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는 저주 받은 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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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는 정말 '악마와 계약'한 저주 받은 땅일까?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난 직후, 미국의 TV설교자인 팻 로버츠 목사가 "아이티는 200년전 나폴레옹에게서 독립할 때 부두교(아프리카의 무속신앙) 의식을 행하며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이 때문에 200년 동안 끝없는 저주에서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됐습니다.사실 팻 로버츠 목사가 한 이 말은, 그동안 아이티를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가난하고 처참한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악마의 저주'로 풀이하고 싶어지는 것이지요.지난해 아이티를 다녀온 분은 만났는데, 그 분도 "너무나 끔찍했다"며 "아이티는 원래 살던 원주민들이 모두 몰살당하고, 프랑스 인들이 식민지로 개척한 뒤 아프리카에서 끌고온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다 그 노예들이 독립해서 만든 나라다. 원주민들이 모두 죽은 위에 노예들이 세운 나라라는 사실 자체가 으스스한 느낌을 줬다"고 말했습니다.아이티에는 많은 NGO들이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돕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팻 로버츠 목사도 있습니다. NGO들은 후원자들에게서 더 많은 후원을 받아내기 위해 흔히 '비극'을 강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다보니 아이티를 방문하는 사람마다 '악마의 저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죠.이 '악마의 저주'론에 대해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흥미로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아이티의 독립은 '부두교'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지극히 개신교 스러운 자유 평등 박애 정신에 기초한-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로버츠 목사의 주장은, 200년전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아이티 사람들이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아래 노예 상태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었고, 그 결과 독립하긴 했지만 악마의 저주로 포르토프랭스가 파괴되고 지진 허리케인 같은 재해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하지만 정작 프랑스 파리의 인텔리겐챠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미국 목사 다운 발상'이라며 비웃는다.1794년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아이티의 사탕수수 커피 농장에서 일하던 아프리카인 노예 50만명을 해방시키는 법령이 제정됐다. 그러나 스스로 황제에 취임한 나폴레옹은 1802년 이들을 다시 노예화시키려고 시도했다.자유의 공기를 맛본 50만명의 아이티 일꾼들은 다시 노예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그 중심에는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가 있었다. 아프리카 태생의 아버지 아래에서 노예로 태어난 그는 농장경영주의 총애와 예수회 수도사들의 도움으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프랑스 계몽주의와 혁명에 대해 쓴 미라보와 볼테르의 책을 접했다. 로베르튀르는 역사 서적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스스로 깨치며 마침내 노예 해방과 독립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그는 흑인 노예들의 무장투쟁을 이끌었고, 마침내 히스파니올라 섬(=아이티+도미니카)을 통일시키고 섬에서 노예제를 폐지했다.)르몽드의 역사전문가 제롬 고테르는 아이티가 노예들에게는 '지상의 지옥'이었으며 매년 5만명이 아이티로 보내졌다. 아이티로 간다는 것은 곧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노예로 사는 것'을 의미했다. 폭력과 공포로 질서를 유지하던 이 섬은 프랑스혁명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파리에서 '흑인 친구'들이 동등한 시민이자 자유로운 인간으로 존중 받는 동안, 식민당은 아이티에서는 노예제를 유지하려고 했다.UCLA 인류학자 앤드류 앱터는 노예들이 승리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했다'는 이야기는 터무니 없다며 1790년대 아이티 혁명이 성공하자 식민주의자(노예주인)들이 퍼트린 이야기라고 지적했다.아이티의 진정한 문제는, 노예들이 독립한 뒤에도 여전히 '지상의 지옥'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갑작스런 자유를 얻은 노예들은 시민사회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었다. 아이티는 당시 세계 최대의 설탕 수출국가였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이들은 자신들이 노예로 일하던 농장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고, 사탕수수 농장은 황폐화됐다.
앱터는 "아이티가 가난한 이유는 1804년 독립 이후 유럽국가들이 아이티에 무역봉쇄를 단행했고, 극소수 지도자들이 스스로 '농장주'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까지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내용입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미국도 아이티 독립 이후 한동안 아이티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아이티를 국가로 인정한 것은, 남북전쟁으로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였습니다.
'더 루트'라는 워싱턴포스트 계열의 잡지 문화담당 에디터인 나탈리 홉킨스는 "아이티가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독립 이후 200년 동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이티를 '악마와 계약을 맺는 나라'처럼 취급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팻 로버츠처럼, 또 다른 사람들처럼, 아이티를 동정하고 눈물 흘리며 수억 달러를 공짜로 쥐어주면서도 '니들이 이렇게 불행한 이유는 니들이 악마의 손아귀에 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이지'하는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티가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도 분명 불행의 한 이유가 되겠지요.
흑인인 홉킨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이티의 역사는 고향을 떠나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선물이자 희망이었다. 노예제도와 식민주의로 그들이 겪은 고통 속에는 어떤 존엄함이 있다. 무엇보다, 흑인들이 뭉쳐 저항했고 마침내 이겼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아이티에게 그 힘을 되돌려 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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