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성극(대본)

벤치이야기[성탄, 주인공 자리를 빼앗긴 예수님]

은바리라이프 2009. 7. 4. 18:12

벤치이야기[성탄, 주인공 자리를 빼앗긴 예수님]


공연시간: 20분정도

나오는 사람:

전막 - 나레이터, 남자    1막- 미스 박, 웨이터, 회사원, 제비족, 소년, 지나가는 사람

2막- 철이 엄마, 철이 아빠, 철이, 소매치기    3막- 윤주, 아주머니


무대 밑에는 의자가 세 개쯤 붙여져서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그 벤치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막이 바뀌어도 전혀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 있다.


극이 시작하기 전에 음악이 나오면서 나레이터 등장


나레이터 : 벤치가 있습니다. 그 벤치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 벤치에 앉기만 하면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남자가 벤치에 앉아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앉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다 앉았던 사람도 다시는 찾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남자는 오늘도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답니다.


1막 : 미스 박 이야기


불이 켜지면 자신만만한 태도로 합격자 명단을 바라보고 있는 미스 박. 미스 박은 벽을 향해 계속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명단을 확인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발견되지 않는다. 실망하면서 관객을 향해 돌아선다.

미스 박 : (실망을 억지로 떨쳐내려는 듯 각오를 새롭게 한 목소리로)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

(퇴장한다)

(다시 등장할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나 눈치를 보면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발견되지 않자, 완전 실망한다) 또 없어. 또 없단 말이야.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이제 난 끝이다. 끝장이라구. (벽을 향해 돌아선다)

회사원 : (입장하면서) 미스 박, 지금 대체 뭐하는 거야? 사장님이 서류 챙겨오라고 그러셨잖아.

미스 박 : 서류요? 아직 다 완성하지 못했는데...

회사원 : 아직이라구? 지금 대체 일을 하는거야, 마는거야? 얼굴이 못생겼으면 눈치라도 빨라야지. 어떻게 회사엔 들어왔는지 몰라,.. (혀를 차다가) 빨리 해가지고 가지고 와!

미스 박 :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네.

회사원 : (헛기침을 크게 하면서 한번 훑어보고 퇴장한다)

미스 박 : 정말 열 받네.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나보다 어린놈이 대학 나왔다구 날 무시해? 어따 대고 반말이야. 저걸 그냥. 열 받는데 가서 놀아버려?

재즈음악이 나오면 미스 박은 자리에 앉는다.

미스 박 : (손뼉을 두 번 치면서) 웨이러!

웨이터 : (술잔을 들고 등장한다) 저쪽에 계신 분이 이 술을 사겠다고 보내셨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합석하시는 게 어떨지 여쭤보라고 하시는데요.

미스 박 : 그래요? 오라고 그러세요.

(웨이터 퇴장한다)

미스 박이 술을 마시고 있으면 제비족이 등장한다.

제비족 : (은근한 목소리로) 마드므와젤, 이 한잔 술처럼 아름다워 보이시는군요. 그런데 이 아름다운 밤에 왜 그렇게 우울하신지?

미스 박 : 제가 그렇게 보였나요? 그렇다면 세상이 절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제비족 : 우린 누구나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괴로운 의무가 있지요. 그러나 원하신다면 그 괴로운 의무가 즐거운 권리로 바뀔 수 있게 해 드리죠.

미스 박 : 어떻게요?

제비족 : 절 따라오시겠습니까? 마드므와젤?

미스 박 : 어디로 가시는데요?

제비족 : 그건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미스 박 : 좋아요. 어디를 가든지 지금보다는 낫겠죠.

두 사람은 퇴장한다.

소년 : (신문을 옆에 끼고 뛰어 들어오면서 호외를 뿌리며) 호외요! 호외요! (그대로 퇴장한다)

지나가는 사람 : (지나가면서 뿌린 호외를 주워 펼친 후 읽는다) 박 모양이 내연의 관계에 있던 유부남으로부터 실연을 당하자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꾀했다. 그러나 치명적인 독약을 마시고도 박 모양은 5일 동안 깊은 잠을 자고 난 뒤 멀쩡하게 깨어나 김치가 먹고 싶다면서 김치만 세 포기를 먹었다. 이 때문에 박 모양이 과연 원더우먼이 아니냐는 논란이 학계에 제기되고 있을 뿐 아니라 김치가 해독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연구하고 있다. (퇴장한다)

미스 박이 등장한다.

미스 박 : 난 죽을 자유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태어났나봐. 지금까지 난 되는 일이 없었어. 얼굴도 별 볼일 없는데다가 대학도 못 들어갔고, 회사에서도 늘 짤릴 위험에 벌벌 떨었고, 게다가 그 자식까지 날 버릴 줄이야... 난 이제 인생을 망쳤어. 이게 절망의 끝이려니 하면 또 다른 절망이 날 기다리고 있고... 이제 난 정말 지쳤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도, 죽을힘도 나에겐 남아있지 않아. (터덜터덜 나오다가 벤치에 털썩 주저앉는다. 주머니를 뒤적뒤적 거리다가 옆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거, 댁에 담배 있으면 한 대 줄래요?

남자 :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미스 박 : 없음 말구요. (남자를 이상한 듯이 쳐다보다가 갑자기 놀란다.)

음악이 나오면서 불 꺼진다.


2막 : 철이 이야기


철이와 엄마, 아빠가 서 있다.

철이 엄마: 너, 다시 한번 말해봐. 뭐가 어째? 이 자식이 정말(손이 올라간다)

철이 : 아무리 뭐라고 그래도 소용없어요. 전 이미 결정했어요.

철이 아빠: (달래듯이) 철이야, 니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하는 말 같은데... 니가 의사가 되지 않으면 병원을 이어갈 사람이 없어. 니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도 니 성적이면 충분히 의예과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더냐.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니가 딴따라판에 미쳤는지 이해가 안 간다.

철이 : 딴따라판이 어때서요. 아버지처럼 돈만 밝히는 의사들보다 훨씬 낫네요.

철이 아빠: 뭐야? (기막히다는 듯이) 다시 말해봐. 넌 이 아빠가 돈만 밝히는 의사로 보여?

철이 : 사실이잖아요. 아빠는 돈만 벌면 다라고 생각하셨구, 엄마는 제가 돈 잘 버는 사람만 되면 다라고 생각하시잖아요.

철이 엄마 : 아니, 얘가,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이 엄마에게 죄가 있다면 오직 너 하나 잘되라고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빈 죄밖에 없다. 의예과 들어가서 아빠가 하는 병원 이어 받으라는게 도대체 뭐가 잘못이냐?

철이 : 그건 단지 엄마 생각일 뿐이에요. 분명히 말하겠지만 전 절대로 의사는 되지 않아요...

철이 아빠 :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잔소리 말아. 넌 무조건 의사가 되어야 돼. 의사! 의사! 알겠어?

철이 엄마 : (달래듯이) 우리가 안중근 의사처럼 손가락 자르라고 하던? 그냥 의사가 되란 말이야. 너한테도 잘 맞고 그만한 직업이면 사회에서 인정도 받는단 말이야.

철이 : 아무리 그러셔도 전 영화감독이 되겠어요. 영화로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단 말이에요. 전...!

철이 아빠 : (손을 들어 때리면서) 나가! 너 같은 자식 필요 없어. 내가 너 같은 놈 만들려고 돈 버는 줄 알아? 나가! 나가서 딴따라판에서 딴따라굿을 하던 딴따라떡을 하던 상관 안 할테니까 맘대로 해.

철이 : 나가라면 못 나갈 줄 알아요? 좋다구요. 나가죠. 나가드린다구요. (뛰쳐나간다)

철이 엄마 :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가 가위를 쫓아가면서) 철이야, 얘, 철이야!

철이 아빠 : (하늘을 향해) 아버지! 내가 어쩌다 저런 자식을 낳았습니까? (씩씩거리면서 반대쪽으로 퇴장한다.)

철이가 추위에 떨면서 다시 등장한다. 반대쪽에서 소매치기가 휘파람을 불면서 지나가다가 일부러 철이와 부딪친다.

소매치기 : (삿대질을 하면서)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녀! 어? (황급히 퇴장한다.)

철이 : 죄송합니다. (주머니를 뒤지다가 지갑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좌절한다.) (걸어 다니다가) 하루만 더 있다가 반항할 걸. 하필 크리스마스에 성냥팔이 소녀처럼 이게 무슨 짓이냐. 그나마 있던 돈도 다 날리고. (고개를 흔들면서) 아니야. 나온 지 하루도 안 되어서 후회하다니... 이래서는 안 되지. 다른 집에 엄마, 아빠는 자식들을 잘 이해해 준다는데 우리 집은 날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어. (한숨을 쉬면서) 날씨는 더럽게 춥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라나? 이왕이면 눈이나 펑펑 쏟아져라.

(음악-캐롤송이 흘러나온다. 음악이 점점 커질수록 철이는 점점 지친 표정으로 다니다가 구석에 놓여 있는 벤치를 발견하고 가서 앉는다. 추위에 벌벌 떨면서 앉아 있다가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본다.)

철이 : (옆의 남자에게) 저... 죄송하지만 배고파서 그러는데... 제가 돈이 없어서요..... (그 사람이 고개를 들면 철이는 놀란다.)

음악과 함께 불 꺼진다.


3막 - 윤주의 이야기


불이 켜지면 무대 중앙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윤주는 양말을 벽에 정성스럽게 걸어 둔다.

윤주 : 아빠는 오늘도 늦으시려나. 또 어디서 술 마시고 계시나...?

아주머니가 등장한다.

아주머니 : 윤주야, 느그 아부지 아직 안들어오셨냐?

윤주 : 네.

아주머니 : 쯧쯧... 불쌍하기도 해라. 느그 엄마 죽은 뒤로 느그 아버지는 정신도 못 차리고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다니니, 어린 니만 불쌍하지....

윤주 : 그래도 술만 안 드시면 잘 해 주세요.

아주머니 : 그려, 니가 용타. 느그 아부지 다 이해하고 말이야.... 참, 니 저녁 안 먹었으면 와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

윤주 : 아니에요. 아빠 금방 오실 거예요. 오면 같이 먹을게요.

아주머니 : 그래... 오늘이 그 뭣이냐,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우리 애들은 난리가 났는데... 언제 너처럼 철이 들라나 모르겠다.

윤주 : (미소 지으면서) 예... 그럼 들어가세요.

아주머니 : 그려... 아부지 안 들어오시면 늦게라도 와. 너 먹일 밥은 있으니께. (뒷 쪽에 있는 양말을 보면서) 니도 아그들처럼 양말 걸고 그러냐?

윤주 : (당황해서)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더러워서 빨아 말리는 거예요.

아주머니 : 그려, 그럼 난 간다. (퇴장)

윤주 : (아주머니가 가는 것을 지켜본 뒤 양말을 쓰다듬으면서) 내일 아침에 누군가가 채워줬으면 좋겠는데... (구석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묻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벌써 아침이네... (전화를 받는 동작) 여보세요. 네, 맞는데요. (놀라서) 네? 뭐라구요? 경찰서요? 네... 아빠가요? 그 사람은 전치 16주라구요? 그럼 아빠는 어떻게 되는 거죠? (힘이 없는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는다) (맥없이 서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양말 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여전히 텅 비어있는 양말을 보면서 실망한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이 양말을 채워 놓았을 텐데... 이 텅 빈 양말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어. 아빤 교도소에 들어가실지도 모른다고 하고... (양말을 들고 터덜터덜 걷는다. 무대 아래쪽에 마련된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 벤치에 털썩 주저앉는 윤주.)

남자 : (천천히) 그 양말... 많이 낡았구나.

윤주 : 이 양말이요...? 이 양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엄마 돌아가신 후로 처음 만나요. 글쎄요. 옛날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는 이 양말이 저에게 기쁨이었는데... 이젠 그런 기쁨이 더이상 채워지지 않네요.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남자 : 내가 양말 속에 기쁨을 담아줄까?

윤주가 ,깜짝 놀라면 불이 꺼지면서 음악이 나온다. 음악 계속


나레이터 : 벤치가 있습니다. 그 벤치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벤치에 앉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벤치에 앉기만 하면 그 남자는 평안과 안식과 구원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그 옆 자리는 늘 비어 있습니다. 그나마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라도 곧 그 자리에 앉았던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은 즐겁게 놀기에 바쁘고, 아무도 그 남자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남자는 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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