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도행전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일곱 집사(사도행전6:5-8)

은바리라이프 2009. 9. 7. 18:34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사도행전6:1-4)
  이진천 [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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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4)

[읽을거리]
초대교회가 구제의 일에 열심을 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고, 사도들은 이것을 나누어 과부나 고아들에게 적절하게 분배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그들로서는 분배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결국은 사도들이 판단하기에 자신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상 시중드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들은 구제의 일에 관여함으로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잃어감은 물론, 불평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으로 인해서 전하는 복음이 오히려 권위를 잃고 상처를 안게 될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던 이 일에 대하여 회중 가운데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맡기기로 작정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일의 우선 순위를 분명하게 하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하고 있는 구제의 일보다는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오직 계속해서"라는 말의 표현을 볼 때 자신들의 본분이 바로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임을 알고 그 일만을 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자의 본분은 오직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물질과 관련하여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때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타락상이며, 현 시대에 있어서 교회가 힘없이 무너지는 모습들도 모두 사도들의 이러한 자세를 무시한 까닭입니다.

교회는 사역자들로 하여금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더불어 사역자는 오직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교회의 모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교회의 구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일에 관여가 될 때 말씀의 권위는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실제로 교회의 행정에 전혀 관여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각 지역을 다니며 오직 전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복음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사역자가 만능일 수 없습니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세워진 것은 오직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역자나 성도들은 이 일을 언제나 염두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과 기도]
지금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사역자가 어떠한 위치에서 일하고 있습니까? 오직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일곱 집사(사도행전6:5-8)
  이진천 [ E-mail ]
  http://word365.net/cheon03.html

[요절]
이에 온 무리가 이 말을 기쁘게 여기고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안디옥 출신의 유대교 개종자 니골라를 선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5,6)

[읽을거리]
사도들은 집사를 세우기에 앞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 명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크게 두 가지의 기준으로 나눈다면 성도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사람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이 집사에 대한 분명한 기준! 이 기준 위에 일곱 명의 사람들이 세워졌고, 사도들은 그들 위에 기도하고 안수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예루살렘 교회는 점점 왕성하여 제자들의 수가 늘어났고, 심지어 제사장의 무리들도 이 믿음에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집사 가운데 스데반은 믿음과 권능이 충만하여 백성 가운데서 큰 이적과 기적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사가 세워진 이후에 교회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을 지속해 갔습니다.

과연 이 시대에도 이러한 기준 위에 세워진 집사를 볼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는 형식적으로 이러한 기준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회중들에게 투표를 하기도 하고 집사를 세우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의 여부를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성도들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대부분의 집사들이 자질이 못 미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관계없이 세워진 많은 집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전혀 정직하지도 않고 성도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않는 자가 교회의 집사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심한 경우에는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조차 모르는 자가 집사라고 말하는 경우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집사가 어떤 사람으로 세워지느냐에 따라서 교회는 성장할 수도 있고, 퇴보를 거듭해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집사는 단순히 직분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교회의 전체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행보는 많은 불신자들이 교회를 찾아오게도 할 수 있고, 반대로 교회 안의 성도들을 세상 밖으로 내 몰기도 할 것입니다.

집사는 비단 사람 안에서 인정받는다고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이 인정을 받은 사람, 즉 지혜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가 비록 사도들처럼 각 지역을 다니며 기도와 말씀만을 전념하는 자는 아닐지라도 주님의 모든 사역 전반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은 집사였지만 백성 가운데 이적과 기적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사 역시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묵상과 기도]
사람 앞에서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집사! 이시대에 흔치 않은 모습이겠지만 우리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거나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