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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문10답 ‘존엄사 대상’병원마다 제각각… 입법까지 ‘산 넘어 산’

은바리라이프 2009. 6. 2. 21:32

‘존엄사 대상’병원마다 제각각… 입법까지 ‘산 넘어 산’

大法, 존엄사 첫 인정 남은 과제·사회적 파장
이제교기자 jklee@munhwa.com
9대4.

대법원은 2009년 5월21일 한 인간의 ‘생명’에 종지부를 찍게 하는 판결을 내렸다. 올해 나이 76세 김모 할머니, 식물인간 상태(vegetative state) 15개월, 458일째. 대법관 13명 중 찬성 9명, 반대 4명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었다. “진료중단은 생명존중의 헌법이념에 비춰 신중히 판단해야 하나…(중략)…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서,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엄을 해치게 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시선을 내리깐 채 8분 동안 조심스럽게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국내 첫 존엄사 허용인정 확정판결이었다. 합법적 자살, 죽음의 권리에서부터 사회적 타살, 소생권 박탈 등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존엄사의 정의와 허용 조건,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에 던지는 의미 등을 심층분석해 본다.


1. 존엄사 소송 어떻게 시작됐나

김 할머니는 지난해 2월18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던 중 과다출혈 등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가족들은 의료과실이라고 주장하면서 3월4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연명치료 중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측은 연명치료를 중단해 살인방조죄로 처벌된 보라매병원의 판례를 들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김 할머니측과 세브란스 병원간의 존엄사 소송이 시작된다. 1심과 2심 법원은 김 할머니의 손을 들어주었고, 대법원 역시 존엄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김 할머니와 병원간의 소송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다. 의료사고 손해배상 민사소송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김씨 가족들은 병원측을 형사상 업무과실치사로 고소해 놓고 있다.

2. 호흡기 언제, 어떻게 떼어내나

대법원 판결은 났지만 김 할머니가 ‘웰 다잉(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측은 “판결문이 접수되고 나서 병원윤리위원회를 소집해 존엄사 방법 등에 대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세브란스 병원의 존엄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김 할머니의 경우는 병원윤리위 판단이 빠져 있어 시간이 더 지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존엄사 대상은

매년 암으로 숨지는 환자는 평균 6만명이며 중증 뇌졸중과 회복 불능의 만성신부전을 앓고 있는 환자도 약 4만명에 이른다. 이들 중증환자 10만명 중 상당수가 이번 대법원 판결로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과연 대법원이 인정한 ‘존엄사’에 이 환자들이 모두 포함될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고 의료계도 각기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 환자인 김 할머니는 식물인간 상태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은 식물인간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환자도 존엄사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서울대병원은 말기 암환자로 대상을 한정했다. 식물인간의 증세가 다양하기 때문에 존엄사 대상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선 아직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심폐소생술 거부와 인공호흡기 제거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영양 공급 중지 등은 병원마다 견해가 다르다.

4. 안락사, 뇌사와 다른가

존엄사는 말 그대로 ‘품위 있는 죽음’이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는 것이다. 반면 안락사는 약물 등을 환자에게 투입해 죽음시기를 앞당기는 인위적인 행위다. 질병으로 인해 고통이 큰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다. 뇌사는 뇌의 활동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정지된 상태다. 의학적으로는 대뇌를 포함해서 생명을 주관하는 뇌간의 기능이 정지됐고 이로 인해 반사작용이 없거나 무호흡증상이 모두 확인되는 경우다. 식물인간 상태는 심장과 폐 기능이 작동을 멈춰 심한 뇌손상을 받은 환자들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지속적으로 생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5. 대법원의 세가지 허용기준

대법원이 발표한 존엄사 허용기준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와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라는 두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사망단계 진입 여부는 주치의, 진료기록감정의, 신체감정의 등 3명의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할머니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주치의가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서 의식회복 가능성이 5% 미만이라는 견해를 피력했고 ▲일반적 식물인간 상태보다 더 심각해 뇌사 상태에 가깝고 회복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신체 감정의가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대법원이 받아들였다.

6. 안락사 문제가 옛날에도 있었다는데

존엄사와는 차이가 있지만 생명 포기, 안락사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상주의 철학자 플라톤은 기형아가 태어나면 내다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세시대에는 ‘인간의 생명권은 신에게 있다’는 기독교 사상이 퍼지면서 이같은 관행은 자취를 감췄지만 르네상스 시대에는 죽음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바라봤다.

서구사회에서 존엄사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1975년의 ‘카렌사건’이다. 21세 미국 여성 카렌 퀸란은 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녀의 부모는 소생불가 진단이 내려지자 신학적으로 비통상적 치료(extraordinary treatment)를 통한 생명연장의 윤리적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에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고, 1심에서는 살인행위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7. 해외에서는 어떻게 할까

외국에서는 나라별로 존엄사에 대한 입장이 각기 다르다. 하지만 최근 선진국에서는 존엄사를 부분적으로 허용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2000년 11월 불치병 환자의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켜 가장 먼저 안락사를 허용했다. 프랑스도 2005년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소생 가능성 없는 말기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6년 연방 대법원이 주별로 존엄사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판결하면서 사실상 허용 쪽으로 가닥을 잡아 40여개의 주에서 존엄사 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8.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경우도 있다던데

식물인간 상태에서 간혹 의학적 상식을 깨고 기적적으로 깨어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국의 신화(新華)통신의 인터넷판인 신화왕(網)에 따르면 중국 광시(廣西)에 거주하는 탕위(여)씨는 지난해 4월 선천성 뇌혈관 기형으로 뇌출혈이 발생해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탕위씨는 7개월여뒤인 11월6일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탕위씨는 출산 뒤 몸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해 거짓말처럼 몸을 움직이며 11월27일 퇴원했다.

또 2003년 미국 아칸소주에서는 테리 윌리스라는 남성이 혼수상태에 접어든 지 19년 만에 깨어나는 일도 있었다. 19살때 교통사고를 당해 20년 가까이 침대에 누워있던 그는 뇌가 스스로 재생하는 믿기 어려운 기적을 보이며 깨어나 저널에 발표되기도 했다.

9. 존엄사가 ‘고려장’이 될 가능성은

존엄사 허용으로 돈과 죽음을 맞바꾸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치료비가 없는 저소득층이나 자녀와 재산 분쟁을 겪는 노인의 경우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연명치료를 거부하거나 거부당할 가능성이 있다. 식물인간의 경우 수개월에서 길게는 십수년의 병수발을 해야 하는 점이 가족들에게 경제적·정신적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의료현장에서는 연명치료 거부 결정이 본인보다는 가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의료산업화의 일환으로 수익 중시 의료시스템이 만연하면 병원측이 돈 없는 환자의 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10. 후속 입법절차 어떻게

입법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신상진(한나라당) 의원이 ‘존엄사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같은 당 전현희, 김세연 의원도 각각 별도 발의를 준비 중이다. 존엄사 법안의 핵심은 대상 환자를 기준으로 한 질환별, 환자 상태별 세부기준의 마련이다.

이와 함께 서울대병원은 연명치료의 범위를 말기암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 3가지로 국한하고 있다. 하지만 세부 쟁점사항에 대한 논의는 초기 단계 수준이며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상 문제도 남아있다. 대법원은 ‘사전의료지시(동의서)’와 불가피할 경우 환자의 평상시 언행으로 의사를 확인하도록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구체적 부분에서 의견이 엇갈릴 경우 판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용권·박준희기자 freeuse@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