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성경인물

릴리스 콤플렉스 2

은바리라이프 2010. 5. 18. 18:33

릴리스 콤플렉스
구미정 (기사입력: 2008/03/07 14:45)

릴리스가 아담과 동일한 재료로 지어진 데 반해,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로 지어졌다. 사실 릴리스가 나올 때도 그렇지만, 이브의 등장에서도 아담의 역할은 전혀 없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잠을 잔 것뿐이다. 그 잠도 하나님이 재우셨을 만큼, 아담은 철저히 수동적이다.(창세기 2:21 참고) 요컨대 이브는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로서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지, 결코 아담이 주인 행세를 할 그럴 게재가 못 된다는 뜻이다.
나는 가끔 여신도들을 대상으로 설교하거나 강의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뼈있는’ 농담을 하곤 한다. 백퍼센트 순수 흙으로 만든 도자기보다는 동물뼈가 섞인 도자기, 이름하여 본차이나(bone china)가 더 튼튼한 걸 보면, 흙으로 만들어진 아담보다는 뼈로 만들어진 이브가 더 강하지 않겠냐고.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더 긴 것도, 건물 붕괴사고 등 극한 상황에서 여성의 생존율이 더 높은 것도 다 그 때문이 아니겠냐고. 그러면 모두들 “맞아, 맞아!” 하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하지만 한바탕 웃음 뒤에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는 자조 섞인 허무감이 뒤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여성일수록, 전통적인/전형적인 해석의 무게에 저절로 주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심상 속에서 갈비뼈는 별다른 해석의 여지없이 곧장 종속성 내지 열등성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동안 대다수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아담의 갈비뼈에서 ‘파생된’ 이브는 아담에 비해 열등하며, 원자재 공급자인 아담에게 종속되어 있으므로,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누차 설교해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여성의 부차적인 지위는 하나님이 정하신 신성한 질서라는 것인데, 어느 여자가 감히 남자와 동등한 지위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브는 기껏해야 아담을 돕는 배필(창세기 2:20)에 지나지 않는다 한다. (이 표현도 곰곰이 따져보면, 능동적으로 돕는 쪽이 이브고,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 쪽이 아담이라는 뜻이므로, 여성의 열등성을 뒷받침하는 증거 본문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합리적인 사고는 은폐되거나 제압당하기 일쑤다.) 주장은 남자가 알아서 할 테니, 여자는 그저 잘 따르기만 하란다. 남자의 말은 정당한 ‘주장’으로 경청되는 반면, 여자의 말은 한낱 ‘수다’로 무시된다. 부창부수(夫唱婦隨)·여필종부(女必從夫)의 유교적 규범이, 바깥세상에서는 시대착오적인 혁파의 대상이지만,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완전히 신적 권위를 덧입게 되는 아이러니! 이게 바로 갈비뼈의 막강한 위력이요, 이브의 존재론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20~30대 젊은 층이 우르르 빠져 나가는 공동화 현상의 배후에는 갈비뼈의 신화가 놓여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된다. 작금의 한국 교회는 청년 세대와 특히 고등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여성들에게 별 매력이 없다. 이들은 교회만 가면 답답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회가 생명력 있는 복음이 전해지고 나누어지는 축제의 장이 되기는커녕, 구시대적인 낡은 규범을 옹호하고 강제하는 억압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회 안에 남아 있는 경우라도 습관적이거나 효심이 지극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공산이 크다.
릴리스 콤플렉스가 뿌리 깊게 배어 있는 사회는 여성이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욕망을 품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몰아붙인다. 여자는 다만 남편 말에 순종하고 자녀를 위해 희생하도록 지어졌다는 것이다. 현모양처(賢母良妻) 이데올로기를 축성(祝聖)하는 이런 식의 논리가 공고한 곳에서 여성은 점점 분열 상태에 놓이게 된다. 자기 내면에서는 릴리스를 원하는데, 남자들이 죄다 이브를 원하니, 미칠 노릇이 아닌가?
나는 한국 교회가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길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고 본다. 릴리스를 성서로부터 추방하지도 말고, 이브를 남성들이 바라는 여성의 전형으로 미화시키지도 않으면 된다. 모든 여성은 릴리스이며 동시에 이브다. 편견의 눈꺼풀을 걷어내고 맨눈으로 성서를 다시 읽으면 그곳에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하며 무책임한 아담과 지극히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며 책임적인 이브-릴리스가 있을 뿐이다. 이브-릴리스는 선악과를 따먹었을지언정 아담처럼 하나님께 핑계를 돌리지는 않았다.(창세기 3:12-13 참고) 성서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빌어 여성의 희생을 정당화할 요량으로 이브의 타락을 이야기하고 갈비뼈를 들이대는 것은 더 이상 이 시대 여성들에게 복음일 수가 없다.
새로운 성서해석은 가부장제 사회에 고질적인 릴리스 콤플렉스로부터 남녀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 모든 새로움은 두려움과 불안을 야기하지만, 그조차도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하면서 조심스레 한 걸음씩 내딛다보면, 어느새 복음의 은혜 안에서 춤추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이브-릴리스 이야기는 남성의 미덕은 관용이요, 여성의 미덕은 용기임을 새롭게 깨우친다.

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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