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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기드온)1.기드온의 성공일지

은바리라이프 2009. 6. 13. 22:26

유산(기드온)1.기드온의 성공일지

안정현 2008-07-29 21:26:26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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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드온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사사시대 초기 이스라엘이 미디안에 의해 고통받을 때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입니다. 기드온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전형적인 패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어두운 시대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백성들이 고통속에 울부짖는 소리가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보통사람을 부르셔서 그에게 능력을 부여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며, 그 구원의 소식을 널리 알리시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독특한 신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의 어떠한 신화에서도 이렇게 사람들의 고통을 하감하시고,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사람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신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틈만 나면 자신들을 선민으로 부르며 하나님을 자기 민족만의 하나님으로 한정시키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시도는 선지자들에 의해 철저히 배격됩니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통받던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던 것처럼 블레셋 사람들을 크레타 섬에서 이끌어 내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사야는 이방인인 고레스를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왕으로 칭하고, 그 외에도 이방인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선지자들의 구절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아버지이신데 특별히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의 하나님, 즉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고통당할 때, 그들이 울부짖을 때 그들이 고통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시는 분입니다.

기드온 역시 어두운 시대에 부름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약탈과 횡포에 신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이 특별히 잘난 점이 있어서 부르심받은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행동하시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큰 용사여 야웨께서 너와 함께 하시다’라고 그를 부르십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이러한 부르심앞에 코웃음을 칩니다. ‘야웨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라고 기드온은 반문합니다.
기드온은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야웨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셨다고 하는데 그 모든 이적이 지금은 어디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그 많은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기드온이 태어나서 바라본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성경속에서 그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셨던 주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당신이 정말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이상한 것은 이러한 기드온의 질문에 대해 천사가 한마디도 응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인생가운데 이런 불공평한 일이 있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좋으신 분이신지에 대해 단 한마디도 변증하거나 논증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입을 열어 기드온에게 그분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냈다’
천사는 현재의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답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마디 하는 것은 ‘네가 그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너의 힘으로 그것을 해결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사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에는 ‘하나님의 영’으로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힘과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삼손의 경우도 그렇고 많은 사사들이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 승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는 어떠한 힘과 능력도 부여되지 않고 그런 약속도 부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너의 힘으로 그것을 이루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구원할만한 힘이 이미 네 안에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에게서는 독특한 구원관이 나타나는데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로 너의 몫이며, 그것을 해결할 모든 역량이 네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기드온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시는데 기드온의 집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를 찍어버릴 것과 홀로 주님의 길을 걸어갈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기드온의 집안에는 바알을 위한 제단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바알제단이 훼파된 것을 알고 난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기드온 집의 바알제단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던 제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기드온의 집은 바알신을 섬기던 제사장 집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단이 찍힌 후에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기드온을 두둔하며 ‘바알이 신일진대 자신을 위해 스스로 다툴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자발적이 아닌 강압적으로 바알 신을 섬기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민족간의 정체성의 차이는 혈연이나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신들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미디안 종족이나 주변 여러 나라와 화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신을 섬기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아스와 기드온은 원하지 않았지만 집에 바알제단을 설치하고 미디안과 같은 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다른 나라를 정복한 민족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요소들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하고 난 뒤 언어를 말살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언어와 종교만 말살하고 두 세대만 지나면 사실상 민족적 정체성은 사라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바알제단을 찍으라고 요구하신 것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 자신과 자기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성찰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운 시대에 기드온을 부르신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역사를 바로 세우고, 자기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번째로 기드온에게 요구하신 것은 홀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정체성을 확인하고 대의명분을 세운 기드온이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나팔을 불었을 때 무려 32,000명이라는 군사들이 그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32,000명의 군사들 모두를 부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두렵고 떨리는 사람은 돌아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에 이만명의 군사가 돌아가고 만명의 군사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명도 많다고 말씀하시며 훈련 후 물을 마시는 모습을 기준으로 삼백명의 군사만을 남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홀로 걸어갈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길은 창조적 소수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다수의 힘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드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백명의 용사가 모든 전투를 담당한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는 전투의 새로운 물꼬를 텄을 뿐입니다.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자 납달리, 아셀, 므낫세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미디안을 추격하여 그들을 쳐부수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기드온이 돌려보낸 사람들이 실은 돌아가지 않고 멀리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드온이 돌파구를 마련해내자 함께 몰려와 적들을 추격하는 일에 동참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도 창조적 소수가 해야할 일과 다수가 해야할 일이 구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