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 산책⑨] 고백이 자유를 낳으리니 | ||||
나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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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니엘 호돈(1804 ∼1864)이 쓴 〈주홍글씨〉에서 주인공 헤스터가 가슴에 달고 다니는 ‘A’(adultery)라는 낙인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치욕이자 고통이며, 억압이었다. 고매한 청교도 정신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초기 미국 이민자들 사이에서 ‘간음녀’는 마치 영혼을 사탄에게 판 자와 같았다. 인간이되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철저히 무시되고 조롱받았다. 그에 비해 딤즈데일 목사는 스스로 가슴에 낙인을 찍는다. 헤스터의 침묵으로 겉으로는 비난을 받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눈조차 피할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더욱이 양떼를 인도해야 할 목회자로서의 가책으로 수없는 회개의 시간을 보낸다. 금식과 자학으로 점철된 7년여의 고행은 헤스터의 옷에 수놓아진 ‘A’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낙인과 숨겨진 낙인의 무게차는 죄의 대한 고백으로부터 기인한다. 강요됐건 아니건 간에 죄의 고백은 일말의 해방감을 낳는다. 헤스터가 주위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를 자처하며, 이웃을 돕고 선을 쌓아나갈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죄에 대해 침묵해 온 딤즈데일 목사는 나날이 명성과 존경이 더해가는 데도 불구하고 서서히 시들어간다. 영혼의 파멸 때문이다. 낙인의 무게차가 죄 고백의 문제라면, 영혼의 자유는 죄 사함의 문제다. 헤스터가 간음죄에 대한 7년의 속죄를 거쳐 이제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딤즈데일 목사와의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인간적 자유로움을 추구한 반면, 딤즈데일 목사는 철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만이 자신의 죄를 사할 수 있다는 믿음이자, 신앙 고백이었다. 7년 전 헤스터가 홀로 섰던 광장 사형대 위에 올라 군중을 향해 스스로 죄를 고백하는 용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죄 사함의 과정이었다. 청교도 시대의 윤리문제를 소재로 한 고전임에도 소설이 현 시대와도 그다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죄와 구원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질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크리스천의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죄고백의 문제이기에 〈주홍글씨〉의 가치는 소설적 긴장과 재미만큼이나 튼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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