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두려움(사울)4.사울 왕국의 시작2

은바리라이프 2009. 3. 17. 22:33

두려움(사울)4.사울 왕국의 시작2

안정현 2008-08-06 13:11:12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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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무엘이 늙어 더 이상 사사 일을 할 수 없어 그의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웠을 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의 두 아들 역시 그의 전임자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타락하여 뇌물을 받고 편파적인 재판을 진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사무엘이 살고 있던 라마로 몰려와 그에게 왕정을 요구하게 됩니다. 사무엘의 아들들이 실패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스라엘의 모든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몰려갑니다. 뿐만 아니라 재판을 잘못한 사무엘의 아들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이야기하지 않고 왕정을 세워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사시대가 개인의 자발적 동의에 기초하고 지파간의 평등성이 존재하던 시대라면 왕정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왕정하에서는 상비군과 행정조직이 존재하고, 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걷게 됩니다. 그러한 제도를 장로들이 요구한 것입니다.

 

아마도 이곳에 올라온 장로들은 이스라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획득한 사람들이었을테고, 자신들 중 누군가가 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므로 왕정을 세워줄 수 없다고 버텼지만 장로들의 계속된 요구를 막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모임은 그의 아들들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떄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은 날짜를 정하여 왕을 세우는 절차를 행하겠다고 약속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라마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왕이 세워지는 날까지 남은 기간동안 사무엘은 사울이라는 한 청년을 만납니다.  이미 전날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내일 한 청년이 찾아올 터인데 내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선하였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음날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헤매던 한 청년이 사무엘에게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암나귀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의 질문에 대한 사무엘의 대답이 참 묘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암나귀는 이미 찾았다. 그보다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내가 네게 말해주겠다(삼상 9:19)’라고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이 청년의 마음 속에 있었던 의문이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청년에게도 네가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이어지는 사무엘의 대답인 온 이스라엘의 사모할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비집이 아니냐?’라는 말 속에서 그런 뜻을 어느정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 청년은 사무엘과 함께 그 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청한 자 30명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들은 사무엘과 함께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서른 명의 장로들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들을 소개하는 이유는 자신의 모든 인맥과 자원들을 그에게 넘겨준다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리사는 가장 좋은 부위인 넓적다리를 사울앞에 갖다 놓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사무엘은 사울과 단둘이 있을 때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 몇가지의 예언을 합니다. 베냐민 경계에서 암나귀를 찾았다는 고지를 들을 것이라는 것, 다볼 상수리 나무에서 벧엘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에게 떡 두덩이를 줄 것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산에서 선지자 무리와 만날 때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여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한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실제로 사울의 삶에 일어나게 됩니다. 사울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고 사무엘보다 먼저 길갈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장소 미스바에서 왕을 뽑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고대에 왕을 어떤 식으로 세웠는지는 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이 장면이 최초로 왕이 선출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왕은 대개 유력한 가문간의 연합에 의하여 추대되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어느 가문이 이번에 왕을 하고 다른 가문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거나 혹은 가문간의 결혼에 의하여 지분을 나누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제비를 뽑아서 왕을 선출한다는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려면 특출한 가문이나 장로들이 존재하지 않고 서로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스라엘에는 12지파의 오랜 전통이 존재하고, 각 지파에서도 크고 작은 가문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출애굽하던 시절부터 유다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가장 강력한 지파였고 여호수아나 갈렙은 개인적인 영지를 획득하기도 합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장로들은 사무엘을 찾아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전혀 엉뚱한 방법, 즉 제비를 뽑아서 왕을 세우겠다고 제안합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왕을 과연 제비로 뽑을 때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따를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이어서 혹은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까요?  이스라엘이 가졌던 종교성 정도는 고대라면 어느 나라나 다 가졌던 정도의 종교성입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서 왕을 선택하기에는 이미 이스라엘의 정치체제는 너무 많이 발전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절대권력을 원하고 요구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사무엘은 제비를 뽑았고,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바대로 사울이 왕으로 뽑힙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발이 이어지게 됩니다. 성경에는 어떤 비류들이 혹은 불량배들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 예물도 바치지 않았다고 되어 있지만 아마도 이스라엘의 유력한 가문과 인물들 대다수가 냉소적으로 사무엘과 사울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고,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도 강건너 불구경 하듯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이 왕이 되던 시절의 정황입니다.

이후 사울의 시대를 특징짓게 되는 의심과 공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울의 의심병, 잠재적 경쟁자들에 대한 분노는 이런 배경하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 뽑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기브아의 자기 집으로 돌아왔고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 몇몇이 함께 갔지만 암몬 사람 나하스가 쳐들어 왔다는 소식도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