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제 11 장 베냐민

은바리라이프 2009. 9. 18. 18:52

제 11 장  베냐민


베냐민 (BENJAMIN)

야곱의 열 두 번째 아들인 베냐민은,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의 어머니 라헬이 남긴 유일한 요청은 아이를 "베노니" 즉 "슬픔의 아들"이라 부르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그의 이름을 베냐민, 곧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개명했다(창 35:16-18).
어머니 없이 자란 아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그 형제들이 애굽으로 갈 때 동행을 허락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창 42:38). 그가 애굽으로 갈 때 자주 그를 "아이"(창 43:8)라고 불렀으나, 기록을 보면 그때 그는 이미 열 아들의 아버지였다(창 46:21).
족장 시대의 사회 제도 때문에 그가 오늘날의 결혼한 자녀들보다도 훨씬 더 부친의 지시를 잘 따랐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베냐민 개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그의 이름을 가진 지파에 대한 기록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지파의 성격에 대하여는 임종시에 남긴 야곱의 예언에 잘 묘사되어 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 49:27). 이 말은 샘이 많은 성격을 묘사한다기보다는 어린 아이가 고집을 부리거나 시샘을 하여 토라지는 것같은 버릇없음을 말한다. 이런 일은 많은 식구 중에 가장 막내둥이에게 흔히 있는 일로 어머니도 달래기가 힘든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정신은 그들이 거의 전멸되기까지 싸울 때, 베냐민 지파에게 잘 드러났는데, 그들은 오히려 기브아의 악한 사람들을 도로 놓아줌으로 징벌을 당했던 것이다(삿 20:12-48). 이로 인하여 그들의 숫자는 600 명으로 줄어들었으나 다윗의 시대에 와서는 다시 상당한 수의 지파가 되었다(대상 7:6-12).
사사 시대의 베냐민 족속은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없는" 사람들 칠백 명을 배출할 수가 있었다(삿 20:16).
약 350 년 후에 베냐민 족속의 사람 가운데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살도 발하는" 자들이 있었다(대상 12:1-2). 베냐민 족속은 특수한 목적으로 궁술을 익혔으며, 활과 물매를 사용할 줄 아는 기술이 뛰어나 찬양을 받은 유일한 족속이었다(대상 8:40; 대하 17:17; 삼하 1:22). 베냐민의 영토는 유다의 북쪽에 있는데, 두 지파 사이에 놓여진 경계선이 예루살렘 도성을 지나가고 있었다.
기브아에서 불행한 처신의 결과로 위기를 맞은 이후로(삿 19:14-39), 그 지파가 가지고 있던 완고하고 고집불통이었던 성격이 변화된 증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가 20 년 동안이나 그들의 지경인 기럇-여아림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 제사장이 그 법궤를 돌보고 있었다(삼상 7:1-2).
라마는 베냐민의 도시로, 이곳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희생을 드렸던 선지자 사무엘의 고향이다. 사무엘은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다(삼상 7:15-17).
이스라엘의 많은 군중이 모였던 미스바는 베냐민의 지경 안에 있었다(삿 20:1; 왕하 25:23). 여기서 여호와께서 무서움에 떠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삼상 7:5-11).
모세가 임종시에 각 지파에게 말한 예언을 보면, 야곱이 묘사한 베냐민의 성격에 결정적인 변화가 따랐다.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신 33:12).
야곱이 자기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하는 이리로 비유했던 그 겁없는 성격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었다. 이제는 그 무모한 힘을 여호와께 대한 관심과 그분의 백성을 보호하려는 데 사용한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고대 베냐민 지파의 성격과 이방을 위한 사도 바울과의 유용성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바울은 "나도 … 이스라엘인이요 … 베냐민 지파라"(롬 11:1)고 말했다.
후에 바울이라 부른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칠 때, 처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에 동의한" 사람이었다(행 7:58; 8:1). 다음으로 그는 "물어뜯는 이리"로 "교회를 잔멸"하려고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었다(행 8:3). 무서운 이리가 피에 굶주려 그 먹이를 찾는 것처럼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다(행 9:1). 이런 사람의 곁에 있는 주의 제자들에게는 안전함이 없었다. 그러나 "물어뜯는 이리"와 같은 힘을 가진 사람이 회심을 하면 그만큼 더 열정적으로 주의 사업과 그의 영광을 보살피고 보호하게 된다.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목격한 다음부터(행 9:3-9) 그의 이리 같은 습성이 사라지고, 주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그의 곁에 안전하게 거할 수 있었다. 다메섹에 있던 성도들이 이제는 더 이상 위험에 처해 있지 않았다. 그들을 잔해하려던 자가 이제는 친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어느 때든지 그들을 보호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행 9:10-19).
하나님은 하나의 친절한 행위라도 결코 보상하시기를 잊지 않으신다(삼상 2:30). 사울이 "주의 사랑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보살필 때, 주께서 그를 항상 품고 계셨다. 아무도 그를 해할 수 없었다. 무서운 독사가 물어도 힘을 잃었다(행 28:1-6). 그를 빠뜨릴 물도 없었다(행 27:23-25). 하나님은 그를 언제나 보호하고 계셨던 것이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축복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실(신 33:12) 것이라고 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말씀을 베냐민의 지경 안에 있는 모리아 산에 세워질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길을 가면서 거칠고 험한 곳들을 지날 때 아버지의 강한 어깨 사이에 안겨서 옮겨진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가진 사람에게 이 말씀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해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생애의 노정에서 우리의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전능의 팔로 우리를 번쩍 들어, 그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전혀 불가능한 곳에 우리를 안전히 내려놓으신다. 마치 어린 아이가 두 팔로 힘껏 아빠의 목을 껴안고 그 두 어깨 사이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할 때, 인간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을 성취할 수 있다. 복된 곳이 있도다! 이곳은 주를 사랑하는 자가 안전하게 거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 거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불평과 중상의 소리가 영원히 잠잠할 것이다(약 1:26).
이스라엘 백성들이 80 년 동안 태평하게 살도록 다스렸던 에훗은 베냐민 사람이었다(삿 3:15, 30). 그는 왼손잡이였는데,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모압 왕 에글론을 단칼에 죽여버렸다(삿 3:21-26).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베냐민 지파의 출신이었다(삼상 9:21).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삼상 10:9). 그는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과 함께 행했고(삼상 10:26), 그가 겸손하게 머물러 있는 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삼상 15:17-23). 그가 자기 자신의 마음대로 자고(自高)하게 되었을 때, 그는 여호와께 버림을 당하였다. 그러자 그의 성격 가운데 있던 이리와 같은 성향들이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먹이를 찾는 이리처럼 여러 해 동안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것"(삼상 26:19, 20) 같이 다윗을 추격하였던 것이다. 그의 유일한 욕망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다윗을 살해하는 것이다(삼상 18:11; 15:28).
"베냐민 지파"요 "기스의 아들"인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를 죽이려고 음모하는 일에 자신의 사나이다운 정력을 소비해버린 사울과는 너무나 두르러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울의 아버지와 모르드개의 아버지 이름이 같은 것을 보면 이들은 지파의 관계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모르드개에 대한 전 역사는 난관 속에서 백성들을 구출하는 일련의 기록인 것이다. 그는 페르시아 왕의 목숨을 구해 내었다(에 2:21-23). 후에 사단과 하만이 참 하나님을 믿는 백성을 멸하고자 시도했을 때(에 3:8-15), 모르드개는 하나님께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탄원하였다(에 4:1-3).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왕에게 베풀었던 친절을 환란을 피하는 한 수단으로 삼으셨다(에 6:1-11). 모르드개는 왕국의 고위직에 오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안전하게 하는 방패로 그를 사용하셨다(에 8:7-17). 영원히 얻는 결정적이고도 참된 승리는 어떤 지파와 관련을 가졌다거나 물려받은 성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겸손히 신뢰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신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대하 16:9).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경멸하는 왕을 낮추시고(대하 36:1-4, 9-10), 포로로 잡혀온 자를 취하셔서 왕 같은 세력을 주시기도 하신다(단 6:1-3; 에 8:15; 10:3).
베냐민의 본성은 각 시대를 통하여 회심하지 아니한 사람들을 대표한다(렘 17:9). 오늘날도 모르드개처럼 원칙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전적으로 위험을 무릅쓰는 자는 복있는 자이며, 그는 옛날에 베냐민에게 주신, "여호와께서 …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라는 그 약속을 주장할 수가 있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베냐민의 이름을 계승할 12,000의 사람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계 7:15).


요 약

♤ 베냐민은 열 아들이 있었으며,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 이루었다(창 46:21).
♤ 그들이 언약의 땅에 들어갔을 때, 이 지파의 수는 45,600 명이었다(민 26:41).
♤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은 궁술과 왼손잡이로 유명했다(대상 8:40; 대하 17:17).
♤ 사무엘의 고향 라마는 베냐민 지경 내에 있었다.
♤ 이스라엘의 온 백성이 운집했던 미스바는 베냐민의 땅이었다.
♤ 에훗은 80 년간 이스라엘의 사사였다(삿 3:21-26).
♤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첫 왕이었다(삼상 9:21).
♤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에스더 시대에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용한 인물이었다(에 2:5).
♤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해 일한 지도적인 사도였다(롬 11:1).


[예언의 신]에 묘사된 베냐민

♤ 그의 형제 요셉이 베냐민을 찾음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무리를 돌아보고 그들 중에 베냐민이 없는 것을 발견하였다. 베냐민도 이 잔인무도한 사람들의 무도한 책략의 희생이 되고 말았는가? 그는 그 진상을 알고자 결심하였다"(PP, 224-225).
"총리 대신은 그들의 이야기의 진실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에 아직도 그들을 정탐꾼으로 본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애굽에 남고 그들 중의 한 사람만 가서 그들의 제일 어린 동생을 데려오도록 요구하는 일로 그들을 확인해 보겠다고 선언하였다. … 그들은 죽임을 당하든지 노예가 되든지 될 것만 같이 보였다. 그리고 베냐민을 데리고 오더라도 그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 같았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마저 잃는 슬픔을 더 안겨주는 것보다 차라리 남아서 함께 고통을 당하기로 작정하였다"(PP, 225).
"그의 아들들이 꺼림칙한 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에 연로한 아버지는 일어나 손을 하늘로 들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창 43:14)고 기도하였다"(PP, 227).

♤ 그가 베냐민으로써 그의 형제들을 시험함
"요셉이 '자기 식물로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5 배나 주었다. 베냐민을 총애한다는 티를 보이고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했던 것처럼 시기와 질투를 그 어린 막내 아우에게도 나타내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PP, 228).
"베냐민의 자루 속에서 그 잔이 발견되었다"(PP, 229).
"유다는 이제 깊은 근심 중에 통치자에게 같이 나아가 … 감동을 주는 웅변으로 그는 요셉을 잃어버린 그의 아버지의 슬픔과 베냐민을 그들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지 않으려던 일을 고하고, 그 이유는 베냐민이 야곱이 매우 사랑하던 그의 어머니 라헬이 남긴 유일한 아들이기 때문임을 설명하였다. …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창 45:14)"(PP, 230-231).

♤ 사울 왕이 이 지파에서 나옴
"백성들은 일반적으로 사울을 그들의 왕으로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한편, 그를 반대하는 큰 무리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지파들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인 베냐민에서--그것도 가장 크고 가장 강한 지파들인 유다와 에브라임을 무시하고--군주가 선택된다는 것은 그들이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다"(PP,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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