 때를 기다리다가 보았다는 표현이나, 구약시대에 동물 제사를 지내면서 미래에 있을 그 제사의 원형인 십자가에 동참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나, 미래에 살면서 과거의 십자가 공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이 영원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 이 세상 속에서의 현재라는 시간과 현실이라는 상태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영원 속에서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기부인 과정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그렇게 부인 당하다가 육신의 죽음을 맞는 날 하나님 나라에 영광스럽게 입성할 것을 알기 때문에 잘 견뎌냅니다. 그러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 십자가와 자기부인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완성이 되어 있는 우리의 실체가 시간 속에서 겪는 잠깐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에 영생을 사는 이들은 그 십자가와 자기부인의 삶 속에서 완성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열심히 배울 뿐입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삶이 바로 영생입니다. 그렇다고 성도는 이 세상을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체에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영원을 사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나는 영생을 사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이들은 지금 이 땅에서도 영생을 사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영생은 나중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생은 나와 하나님이 하나로 연합이 되는 삶입니다. 그래서 내가 자꾸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는 자로 부인 되어져 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삶이 쉽지 않을 때 여러분은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요일5:20)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영생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지각을 주시지 않으시면 절대 알아챌 수도 없고, 도달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지각을 주시는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이신 예수를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요6:63~68)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예수님 자신이 영생의 말씀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생의 말씀이 이렇게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생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너무 눈을 팔고 있습니다.

 

(약1:18)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벧전1:23~25)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렇게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살다보면 우리 안에 성경 전체가 실재화 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이라는 것 자체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통합이 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삶이 우리에게 살아지고, 요셉의 삶이 살아지며,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 등에 걸리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복음의 실재화라고 합니다. 복음은 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다이내믹한 것입니다. 복음은 이미 창세전에 준비되어졌고 완성되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 속에서 그 영원 속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직접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앞에서 무력한 우리 자신을 보며 십자가에 매달려 죽습니다. 죄가 되셔서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 삶에 그대로 실재화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새 생명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씩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마다 우리 안의 새 생명은 그만큼 살아납니다. 따라서 영원을 사는 우리는 매일 죽으며 매일 부활하는 것입니다. 죽은 만큼 부활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롭게 살아났습니다. 그게 겉 사람의 후패요 새사람의 새로워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려거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영원이 제자들의 삶 속에서 살아지게 된다는 그런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아브라함의 자기부인을 경험하게 되며, 야곱의 얍복강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생이 무엇이며 영원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은 절대 자기의 현실을 이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실 속에서 영원 속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삶과 예수의 삶을 발견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천국에는 있지도 않은 선악과라는 probation 기간을 살고 계신 것입니다. 열심히 선악과를 따 먹으세요.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도 잘 배우세요. 그리고 그 열매의 쓴 맛을 가슴에 새기시고 하나님의 은혜 앞으로 한발 한발 돌아오세요. 선악과는 지금 이 세상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그 선악과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옛사람이 계속 죽어가다가 결국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우리는 영생을 소유한 찬란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불사성(immortality)을 회복하게 됩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그 불사성과 영생(eternal life)을 혼돈하시면 안 됩니다. 불사성은 부활 이후에 회복되는 것이지만 영생은 이 땅에서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둘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영생을 사는 이들은 이 땅에서 부활의 삶을 삽니다. 십자가의 삶, 자기부인의 삶인 영생을 살다보면 옛 사람이 죽어가고 새 사람이 부활하는 매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생과 부활은 이 역사와 인생이라는 과정을 통과한 후 완전히 완성되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히 영원을 사시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나라, 완전한 왕국,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그런 곳에서 영원을 사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 부활의 현실을 믿으십니까? 부활이 없다면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없다는 바울의 말을 이해하세요?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속에서 믿음으로 영원을 살며, 우리 몸의 부활을 직접 경험하며 매일 매일 부활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부인되고 죽을 때 내 안에서 살아나는 예수의 생명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게 부활을 시간 속에서 당겨 사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이제 모두 이해가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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