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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스 콤플렉스

은바리라이프 2010. 5. 18. 18:32

릴리스 콤플렉스
구미정 (기사입력: 2008/02/26 10:39)

삼성가의 며느리가 되어 홀연히 연예계를 떠났던 탤런트 고현정이 이혼 후 첫 TV 나들이를 했다고 하여 화제를 모았던 작품 <봄날>을 기억하는가? 2005년 이맘때쯤 그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때, 나도 꽤나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자세한 이혼 내막은 알지 못해도, 어쨌거나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을 빼앗긴 채 속울음을 삼켜야 하는 그의 처지가 무조건 연민스러웠기 때문이다. 제발 그가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재기하기를, 자신의 본업인 연기를 통해 충분히 치유되고 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드라마를 지켜봤다. 이런 바람이 통했던지, 차기작들에서 더 어려지고 더 밝아진 그를 보며 괜스레 흐뭇해하던 기억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닐 게다. <모래시계>의 로망을 간직하고 있는 소위 386세대의 남성들과, 여전히 세상은 여성에게 좀 더 가혹하다는 데 공감하는 모든 여성들이 다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서두가 길었다. 하려던 이야기로 넘어가자. <봄날>의 세 주인공, 고현정과 지진희, 그리고 조인성은 모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다. 상처 때문에 그들은 실어증에 걸리고, 기억상실증을 앓으며, 구토를 밥 먹듯이 한다. 그런데 증상은 달라도, 원인은 똑같으니, 그게 바로 어머니라는 거다!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창창한 젊은이들을 몹쓸 고통 속으로 던져놓은 장본인이 다름 아닌 어머니라고 드라마는 고발한다. 대체 어머니가 어쨌길래?
한마디로 그들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어머니가 아니었다. 자고로 어머니가 되는 순간, 한 개별인간으로서 품고 키워온 모든 꿈과 이상을 단박에 포기하고 기꺼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그런 인고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한 ‘전복적인’ 어머니였다.
섹시하게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마구 발산하는 어머니, 남편과 자식 뒤에서 배경처럼 존재하기보다는 자기가 주인공인 양 아무 때나 나서는 어머니, 푼수에다가 요리니 청소니 뭐 하나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남편에게 바락바락 대들기나 하는 어머니, 자신의 감정을 그때그때 솔직하게 표현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한 어머니….
<봄날>에서 조인성의 어머니로 출연한 이휘향은 그동안 TV가 노골적으로 선전하던 <전원일기> 스타일의 어머니가 결코 아니었다. 작가는 은연 중에 그런 어머니가 자식을 망친다고, 모든 어머니를 상대로 협박하며 훈계했다. 그 전략이 통했던지, 나 역시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휘향에게 몰입하기 어려웠다. 이해와 공감보다는 비판과 질책이 앞섰다. 에고, 단순하기는.
전복적인 것은 불편하고 불안하며 심지어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전복이 없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지리멸렬할 것인가? 전복은 전형을 여지없이 깨고 부순다. 전형이라는 틀 속에 인간을 집어넣어 옥죄는 것이 억압적임을 일깨워준다. 예수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눈 밖에 난 까닭도 따지고 보면 그의 행위와 가르침이 전복적이어서 그랬다는 것 아닌가? 예수의 메시지는 언제나 듣는 이의 예상을 뒤집어엎고, 전복적인 깨달음을 유발하곤 했다. 요즘 말로 치면 그는 반체제 인물이요, 그 중에서도 골수분자였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한스 요아힘 마츠는 <릴리스(Lilith) 콤플렉스>라는 책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가부장적인 서구 문명과 기독교 문화에 전형적인 이브형 여성상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서구 기독교 전통 안에는 두 종류의 여성상, 곧 이브와 릴리스가 있다는 것이다. 이브는 알겠는데, 릴리스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창세기 1장과 2장을 적절히 혼합한 유대교 전설에 의하면(The Hebrew Myths, 1964), 하나님은 태초에 아담과 릴리스를 똑같이 흙으로 지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둘은 한 시도 평화롭게 살지 못했다. 릴리스가 아담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담이 릴리스와 자고 싶어서 릴리스에게 누우라고 하면 “내가 왜 당신 아래 드러누워야 하죠?” 대들기 일쑤였다. “나도 역시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당신과 동등해요!” 마침내 아담은 힘을 써서 릴리스를 복종시키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릴리스는 아담을 버리고 에덴동산 밖으로 뛰쳐나간다.
아담이 릴리스에게 버림받았노라고 하나님께 하소연하자, 하나님은 즉시 세 천사를 보내어 릴리스를 데려오라고 명하신다. 천사들이 릴리스를 발견한 곳은 홍해 근처, 음란한 악마들이 득실대는 곳. 지체 없이 아담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홍해에 빠뜨려 죽이겠다는 천사의 위협에도 릴리스는 굴하지 않는다. “아담에게로 돌아가 순종적인 아내로 사는 일만큼은 죽어도 할 수 없어요.” 릴리스는 도리어 천사들을 회유한다. 새로 태어나는 아기에게 부착된 부적에서 세 천사의 이름이나 형상을 발견하면 그 아기들의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말이다. 이에 넘어간 천사들은 릴리스를 그대로 남겨두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하나님은 외로워하는 아담에게 적합한 짝을 만들어주시기로 작정하고, 이번에는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지으신다. 그래서인지 이브는 릴리스와 다르게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해서 아담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독립적인 릴리스에 질린 아담은 이브를 보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창 2:23) (이브의 히브리어가 하와인데, 이 이름은 고대 힛타이트 족의 천둥신의 아내 ‘헤바(Heba)’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스어로는 ‘헤베(Hebe)’와 통하는데, 이 이름은 헤라클레스의 아내인 청춘과 봄의 여신을 가리킨다.)


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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