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에배소서

(59) 영적 어린아이에서 벗어나라 (엡4:11-14)

은바리라이프 2013. 10. 5. 12:21

(59) 영적 어린아이에서 벗어나라

(엡4:11-14)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지난 시간에 12절까지 공부했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에게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수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우리가 기대치 않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구원이라는 선물을 은혜로 거저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사람들,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그 구원이라는 선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을 알아가고, 우리는 왜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지를 삶을 통해 확인하며 점점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숙하게 지어져 가는 시간을 “신앙생활”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교회가 이 땅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또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는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필요한 은사를 우리 교회 각각에게 주셨다는 것을 12절까지에서 공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은사들 가운데 특별히 가르치는 은사들과 직분들을 열거함으로 해서 특별히 교회의 직분이나 직책을 받은 자들이 어떤 자세로 서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자세죠?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자“로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비단 직분 자들뿐만 아니라 선물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요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회가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 가 13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 13절에서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교회라는 무리를 이루고 각각의 은사를 잘 발휘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구체적인 것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왜 사도가 이것을 이렇게 중요하게 언급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믿음이 너무 각양 색이죠? 이단적인 가르침에 속아서 엉뚱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렇게 잘 못 알고, 잘 못 믿고 있었던 것들에서 벗어나서 바른 예수를 바르게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3절을 보시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면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된다.”고 나오지요?

거기서의 “온전한”이라는 말 “텔레이오스”는 “성숙한, 완전히 발전한”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를 바로 알고 바로 믿지 못하면 절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지체가 완전히 성숙되기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완성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도가 11절에 열거한 하나님의 선물의 내용이 전부 가르치는 직분인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다 다른 부분입니다. 누구는 팔이고 누구는 손가락이고 누구는 다리이며 누구는 발가락, 누구는 입, 코, 귀... 다 다릅니다. 그러나 그 각 지체는 각자의 자리에서 “텔레이오스” 온전히 성숙해져야 합니다.

누구는 조그만 물 컵의 역할일 수 있습니다. 누구는 커다란 물통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통에는 반드시 물이 가득 차야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입니다.

여러분, 농작물 품평회 하는 것 보셨습니까? 배면 배, 사과면 사과, 고구마면 고구마를 한 가마니를 다 봅니다. 그런데 다른 것들은 다 실하고 좋은데 그 중에 벌레 먹은 것이 하나 들어 있으면 그건 탈락입니다. 모두가 실해야 일등급을 받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지원이 몸에 10살짜리 아이의 다리가 붙어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그런 사람을 “악어“라고 부르죠. 몸통은 큰데 팔 다리는 짧은 사람,

그건 ”안드라 텔레이온“”온전히 성숙한 사람“의 모양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큰아들이 지금 열 살인데 27살 먹은 지원이 몸에 그 다리가 붙어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일전에 영국에서 우리 교회 설교 테잎을 들으시는 어떤 분이 전화를 하셔서 “목사님 그 이지원이라는 친구 다리가 그렇게 짧습니까? 그리고 최경호라는 분은 아직도 그 교회 다녀요?”

이렇게 물어 보시더라고요. 제가 하도 설교 때 예화로 많이 써서 교회에서 나갔는지 알았대요.

제가 설교 때 가끔 인용하는 사람들은 그만한 그릇이 되기 때문에 언급을 하는 거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절대 언급 안 합니다. 나 하나 망신당해서 다른 지체들의 성경 이해를 돕게 된다면 얼마든지 희생하겠다는 그런 참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만을 제가 인용합니다.

이 시간 전 세계에서 저희 교회 설교 테잎을 들으시는 분들께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면서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서머나 교회 이지원의 다리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정말 그렇게 짧습니다.“ 저는 진리만을 말하기로 선서하고 목사가 되었기 때문에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네요.

아무튼 각 각의 지체는 각자의 자리에서 “안드라 텔레이온” 온전히 성숙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성숙은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했지요? 바른 예수를 바르게 알고 믿는 것으로 이루어 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되실 수 없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위대한 박애주의자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나는 예수를 믿는다.” “나는 기독교인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완전한 인간이셨고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사시면서 하늘의 비밀을 직접 알리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인간들에게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 분은 선지자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 온전하신 대 제사장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의 왕국을 완성하시고 왕으로 등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 왕이요, 선지자요, 대 제사장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원수들을 살려내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삶을 본받아 이 땅에서 그 자기부인의 삶, 십자가의 삶을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견지하는 신앙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기독교입니다. 바른 예수를 바르게 믿게 되면 거기서 삶이 바뀌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또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온전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안다“라고 번역이 된 단어 ”에피그노시스“는 단순히 지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완전히 아는 것, 지적인 지식이나 이해를 초월한 어떤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 ”에피그노시스“는 지식과 더불어 경험과 삶을 통해 완전히 자기 것이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그게 삶으로 살아지기 전 까지는 아직 ”에피그노스시“가 안 된 것입니다. 오히려 그 지식은 교만이라는 죄를 짓게 만들기도 합니다.

(고전8:1-3)

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그러니까 성경 지식이 다른 이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삶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에피그노시스”가 아닌 것입니다. 열심히 삶 속에서 훈련하시고 연습하셔야 합니다.

그 지식을 삶으로 살아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습득한 지식을 “에피그노시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에피그노시스“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뵈었고 삼층 천까지 다녀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아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가르쳤던 탁월한 일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대 사도도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죽는 날까지 매진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빌3:7-14)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리고 우리가 일전에 공부한 3장에서도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대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엡3:18-19)

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교회의 각 지체들은 이렇게 바른 그리스도를 믿고 그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우려내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온전한 사람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4절을 보시면

(엡4:14)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헬라어 성경은 “히나”라는 접속사로 시작됩니다. 그 “히나”라는 말은 “그와 같이”라는 뜻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내용의 결과나 이유를 이야기 할 때 등장하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니까 “봉사의 기능인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 그 모든 직책들은 우리 주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주신 것인데 그 것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을 온전한 사람에 이르게 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우리는 성숙하게 되는데 우리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데 힘써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가 14절입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힘써서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합니까?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성숙해지기를 염원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어린아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신앙의 어린아이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14절에 “이제부터”라는 단어가 있지요? “이제부터”라는 말은 현재와 미래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랬는데 “이제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2:12-14)

12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4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여기서 쓰인, “아이들아, 청년들아, 아비들아“라는 말은 우리가 신앙의 어린아이로 태어나서 거쳐야 하는 단계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벧전2:1-3)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회심을 목적지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회심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한번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완성해 내신다.“는 의미에서 회심을 구원의 끝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 쪽에서 보면 회심은 이제 머나먼 순례의 길을 떠나는 순례자의 첫 발걸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가시적인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인격과 삶과 인생 속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안드라 텔레이온“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3:1-3)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그럼 이 영적 신생아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4절을 다시 봐 주세요.

(엡4:14)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어린아이는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사람이라고 사도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아이의 특징인 “사람의 궤술”에 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궤술이라고 번역이 된 “퀴베이아”는 “퀴보스” “주사위”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노름, 술책, 기만” 이런 뜻입니다. 영적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속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베스타 스탤론이 나오는 “쉐이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전문 도박사들의 속고 속이는 기가 막힌 기술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카드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나눠줍니다.

그들은 그 것을 기술이라고 부르지만 전부 속임수입니다.

박태선이나 문선명 이런 이단들이 자기들이 메시야라고 떠들고 다닐 때 거기에 집 팔고 논 팔아서 들어간 사람들이 어리버리 한 초신 자들 아니었습니다. 다들 열심 깨나 부리던 교회 중진들이 그 속임수에 속아 넘어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겉으로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처럼 행세했지만 모두다 어린아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지 못했던 영적 어린아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사단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가 뭐라고 했습니까? 속임수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참 잘도 속습니다.

성경에는 거짓 가르침에 속지 말라는 경고가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마7:15)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24:23-26)

23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25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면서 장로들을 모아놓고 권고하는 말을 한번 볼까요.

(행20:29-31)

29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31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고후11:4,13-15)

4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 하는구나

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들은 아주 훌륭한 목사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아주 자비로운 선교사의 모습으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인의 칭송을 받는 위인일 수도 있습니다.

(눅6:26)

26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거짓 선지자들은 모든 사람들한테 칭찬을 받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골2:8)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들은 많은 능력과 기적과 표적을 보이기도 합니다.

(살후2:9-11)

9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 함이니라

11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그러니까 어린아이 같은 신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속는 것입니다.

여기에 예로든 곳뿐만 아니라 유다서, 베드로서, 요한일서, 요한계시록 아주 많은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짓 가르침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어린아이에서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바른 예수를 바르게 알고 믿어라“

다시 오늘 본문 14절을 보세요.

(엡4:14)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지금 우리는 어린아이가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말이 “간사한 유혹”입니다. 이 “파눌기아”라는 말은 원래 “짐승이 그의 먹이를 좇아가며 기회가 올 때까지 숨어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맹수가 그 먹이를 잡아서 찢기까지 숨어서 천천히 냉정하게 뒤를 좇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마귀가 우리를 그렇게 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십중팔구 물어 뜯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라라, 성장해라, 성숙해라,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라”하고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풍조에 밀려 요동합니다. 거기서 쓰인 단어 “크리도니 조마이”는 “파도치듯 일렁이다“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이리 밀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면 저리 밀리고 한 마디로 ”귀가 얇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 어린아이들에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약속해 줍니다. 아이들은 신기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기적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5분 이상 한 곳에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아주 단순한 것이라고 사기를 칩니다. 그냥 안수 기도 한방이나 트레스디아스나 부흥회, 수련회 이런 것들을 성화의 수단으로 제시합니다. 꾸준히 자신과 싸우며 죄와 싸우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는 그 먼 길을 교묘히 감추고 쉽고 빠른 길들을 제시합니다. 어린아이들은 그 것을 좋아합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인기를 잃더라도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회초리를 자주 댑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새벽 5시에 등교해서 저녁 11시까지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땐 중3 아이들이 뺑뺑이 돌려서 “경문 고등학교”가 걸리면 “사흘 밤낮을 울었습니다” “난 이제 죽었다” 선생님들도 얼마나 극성이셨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그게 참 저에게 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짜 성도를 사랑하는 목사는 성도들을 달달 볶습니다. 함께 천국가야 하니까, 무럭무럭 자라라고 달달 볶는 것입니다.

(꼭 제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귀는 그 어린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계속 어린아이로 머물게끔 편한 길을 제시하고 제공해 줍니다. 저희 중학교 때 기술 선생님이 계셨는데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분입니다. 거의 수업시간의 반은 월남 여자들 이야기였습니다. 월남 여자들을 월남말로 “콩까이”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 선생님을 “콩까이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설렁설렁 놀 수 있는 기술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지나고 나니까 기술 시간에 뭐 배운 게 없어요. 그래서 제가 망치질 같은 걸 잘 못 하나 봐요, 기술 시간에 맨 날 콩까이 얘기만 들어서.

어떤 게으른 영어 선생님 밑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왔습니다.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지 그 친구는 영어 알파벳의 발음기호만 겨우 읽을 줄 아는 친구입니다.

“A 는 아, B는 브, G는 그” 이렇게 발음기호만 대충 알고 미국엘 왔으니 말이 통할 리 만무 입니다. 이 친구가 햄버거를 사 먹으려고 맥도날드에 들어갔습니다. 바닥에는 wet floor DANGER"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잘난 척 하려고 그걸 크게 읽었습니다. “당거”

그리고는 직원에게 “I'm a stranger(스트레잉거)" 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 종업원이 친절하게 거기서 g 발음은 ”그“ 발음이 아니라 ”지“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머쓱해진 이 친구가 “oh I'm sorry, please give me a hamburger (햄버저)"라고 했답니다.

공부할 때 공부 안 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해야 할 때 게으르고 나태함에 빠지면 나중에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기들이 전능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울면 부모는 언제든지 나의 요구를 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영적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조차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분”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내가 이 우주의 중심이며 내가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인식을 자꾸 심어줍니다. 어린아이들은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오락과 흥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모인 교회는 재미있고 흥미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어린아이들은 금방 싫증을 낼 것이고 그들이 떠나면 교회의 힘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꾸 재미를 추구하는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시기심과 질투심이 아주 많습니다. 어거스틴의 책을 보면 어떤 어머니가 아들 쌍둥이를 낳았는데 항상 둘을 한 번에 안고 젖을 물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녀석이 엄마 젖을 먹으면서 다른 아이 머리를 자꾸 밀더랍니다. “이거 다 먹고 저것을 마저 먹어야 하는데 다른 녀석이 그걸 먹고 있으니까 그 머리를 미는 것이랍니다.” 어린아이들은 질투가 많고 시기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그 어린아이들의 시기심과 질투심을 부채질해서 공동체를 깨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자기의 장난감이 부서지면 마치 세상이 끝나버린 것처럼 울어댑니다.

부모가 보기에는 전혀 가치 없어 보이는 장난감인데 그 장난감을 잃게 되면 어린아이는 세상이 끝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런 어린아이에게는 늘 축복이야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고난을 이야기하면 아이는 금방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새 것을 좋아합니다. 새 장난감을 사 주면 헌 장난감은 금방 천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새 것도 3시간이면 이내 싫증을 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는 늘 새 것을 주어야 합니다. 바울이 아덴에 가서 전도할 때 아덴 사람들이 전부 무엇을 하고 있었죠?

(행17:21)

21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가장 새 것만 말하고 듣느라고 시간을 다 보냈다고 합니다. 새 것을 알아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크리도니 조마이” “파도치듯 일렁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요? ”자라라, 성숙해라” 그러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고 예수를 바로 믿는 일에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산에 올라가서 버섯을 따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 버섯들 중에 절대 만지면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독버섯입니다. 독버섯을 구별하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지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칼라를 가지고 있는 것은 100% 독버섯입니다. 먹으면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신앙의 길이 쉽고 탄탄한 대로라고 가르치는 독버섯 같은 가짜들을 조심하세요. 우리가 가야할 길은 정말 멀고 험한 길입니다. 열심히 가야 합니다.

제가 요즘 편지를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상담 전화도 많이 받습니다. 대부분이 “목사님 저는 이러 저러한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이곳에 정말 남아 있어야 합니까?” 이런 내용입니다.

인터넷으로 저희 교회 웹사이트의 설교를 들으신다는 스위스에 계신 어떤 분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오셨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저는 스위스 대사관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부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도 먼저 섬길 교회부터 찾았습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우리 민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주일을 우리 성도들은 손꼽아 기대합니다. 그런데 저희 담임 목사님은 어떤 사명감이 있어서 이곳에 오신 분이 아니라 한국에서 더 이상 갈 도 없고 아이들 교육 문제도 해결할 겸해서 오신 분입니다.

저희 목사님 뿐 아니라 영주권을 목적으로 유럽에 와 계신 목사님이 많으신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담임 목사님은 목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목사가 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막으면 반드시 사고가 나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암에 걸리게 된다고 서슴없이 말씀하시면서 교회의 모든 재정을 혼자만 관리를 하십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안내면 직장까지 찾아다니면서 십일조를 강요하십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고 저도 이제 이 교회를 떠나려 합니다. 목사님 혹시 제가 잘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혹시 스위스에 좋은 교회 아시는 곳 있으시면 소개 좀 해 주세요.‘

하나 더 소개해 드리지요. 이것은 한국에 계신 어떤 성도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입니다.

목사님 저희 목사님은 한 달에 스무 번 이상 부흥회 강사로 나가시는 유명한 분이십니다. 표면적으로 공시된 저희 목사님의 연봉은 저의 열 배가 넘는 4억5천 만 원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책 인세로 매달 수백만 원에서 수 천 만원씩을 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의 자동차는 재벌 그룹 회장님들이나 타는 최신형 체어맨입니다. 운전기사가 항상 목사님을 모시고 다닙니다. 우리는 한 달에 딱 세 번만 목사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세 번의 주일 설교의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혹시 그런 불경한 생각이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올까 두려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하나님의 종을 모욕하지 말자, 하나님의 종을 모욕하지 말자” 하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목사님께서 매년 아프리카 선교 지에 전달하신다고 현찰로 가지고 가셨던 선교비가 한 푼도 그 곳에 전해지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돈들은 전부 우리 목사님의 부동산 구입비용에 쓰였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십일조가 너무 많아 십일조를 다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인들에게는 십일조 해야 복 받는다고 매주 강요를 하십니다. 목사님, 정말 교회를 옮기면 하던 일에 문제가 생기고 , 목사님이 저주를 하시면 병에 걸리게 되는 겁니까? 이젠 매주 교회 가는 것이 곤혹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해야 하는 이게 신앙생활입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이 나온 김에 한 장 더 읽어 볼게요. 역시 한국에 계신 성도님에게 온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한 번도 얼굴을 뵌 적이 없지만 너무 답답해서 편지를 올립니다. 저는 대구에 있는 중형 교회에 다니는 박 아무개입니다. 저희 교회는 지금 원로 목사님과 후임 목사님의 세력 다툼 때문에 예배다운 예배를 못 드린 지 수개월이 넘었습니다. 원로 목사님을 쫓아내려는 지금의 담임 목사님 세력과 원로 목사님의 세력이 둘로 갈라져서 서로 예배당 정문에 못 질을 하고 못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되면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예배당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예배당 정문 앞에 모여 앉아 확성기로 예배를 드립니다. 지금은 건물 소유권에 대한 소송이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 담임 목사님은 그 예배당 건물로 쓰는 상가 건물을 모두 자기 개인 소유로 바꿔 놓은 상태여서 그 것을 도로 빼앗으려는 세력과 다툼이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 이렇게 해서라도 집사 안수를 받은 이 교회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다른 좋은 교회를 찾아야 하나요? 다른 교회라고 또 이런 문제가 없으란 법도 없지 않습니까? 그냥 눈 딱 감고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나세요? “참 어리다” 이런 생각 안 드세요?

바른 예수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지 못하면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전부 아이들처럼 자기를 전능자로 여겨달라는 아우성 아닙니까? 당연히 거기서 가르쳐 지는 것은 “당신들도 예수 믿고 전능한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라”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베스트셀러 소설이 무엇인지 아세요? 나관중의 삼국지입니다. 삼국지는 서진 시대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라는 실화에다가 허구를 조금 가미한 책입니다. 후한 말부터 위, 촉, 오나라의 삼국시대를 거쳐 진나라에 의한 천하통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룬 책이죠.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조조, 동탁 수많은 영웅호걸 들이 등장해서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싸움에서 이기는 법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문열 씨가 번역한 삼국지만 천 오백만부가 팔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 삼국지에 그렇게 열광합니까? 거기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는 자가 영웅이 되고 나라를 차지하는,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욕구를 대리 만족시켜주는 내용이 전편에 걸쳐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갈공명의 지략이 다 뭡니까? 적을 속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속여서 내가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어린아이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요.

소설가 황석영 씨는 황석영의 삼국지를 펴낸 뒤 그 후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삼국지를 읽는 맛은 가슴이 썰렁해 지도록 밀려오는 사람의 일생이 덧없다는 회한뿐이다”

그렇게 권모술수, 속임수로 싸우고 이기고 할 때는 재미있는데 나중에 다 끝나고 나면 모두다 덧없는 것이라는 회한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를 한번 보세요. 전부 패를 가르고 권모술수와 속임수와 폭력으로 집단 패싸움을 하고 있는 형국이 아닙니까? 정치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그렇게 어린아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자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라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야 합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어립니다.

그러나 성숙한 어른은 어떻습니까?

일전에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자기 교회 성도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성도님은 평생 청소를 해서 열심히 모은 돈을 모두 식당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나이가 드셔서 이제 힘든 청소 일을 그만두고 조그만 가게라도 오픈 할 양으로 이리 저리 알아보고 있는데 아주 친한 교회 집사님께서 자기 가게를 사라고 하더랍니다. “이 가게의 하루 매출액은 얼마고 집세는 얼마고 한 달 순수익은 얼마이니까 이만큼의 권리금을 내고 인수하라“고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해서 믿고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가게는 매달 적자에 시달렸습니다. 친한 사람에게 속았다는 분함과 나는 완전히 망했다는 절망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정말 참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신 생각이 “나도 똑같이 다른 사람을 속이고 그에게 그 만큼의 권리금을 받고 파는 방법밖에 없다“ 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는가?“ 너무 갈등을 하셨답니다. 결국 그 분은 조용히 가게 문을 닫고 다시 청소를 시작하셨답니다. 얼마 후에 마켓에 갔다가 자기를 속인 그 집사를 만났답니다. 그런데 자신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그 사람은 얼굴을 못 들고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가더랍니다.

그 때 그 분이 생각했답니다. “뭐가 성공이고 뭐가 승리냐” “다 잃었지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고 밤에 두 발 쭉 뻗고 자는 사람이 진짜 이긴 거지, 그깟 돈 몇 푼, 사기 치고 사람을 보고도 인사도 못하는 그 사람이 이긴 거냐?” 이런 생각이 드셨답니다. 이게 어른입니다.

우리 교회도 똑같은 상황에 처해진 집사님이 계셔요. 그 집사님은 어서 빨리 그 가게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어떤 사람이 이 남지도 않는 가게를 사겠다고 나섰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요? 제가 뭐라 그랬겠어요. “빨리 파세요.” 그런데 그 집사님은 “목사님, 도저히 제 양심상 이런 상태에서는 팔수가 없어요, 집 주인한테 집세라도 깎아 달라고 해서 이문이라도 남게 해주고 팔더라도 팔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 때 확실하게 느꼈죠. “우리 서머나 교회는 확실히 목사보다 교인들이 훨씬 낫다“

네, 삼국지처럼 무조건 권모술수와 속임수를 동원해서라도 이겨야 하는 사회에서는 이 분들은 바보이며 실패자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속여서 이득을 본 사람이 승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안 살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삶을 안 살기로 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데 그렇게 안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며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북극점 등정에 성공한 최종열 씨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지요?

“북극점에 도착해서 태극기를 꽂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 북극점에 도달하려고 지난 3년간 그토록 애를 썼던가? 왜 이 성공의 자리에서 나는 허무함과 허탈함에 슬퍼해야 하는가?”

삼국지 같은 삶은, 그런 어린아이 같은 삶은 결국 우리에게 허무함과 허탈감만 줄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하시면서 누구를 위해 사시겠습니까?

열심히 자라십시오. 영적 어른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