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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교회, 예배시간에 이종격투기

은바리라이프 2010. 8. 24. 18:48

브라질 교회, 예배시간에 이종격투기

 

 

 

2002년 여름 일본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 선수들이 승리를 거두어 우승한 후 선수들이 모두 센터서클에 빙둘러 앉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퍼포먼스를 연출하자 우리나라의 주요 기독언론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즉시 브라질이 남미에서 개신교의 인구 비중이 제일 높으며, 세계에서 제일 큰 예수 조각상이 있다는 등의 사례를 들며 믿는 자들의 나라가 우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들의 우승은 하나님의 당연한 축복이라는 식의 감격스런 논평을 내 놓았다.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크게 부어주신다는 무책임하고 단순한 논평이다. 믿는 자들이 많은 브라질이 축구에서 우승하는 것이 당연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식의 기복적인 판단 기준을, 축구 이외의 다른 모든 부문에서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브라질의 현실에는 어떻게 적용을 할 것인지 참으로 의아한 일이다.

우리는 우리나라 안에서의 각자의 신앙경험과 유럽과 미국, 그리고 그밖에 많은 나라들의 종교적 상황을 관찰한 결과로, 교회에 적을 둔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반드시 그 나라와 그 지역이 복음화 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교회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그 사람이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크리스천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사실 브라질의 교회는 외형적인 규모와는 달리 내면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기복적 신앙, 사회에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교회,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부패와 타락, 윤리의 실종 등이 그것이다. 브라질의 교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각종 비성서적인 행위들과 행태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교회에서는 교회 예배당 안에 링을 설치해 놓고, 격투기 경기를 벌여 상대를 쓰러뜨린 후 목사가 나와서 “인생은 꿈을 꾸고, 꿈과 이상을 이루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투지를 가지고 싸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는 식의 설교를 한다고 한다.

성도의 삶이 소위 “목적이 이끄는 삶”이어야 하고,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최선을 다하는 이른바 선한 싸움을 싸워가야 하는 과정임을 강단에서 가르치는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감나는 예화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예배당 한복판에 링을 설치해 놓고 피튀기는 주먹싸움을 벌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상파울루에 있는 예수중생교회라는 곳의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회가 어쩌다 하나쯤 드물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레게음악축제, 비디오게임대회, 즉석문신시술까지 설교와 예배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교회가 늘고 있다. 눈송이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레게음악을 함께 듣고 목사는 서핑보드 위에 서서 설교한다. 물론 이 교회에서는 스포츠이벤트와 음악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변한다. 이러한 이벤트는 교회에 냉소적일 수 있는 젊은이들을 교회로 끌어들인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눈송이교회의 경우 2천 명 이상이 모이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의 지교회를 세울 정도로 부흥을 구가하고 있다.

좋게 해석하면 이색적이고, 나쁘게 보면 엽기적인 이벤트를 통해 교회의 부흥을 주도하고 있는 교회는 대개 오순절교회이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카톨릭 국가로 분류되지만, 카톨릭인구는 1950년의 94%에서 현재는 70% 선으로 떨어진 반면 개신교는 3%에서 15%로 늘고 있다. 그러나 양적 성장이 교회의 발전과 성패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방식의 부흥과 성장이 교회와 교인 각자,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