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나

아모스 선지자

은바리라이프 2009. 10. 10. 16:41

아모스 선지자

아모스라는 이름은 이사야의 아버지 아모스(영:Amoz, 히:아모츠-강한, 사 1장 1절)와 예언자 아모스(영:Amos, 히:아모스-짐을 지고 나르는 사람, 암 1장 1절)와 예수님의 족보 속에 등장하는 아모스(영:Amos, 히:아몬, 마 1장 10절, 눅 3장 25절) 이렇게 세 사람이다.

그 중에서 구약의 예언서 가운데 하나인 ‘아모스서’를 기록한 선지자 아모스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1. 시대적 배경 

암 1장 1절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유다 제 10대 왕인 웃시야와 이스라엘 제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가 치리하던 기원전 8세기 경으로, 앗수르가 수리아의 다메섹을 함락시킴으로 인해 이스라엘 두 나라에 평화가 공존하고 수리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때이다.

 

또한 강력한 앗수르의 군대가 북쪽 아라랏과의 전쟁에 휘말려 주변 국가들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된 틈을 이용하여 적극적인 활동에 나선 두 나라는 각각 영토를 확장시켜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판도를 회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이스라엘은 활발한 무역 활동을 전개하여 유다 보다 앞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함으로 사회적 풍요와 사치와 타락으로 부정 부패가 만연하게 되었다.

 

유다 나라의 사정도 이스라엘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웃시야왕이 말년에 교만하여 성전에 들어가 직접 분향하려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치시니 문둥병자가 되어(대하 26장 16∼21절). 그의 아들 요담이 섭정(임금을 대신하여 다스림)하여 유다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 때,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안정된 사회에서 부의 증강으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된 국민 도덕과 생활 윤리, 부와 권력에 안주하고 있는 형식적인 종교의 부패상을 묵과할 수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오라” 외치게 된다. 
 

2. 하나님의 ‘짐 지는 자’ 아모스 선지자 

아모스 선지자는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부터 남쪽으로 8Km, 예루살렘으로부터 16Km 지점에 위치한 드고아 지방 출신이다.

‘말뚝을 박아서 천막을 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드고아는 해발 810m의 언덕 위에 있는 고원지대이며 유다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써 솔로몬왕의 아들 르호보암이 유다 땅을 방비하기 위해 견고한 성읍으로 건축하였던 곳이다(대하 11장 6절).

 

아모스 선지자는 이곳 드고아에서 양떼를 치며 뽕나무(돌무화과)를 재배하던 사람이었는데(암 1장 1절, 7장 14절) 선지자가 되기 위하여 특별히 율법을 공부하거나 연구한 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개 농부가 아닌, 신분이 비교적 높은 야인(野人)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 이유는 성경 열왕기서에 기록되어 있는 모압 왕 메사에 대하여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왕하 3장 4절)” 하였는데, 이스라엘의 종속국 군주로서 매년 양털을 조공으로 바치던 그를 가리켜 노케드 즉 양을 치는 목자장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같이, 아모스 선지자도 역시 노케딥 즉 드고아 목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아모스 선지자는 유다 왕국에서 목축과 재배업을 병행하여 상당히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러한 그를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그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였다.

암 7장 14∼15절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이렇게 하여 아모스 선지자는 유다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사마리아와 벧엘로 가서 신변의 위협과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을 선포하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