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난 아들은 바다를 본 적이 없다. 아들이 물었다. “저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어요?”
허기에 지치고, 온갖 위험을 피해오느라 쇠약해진 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단다.”
아들은 가슴속에 있는 “불씨를 간직하겠다”는 소망을 잃지 않았고,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 때문에 항상 힘을 얻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의 불씨는 서서히 꺼져갔다. 암울하고 망해가는 세상이지만 어딘가에 여전히 선한 것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아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가 틀림없이 있을 거예요.”
아들의 소망을 짓밟고 싶지 않은 아버지는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어쩌면 그곳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있을 거야.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바닷가에 이렇게 앉아 있겠지.”
영화 <더 로드>는 한 아버지와 아들의 지고한 사랑을 대형 스크린에 담음으로써 2006년 출간된 매카시의 책에 나타난 종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제대로 그려냈다. 그리고 바닷가에 앉아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장면을 통해 관객 모두에게 인류 보편의 질문을 던진다.
이 세상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은 종말과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할리우드는 2004년 블록버스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대박을 터뜨리자 종교 영화의 흥행을 확신하게 되었다. 전쟁과 테러와 경제 붕괴로 두려움이 만연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한편 영화산업은 관객들의 이러한 궁금증을 부추기면서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물론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항상 명확한 답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09년, 경기침체로 모든 부문에서 소비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객 수는 2008년보다 4.5퍼센트 증가했고, 미국과 캐나다 박스 오피스의 매출은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종말을 다룬 영화가 대세를 이루었다. 예컨대 폭발적 인기몰이에 성공한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지구의 모든 생물이 위기에 처한 이야기를 다룸)을 필두로 <2012>(고대 마야 달력에 예언된 지구 재앙을 다룸), 또 코믹한 분위기의 <좀비랜드>, 그리고 고도의 상상력이 가미된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디스트릭트 9>, <더 로드>가 선보였다.
이러한 추세는 2010에도 계속되어 두 편의 종말론적 스릴러 <더 북 오브 일라이>와 <리전>이 제작되었다. 이 두 편의 영화가 모두 2010년 1월에 개봉되었다. 한편 <웨이팅 포 아마게돈>과
지난 그 어떤 때보다 지갑을 굳게 닫아야 할 이때 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몰려들까? 또 힘들게 번 돈을 왜 종말에 관한 영화에 쓸까? 두 가지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경제가 쇠퇴하면 종종 영화관객이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특히 대공황 때에도 나타났다. 둘째, 자연사이건 급작스런 사고사이건 인간이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묻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테러, 지진, 십대 아이돌이 등장하는 뱀파이어, 좌충우돌하는 로봇, 배회하는 좀비 등 별의별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박스 오피스 기록이 경신될 때
미국 대공황 때 실업률은 25퍼센트에 육박했고, 많은 사람들이 내일 먹을 끼니 걱정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000만~8000만의 미국인들이 매주 극장을 찾았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인의 사기가 저하되었을 때 단돈 15센트로 극장에 가고, 아기들의 미소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고통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경제공황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밀어닥칠 때마다 영화는 사람들의 도피 수단이 되었다. 또한 할리우드는 그 시대의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았다. 따라서 프랭크 캐프라 감독과 막스 형제(미국 영화배우 4형제/편주)는 영화와 코미디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회를 비판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같은 영화는 보다 명확하게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킹콩>과 <프랑켄슈타인> 같은 유명한 공포영화에도 사회적 병폐에 대한 고발이 내재되어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미국인들의 발길이 극장을 향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의 석유파동과 2000년대 초 닷컴붕괴를 포함하여 총 7차례에 걸친 경기침체 때 박스 오피스 매출은 상승하였고, 2009년에 이르러 다시 그 기록을 갱신했다.
미국영화협회 회장 댄 글릭먼은 <타임>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불황기 때마다 영화산업은 번창했다. 영화는 최고의 치료요법이며, 영화 관람료는 정신과 상담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
비싼 돈을 받는 정신과의사들도 실제생활에는 언제 재난이 닥칠지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는 박스오피스 기록이 경신될 때마다 이 시대에 뭔가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 잡을 수 있다.
존재의 의미를 알고자 탈출을 시도하다
2009년 12월 영화<2012>가 개봉했을 때 <프레스노 비> 신문은 학계와 종교계 지도자들에게 사람들이 왜 종말 영화에 열광하는지 물었다. 칼 스테이트의 사회학 교수 마가렛 곤솔린은 염려가 지배하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존재의 의미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CT의 영화평론가 브렛 맥크랙킨은 사람들이 종말에 관한 영화를 보도록 “내몰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인간에겐 정의감이 내재되어 있다. 종말과 같은 극적 상황에 처해서도 그 감각이 보존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노여움이 끔찍한 재앙으로 임할 때 역시 신은 살아 있다며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경기침체 때 관객은 현실의 침체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랄 뿐 아니라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한 후 또 다른 세상, 이를테면 사후세계나 “세상의 저편”에 이르는 영화를 보기 원하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고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전 3:11). 또한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궁금해 하도록 우리를 지으셨다. 그리고 인간이 때가 되어 숨을 거두건 종말을 맞이하건 그 모든 상황을 통해 자신의 도덕성을 정확히 가늠하게 하셨다. 인류 종말이라는 묵시적 주제를 다룬 위의 영화들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충족시킨다. (「레프트 비하인드」 시리즈(홍성사 역간)가 650만 부가 팔렸던 사실을 기억하라.)
풀러 신학교 총장 리처드 마우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인간의 조바심이 두드러지게 표면화된다. 지금은 힘든 시대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선과 악의 모든 갈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영원한 세계가 도래하기를 갈망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세상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할리우드는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밝혀졌다. 아버지와 아들이 저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