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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잔혹성 논란 이외의 이야기는? (씨네리뷰)

은바리라이프 2010. 8. 26. 21:36

‘악마를 보았다’ 잔혹성 논란 이외의 이야기는? (씨네리뷰)
[2010-08-26 09:26:45] 트위터로 보내기 me2day 보내기    me2day 뉴스엔   
 
 

 


[뉴스엔 배선영 기자]

영화 ‘악마를 보았다’ (감독 김지운)를 둘러싼 잔혹성 논란만큼이나 의미 있는 담론은 김수현(이병헌 분)이 왜 또 다른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느냐는 점이다. 동시에 김수현의 복수 방식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스포일러 있음)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이 영화는 살인마 장경철(최민식 분)의 살인방식과 김수현의 복수 방식 및 인육 등의 소재가 자극적으로 펼쳐진다. 관객들 사이 견디기 힘든 낮은 한숨과 신음이 만연하다. 한 마디로 보기 불편한, 힘든 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김수현의 악마로의 변모과정과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또 다른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김수현은 사랑하는 약혼녀의 머리가 강바닥에 나뒹구는 장면을 목격했다. 순간, 그를 둘러싼 세상 전체가 흔들리고 말았다. 좌충우돌 하는 공권력이 범인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것도 분명했다. 결국 그가 나서고 말았다.

드디어 찾아낸 장경철. 마침 그는 여린 소녀를 강간하려는 찰나였다. 김수현의 낮은 읊조림에 야수처럼 망치를 뽑아든 장경철. 그러나 김수현의 K.O 승. 김수현 장경철의 팽팽한 접전과 액션은 애초부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의 초점은 김수현이 장경철에 오염돼가는 과정과 잔혹한 복수 방식이다.

김수현은 장경철이 짐승처럼 돌변해 먹잇감을 포획하려는 순간마다 등장한다. 이 순간만큼 영화 속 선악구도가 명확한 때가 없다. 김수현의 등장이 히어로 무비 속 스타처럼 쾌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명확한 선악구도는 시간이 갈수록 무너지고 만다. 비닐하우스 속 난투극 끝에 김수현의 가슴팍에 정신을 잃은 장경철이 고꾸라진 장면이 암시하듯, 어느 새 김수현의 심장도 악마의 것으로 변해갔다. 김수현이 장경철을 곧바로 처단하지 않고 GPS와 도청장치로 그의 행동과정을 관찰한다는 설정부터가 영화의 결론을 어느 정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악마의 소굴로 한발자국 내딛은 김수현은 밟아도 밟아도 꿈틀대는 악을 바라보며 “미친놈들”이라고 읊조리면서도 어느 새 자신 역시 몸을 담근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공권력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의 무능력함을 바라보면서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될 수 없다”는 오과장(천호진 분)의 한탄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도 반문해볼 수 있다. 강력계 형사이면서 두 딸을 잃고 자신마저 처참하게 당한 장반장(장국환 분)의 말로 역시도 이를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영화의 묘사는 여기까지. 공권력을 향한 신랄한 비판 역시도 목표가 아니라는 듯, 가벼운 터치 정도로 끝내버린다. 오히려 영화 말미 김수현과 오과장의 대비가 강조된다. 오과장은 무능력한 자신은 방치하고 김수현을 향해 도리어 고함을 지른다.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복수를 끝낸 김수현의 서러운 울음은 “의미 없는 일은 아니다”는 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공허하다.

영화는 복수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는 모호한 결론을 내려놓았다. 그 모호한 결론은 인물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부족한 비판 때문에 더 없이 불편하다. 극장을 나서는 이들이 잔혹한 장면에의 충격을 딛고 영화를 곱씹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불편해지는 것도 이 때문.

복수의 반복과 악마를 잡으려다 망가지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매력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잔혹성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지는 이유는 영화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배선영 sypova@news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