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에 갇힌 굴곡진 삶
시사IN | 임지영 기자 | 입력 2010.01.22 10:34 | 누가 봤을까? 40대 여성, 충청
밤사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밤인지 아침인지 분간이 안 됐다. 똑같은 칠흑이었다. 누우면 한눈에 그려지는 작은 사각형의 쪽방. 크고 작은 세간에 떠밀려 저절로 새우등을 하고 쪽잠을 청했다. 바닥은 생각보다 따뜻했지만 우풍이 서렸다. 한 달치 꿈을 다 꾼 듯 뻑적지근했다. 서울 기온이 6년 만에 최저치인 영하 16℃로 내려간 1월14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아침이 와 있었다.
방이 92개 '달린' 5층짜리 건물. 가장 먼저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1층 제일 끝방에 사는 노양훈씨였다. 서울시내 어디든 창 달린 방을 높이 쳐주지만 노씨의 방은 예외다. 김장용 비닐로 겹겹이 막은 창으로 칼바람이 들이쳐, 전기 장판을 켠 이부자리에서 5cm만 멀어져도 차다. 그래서 늘 코가 시린 노씨는 화장실부터 들렀다. 같은 층 17개 방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곳이다. 밤사이 변기 물이 얼어 내려가지 않았다. 막대기로 들쑤셔봐도 소용 없다. 양변기를 놓으니까 오히려 물이 고여 쉬이 언다. 재래식 변기가 쪼그려 앉긴 좀 불편해도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살얼음을 뒤척이는 그의 손. 과거에는 '한주먹 했던' 손이다. 100kg 다부진 체격에 '형님'으로 불린 시절이 있었다. 마약으로 몸이 상하고 물 들어간 귀를 방치해 얻은 중이염이 자신을 청각장애 3급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자살기도만 세 번. 지금은 종교의 힘으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사람들 깨기 전에 부지런히 동파사고를 수습하려 전화를 돌린다.
10년째 맞는 캄캄한 아침
간밤에 기자를 재워준 영등포 쪽방촌의 최고령자 나순덕 할머니(90)도 눈을 떴다. 의사가 처방해준 수면제가 떨어져 사흘째 잠을 편히 못 잤다. 좁은 방에 이방인과 부대끼느라 더 고단했을 것이다. 누운 자리 코앞에 있는 텔레비전부터 켰다. 주부를 대상으로 가정경제 재테크 강의가 한창이었다. 할머니는 화면에 뜬 시각을 확인한다. 9시가 넘었다. 영등포에서 10년째 맞는 캄캄한 아침이다. 당뇨병 때문에 돈을 못 버는 아들 집에서 나와 무작정 택시를 타고 한강으로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파출소에 데려다 주었다. 쉼터를 거쳐 쪽방에 왔다. 택시를 탔을 땐 목숨을 끊을 작정이었다.
어제 오전에 끓인 국을 오늘 아침 끼니로 데워 먹는다. 또 체할까봐 세 숟가락을 넘기지 못했다. 국에 든 당면은 어제 굵기의 두 배가 됐다. 할머니가 정부에서 지원받는 기초생활 수급액은 한달에 20여 만원. 호적에 자식이 있어 다른 사람보다 적다. 방세 15만원을 내면 빠듯하지만 먹을 것을 살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1년에 두 번 명절 때 화곡동에 있는 아들네를 찾는다. 이번 설에는 복지관에서 받은 꽃분홍색 이불 세트를 며느리에게 주려고 진작 챙겨놓았다.
쪽방촌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대부분 고령이거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소설가 신경숙은 10대에 구로공단 쪽방에서 3년을 보냈다. 1970년대 젊은이들이 잠시 머물던 쪽방이 이젠 취약 계층의 종착지가 되었다. 지난해 12월22일 한국도시연구소에서 발표한 '비주택 거주민의 유형별 생활 및 지역별 특징' 보고서를 보면 쪽방 주거자의 평균 거주기간은 25.4년이다. 평균 인원은 방마다 1.06명. 독거 노인이 많다는 말이다.
30대에 와서 어느덧 70대가 된 김분남 할머니(76)는 평균 거주기간의 2배 세월을 여기서 지냈다. 전기세가 아까워 불도 안 켜고 온종일 텔레비전을 본다. 젊은 시절 꿀이 든 종지를 실수로 떨어뜨려 그걸 밟고 12층 계단에서 미끄러진 할머니의 무릎은 인공관절이다. 여기서 생을 마감할 거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쪽방촌 사람 대부분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해 살고 있다. 드물게는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배 때 시도 때도 없이 '할렐루야'를 외쳐 할렐루야 아주머니로 통하는 김선자씨(가명)도 날이 너무 추워 오늘은 귤 장사를 포기했다. 일찌감치 밥을 먹고 한 평 남짓한 방안에 누워 텔레비전을 본다. 대각선으로 누워야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공간에는 발레하는 인형, 어항, 조화, 남다른 패션 감각의 꽃무늬 옷가지가 가득하다. 그걸 다 쌓느라 텔레비전이 천장에 가 닿을 정도다. 목이 아파 앉아서는 쳐다볼 수 없다. 날이 추운 날은 당뇨 증세가 심해진다. 하루 1만원 벌이를 포기하고 방에 누워 부은 몸을 어루만지는 날이 많아진다.
바캍 -10도, 쪽방 5도, 백화점 23도
정오 무렵이 되자 쪽방촌 일대가 술렁였다. 인근 교회에서 무료 배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영등포 쪽방촌만이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모여든 1000여 명이 이곳에서 세 끼니를 해결한다. 미아동에서 온 김씨 아저씨도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쪽방촌의 안상국씨(56)도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청각장애 1급인 그는 방에 음식 냄새가 나는 게 싫어서 거의 밥을 안 해먹는다. 공동욕실에선 찬물만 나와 샤워도 인근 복지관에서 한다.
거기까지 갈 여력이 없어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한 옆방의 홍춘자 할머니(가명·67)는 이불을 다섯 겹으로 덮고 오도카니 방에 앉았다. 겨울 외투는 죄다 이불이 된다. 할머니가 말을 할 때마다 방에 입김이 서렸다. 방 온도를 재어보니 5℃였다. 좁은 방에 취재기자, 사진기자가 한명씩 들어와 복작이니 금세 10℃로 올라갔다. 인근 백화점 지하의 커피숍은 겨울철에도 23℃를 내려가지 않는다. 광야교회 영등포쪽방상담소 소장 김형옥씨는 "영등포 쪽방촌에는 연탄과 기름보일러의 비율이 7:3 정도 된다. 난방비 부담이 크니 전기 장판 등이 지원되면 좋겠지만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면 주인이 뭐라고 해 눈치가 보인다"라고 말한다. 골목 곳곳에는 제설작업에 염화칼슘 대신 연탄재가 뿌려져 있었다.
쪽방은 1인 거주자가 많지만 간혹 부부도 있다. 대개 혼자 살다가 연이 닿은 사람들이다. 천현옥씨(44) 부부도 마찬가지다. 오후가 되자 남편은 뜨개질을 시작했다. 열네 살부터 여기서 살아온 그는 얼마 전 어렵게 모은 돈으로 장만한 붕어빵 기계를 누군가 몰래 망가뜨려 여태껏 분을 삭이는 중이다. 두 사람의 기초생활수급비 60여만원 중 25만원 방세를 내고 남은 생활비를 쪼개 모은 돈이었다. 전기 장판에 장기간 의지한 몸은 많이 상해 있어 막일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오후 3시. 겨울철 쪽방촌의 오후는 계절만큼 더디 간다. 사람들은 추워서 방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영하 5℃든 15℃든 겨울은 마찬가지다. 노인들은 걷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약값이 축날까봐 몸을 사린다. 예전 윤락가가 섰던 자리에서는 여전히 쪽방촌 아주머니가 지나는 아저씨를 붙잡는다. 사자 갈기가 연상되는 4000원짜리 고무 털신을 신고 검정·회색 외투를 잔뜩 껴입은 사내들 사이로 보라색 코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중년 여성이 서성이고 있었다. 지나던 기자에게 방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한 달에 20만원쯤 한다고 일러주니 비싸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서 영등포 쪽방촌 김대수 할아버지(73)한테 들은 정보를 전했다. 쪽방도 부동산 공식대로 역 앞이 더 비싸고, 신길동에 살 때 10만원을 내고 쪽방에서 지내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쫓겨나 급한 대로 여기에 방을 얻었다는 얘기, 그런데 도배도 안 해준다며 한참을 투덜댔다는 것 등.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아주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신길동'을 따라 발음했다.
쪽방은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숙박시설이 아니다. 서종균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임대주택으로 볼 수도 없다. 고시원 같은 영업 시설은 문제가 생길 경우 규제가 강화되기도 하지만 쪽방은 더 열악해도 방치되는 게 현실이다. 92세대가 사는 쪽방 건물도 무허가다. 그나마 5층 건물의 쪽방은 소방기구를 일시에 관리하기 손쉽지만, 이 건물 옆에 복층 구조로 미로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들은 목조 건물이 많아 위태롭다.
새우잠이나마 몸 누일 방이 있는 수급자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영등포역 앞 노숙자들은 역을 집 삼거나 쪽방에서 하루 나는 데 드는 7000원이 없어 3000원짜리 다방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등포역 주변에 홈리스를 포함해 쪽방·비닐하우스·고시원·만화방 등에 주거하는 극단적인 주거 빈곤층이 총 1572명 정도라고 한다. 쪽방에 주거하는 인원만 295명으로 집계됐다.
강미나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쪽방 거주 가구가 노숙보다 상태가 낫지만 언제라도 노숙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잠재 노숙 계층이라고 설명한다. 강씨는 정부가 '쪽방 비닐하우스 거주가구 주거지원' 사업을 통해 어려운 가구의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보조하고 있지만 수혜 계층을 더 늘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정 무렵. 할머니들은 잠들고 아저씨 몇 명이 라면 봉지를 바스락거리며 야식을 찾는다. 홍춘자 할머니는 옷걸이로 간신히 문을 걸어 잠그고 곤히 잠들었다. 방마다 들려오는 잦은 기침소리가 바로 앞을 지나는 1호선 전철 소리에 잠시 묻혔다. 수백 개 쪽방에 담긴 각각의 굴곡진 사연도 함께 저물고 있었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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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92개 '달린' 5층짜리 건물. 가장 먼저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1층 제일 끝방에 사는 노양훈씨였다. 서울시내 어디든 창 달린 방을 높이 쳐주지만 노씨의 방은 예외다. 김장용 비닐로 겹겹이 막은 창으로 칼바람이 들이쳐, 전기 장판을 켠 이부자리에서 5cm만 멀어져도 차다. 그래서 늘 코가 시린 노씨는 화장실부터 들렀다. 같은 층 17개 방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곳이다. 밤사이 변기 물이 얼어 내려가지 않았다. 막대기로 들쑤셔봐도 소용 없다. 양변기를 놓으니까 오히려 물이 고여 쉬이 언다. 재래식 변기가 쪼그려 앉긴 좀 불편해도 더 나았던 것 같기도 하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의 1평 남짓한 방에서 한 노인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다. |
10년째 맞는 캄캄한 아침
간밤에 기자를 재워준 영등포 쪽방촌의 최고령자 나순덕 할머니(90)도 눈을 떴다. 의사가 처방해준 수면제가 떨어져 사흘째 잠을 편히 못 잤다. 좁은 방에 이방인과 부대끼느라 더 고단했을 것이다. 누운 자리 코앞에 있는 텔레비전부터 켰다. 주부를 대상으로 가정경제 재테크 강의가 한창이었다. 할머니는 화면에 뜬 시각을 확인한다. 9시가 넘었다. 영등포에서 10년째 맞는 캄캄한 아침이다. 당뇨병 때문에 돈을 못 버는 아들 집에서 나와 무작정 택시를 타고 한강으로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파출소에 데려다 주었다. 쉼터를 거쳐 쪽방에 왔다. 택시를 탔을 땐 목숨을 끊을 작정이었다.
어제 오전에 끓인 국을 오늘 아침 끼니로 데워 먹는다. 또 체할까봐 세 숟가락을 넘기지 못했다. 국에 든 당면은 어제 굵기의 두 배가 됐다. 할머니가 정부에서 지원받는 기초생활 수급액은 한달에 20여 만원. 호적에 자식이 있어 다른 사람보다 적다. 방세 15만원을 내면 빠듯하지만 먹을 것을 살펴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1년에 두 번 명절 때 화곡동에 있는 아들네를 찾는다. 이번 설에는 복지관에서 받은 꽃분홍색 이불 세트를 며느리에게 주려고 진작 챙겨놓았다.
손이 곱아드는 추운 날씨에도 어떤 이들은 폐지 줍기를 멈추지 않았다. |
30대에 와서 어느덧 70대가 된 김분남 할머니(76)는 평균 거주기간의 2배 세월을 여기서 지냈다. 전기세가 아까워 불도 안 켜고 온종일 텔레비전을 본다. 젊은 시절 꿀이 든 종지를 실수로 떨어뜨려 그걸 밟고 12층 계단에서 미끄러진 할머니의 무릎은 인공관절이다. 여기서 생을 마감할 거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영등포 쪽방촌 인근에 있는 광야교회 앞(위)은 매끼 무료급식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바캍 -10도, 쪽방 5도, 백화점 23도
정오 무렵이 되자 쪽방촌 일대가 술렁였다. 인근 교회에서 무료 배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영등포 쪽방촌만이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모여든 1000여 명이 이곳에서 세 끼니를 해결한다. 미아동에서 온 김씨 아저씨도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쪽방촌의 안상국씨(56)도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청각장애 1급인 그는 방에 음식 냄새가 나는 게 싫어서 거의 밥을 안 해먹는다. 공동욕실에선 찬물만 나와 샤워도 인근 복지관에서 한다.
거기까지 갈 여력이 없어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해결한 옆방의 홍춘자 할머니(가명·67)는 이불을 다섯 겹으로 덮고 오도카니 방에 앉았다. 겨울 외투는 죄다 이불이 된다. 할머니가 말을 할 때마다 방에 입김이 서렸다. 방 온도를 재어보니 5℃였다. 좁은 방에 취재기자, 사진기자가 한명씩 들어와 복작이니 금세 10℃로 올라갔다. 인근 백화점 지하의 커피숍은 겨울철에도 23℃를 내려가지 않는다. 광야교회 영등포쪽방상담소 소장 김형옥씨는 "영등포 쪽방촌에는 연탄과 기름보일러의 비율이 7:3 정도 된다. 난방비 부담이 크니 전기 장판 등이 지원되면 좋겠지만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면 주인이 뭐라고 해 눈치가 보인다"라고 말한다. 골목 곳곳에는 제설작업에 염화칼슘 대신 연탄재가 뿌려져 있었다.
영등포 쪽방촌 인근에 있는 광야교회 앞(위)은 매끼 무료급식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
오후 3시. 겨울철 쪽방촌의 오후는 계절만큼 더디 간다. 사람들은 추워서 방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영하 5℃든 15℃든 겨울은 마찬가지다. 노인들은 걷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약값이 축날까봐 몸을 사린다. 예전 윤락가가 섰던 자리에서는 여전히 쪽방촌 아주머니가 지나는 아저씨를 붙잡는다. 사자 갈기가 연상되는 4000원짜리 고무 털신을 신고 검정·회색 외투를 잔뜩 껴입은 사내들 사이로 보라색 코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중년 여성이 서성이고 있었다. 지나던 기자에게 방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한 달에 20만원쯤 한다고 일러주니 비싸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서 영등포 쪽방촌 김대수 할아버지(73)한테 들은 정보를 전했다. 쪽방도 부동산 공식대로 역 앞이 더 비싸고, 신길동에 살 때 10만원을 내고 쪽방에서 지내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쫓겨나 급한 대로 여기에 방을 얻었다는 얘기, 그런데 도배도 안 해준다며 한참을 투덜댔다는 것 등.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아주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신길동'을 따라 발음했다.
쪽방은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숙박시설이 아니다. 서종균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임대주택으로 볼 수도 없다. 고시원 같은 영업 시설은 문제가 생길 경우 규제가 강화되기도 하지만 쪽방은 더 열악해도 방치되는 게 현실이다. 92세대가 사는 쪽방 건물도 무허가다. 그나마 5층 건물의 쪽방은 소방기구를 일시에 관리하기 손쉽지만, 이 건물 옆에 복층 구조로 미로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들은 목조 건물이 많아 위태롭다.
새우잠이나마 몸 누일 방이 있는 수급자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영등포역 앞 노숙자들은 역을 집 삼거나 쪽방에서 하루 나는 데 드는 7000원이 없어 3000원짜리 다방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등포역 주변에 홈리스를 포함해 쪽방·비닐하우스·고시원·만화방 등에 주거하는 극단적인 주거 빈곤층이 총 1572명 정도라고 한다. 쪽방에 주거하는 인원만 295명으로 집계됐다.
강미나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쪽방 거주 가구가 노숙보다 상태가 낫지만 언제라도 노숙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잠재 노숙 계층이라고 설명한다. 강씨는 정부가 '쪽방 비닐하우스 거주가구 주거지원' 사업을 통해 어려운 가구의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보조하고 있지만 수혜 계층을 더 늘려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정 무렵. 할머니들은 잠들고 아저씨 몇 명이 라면 봉지를 바스락거리며 야식을 찾는다. 홍춘자 할머니는 옷걸이로 간신히 문을 걸어 잠그고 곤히 잠들었다. 방마다 들려오는 잦은 기침소리가 바로 앞을 지나는 1호선 전철 소리에 잠시 묻혔다. 수백 개 쪽방에 담긴 각각의 굴곡진 사연도 함께 저물고 있었다.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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