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母性, 그 뜨거운 불덩어리

은바리라이프 2009. 6. 2. 21:44

母性, 그 뜨거운 불덩어리

마더, 부족한 아들 위한 엄마의 사투 그린 영화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혜자 선생님.

영화 ‘마더’의 봉준호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부르는 호칭이 정겹게 들려 흉내를 내봅니다. 김혜자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나은지요? 만 47년 동안 연기를 하며 우리네 삶을 위로해 온 배우에게 ‘님’자를 붙이는 것을 독자들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20일 오후 서울의 한 극장에서 열린 영화 ‘마더’의 시사회에서 무대 인사를 하는 선생님은 아름다웠습니다.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당당히 서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는 모습이 고혹적이라고 할 만했습니다. 오는 28일 개봉되는 이 작품을 일반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떨린다고 하면서도 서그럽게 웃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엄마’ 혜자는 그렇게 웃지 못합니다. 살인범으로 몰린 아들 도준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엄마 혜자의 표정은 비장함이 주조를 이룹니다. 아들을 억울하게 뺏길 수 있다는 분노와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의 두려움이 광기로 폭발하는 후반 대목에선 흡사 신이 들린 얼굴이었습니다. 그것이 ‘모성’이라는 범박한 소재를 다룬 이 작품을 초유의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빛나게 하는 불덩어리의 핵심입니다.

영화 도입부에선 봉 감독이 자그마한 체구를 가진 68세의 여배우에게 너무 버거운 짐을 지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엄마에게서 ‘혜자 선생님’이 언뜻 보였기 때문입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모성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뜨겁고 강렬한 불덩어리의 핵을 파고들겠다는 봉 감독의 의욕에 대해 의혹이 일었습니다.

기우였습니다. 혜자 선생님은 어느덧 사라지고 세상 천지 아들 하나 품고 사는 엄마 혜자만이 숨가쁘게 뛰어다니며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혜자가 마지막에 춤을 추는 슬프고도 아름다우며, 또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나올 때까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혜자는 흔히 엄마라는 이름에 깃든 통념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엄마 혜자와 아들 도준의 행동에선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비극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습니다. 봉 감독은 영화 곳곳에서 성적(性的) 상징을 살짝살짝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숨은 그림 찾기의 불편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살인혐의를 받는 혜자의 아들 도준은 가끔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2% 부족한 청년 건달’입니다. 배우 원빈은 도준 역을 통해 천진무구도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제2의 연기 인생을 시작한 원빈은 부족한 인물 역을 통해 앞으로 더욱 충만한 사랑을 받을 듯합니다. 도준의 친구인 진태 역을 한 진구는 원빈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입니다. 그는 거친 야성을 뿜어내며 극에 입체감을 불어넣더군요.

봉 감독이 누차 말했듯이 이 작품은 그의 전작들에서처럼 이야기의 외연이 넓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모둠살이의 음울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경찰의 무능이나 변호사의 부패 등을 야유하는 대목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살해된 여고생이 쌀을 받기 위해 매춘을 하는 ‘쌀떡소녀’로 불렸다는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결핍의 악순환이랄까. 혜자가 부족한 아들을 뒀기 때문에 벌이는 엄청난 행위들이 세상살이의 모순에 가 닿아 있기 때문에 여운이 긴 게 아닐는지….

혜자 선생님, 어쩌면 스크린에서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몰라 혼신의 힘을 다하셨다고 하셨지요? 1982년 스크린 데뷔작 ‘만추’에서는 남편 살해죄로 복역하다가 특별휴가를 나와 가을 풍경 앞에 선 쓸쓸한 중년 여인 역을, 1999년 고 최진실씨와 공연한 ‘마요네즈’에서는 딸에게 밍크코트를 사달라고 조르고 바퀴벌레가 무서워 한밤중에 전화를 거는 엄마 역을 했지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여진 인자한 엄마와는 다른 이미지를 스크린에서 보여온 셈입니다. 그렇게 다른 세계를 추구한 연기혼의 절정에 ‘마더’가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마더’가 우리 관객들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다가가길 소망했습니다.

“엄마의 본질은 같아요. 상황 때문에 모성의 표현이 다르게 나오는 것이겠지요. 많은 분들이 ‘마더’를 보면서 가슴속에 있는 엄마를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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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 일자 2009-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