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드 왕 '사르곤' B.C 2200년경
아카드인 출신인 사르곤은 부모에게 버려져 키쉬의 왕궁에서 길러져 왕의 술맡는
관원으로 일했으나 그는 그런 일에 붙잡혀있을 그릇이 아니었다.
그는 니므롯의 때에 거의 멸족되어 근근이 살아가던 자신의 부족인 아카드족에 긍지를
가졌으며 그는 마땅한 주인이 없는 메소포타미아를 평정하고싶은 야망이 있었다.
그렇게하여 그는 에블라와 아카드의 도움을 얻어 키쉬 왕을 죽이고 옥좌에 올라
주변 수메르 성읍들을 정복하며 아카드 제국을 세워 중동 제일의 정복자로 역사에 기록된다.
그의 명성은 고대 중국에도 알려져 고대 중국의 기록은 그를 전욱의 나라(바빌론)를 뒤이은
곤(鯤) 임금으로 기록한다.
이렇게 메소포타미아 남부가 혼란해져가는데도 에블라 제국은 어찌해서인지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
으로 수메르를 바로 잡지 않았다. 힘이 부족해서였는가?
이 때 에블라인들을 기쁘게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가 바로 '사르곤(Sargon)'이다.
사르곤은 아카드족 출신으로 아카드족은 과거 니므롯에게 하나님을 경건히 섬기고 앗시리아의
헌원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 이유만으로 멸족당하는 수난을 겪었었다.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와신상담하여 세월을 보냈다.
그 아카드족들 중의 한 사람인 사르곤은 아카드의 신화에 의하면 그는 광주리에 담겨진 채로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채 강을 떠내려가다 수메르의 키쉬 왕궁의 궁녀(宮女)의 눈에 띄어
건져져 왕궁에서 길러지고 키쉬의 왕 '우르 자바바'(Ur -zababa)의 술 관원에 임명된다.
당시 왕의 술잔을 맡는다는 것은 왕이 그만큼 총애한다는 것이었다.
(조철수의 '수메르 신화' - '아카드 제국의 창시자 사르곤 대왕의 전설'(서해문집))
단지 고아에 불과한 자가 이렇게 승진을 밟았다는 것은 미스터리한 일이다.
이것은 당시 왕에게 후계를 이을 아들이 없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왕궁의 궁녀가 그를 건져 왕에게 데리고 간 것이다.
사르곤의 부모는 왜 그를 광주리에 넣고 버렸을까? 성경의 출애굽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원전 1300년경의 이집트에서는 파라오 세티 1세가 이집트의 전 왕조 '힉소스'를 발전시키는데
막대한 공헌을 한 소수 민족 이스라엘인들을 두려워하여 박해하기위해 이스라엘인들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선포한다.
이 때 모세의 부모는 그를 광주리에 넣어 나일강에 떠내려가게해서 목숨을 부지케할려한 것이고
그게 떠내려가다가 마침 이집트의 공주가 발견하여 건져서 왕궁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900년전의 사르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키쉬 왕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아카드인들에 대한 박해 명령을 내렸고 사르곤의 부모는 그를 살리기 위해 광주리에 넣어
강에 떠내려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사르곤은 왕에 올랐을 때 그는 스스로를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이라 불렀다.
이것은 얼마나 그가 자신의 핏줄에 긍지를 가졌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가 장성하여 승진의 계보를 밟다가 자신의 근본을 알게된 뒤 키쉬의 왕 우르자바바에 대해
그가 처한 태도는 환웅이나 모세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왕을 죽여버리고 옥좌에 오른다.
이 후 자신의 동족인 아카드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세력을 성장하여
움마의 루갈자기시와 전쟁하여 루갈자기시를 포로로 잡아서 죽이고 수메르를 통일한다.
여기서 의문점이 든다. 사르곤이 아무리 아카드인의 도움을 받더라도 어떻게 당시 수메르의 맹주인
움마를 토벌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에블라의 도움이 아닐까?
사실 사르곤은 아카드인들이 헌원 임금에게 충성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던 부족이란 것을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들을 통해 듣게 되고
그는 하나님을 믿는 열정이 크고 자신이 속한 아카드족이 에블라인들과 같은 셈족임에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혼란한 메소포타미아를 하루 빨리 평정하고 에블라와 같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강한 나라를 세우고싶었을 것이다.
그렇게하여 그는 에블라의 도움을 얻어 하나님 대신 여신을 숭배하는 우르자바바 왕을 죽이고
수메르의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력들을 토벌하고 북진하여 하나님을 경건히 섬기던
옛 앗시리아의 땅을 되찾았다.
(문희석의 '구약성서배경사' - 아카드 제국(대한기독교서회) )
그의 청동 두상이 니느웨에서 발견되는건 이를 입증함이 아니겠는가?
(니느웨에서 발견된 사르곤의 청동 두상)
사르곤의 북진 사업에서 에블라는 제외되어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로 보아도 사르곤의
당시 목표를 알 수 있다.
"에블라의 번영이 아카드 왕조의 관심을 끌었다. 아카드 왕조의 사르곤이
에블라를 점령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발굴을 통해 드러난 것들을 보면 의심스럽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에블라')
"에블라는 사르곤 시대에는 여전히 번성했으나 ..."(한상인의 '족장시대의 고고학'(학연문화사) -
'에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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