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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취재 갔던 방송작가, 아이티인이 되다

은바리라이프 2010. 2. 27. 16:31

아이티 취재 갔던 방송작가, 아이티인이 되다
[국민일보] 2010년 02월 25일
 

''아이티 나의 민들레가 되어줘''(강같은 평화)라는 제목의 책을 보자마자 아이티 지진과 관련한 출판사의 기민한 기획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제로 붙은 ''이 땅을 구원해 주세요, 제발!''이라는 카피도 영락없이 지진 피해 주민들을 돕자는 전형적인 격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 판단이 틀렸다. 이 책은 아이티 지진 이전에 기획됐다. 지진은 출간이 진행되는 도중에 발생했다.

 

 

크리스천 정화영(39)씨. 14년차 방송 작가인 그녀는 지난해 7월15일부터 8월11일까지 아이티에서 살았다. 지금은 ''유명하게'' 된 백삼숙 선교사가 사역하는 고아원 ''사랑의 집''에서 9명(현재는 10명)의 아이티 고아들과 함께 생활했다. 이 책은 당시 생활을 기초로 한 아이티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아마도 아이티와 관련되어 한국인이 쓴 최초의 책일 것이다. 정씨는 어떻게 아이티행을 감행했는가. 그녀의 뇌리에 아이티가 들어온 것은 다큐 준비를 위해 ''화장실이 없는 나라''를 검색하다 아이티를 접하게 된 방송사 PD 때문. 그 PD는 아이티에 들어가 촬영을 했다. 그때 현지 코디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백 선교사였다.

 

 

PD가 돌아와 보여준 촬영 테이프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미국에서 한 시간 반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나라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정씨는 의문을 가졌다. ''해외에 파송된 한국인 선교사가 2만 명이 넘었다는데 왜 아이티에는 한국 선교사가 이다지도 적은가''''인터넷에 ''아이티''를 치면 수많은 IT관련 책들이 뜨는데 왜 아이티 나라에 대한 책은 한권도 없는가''불현듯 아이티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라를 알리고 싶었다. 홀로 사역하는 백삼숙이라는 한국인 여성의 사역을 조명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백 선교사를 만나 사전 조사를 한 그녀는 7월에 아이티에 들어갔다. 최악의 빈민도시인 시테 솔레이를 집중 취재했다. 인터뷰는 자신 있었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았다. ''사랑의 집''에서는 아이티 아이들과 가족처럼 지냈다. 작가로서 가난의 구조적 이유와 그들이 외면당하는 현실도 파들어갔다.처음에는 객관자였다. 자신은 취재자였고 아이티 사람들은 취재원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점이 바뀌었다. 점차 아이티 사람들과 동화됐고 고아원 아이들은 가족이 됐다.

 매일 "하나님, 이 나라를 구해주세요"라고 외치던 기도는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세요"라고 변하게 됐다.

 

책에는 이같이 외부자에서 내부자로 들어가는 그녀의 이야기가 맛깔스러운 필체로 묘사되고 있다. 읽으면서 아이티 돕기에 나선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 불쌍한 저들을 구해주세요"라는 내용이 대부분 일 테니까. 백삼숙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도 절절하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하루종일 부지런히 움직이는 67살의 한국인 할머니 선교사를 정씨는 ''아이티 사람들이 주는 끝없는 절망에 대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낙천적인 신념으로 무장된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책을 준비하면서 좌절감이 들었다. ''과연 내가 아이티에 관한 책을 낸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티를 알아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지진이 났다. 그 날, 정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통당하는 그들이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아이티를 향한 절대자의 어떤 뜻을 느끼게 됐다. 하루아침에 아이티는 전 세계인, 그리고 한국인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렇다. 지금은 누구나 아이티를 이야기 한다. 몇 달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책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편집도 잘 됐다. 전개도 좋다. 정씨와 백선교사, 그리고 아이티인들의 이야기가 마치 각각 서로가 주체로서 이야기 하는 듯한 느낌을 독자에게 준다. 아이티에 대한 각종 정보도 얻을 수 있다.이 이야기는 아이티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외면당할지 모를 가난한 나라의 슬픈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서 역설적으로 희망을 발견한다. 저자가 이 작업 가운데 발견했던 것은 아이티인 들만이 아니었다.

 

이 책이 나오는 과정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다. 아브라함이 ''그 일이 있은 이후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 같이 저자와 하나님 사이에서도 ''그 일''이 생겼다. 하루아침에 아이티를 한국인, 그리고 전 세계인에게 알리신 그 분이 순식간에 그 땅을 치유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 위대한 하나님이 저자 자신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견고해졌다. ''아이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라는 소박하고 착한 마음에서 시작한 저자의 작업은 책 출간으로 결실을 맺었다.

 

백 선교사와 ''사랑의 집'' 아이들이 외쳤던 ''메르시 본제(예수님 사랑해요)''가 그녀의 외침이 됐다. 일독을 권한다. 책을 읽으면 그 땅을 품고 기도하게 된다. 우리도 ''메르시 본제''를 외치게 된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