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시므온과 안나
#성전
무대 정면 뒤쪽은 성전, 왼쪽은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집을 배치한다.
성전은 계단을 활용하며, 가능한 한 웅장하게.
무대 오른쪽에 큰 나무 한그루가 있다.
사가랴의 집은 편안한 의자, 탁자와 간단한 가구 정도만 갖춘다.
의자는 안락의자처럼 매우 편안해 보여야 한다.
집의 왼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을 구성하는 가구나 내용물은 불필요하다.
객석을 향해 2인이 나란히 설 정도의 창이 있으면 된다.
뒷벽쪽엔 난방과 조명을 겸한 벽난로가 있다.
호호백발의 시므온과 안나가 무대 양쪽에서 등장해 무대 가운데 성전 계단에서 만난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느낌. 말투와 동작이 느릿하다.
성전 앞 광장엔 비둘기, 양, 소 등을 파는 사람들, 오가는 행인들로 붐빈다.
비둘기 파는 상인이 어슬렁어슬렁 객석 쪽으로 다가간다.
비둘기상인: (비둘기 보이며)회개 좀 하시지. 한 마리 사. 어럽쇼? 여기는..
소 한 마리 잡아야겄다.
비둘기상인, 애드립 조금 하다가 퇴장한다.
안나: 어느 날... 깨어보니 말씀이야... 아무 것도 없더라구.
시므온: (빈 보따리를 들어 살피며)응, 아무 것도 없어.
안나: 텅 비어버렸어.
시므온: (툭 내던지며)배고파. (배 문지르며)텅 비었어.
(두리번거리며)우리 가말리엘이 먹을 걸 가져올 때가 됐는데.
안나: 마치 우리 이스라엘의 운명을 보는 듯 했어.
시므온: 운명은 나빠. 배고픈 건 더 나빠.
이웃여인1,2가 둘 앞에 서서 인사한다.
여인들: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시므온: 너희들도 나빠. 왜 햇빛 가려?
여인들: 에구 죄송해요.. (얼른 간다)
안나: ...남편도 죽고
시므온: 마누라도 죽고...
안나: 세상은 어지럽고..
시므온: 배고프니까 어지럽지.... 어지러워.(안나의 어깨에 기대는)
엘리사벳, 사가랴가 등장한다.
안나, 시므온 앞으로 나서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엘/사: 안녕하세요, 안나님, 시므온님.
냉큼 고개 드는 시므온.
안나: 오 그래. 안녕들 하신가.
엘리사벳:(보따리 내밀며)이것 좀 들어 보세요.
안나: 말씀은 고맙네만 난 금식 중일세.
엘리사벳: 안나님 금식이야 예루살렘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따가 금식 시간 끝나고 드세요.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잘 드셔야 해요.
사가랴: 그래야 메시아를 보실 때까지 오래오래 사시죠(안겨주려).
안나: 아냐 아냐.
시므온: (낚아채며)할 수 없지. 그렇게들 사정을 하니. (꺼내 먹는다)
엘리사벳: 맛이 어떠세요?
시므온: 어떻긴 뭐가 어때. 성의가 괘씸해서 그냥 먹어 주는 거야.
엘/사: 예에 고맙습니다.(인사하고 간다)
안나: 이보게, 엘리사벳.
엘리사벳: (돌아보며)예, 안나님.
안나: 포기하지 말게.
엘리사벳: 예?
시므온: 포기하면 국물도 없어.
안나: 하나님의 때가 머지 않았네.
엘리사벳: 고맙습니다.(인사하고 간다)
시므온: (흥얼거리며)지치지 않으면 거두리. 때가 이르면 거두리.
믿으면 거두리.
안나: ...꿈을 꾸었어.
시므온: (먹으며)돈이나 좀 꿔 줘. 배고파 죽을 것 같아.
안나: (보며)지금 드시는 건 뭔가?
시므온: (손에 든 빵 보고)이거? ..빵이네. 이게 왜 여기 있지?
(한입 뜯으며)그래도 배고파. 내 허기는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을 모양이야.
안나: 나처럼 금식을 하시던가.
시므온: 안 먹는다고 해결되지도 않지. (먹으며)꿈 얘기나 해봐.
안나: 성전을 봤는데 말씀이야. 성전이 빛을 가득가득 머금고 있더라고.
빛이 아주 많고 풍성했어.
시므온: 많이 먹어도 배고파. (혼잣말. 빵 먹을 듯)계속 먹어,
(떼며)그만 먹어? 더 살아, 그만 살아?
안나: 그런데 놀라운 건 말씀이야.
시므온: 놀래키지 마. 나 심장 약해.
안나: 정말 놀라웠어.
시므온: (인상 쓰며)에이 참.
안나: 자세히 보니까.. 빛들이 하늘에서 오는 게 아니더라구.
그 빛들은 바로 성전 아래 모퉁이 작은 돌에서 나오고 있더라 이거야.
시므온: (벌떡 일어나며)그리스도오오!
안나: (놀라 일어나며)왜 그래, 동생? 괜찮아? 시므온, 괜찮아?
시므온: (쥐어짜듯)그리스...도...를 보기... 전엔
(아무렇지 않게 앉으며)죽어도 못 죽어.(빵 뜯어 먹는다)
안나: (따라 앉으며)또 속았군. 맞아요, 맞아. 우리 시므온님,
메시아를 보기 전엔 절대로 못 죽지.
그걸 알면서 왜 매번 속는지, 나도 참...
시므온: (빵 뜯으며)빛이 어쨌다고?
안나: 그 빛이 성전을 가득가득 채우더니..
시므온: 채우더니?
안나: 어느 순간,
시므온:어느 순간?
안나: 펑! 하고 터져버렸어.
시므온: 아이구 깜짝이야.
안나: 저런, 미안 미안. 하여간 그 빛들이 사방팔방으로 펑펑 터지면서 퍼져나가는데, 아주 볼만했어. 그 빛들 덕분에 세상이 온통
눈부시게 환해졌어.
시므온: ..역시 오시는군! 내 그럴 줄 알았어! 오실 줄 알았다니까!
안나: 그런데 이상해. 그 빛을 본 후론 시간이 멋대로 흘러.
시므온: (옆에 앉으며)하나님 가까이 갈수록 시간과 공간은 의미를 잃지. 시간과 공간 뿐인가? 세상 만물이 모두 (다소곳)얌전히 대기하고 있다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지.
모든 것들은 다 말씀을 기다리지.
안나: 그 덕분에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도 먹고
시므온: 메추라기도 배불리 먹었지.
안나: 그 덕분에 엘리사벳이 잉태를 하고
시므온: 그 덕분에 우린 죽지도 않지.
안나: 내가 몇 살이나 됐을까?
시므온: 나이 따윈 상관이 없다니까! 갓난애도 부르면 가야 하는 판인데.. (살펴보며)제법 반반한 걸? 열다섯?
안나: (미소)거짓말
시므온: (갸웃. 혼잣말)백 다섯인가..? 난 어때?
안나: 스물?
시므온: 어어 이거 왜 이래?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와야지.
안나: 열 다섯?
시므온: 흐흥. 누구 사귀는 사람 있어?
안나: 난 지금 누굴 기다리고 있다오.
시므온: 알아 알아, 그냥 물어 본거야. 나도 기다리는 사람 있어.
안나: (끄덕끄덕)........
시므온:(두리번거리며)언제... 오실려나?
안나: 오실 때가 다 됐을걸.
시므온: ...응 알아, 나도 알아. 조금 있으면 오실걸.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