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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중과 존엄사의 긴장관계

은바리라이프 2009. 6. 2. 21:26

생명 존중과 존엄사의 긴장관계

인간의 생명은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로 인정된다. 생명의 존중은 헌법의 최고 이념인 ‘인간의 존엄’에서 직접 도출되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다른 기본권을 실제 행사하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의 가치 또한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생명이 소중한 이유는 그 생명을 기초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엮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생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활용해 의미 있는 삶의 형성이 가능하게 된다는 점에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존중은 어떤 방식으로 살 것인지에 대한 기회를 주는 것이며, 이는 동시에 어떻게 죽을 것인지의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논란됐던 존엄사 문제는 이런 의미에서 일종의 한계상황의 문제이기도 하다. 생명 존중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존엄사를 부정하는 반면 생명의 의미를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존엄사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1일 대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이제 존엄사 문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존엄사를 인정하기 위한 엄격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존엄사의 인정이 생명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 점은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만으로 존엄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문제는 환자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환자가 명료한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죽음을 선택한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예컨대 환자가 의식불명 상태인 경우)에는 환자의 사전적인 지시가 있었거나, 평소 신념이나 가치관에 비춰 환자가 스스로 결정할 기회가 주어지면 치료 중단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경우에 존엄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의 근거를 둘러싼 논란의 소지는 여전히 큰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판단 기준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수단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하며, 조만간에 사망할 것이 명백한 상황일 때에 비로소 존엄사가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판단에서 대법원 판결의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나듯이, 언제부터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존엄사를 인정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자신의 생명을 바쳐 타인을 구하는 경우처럼 자신이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존엄사가 오남용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존엄사와 관련해 많이 문제가 되는 것의 하나가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이다. 즉,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들이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는 것을 문제 삼아서 존엄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가족의 부담 때문에 환자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현대판 ‘고려장’으로 변질될 우려를 안고 있다. 만일 환자가 가족의 눈치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를 어찌 존엄사라 부를 수 있겠는가.

존엄사의 인정 요건을 법적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대법원 판례를 통해 이를 구체화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엄사에서 문제가 되는 ‘생명 존중과 존엄한 죽음 사이의 긴장 관계’를 환자 및 그 가족들과 의료진을 비롯해 모든 국민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장영수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