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제 13 장 상실된 두 지파

은바리라이프 2009. 9. 18. 19:13

제 13 장  상실된 두 지파


상실된 두 지파:에브라임(EPHRAIM)과 단(DAN)

이스라엘의 상실된 지파들에 대하여 많은 것들이 언급되고 기록되었으며, 그들에 대한 환상적인 이론들도 많이 창출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논증들 중의 어떤 것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상실된 지파들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앞의 장(章)들에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 그리고 므낫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한 영역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이름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에서 지파들의 대표로 나타날 것이다. 이에 반해 에브라임(Ephraim)과 단(Dan)의 이름은 잊어버린 바 되었다. 바로 이 두 지파는 이스라엘의 상실된 지파들이다. 어찌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세력이었던 당당한 에브라임 지파와, 약속된 땅에 들어갔을 때 유다 다음으로 용사가 많았던 단 지파가 이스라엘의 지파를 최종적으로 계수할 때 빠지게 되었는가?
우리가 갖고 있는 기록에 관한 한, 에브라임(Ephraim)은 우상 숭배자였던 애굽 공주의 아들이었다. 에브라임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기까지(출 1:8) 그의 오만한 측근 연고자들과 더불어 고센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많은 교제를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할 수는 없으므로, 그는 십중팔구 그의 생애의 대부분을 애굽인들 사이에서 보냈을 것이다. 므낫세도 같은 환경에서 살았다. 하지만, 에브라임이 족장[야곱]의 축복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한 사실은 그의 마음을 교만으로 채우고 그의 생애를 다른 형태로 꼴지어 나갔을 것이다. 에브라임이 야곱의 축복을 받았을 때는 약 21 세였다. 요셉이 에브라임의 삼대 손자를 볼 때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미루어, 그는 에브라임에게 오랫동안 아버지로서의 경건한 모본을 보였을 것이다(창 50:23).
에브라임의 개인적인 생애에 대해서는 오직 한 가지만이 언뜻 나타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에브라임의 아들들이 원정을 나가, 가드 사람들에게 속한 짐승을 약탈하였으며, 가드인들은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 "그 아비 에브라임이 위하여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 형제가 와서 위로하였더라"(대상 7:21-22).
에브라임이 잃어버린 아들들로 인하여 슬퍼하는 동안, 다른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집이 재앙을 받았으므로"(대상 7:23-24) 그 이름을 브리아, 즉 "재앙"이라 하였다. 신기한 것은 브리아에게서 그의 자손들 가운데 가장 출중한 자, 곧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가 나온 것이다(대상 7:27). "눈의 아들 호세아"(민 13:8, 16)는 열 명의 정탐꾼들 가운데 하나로 뽑혔으나, 그의 믿음이 시험을 받은 다음, 그의 이름은 "여호와의 도움"이라는 여호수아로 바뀌었다. 개명(改名)하는 일은 고대에 흔히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름이 그 소유자의 개성을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약속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이 되었으며, "빼앗는 자"라는 뜻의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던 밤이 지난 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 되었다(창 17:5; 32:28).
에브라임의 또 다른 훌륭한 자손은 그의 딸 세에라였는데, 그는 두 도성을 건축하였다(대상 7:24).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의 소생은 아니었으나 지역 상으로는 에브라임 산지 출신이었다(삼상 1:1). 한나가 제사장 엘리에게 사무엘을 맡긴 곳은 실로에서였다(삼상 2:24-28). 사무엘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사무엘처럼 길고도 유용한 생애를 보내며 수많은 봉사를 한 사람도 흔하지 않다. 그는 제사장 족속인 레위 지파의 후손으로서(대상 6:34, 43) 제사장의 직무도 수행하였다(삼상 7:9). 그는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삼상 7:15). 또한 그는 위대한 교육자로서 선지자 학교를 설립하였다. 어렸을 때에 예언의 영을 받았으며(삼상 3:1-21), 성경의 한 부분을 그가 기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족속으로서의 에브라임은 많은 장점이 있었으나, 그 유익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들은 매우 시샘이 많고, 작은 일에도 항상 민감하였다(삿 8:1; 삼하 19:41-43).
솔로몬이 죽고 난 뒤, 왕국은 분열되었으며, 그때로부터 에브라임의 역사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가 되었다.
그들의 첫번째 임금인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족속이었다(왕상 11:26). 르호보암의 손에서 나라를 찢어내어 열 지파를 여호보암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으며(왕상 11:29-31), 만일 그가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다면 에브라임에 대하여 전혀 다른 역사가 기록되었을 것이다. 여로보암에게 영향을 끼쳐 금 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움으로 우상 숭배 제도를 세우게 한 것은, 그 지파의 역사를 망치게 했던 그 동일한 시기와 의심의 정신이었다(왕상 12:26-33). 여호와께서 경고의 기별을 보내시고 왕의 앞에서 이적까지 행하였으나(왕상 13:1-6), 여로보암은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였다(왕상 13:33).
불손함으로 내리막길로 향하면서 시기심이 많던 에브라임 족속을 성공의 정점--그들의 지도자가 국가의 지도자였으며, 예배의 중심인 실로는 그들의 경계 안에 있었다--으로부터 갑작스럽게 포로가 되어 성장하던 길목을 막아 완전한 망각 속으로 빠져들게 한 것보다 더욱 슬픈 일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 족속에게 가장 애처로운 기별을 주셨다. 호세아의 증언들 가운데 대부분은 에브라임이 회개하도록 외치는 탄원이었다.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줄, 곧 사람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호 11:3-5).
호세아는 에브라임의 멸망 원인을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호 7:8)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은 전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과 황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었고, 그는 하나님의 사물에 대한 철저한 경험을 갖지 못하였다. 세상의 부와 명성을 추구하는데 힘을 쓰면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 사는 자는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여호와께서는 에브라임에게 호소하셨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 11:8).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호 8:12).
우상 숭배는 에브라임의 큰 죄악이었다.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물들을 식별하지 못하였다. 여호와의 호소를 거절한 후에 임한 말씀은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호 4:17),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시니"(호 9:17)라는 말씀이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아니하였다.
오늘날 세상에는 에브라임이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을 걷는 우상 숭배자들이 많이 있다. 현대인들은 금속이나 나무 혹은 돌로 만들어진 우상들을 섬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의 인기있는 신들은 그러한 형태의 것이 아니라 금전과 부와 연락과 높은 지위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고 계시지만 저들은 에브라임처럼 저들의 우상과 합하였다. 고대의 에브라임 족속처럼 하나님의 교회의 한 지체로 여겨지지만, 극장이나 유흥지가 기도의 집보다 더욱 매력적이며, 성도들과의 교제보다는 세속적인 사교가 더욱 즐겁게 여겨진다. 저들은 언젠가는 앗시리아나 바벨론의 왕들보다 더 크신 왕에 의해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 모든 왕들 중에 가장 위대하신 왕께서 일어나사 무섭게 땅을 진동시킬 것이다.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는 그의 위엄과 그 장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사 2:20-21).
단(Dan)은 야곱의 다섯째 아들이며, 그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의 강한 족속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에는 용사들이 단의 깃발 아래 모여 정렬하였다(민 26:42-43). 어떤 이유 때문에 커다란 단 지파는 분깃의 가장 작은 몫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때맞춰 그들은 북으로 진격하여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수 19:47). 여로보암은 금 송아지들을 만들어 하나는 에브라임 영토 내의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의 도성에 두게 하여 단 족속도 우상 숭배에 빠지게 했다. 여로보암 이전에도 단 자손이 새긴 우상을 섬겼음을 알 수 있다(삿 18:30).
성막이 광야에 세워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의 오홀리압에게 지혜를 주셔서 "공교한 일을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였으며(출 31:3-6), 같은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출 35:34). 이 재주를 계속 소유하고 있던 단 족속들은 부요한 도성 두로에 매력을 느껴 그 거민들과 혼인하게 되었다(왕상 7:13-14). "브사렐과 오홀리압 … 이 장인(匠人)들의 후손들은 그들의 조상들에게 부여되었던 재능들을 많이 물려받았다. 유다 지파와 단 지파에 속하는 이 사람들은 한 동안 겸손과 무아심을 유지하였다"(PK, 62).
여러 해가 지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두로 왕 히람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금과 은과 놋 일을 공교히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선조들에게 주신 재능을 그때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단의 자손 한 사람을 보냈다(대하 2:13-14).
단 족속은 다윗의 시대에 이스라엘 족속들 가운데서 자기 위치를 여전히 지키고 있었으나(대상 27:22), 그 후로는 지파를 가리키는 이름으로서는 사라지고, 단지 북쪽에 있는 도성을 가리킬 때를 제외하고는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삼손은 단 지파에서 나온 유일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을 이십 년간 다스렸다(삿 13:2; 15:20).
야곱이 단에게 축복을 내릴 때, 그의 성격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 49:16-17). 르우벤에게 선포한 축복처럼 앞 부분에서는 만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그의 첩경을 따라 기회를 잘 포착했더라면 소유했을 그의 성격을 묘사하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과 명예를 얻는 재판장과 지나는 길손의 몸 속으로 사망의 고통을 넣기 위해 길가에 숨어있는 뱀과는 얼마나 큰 대조를 이루는가!
단은 첩들에게서 난 첫번째 아들이었으나, 연로한 족장은 그에게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영예로운 자리를 주었다. 마땅히 훌륭한 심판을 내릴 신속하고 예리한 분별력을 부여받았으나, 그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그 재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선을 찾아내는 대신에 악을 찾아내는 데 사용하였다.
"첩경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 49:17). 악한 혀의 묘사로 "지옥불에서 나"며,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6-8)는 표현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겠는가? 독사가 말의 말굽을 공격한다 하였으니, 단은 뒤에서 무는 자 곧 참소하는 자를 표상한다. 이러한 성격들은 사람이나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들이다. 주께서는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시 101:5)이라고 말씀하신다. 야곱의 예언적인 말은 어찌하여 단 지파에게 영원한 유업의 몫이 없는지를 알려준다. 단 족속이 저들의 악한 행위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참소하는 자는 시온 산에 설 수 없다고 선포하셨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리이까?"(시 15:1). 말하자면 누가 당신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섬기며, 누가 시온 산에 당신과 함께 서리이까? 하는 것이다.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며, 그 벗에게 행악치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는(시 15:3) 자라야 설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대답이다.
르우벤은 크게 마음을 살핌으로 물같이 불안정한 자신의 본성을 극복하여, 르우벤이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레위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버지께서 내린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다. 유다는 매일의 생애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자기 형제들보다 승하여 운명하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라는 말을 듣기까지 하였다. 갓은 비록 큰 시험에 빠지기는 하였지만, 마침내 승리를 얻는 자가 되었으며, 물어뜯는 이리였던 베냐민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를 배워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신 33:12)라는 말을 들었다. 아셀은 "그 발이 기름에 잠기"게(신 33:24) 하는 법을 배워 하나님의 신의 도움 없이는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을 가볍게 통과하였다.
에브라임과 단은, 그들의 성품 가운데 있는 악한 특성을 극복함에 있어서 다른 형제들과 꼭 같은 기회를 가졌었으나 승리를 얻는 일에 실패함으로, 하나님의 성산에 서며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144,000 가운데 계수되지 못하게 되었다.
지상에 사는 모든 가족들 가운데 오늘날도 똑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같은 부모 밑에서,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난 형제들이 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에서처럼 그들을 "추수 때까지 내버려 두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똑 같은 태양과 바람이 곡창의 황금빛 이삭을 영글게 하며, 마지막에 멸망 받을 가라지를 영글게 한다. 마찬가지로 빛의 아버지께서 매일 주시는 똑 같은 축복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성숙하게 하며, 다른 영혼에게는 최후의 심판을 위해 성장하게 한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성품을 쌓아 가고 있는 건축가이다. "나를 앙망하여 구원을 얻으라"는 초청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바라봄으로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은 변화될 것이다. 날마다 그 영혼 속에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이 변화는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천사들을 경탄하게 할 것이다.
인간의 모양을 옷입으시고 지상을 거니셨던 그 동일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그분께서 들어오시도록 초청하는 모든 자들 가운데 거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명상하며, 그분의 죄없는 생애를 연구하는 자들은 주의 영광을 바라봄으로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고후 3:18)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각 제자 속에 당신의 초상(肖像)으로 좌정해 계신다"("Christ is sitting for His portrait in every disciple"). 가련하고 타락한 인간도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신성한 성품을 반영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흠없는 의의 두루마기로 상처 투성이의 인생을 덮으신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의를 옷입은 개개인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과 천사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의 온전한 성품만을 보며, 영원히 끊이지 않는 세대를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증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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