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성극이론및서적

스크랩)4.성극의 범위

은바리라이프 2009. 6. 25. 20:43

4.성극의 범위

성극은 이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재로 수용될 수 있고
그 표현 방법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성극으로 공연될 때 관객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신앙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야만 허용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Stephen Schwartz 가 작사 작곡한 rock musical “GOSPEL”이라는 연극은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들이 전도사역을 하다가 결국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뒤 승천한다는 지극히 평이한 내용을 테마로 한 뮤지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극에 등장하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한결같이 청바지에 엷은 티셔츠를 입었으며 이제까지 모아온 인자한 턱 수염대신에 조금은 거룩해 보이지 않는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는 데다 전편에 흐른 음악이 강한 비트의 하드롹(hard rock)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뮤지컬을 두고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등장했으니 과연 성극이라고 할 수 있느냐 아니면 청바지를 입은 예수님이 등장하고 전자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이 나오니 성극은 커녕 반기독교극 정도로 치부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삼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          ]    사진 - 1-4-1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선교극단 아해의 「롹 뮤지컬 가스펠」의 한장면. 이 작품에선 예수님의 의상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의상이 현대화 되고 음악마저도 강렬한 헤비 메탈의 반주로 진행되어 한때 많은 크리스천으로부터 예수님의 신성을 무시하는 작품이라고 비난을 받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교극이 그다지 많이 공연되지 않던 시절 매년 성탄절을 앞두고 대형극장에서 공연될 때마다 많은 관객들이 몰려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린 그같은 성극의 소재와 표현의 방법의 범위를 놓고 생각하기에 앞서 성극이라는 단어의 뜻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극이라는 단어엔 상당한 함정과 모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성극(聖劇)이라는 이름의 뜻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거룩한 연극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극 자체가 거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말을 또다시 풀어서 해석하자면 은혜스러움이나 거룩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코메디 극과 현실 비판극은 성극의 범주에 포함할 수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극하면 얼른 머리에 떠올리기를 히브리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턱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람들이 등장하고 예수님이나 아브라함 정도의 비중있는 배역이 등장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해온 성극의 소재나 배경은 그렇게 시대극으로 한정되지만은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으켜야 할 성극운동의 소재는 히브리 시대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만으로 국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신앙적인 갈등으로도 성극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은혜스럽게 극이 진행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우리모두 스스로 뼈저리게 지켜 보아야 할 현실 비판극이 소재로 등장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주일학교 학생으로 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성극을 지켜보며 한바탕 웃음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코메디도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소재를 다룬 연극을 성극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두기엔 역시 한계를 갖고 있으며 오히려 소재와 표현의 제약을 자져 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          ]  사진 - 1-4-2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하는 어린 꼬마 로라와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인 노인이 한 병실을 사용
                 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재밌고 가슴 아프게
                 진행되는 선교극단 로고스의 「슬픈로라」의 한장면.
                 이 작품 역시 기독교적인 냄새는 나지 않지만
                 죽음에 대한 신앙적인 체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런측면에서 볼 때 역시 성극이라는 단어는 앞으로 추구해야 할 기독교 연극운동에 분명한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스스로의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 연극은 결코 거룩해서만 될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극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크리스찬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하며 습관에 의해 아무생각없이 행해지는 잘못된 신앙을 정확히 지적해 주고 실랄히 비판하고 지적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기회에 성극이외의 다른 표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서술해 보겠지만 성극이라는 표현 보다는 기독교 연극이라는 표현이 현재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고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해결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극의 범위를 생각한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물론 성극에서는 예수님이 등장하고 솔로몬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전과자가 등장할 수도 있고 술주정뱅이가 등장 할 수도 있습니다. 소재 또한 성경의 정사(正史)가 될 수도 있지만 성경엔 등장하지 않는 야사(野史)가 될 수도 있으며 삶의 역경을 신앙으로 극복한 사람들의 간증문(干證文)이 소재일 수도 있고 목회자의 상담창구에 비친 현대신앙인들의 갈등도 극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성극은 이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재로 수용될 수 있고 그 표현 방법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단, 그것이 성극으로 공연될 때 관객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신앙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야만 허용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