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느웨(Nineveh)
니느웨는 고대의 도시들 중에 가장 오래 된 도시였다.
티그리스강 상류에 자리한 니느웨는 지금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서북쪽 약 350km 지점에 위치하였다.
니느웨는 오늘날의 모술 맞은 편, 티그리스강 동편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였다.
니느웨에는 두 언덕이 있는데 한 언덕은 쿠유닉 언덕이고 다른 한 언덕은 텔 네비 유누스(선지자 요나의 언덕)이다.
구유닉 언덕 쪽은 1820년부터 1932년까지 발굴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반면에 선지자 요나의 언덕 쪽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촌락과 이슬람 사원이 있어서 몇군데 밖에 시도를 못하고 있다.
니느웨의 옛날 잉름은 니누아(Nonua) 혹은 니노스(Ninos)라고 불려졌는데 이는 강의 여신 니나(Nina)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성은 선사시대부터 있어 왔던 성으로써 그 이름이 함무라비 법전에도 등장하고 있다.
한때 니느웨는 그 유적을 찾지 못하여 그 역사성까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발굴되고 확인되었다.
한동안 성경학자들은 사르곤(Sargon)대왕(사 20:1)에 대하여 다른 곳에서 전혀 증거가 없어서 그를 전설적인 인물로 생각했지만
1842년 보타(Botta)라는 학자에 의하여 니느웨의 북쪽 끝에 있는 골사밧에서 사르곤 대왕의 궁전 폐허가 발견되었다.
거기서 발견된 증거에 의해 사르곤 대왕은 앗수르 여러 왕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왕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거기에서 많은 보불들과 비문들이 발견되었다.
니느웨는 그 성의 규모가 바벨론의 규모와 비교될 정도로 크고 견고한 성이었다.
이 성은 노아 홍수 후 니므롯이 건설했던 성으로서(창 10:11-12) 계속하여 바벨론과 비교되고 대립하였던 성이다.
바벨론과 니느웨는 약 480km 떨어져 있으면서 오랜 세월을 두고 함께 경쟁하면서 발전하였다.
니느웨는 B.C.900년경부터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니느웨는 부단히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약탈하면서 괴롭게 하였다.
B.C.785년경 하나님께서 가드헤벨 사람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회개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간 이스라엘을 침략하지 못했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끌어다가 바발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 지방에 흩어져서 살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은 선지자 아모스가 예언했던 대로(암 5:27) 앗수르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B.C.721)
그 후 630년경 나훔(Nahum, B.C.663-607)은 니느웨를 향한 혹독한 묵시를 보았는데,
그는 니느웨가 완전히 멸망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
니느웨는 다른 나라를 쳐서 빼앗으면 처음부터 민족 말살정책을 썼다.
아예 그 땅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온 제국 내에 여러 지방에 흩어버리고
정복한 곳에는 다른 민족을 이주시켜 살게 하는 방법으로 절처한 식민정책을 써 나갔다.
포로들을 잡으면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고문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사람들의 가죽을 벗겨 죽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죽인 사람들의 해골을 모아서 해골언덕을 만들어 경고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만 해도 니느웨는 여전히 열국의 여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니느웨가 이렇게 번창했던 것은 그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만국을 약탈한 것으로 성을 건축하였고 노예들의 피땀으로 건설된 성 안에서 약탈한 것으로 사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 세상의 진귀한 보물들은 마침내 니느웨로 들어가게 되었다.
"화 있을진저 피 성이여 그 속에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나훔 3:1)
성 밖에서 약탈과 강포로 죄를 지었고 성 안에서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여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자향하는 나라나 민족을 오래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시지만 악을 그냥 간과하지는 않으시는 것이다.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지만 권능이 크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다. (나훔 1:2)
나훔이 엘고스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엘고스가 실제로 어디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학자들은 가버나움 근처가 옛날에 엘고스였다고 주장한다.
엘고스 사람들이 앗수르에 사로잡혀 가서 니느웨 북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나훔(Nahum, B.C.663-607)은 B.C.721년에 포로 되어 가서 태어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나훔은 사로잡혀가지 않고 남아있는 사람의 자손으로 엘고스에서 자라났는데
나훔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엘고스라는 지명을 고쳐서 가버나훔(나훔의 마을)로 부르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앗수르의 멸망은 나훔뿐만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한 바 있다.
"여호와께서 그 장엄한 목소리를 듣게 하시며 혁혁한 진노로 그 팔의 치심을 보이시되
맹렬한 화염과 폭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하시리니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사 30:30-32)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교만하게 되면 그 운명이 오래가지 못한다.
앗수르든지 바벨론이든지 두로든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교만하게 되면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이다.
나훔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가버나움 지방 사람으로서 니느웨의 심판을 예언한 선지자였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서 나훔이 때로부터 약 150년 전 선지자 요나의 경고를 듣고 진심으로 회개했던 도시였지만
다시 타락하여 다시는 고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나훔은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를 다시 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니느웨는 회개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나훔의 예언대로
B.C.612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함락되고 완전히 패망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나훔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외치고 있다.
아마도 니느웨 사람들에게 시달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도 지긋지긋하니까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하나님이여 바라옵건대 저 악한 니느웨를 멸망케 하시오면 제가 맏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나이다" 하고
기도한 사람들이 흔히 있었을 것이다. (훔 1:15)
니느웨는 얼마나 흔적도 없이 망했던지 1842년에 와서야 그 유적이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 유적이 발견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니느웨라는 도시가 정말 있기는 있었는가,
아니면 전설 속에 도시였는가"하고 의심을 했을 정도로 완전히 멸절되었던 것이다.
열왕기하 19장 35절에 보면 앗수르 군대가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 명이 멸절된 사건이 나온다.
앗수르는 150년 전에 무너졌을 나라인데 요나의 전도와 하나님의 자비로 지금까지 역사가 연장되었다.
그러한 나라가 B.C.721년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교만해져서 유다까지 위협하였다.
위협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앗수르인들은 말하기를 히스기야 왕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도
앗수르의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방자한 말을 했던 것이다. (왕하 17:1-19:37)
그 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B.C.612-607년에 걸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되고 말았는데
일부는 불에 타서 사위고 나머지는 티그리스 강물이 넘쳐서 완전히 모래 아래 묻히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무덤을 얼마나 깊이 묻어서 평토장을 잘하였던지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가 이곳을 지나면서 그 흔적도 보지 못했다.
그 후 220년이 더 지나서 크세노폰이 1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지나면서도 그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근세에는 나폴레옹이 그 근방에 진을 치고서고 그 흔적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한때는 니느웨에 관한 기록은 전설이거나 가공적은 설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던 것을 1820년에 고고학자 레이야드(A.H.Layard)가 그 유적을 발굴하여 니느웨 사건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입증하게 되었다.
발굴된 니느웨의 성벽은 높이가 30m나 되었고, 성벽 위로 마차 4대가 함께 달릴 수 있을 정도였으며, 그 성벽의 둘레가 80마일이나 되었다.
그 성벽 밖으로는 20m 깊이의 해자가 50m 넓이로 설치되어 가히 낙공불락이라 할 만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어김이 없이 나훔의 예언대로 성취되었다.
니느웨는 심은 것을 거두게 되었다.
나훔이 니느웨에 대하여 혹독한 묵시를 보았는데 역사는 바로 나훔이 본 그 묵시대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그 소식을 전하는 것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위로(나훔)가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북방에 위치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의 사람들에게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었을 것이다.
'성극 > 요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앗수르 제국의 약사 4 (0) | 2009.09.24 |
---|---|
[스크랩] 앗수르 제국의 약사 3 (0) | 2009.09.24 |
[스크랩] 앗수르 제국의 약사 1 (0) | 2009.09.24 |
성경 해석과 역사--시리아 설교 "요나와 니느웨인의 회개"를 중심으로 (0) | 2009.09.24 |
요나서-앗수르왕국 등 (0) | 2009.09.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