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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신학의 문제

은바리라이프 2009. 6. 3. 17:17

한국 개신교 신학의 문제
김진홍 목사와 김동길 교수의 입장을 보며
[뉴스앤조이] 2009년 06월 01일
 
지금 한국 개신교는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본질은 김진홍 목사, 혹은 김동길 교수로 대표되는 우편 쪽, 뉴라이트 운동의 이론들이다. 현 대통령은 이들의 운동과 주장의 결과로써 드러난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과 이론은 기독교적인가 하는 데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김진홍 목사와 뉴라이트 운동이 주도한 대통령 만들기의 결과로 장로가 집권했고 그 장로가 집권하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노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호원을 파견했다. 파견한 경호원 10여 명의 경호 태도가 노 대통령을 감시한 것인가, 혹은 경호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노무현의 실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는 한국 민주주의 초유의 사태에서 한국 개신교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헤겔이 말한 대로 역사는 우편에 있는 자들의 것이다. 어차피 역사는 힘을 쥔 자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 중심의 진보적 역사관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물론 기독교, 기독교 운동의 핵심은 이런 진보적인 역사관과도 잘 들어맞는다. 성서에서 예수님이 선포한 종말론적인 하나님나라의 도래란, 결국 신세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되 시대적 환경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던 구세대들에 대해 내리는 도덕적 심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세대들이 내리는 도덕적 심판의 문제는 과학 발전으로 인하여 인간의 도덕적 심판 내용이 성서적인 심판과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성서가 보여주는 신세대의 도덕적 심판이란 영적 심판일 수밖에 없었던 반면에, 21세기에는 무기를 쥔 자의 단순한 심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이 시간에 김정일이 핵무기를 가지고 도발한다면, 그래서 수많은 선의의 생명이 피해를 당한다면, 그 순간 한반도는 하나님의 도덕적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며, 한 미치광이가 생명을 파괴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성서 적용의 어려움이 있다. 이 시대는 인간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계시 결과인 이성, 과학, 기술을 사용해서 생명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신교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말씀인 성서를 그 모든 논리의 출발점으로 이용해 왔고, 김진홍 목사는 "성서 위의 한국"이라는 그의 초기 구호에 발맞추어서 성서를 자신의 철학에 맞게 이용하는 목회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성서를 잘못 풀어서 망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는 성서를 성서로 풀지 못하고 자신의 민주주의 해석으로 풀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자신이 생각하는 자유 민주주의를 가장 숭고한 가치로 생각한다. 그의 목회 경력을 보면 이와 같은 성서 해석의 문제에 그가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는 김동길도 마찬가지다. 그도 역사학자로서 진보적 지식인이었으나, 그는 성서 해석이 가진 양면성, 즉 목회자가 성서를 풀어서 설교하는 입장과 독자가 자신의 입장대로 성서를 해석하는 입장 사이의 긴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김진홍이나 김동길이나 이런 점에서 자신의 신앙 양심의 잣대로 성서를 해석하는 오류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것이 일천한 한국 개신 교회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것이 한국 교회 신학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런 해석학적 갈등과 긴장을 충분히 극복하고 목회할 수 있는 목회자 수는 극히 적을 것이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구절들을 성서에서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어떤 성서 구절을 근거로 해서 자신의 이론과 주장을 전개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다.


두 가지 다 비판적 지성이 없는 평신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철학들의 도전에 개신교가 묵묵부답하거나, 반대 논리를 펼치기 힘든 것이다. 이는 슐라이허마허가 이미 19세기에 경험한 무력함이기도 하다.


이를 가톨릭은 쉽게 극복한다. 가톨릭은 출발점이 성서가 아니며, 따라서 언제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입장 변경이 가능하다. 교황에 의해 시대에 맞게 해석된 교리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다리를 자유롭게 건너 교회의 전통과 역사의 힘에 실려 선포되며, 그 실천은 완전 신분이 보장된 신부들이나 세상의 평신도들이 삶의 정황에 맞추어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신학적 차이는 실천적 차이를 낳게 되고, 이것은 한국 개신교가 당면한 해석학적 차원의 위기인 것이다. 한국 개신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해석학적 긴장을 지도자들이 얼마나 인정하고 수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선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