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로도 고칠 수 없는 세상에… 봉준호, 치유와 위안의 침을 꽂다
| ‘마더’ |
자신을 진짜 살해범으로 고발한 엄마 혜자(김혜자)에게 마치 보복이라도 할 양으로 비오는 밤 그녀의 집에 무단 침입한 아들 친구 진태(진구)는 며칠 전의 살인극에 대해 그녀에게 그럴듯한 추리를 내놓는다. 진태는 창밖의 허름한 동네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근데 왜 죽은 애를 옥상에 내놨을까. 그 옥상에서는 이 동네가 다 보여. 이 동네는 참 이상한 동네야. 그러니까 엄마는 말야, 아무도 믿어서는 안 돼. 나도 믿지 마. 알았어?”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마더’는 외형상, 살인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아들을 대신해 진짜 살인범을 쫓는 엄마의 얘기, 그 모성애의 극치를 담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녕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진태의 대사처럼 사실은 ‘동네’에 대한 것이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 사회에 대한 얘기다. 음산하고 비루하며, 뭔가에 억눌려 있으며, 또 누군가에 의해 쫓기고 있는 듯 잔뜩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우리 사회 내면에 대한 얘기인 것이다. 혜자의 아들 도준(원빈)은 정말 살해범일까. 정신지체인이자 자폐증 환자인 도준이 살인을 저지를 능력이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짜 살인자는 누구일까. 바보 도준을 이용해 먹는 동네 건달 진태가 죽인 것이 아닐까. 혹시 도준을 심문한 경찰(윤제문)이 자신의 파렴치한 원조교제 행각을 숨기려고 없는 죄를 만들어 덮어씌운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이 엄마의 착각일 뿐, 살인은 도준에 의해 우발적으로 저질러진 것이 아닐까. 영화 속 살인사건에 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며 미스터리와 호러의 분위기를 넘나든다. 봉준호는 자신의 영화에서 한번도 직접적으로 사회 현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정치적 발언은 더더군다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영화에서는 사회에 대한 항변과 저항이 느껴진다. 봉준호는 얘기의 흐름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장면을 슬쩍 끼워넣는데, 예컨대 전작 ‘괴물’의 첫 장면에서 투신자살하는 한 남자의 모습, 이번 ‘마더’에서 시골길을 걸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저 멀리, 롱테이크(long take)와 롱 샷(long shot)으로 보여주는 장면 같은 것이다. 그런 모습에서는 지금 당장 뭔가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터지기 직전, 뭔가에 의해 꽉 눌려 있는 듯한 분위기. 폭발 직전의 침묵. 쏴 하며 흔들리는 나무 숲, 그 뒤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한 죽음의 침묵 같은 것이 감지된다. 그의 영화에서는 늘 음울하고 축축한 습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줄곧 비가 쏟아지는 것, 어둠과 새벽의 안개가 교차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봉준호의 영화는 늘 주변을 초조하게 되돌아보게 할 만큼 우리 사회의 불안증을 내포한다. 당신 뒤에 지금 엄청난 공포가 숨어 있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의 시대와 세상에 대해 정확하게 해독하게 만든다.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세계인 만큼 어쩌면 비관과 염세, 체념을 통해 오히려 세상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모성애조차 교화시킬 수 없을 것 같은 세상. ‘마더’의 엄마는 치마를 걷고 과거의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자리에 침을 꽂는다. ‘마더’는 그 침처럼 세상을 치유하고 조금이라도 위안하고자 하는 봉준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영화다. |
| 기사 게재 일자 2009-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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