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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개혁 (2)-바벨론의 교육을 아십니까?

은바리라이프 2011. 8. 27. 16:16

바벨론의 교육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교육방법과 목적에 상당히 어긋난 길을 밟고 있는 현시대의 교육은 바벨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교육의 역사와 교육제도의 변화를 함께 공부해 보면서 교육에 대한 개혁의 정신을 가져보자.

 

1) 교육의 변천사

1. 최초의 교육 개혁

주입식과 강요가 아닌 하나님의 바른 교육 방법을 교육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때는 중세 암흑시대였다. 16세기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 루터와 멜란히톤은 교육의 개혁 없이 영구적인 종교 개혁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용기 있고 과감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루터와 조용하고 부드럽고 소극적인 멜란히톤은 종교 개혁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적합한 동역자였다. 멜란히톤은 특히 교육 사업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그는 그 당시에 편만하던, 실생활에 거의 쓸모가 없는 지식을 강요하며, 일률적인 교육과정으로 개성 있는 청년들의 정신을 한 틀 안에 묶어두며, 주입식과 암기 위주로 강요하는 교황권의 교육제도를 개혁해야 종교 개혁이 성공하리라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리스도인 교육제도를 계발하였다.

 

 

멜란히톤은 학교를 많이 세웠는데, 그는 말하기를, "참된 교육 사업은 하나님의 사업이다"라고 했다. 그는 루터의 도움을 받아, 1525년부터 시작하여 1528년 독일 전역에 많은 학교를 세웠다. 이 개혁자들은 법왕교회의 힘이 그 교육제도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교육제도의 급소를 쳐서 상하게 하여 법왕권이 그 무릎을 꿇게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학교 제도를 설립하여 그 자녀들로 개신교도들이 되도록 하였다.

 

2. 후기 교육제도가 원점으로 돌아감

루터와 멜란히톤의 사망 후, 그들이 하던 개혁을 이어받은 개신교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 학교들을 증가시키는 대신 단지 신학적인 기교에만 몰두하여, 당대에 이루어졌던 위대한 교육사업의 개혁을 전진시키는 대신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몇몇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견해에 대하여 비난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고, 정통적인 교리를 고수하고 분쟁하느라 대부분 정력을 소비하였다. 그들이 그들의 신조를 구체화는 시켰으나 개신교회의 바탕이 되는 그리스도인 교육이념을 상실하였고 교육사업은 중단되었다. 개혁자의 정신에서 멀리 떨어진 후기의 개신교의 신학자들은 참교육의 개념에 눈이 멀어 교육 사업의 개혁을 게을리하였던 것이다. 이제 개신교주의는 참교육의 이념을 상실하고 죽은 정통 교리 때문에 쇠퇴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약화한 개신교회는 다시 원기를 회복한 법왕교의 교육제도의 큰 힘을 저항할 수 없었다.

 

3. 교육제도를 통한 구교의 승리

교황권의 세력은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 개신교회의 학교들을 짓밟고 승리를 거두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단은 청년들의 정신과 교육사업을 점령할 때 악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천주교회는 루터와 멜란히톤이 세운 학교들에서 훈련받고 배출된 수 천명의 선교사들로 말미암아 점점 강해지는 거대한 개신교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제도를 통해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와중에 잔 스텀(John Sturm)은 한 큰 개신교 학교에 법왕교의 교육제도를 실제로 재도입한 사람이었다. 그는 겉으로는 훌륭한 개신교도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당시 소위 개혁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 위대한 교육가라는 평판을 얻었으며, 그의 학교는 독일에 있는 개신교 학교의 모델로서 아주 유명해졌고, 그의 영향력이 커져서 그가 도입한 교육제도가 영국에서 미국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가 은밀하게 시작한 교육사업은 개신교 교육제도의 개혁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개신교의 교사들은 잘못된 교육을 통해 개신교의 단체를 약하게 하였으며, 법왕권은 제수이트(예수회)의 교육제도를 통해 개신교회에 공격을 가했고 그리하여 개신교의 진정한 정신과 교육은 무너지게 되었던 것이다.

 

2) 현 교육 제도의 원조는 교황권

한 역사가는, 유명한 교육제도와 학교의 모본으로 불리는 하버드나 스탠퍼드, 예일 같은 학교의 교육제도의 근원이 된, 이튼이나 윈체스터, 웨스트민스터와 같은 전통적인 학교의 교육 과정들이 잔 스텀이 세운 학교의 제도들을 모방하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현대 그리스도인 문화에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재현시키는 것이 스텀이 가진 야망이었다"라고 말했다(Painter, p163). 스텀이 설립한 학교는 반은 루터와 멜란히톤이 세운 그리스도인 학교였고, 반은 법왕교의 학교였다. 그 학교는 중세기적 고전문학에다 약간의 성경을 첨가하고, 효과를 내기 위해 교회의 교리를 샌드위치처럼 끼워서 가르쳤다. 그들의 교과 과정은 비실제적이며 교육방법은 기계적이었으며, 암기하는 것이 중시되었고 행정형태는 독단적이었다.

 

 

학문적인 죽은 지식이 산 지식을 대신하였다. 학생들은 배우도록 강요받았으나, 보고 듣고 생각하고 증명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다. 교사들은 가르치는 데 있어서 학생들의 인격이 조화 있게 계발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책정된 틀에 박힌 교과서만을 가르쳤다. 이러한 교육제도에 대해서 교육 역사학자 매콜리(Macaulay)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은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을 숭상했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을 무시했다. 그들은 세상을 길고 긴 미사여구와 지루한 긴 턱수염(학구적인 것)으로 채웠으나 무지하고 죄악으로 편만한 세상을 바로잡지는 못했다."

 

3) 바벨론에서 온 교육제도와 학위제도

현시대의 교육제도 대부분은 천주교회의 제수이트 학교의 교육제도를 모방한 것이다. 제수이트 학교들의 교수 방법을 보면 현 교육제도와의 유사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시의 제수이트 학교들은 영국의 청년들을 그들의 학교에서 교육해 본토로 돌아가게 하여 그들의 종교를 장악하였으며, 이 교육제도는 미국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현시대의 교육제도는 거의 제수이트의 교육의 본을 그대로 모방하고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